신경자 집사(마포2대교구) -

원인 모를 고통에 있던 손자를 고쳐주신 하나님

생후 7개월 때 갑작스레 중환자실 입원
절망적 환경 대신 야훼 바라볼 때 치유

 둘째 딸은 36살 늦은 나이에 첫 아들을 낳았다. 2014년 12월에 태어난 나은이는 태어나서 바로 딸과 함께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태어난 지 5일 째 되는 날, 나은이에게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에서 원인을 모르겠다고 해 큰 병원 여러 곳을 갔는데 아무래도 산후조리 과정에서 원인 모를 균에 감염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치료 후 일단락됐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어딘가 이상해보였다. 두 아들을 키웠던 큰 딸은 나은이 눈 주위가 이상하다며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크게 아프다고 보채는 것도 없던 나은이는 마치 아프리카 기아처럼 두 눈에 살이 없고 움푹 들어가 보였다.

 태어난 지 7개월에 접어든 2015년 7월, 나은이를 데리고 동네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을 써줬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등록했더니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아이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진료를 했다. 특별한 병명을 찾는 게 어렵다고 했다. 다만 약간의 뇌출혈과 두 신장에 물이 찼고 돌이 있다는 등 여러 소견을 내놓으며 몸의 조직을 떼내어 미국으로 보냈다. 결과를 기다리며 나은이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아직 말도 못하는 나은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두 번, 그것도 부모만 가능했다. 사위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딸과 함께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병원에서 생활했다. 나는 아이를 볼 순 없었지만 퇴근하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며 기도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나은이를 보더니 사위가 말했다. “어머니, 이제 나은이를 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아이가 어리고 체력이 딸려요. 산다는 보장이 없어 보여요. 더 이상 아이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요” 나는 “왜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느냐.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해보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이를 보내지만 아니라면 살려주시지 않겠느냐. 기도하자”고 강력히 말했다. 그러자 딸이 울며 이야기했다. “엄마, 엄마가 나은이를 못 봐서 하는 말이야. 온 몸에 호스를 꽂고 있는 나은이를 보면 절망적이야. 더 이상은 못보겠어”라며 딸은 통곡했다.

 나는 “눈에 보이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자”고 말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하늘의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병원 내 예배실에서 딸과 함께 눈물로 기도했다. 담당 교구장님은 성도들과 기도처에 모여 나은이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금요성령대망회에서는 철야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은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줬다. 우연히 나은이를 볼 기회가 있었다. 정말 나은이는 두 눈이 테이프로 가려졌고 목에 호스 두 개를 비롯해 온 몸에 여러 호스를 꽂고 있었다. 나도 두 딸을 키웠지만 이런 고통스런 장면은 처음이었다. 나는 오로지 하늘의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둘째 딸 내외에게 “우리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 주시려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 우리 마음을 모아 기도하자”고 쉼 없이 위로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나보다. 나은이는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온 몸의 호스를 빼고 일반 병실로 옮겼다. 할렐루야! 그리고 10월 5일 나은이는 병원에서 퇴원했다. 기도의 힘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이었다. 한 달 뒤인 11월에는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조직 검사 상 아무런 이상 소견이 없다는 결과였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13개월이 된 나은이는 10㎏ 가까운 체중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현재 화요일마다 통원치료를 받고 있지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완전히 치유해주시리라 믿는다.

 이번 일을 통해 나와 작은 딸 내외는 살아계신 치료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서 굳건한 믿음을 얻게 됐다. 바라기는 남편과 큰 사위도 교회에 열심히 출석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길 기도한다.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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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 일정에 따라 읽고 문제를 푸시면 성경1독 하게 됩니다

성경문제 1주: 창세기1장~26

 

1. 창세기11절을 쓰세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하나님이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 좇으실 때 무엇을 지어

 입히시었나요? (2:  ) (    )

 (2:  ) (    )  ① 무화과 치마  ② 가죽옷   ③ 로스 페이스  ④ 방탄 옷

3.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할 때 가인은 무엇

 이라고 대답했나요?  (4:  ) (    )

 ① 용서해 주세요  ② 알아서 찾아 보세요 ③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까

4. 하나님이 홍수로 이 세상을 멸망시킨 이유 2가지는 무엇일까요?(6:  )(   )(   )

  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므로            ② 나이트클럽이 많아서

  ③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므로  ④ 물이 남아 돌아서

5. 수가 끝난지 여부를 알기 위해 노아가 보낸 새는 무엇인가요? (8:  )(   )

  ① 비둘기       ② 까마귀        ③ 참새       ④ 제비

6. 사람들이 구음이 하나이기에 어디에서 만나서 바벨탑을 쌓았나요? (11:  )

  (    )  ① 김해평야     ② 시내 광야     ③ 나일강 유역   ④ 시날 평지

7. 아브함이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처음 단을 쌓은 곳에서 무엇을 했나요?

  (13:  ) (  ) ① 휴식을 취했다   ②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③ 죽었다   ④ 이삭을 낳았다

8. 롯의 세 명의 사위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했나요? (19:   )  (    )

 ① 깜짝 놀랐다  ② 울며 회개했다   ③ 인터넷에 올렸다 ④ 농담으로 여겼다

9. 아브라함이 시험 받은 곳으로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

   (나중에 솔로몬성전이 지어진 장소임) (22:  ) (   )

 ① 에베레스트 산   ② 도봉산     ③ 모리아산   ④ 시내산

10.이삭이 그랄당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몇배를 얻어 거부가 되었나요?(26:  )

  (   ) ① 삼십배   ② 육십배     ③ 백배      ④ 천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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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승자

 

한 어머니가 5살짜리 외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 아이는 동네에 나와서 개구장이 친구들에게 얻어 맞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아들이 얻어 맞고 울면서 집으로 오면 그 집에서는 날카로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골목 밖으로 흘러 나온다."이 녀석, 바보같이 매일 매만 맞고 다녀. 당장 나가. 나가서 때리고 들어 와. 다시는 매 맞고 들어 와서 울면 가만 놓아 두지 않을 테야. 얼른 나가서 때리고 와!"귀한 아들이 친구에게 얻어 맞고 우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생각할 어머니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참 중요하다. 이왕 친구와 싸워서 얻어 맞은 것도 속이 상하는데 엄마에게까지 얻어 맞으며 야단 맞을 때 어린 마음은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그럴 때에는 먼저 위로해 주어야 한다."어머나, 우리 똘이가 얼마나 아프겠니? 가엾어라"하면서 엄마는 일단 아들을 꼭 안아 주고 눈물을 씻어 주며 아픈 곳을 만져준다. 그런 다음 조용히 위로해 준다."똘이야, 그래도 넌 참 훌륭했어. 네가 끝까지 친구를 때리지 않고 참은 건 아주 훌륭한 행동이야. 남을 아프게 하는 일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란다. 우리 그 친구를 용서해 주자."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 복수심과 원망을 사랑으로 녹여 주고 오히려 용서해 줌으로써 진정한 승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아빠와 다투고 나면 끝까지 말을 안하면서 요리조리 골탕을 먹이며 복수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나 우리 집에 조금 손해를 끼친 이웃 사람을 향해 미움과 원망을 품고 적대시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인간의 모든 한계를 초월한 온유함이 드러날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할 만큼' 온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이며 이 세상도 바로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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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야기” (요 14:1-3, 마 8:19-20)|이사/ 김병화목사          

         

“집 이야기” 

14:1-3, 8:19-20

 

1.

톨스토이 우화(寓話)입니다.

거대한 땅을 가진 주인이 어느 날 말했죠.

“해 뜨기 시작해서부터 해 지기 직전까지 내 땅에 말뚝을 박고 망을 쳐 경계선을 그어라. 네가 경계선을 긋는 대로 그 땅을 네게 주겠다.

한 사람이 정말 열심히,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말뚝을 박았어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지쳐갔지만, 한 평이라도 더 넓게 경계선을 긋기 위해 헉헉 거리면서 달리고 달렸어요. 해가 지기 직전, 그는 헐떡거리며 비틀비틀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발걸음을 옮기며 출발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는 출발점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루 종일 온 힘을 기울여 쳤던 자신을 위한 땅의 경계선은 그에게 소용이 없었죠. 사람들이 호흡이 멈춘 그를 들고나가 대지에 묻었어요.

그에게 정작 필요한 땅은 1평이면 충분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우화(寓話)를 통해 ‘인생이 무엇인지’본질을 보게 합니다.

욕심 부리며 살지 말라고 경고음도 내보냅니다.

인생이란 자기 땅을 마련하려고 애쓰다가, 마련한 땅의 귀퉁이 1평에 묻히는 것이라는 것을 보게 합니다.

 

2.

오늘은 집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지난 주간 화요일(728)에 새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전도사 생활비 5만원을 받으며 시작된 혼인생활, 그때 전세금 120만원 중 50만원을 빚을 내어 마련하여 시작된 혼인생활 40여년 만에 “내 집”이라는 것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초동교회 사임 때 퇴직금과 전별금으로 받은 것으로 4년 동안 전세로 살던 집에서 떠나며, 30년 동안 나라 빚을 얻어 마련한 집입니다.

친구들에게 ‘언덕 위에 전망 좋은 집’이라 했더니, “출세한 것이냐?”합니다.

방학동에 아파트를 가졌던 때가 있었지만, 그러나 그 동안 거주했던 집들은 목회와 연관되어 있었어요.

목사는 늘 보따리를 싸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교회를 떠나야 할 때 훌쩍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교회에서 마련해준 집에서의 생활은 늘 ‘떠돌이’같은 마음이었다면, 이번에는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갈 집이다 보니 “내 집으로서의 첫 집”이라는 뜻입니다.

솔직히 기분 좋아요.

그렇지만 집을 마련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톨스토이 우화에서처럼 1평이면 충분하고, 이제는 자꾸 버리고 포기해야 할 때인데, 소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가난해지라고 설교하며 가르쳐왔던 것에 작은 집이라도 소유하는 것에 혹시 욕심 부리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었어요.

더군다나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8:20에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누가복음9:58에서는 ‘집’)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어요.

머리 둘 곳이 없이 사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목사가 ‘제 몸의 거처를 마련해?’송곳으로 찔리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답니다.

 

3.

그러다가 성경을 묵상하던 중, 오히려 용기를 얻게 되었고, 무겁게 느끼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예수님의 말씀 “여우도,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를 잘못 해석했다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상황을 살펴보면,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은 마태복음 8:19은 ‘한 서기관이’이고, 누가복음9:57은 ‘어떤 사람이’라 했는데,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겠나이다.”에 대한 예수님의 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집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나는 한 곳에 정착하여 머물 삶을 살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집 없이 이곳저곳,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 나는 순례자이다. 이런 나를 따르겠느냐? 너는 집도 있고, 가족도 있는데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라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집이 없었나요?

우리는 없다고 짐작했습니다.

아닙니다.

집이 있습니다.

나사렛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자매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곳이 예수님의 집이죠.

단지 예수님은 출가(出家)했을 뿐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들을 살펴보면, 어머니나 동생들의 시각으로는 가출(家出)한 예수의 귀가(歸家), 귀향(歸鄕)은 없었어요.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래도 마르다 마리아 자매의 오빠 나사로 집 다락방에 머물기도 했었습니다.

세리장삭개오의 집에서도 머무셨죠.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도 머물렀었어요.

노숙자 생활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흔적들이 많아요.

예수님은 집이 없는 분이 아닙니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돈궤를 맡을 정도로,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며 다니면서도

일용할 양식이 모자라 굶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은,

“나의 길은 한 곳에 정착하여 제자들을 불러 모아 가르치는 랍비들과는 다르다.

나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떠돌아다닐 텐데, 그래도 날 따르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살 집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 그 동안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4.

다시 성경을 봤더니,

하나님은 끝없이 반복하여 우리들이 살 집에 관심했고, 마련해 주시려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에게 하신 일을 보셔요.

창세기 1장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우주만물, 생물, 식물, 물고기를 만든 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사람을 창조했어요.

“우리의 형상에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1:26)

가축(家畜)이 무엇이죠?

집에서 기르는 짐승입니다.

집이 있었다는 뜻이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7-28) 했어요.

창세기 2장의 J문서의 창조도 보시죠.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니라.(2:8) 집이라고 구체적인 표현은 없어도, 그곳이 아담이 거처할 곳이었다는 것에서 에덴동산이 거처(居處), 곧 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담은 죄를 범한 후 거처()에서 쫓겨납니다.

이후 인류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존재로 삽니다.

이것을 히브리서는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5-16)

‘더 나은 본향’과 ‘하늘에 있는 것’, ‘하나님이 예비한 한 성’이 모두 하나인데, 우리의 거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집을 주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예를 보시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한 내용이 중요합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12:1)

하나님께서 보여 준‘땅’은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이스라엘 민족이 온갖 고난과 시련,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힘이었죠.

약속이 성취되는 사건이 출애굽입니다.

가나안 땅을 향하는 걸음, 순례기가 신앙여정으로 해석되지요.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

‘땅’은 ‘집’입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데려가려 하노라.(3:8, 17)

여호수아24:13에서는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서 거주하며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24:13)

세겜의 재계약 때 한 약속입니다.

 

5.

예수님의 요한복음 14:1-3의 내용도 ‘집 이야기’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갔다가 예비 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이곳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집, 천국이라고도 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라고도 합니다. 회복된 에덴동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어요.

성경이 우리의 집을 위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의 결론의 말씀도 집짓기입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다.(7:24, 26)

그렇습니다.

‘집짓기’입니다.

여기에서 경계할 집짓기가 있어요.

아모스 예언자가 질타(叱咤)한 “상아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송아지를 잡아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6:4-5),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어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여”(5:11) 사는 집은 아닙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며, 고단한 하루의 삶에 안식처로 삼아 새 힘을 얻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거처로서의 집은, 하나님께서도 주님께서도 늘 신경 써 주신 집이라는 것을 결론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집’에 매이고 집착하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물질에 속하는 것이 되죠.

이런 뜻에서 우리는 신앙의 집, 주의 영이 거하실 거룩한 성령의 전으로서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의식주(衣食住)가 본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6:33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곧 입을 것, 마실 것, 거할 곳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한 것입니다.

 

6.

새집이사를 하고 며칠 지내면서 어찌된 집인지 돌아봤어요.

톨스토이 우화처럼 헐떡이며 욕심 부리며 마련한 집은 아니었어요.

지금 살아있는 것이 증거겠죠?

떠돌이 심정으로,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에서 마련해 준 집에 머물다가, “이제 안주하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집이 어떤 집이어야 할까요?

다짐하는 마음이랍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음을 얻는 집이요,

쓰고 싶은 글을 집필하는 집이요,

맡겨주신 생명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이요,

목회의 길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집이 되어야 하리라 다짐합니다. 기도해 주셔요.

 강 석찬 목사



박민지, 김동철 집사(구로대교구)-성령의 임재 속에 아들의 암 4기 완치

“네입을 넓게 열라” 말씀 의지 물질 천배 축복 

 1994년에 인공수정으로 1남 1녀 쌍둥이의 부모가 됐다. 정말 간절히 바랐던 아이들이었기에 행복한 나날이었다. 아이들이 16개월이 되었을 때 감기에 걸려 입원을 했다. 아들에게서 이상소견이 나타났다. 열흘 뒤 서울대학병원 검사결과 신경아세포종 4기였다. 바로 암병동에 입원해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다섯번의 항암치료 후 수술에 임했다. 1년 반동안 열심히 치료를 받았는데 뼈로 전이가 됐다.

 그때까지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았다.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남편이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3일간 금식기도를 하고 왔다. 기도원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체험한 남편은 내게도 전도를 했다. 하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게는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하면 나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뼈로 암이 전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 뒤 나 역시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지못해 남편을 따라 교회에 갔다. 그때 큰 고모님이 기도 집회하는 곳에 가자고 하셨다.

 가기 싫었지만 항암치료 단계가 높아져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고통을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갔다. 집회 인도자는 여자 목사님이셨는데 본인이 여의도순복음교회 가서 금요철야예배 중 성령충만을 체험하신 간증을 했다. 이어서 조용기 목사님이 안수해주시고 신학을 하고 주의 종이 된 이야기를 하셨다. 가만히 예배에 참여하며 듣고만 있었는데 그분이 성령께서 이 자리에 아들 때문에 고통받아서 온 성도가 있다고 했다. 몇몇이 일어서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지목을 받아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 자리에서 성령이 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불덩어리가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 뒤에는 아픈 아들을 데리고 참석했다. 목사님은 하나님께 아이를 긍휼히 여겨 살려달라고 간구하셨다. 그때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은 온전한 주일 성수, 가정제단, 온전한 십일조, 새벽기도를 명령하셨다. 그날 이후부터 새벽기도를 다녔다.

 아픈 아이를 업고 두달간 새벽기도를 쌓는 과정에서 뼈를 스캔한 검사 결과를 앞두고 있었다. 검사 결과 발표 당일 주치의를 비롯해 10여 명의 의료진이 그 자리에 함께 했다. 교수님 한분이 선뜻 결과를 말씀 못하시며 고개만 갸우뚱하셨다. 우리를 보시더니 “암이 없어졌어요. 깨끗해졌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회진을 하시던 교수님이 퇴원을 명했다. 그렇게 외래진료도 한달에 한번씩이 3개월에 한번 6개월에 한번 1년에 한번이 되고 완치 판정을 받게 됐다.
 지금 스물세살인 아들은 현재 대학청년국에 소속되어 건강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다. 또 아들과 딸이 신학교에 입학해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 훈련받고 공부 중이다. 아들이 완치되는 기적을 통해 우상을 섬기던 시댁식구들이 모두 변화를 받게 되었고 나를 비롯해 시아주버니, 조카가 신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 노원순복음교회에 다니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경을 옮겨주셔서 포천에서 강동구로 이전케 하셔서 강동성전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고, 3년전 구로구로 이사하면서 신앙의 뿌리와도 같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감사하게 신앙생활 중이다.

 우리가 처음 십일조를 할 때는 한달에 만원이나 3만원을 했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 ‘네 입을 크게 열라’는 말씀을 의지해 십일조 백만원을 기도 제목으로 놓고 기도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고1이 되었을 때 우리는 십일조로 백만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의도로 교회를 옮기면서 이번에는 십일조 천만원을 기도제목으로 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백만원을 드릴 수 있기까지는 6년이 걸렸는데 천만원을 드릴수 있게 된건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부터는 십일조 1억을 놓고 기도중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우리 가정의 공통된 꿈이다. 그리고 나는 가출 청소년들, 집안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대안학교를 15년째 기도하며 구상중이다. 신앙생활은 인내다. 조용기 목사님이 말씀하신대로 바라봄의 법칙을 가지고 내 입을 크게 열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살아가기 원한다.


황성수 성도(대학청년국) - 헤어날 길 없던 삶의 방황, 주 은혜로 극복

갑작스런 부친상 등 고난 이어져 공허
선교사 통해 은혜받고 전도자의 삶 회복

 모태신앙인이지만 나의 믿음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고 신학대에도 들어갔다.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며 한 일이었다. 또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열심히 봉사활동도 했다. 그러나 나의 믿음생활은 한계에 이르러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말았다. 대학 2학년 때 신학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들었고 방황이 시작됐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말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끝나지 않은 스물여섯 살의 어느 날, 주무시던 아버지께서 그대로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내 삶을 일순간 바꿔놓았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모하던 신학생 시절, 나의 꿈은 선교사였다. 하지만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부양하고자 어쩔 수 없이 취직했다. 그렇게 돈을 벌고 바쁘게 일하면서 자연스레 하나님과 멀어졌다. 하나님의 존재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힘든데 그동안 받았던 신앙적 훈련이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신앙적 회의감에 짓눌렸다. 내 삶 속에 하나님은 안계셨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 분일 뿐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말 힘들 때는 교회를 찾았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잠시나마 위로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 뿐.

 직장생활에선 기쁨을 찾지 못했고,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기만 했다. 그러다 또 힘들면 다시 교회를 찾았지만 그것도 잠시, 일상에선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내 마음은 밑 빠진 항아리처럼 언제나 공허했다.

 그러던 2013년, 한 선교사님으로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민족,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길 원했던 유대인들과 도저히 주님을 믿지 못할 것 같은 무슬림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나는 그 말씀의 현장을 따라 이스라엘 단기선교를 결심했다. 단기선교 일정을 맞추기 위해 당장 사직서를 내려고 했다. 직장 상사는 그런 나에게 “단기선교가 도대체 뭐길래 직장까지 그만두려고 하느냐”며 심하게 꾸중했다. 상사와 갈등을 빚게 됐지만 결국 상사의 권유로 사직서 대신 휴가를 받아 선교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 이후 두 차례 더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그 때까지도 나는 회사와 직장상사는 내가 믿는 하나님나라와는 무관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믿음을 유심히 봐왔던 상사는 나를 따라 처음으로 교회에 갔고, 그 날 주님을 영접했다. 주님은 나의 일터에서 내 옆에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나를 사용하셨고 나를 회복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내가 받았던 신앙훈련과 예배, 일상생활이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음을 나의 연약한 모습을 통해 비로소 알게 하셨다. 이제는 설령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라 해도 내 삶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할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예배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내 삶의 자리에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부끄러운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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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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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18장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였고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5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합당히 여겼더라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0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14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15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
 
17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맹을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
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18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비의 집이 무엇이관대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19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훌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준 바 되었더라
 
20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혹이 사울에게 고한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21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
 
22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명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
 
23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의 귀에 고하매 다윗이 가로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사람이로라
한지라
 
24 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여차여차히 말하더이다
 
25 사울이 가로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폐백도
원치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족으로 블레셋 사람의 양 피 일백을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
 
26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만기가 되지 못하여서
 
27 다윗이 일어나서 그 종자와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명을 죽이고
그 양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28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29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30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나오면 그들의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 이름이 심히 귀중히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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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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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17장


1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치매
 
2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을
대하여 항오를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은 이편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편 산에 섰고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12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 많아 늙은 자로서 여덟 아 들이 있는 중
 
13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제 삼은 삼마며
 
14 다윗은 말째라 장성한 삼인은 사울을 좇았고
 
15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 아비의 양을 칠때에
 
16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17 이새가 그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 게 주고
 
18 이 치스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19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는 중이더라
 
20 다윗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의
명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싸우려고 고함하며
 
21 이스라엘과 블레섹 사람이 항오를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하였더라
 
22 다윗이 그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항오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5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 하게 하고
그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은 이스라엘 중에서자유하게 하시리라
 
26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 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 대를 모욕하겠느냐
 
27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가로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여차 여차히
하시리라 하니라
 
28 장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29 다윗이 가로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30 돌이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31 혹이 다윗의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에게로 나아가니라
 
41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 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 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의 상한 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을 노략하였고
 
54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 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55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감을 사울이 보고 군장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뉘 아들이냐 아브넬이 가로되 왕이 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56 왕이 가로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57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의 앞으로 인도하니
 
58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뇨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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