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예 권사(영등포대교구) - 어깨 통증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

여선교회 성찬실 23년 봉사 섬김의 기쁨 넘쳐

24년 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오게 되면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철야예배를 드리며 성령 충만을 받게 되자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기쁨이 넘쳐났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었다.

주님을 더욱 섬기고픈 마음에 여선교회 봉사를 시작했다. 주중에는 직장에 다니기 위해 성찬실에서 봉사했는데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성도들을 섬기는 일이 너무 즐거웠고 지역장도 맡게 되면서 온전히 주님의 일만 하고 싶었다. 직장을 포기했지만 하나님은 때에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셨고 큰 어려움 없이 아이들을 돌보며 23년간 꾸준히 성찬실 봉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5년 전 오른쪽 어깨가 조금씩 아프더니 뻐근하고 화끈거렸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계속됐고 병원에 가도 딱히 치료방법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아프더니 왼쪽도 통증이 심해져 양쪽 팔을 쓸 수가 없었다. 칫솔을 들기 힘들어 양치도 겨우 했고 옷을 벗을 수가 없어서 찢을 정도였다. 통증이 다리까지 내려와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성찬실에서 봉사하려면 어깨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데 계속 봉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극심한 통증에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는데 2015년 3월 주일 2부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이영훈 담임목사님께서 어깨가 심히 아픈 사람이 치유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느낌이 왔고 어깨를 돌려보니 통증이 사라지고 편안했다.

오른쪽 어깨는 깨끗이 나았는데 왼쪽 어깨는 여전히 통증이 있었다. 나는 이미 오른쪽 어깨를 치유 받은 경험이 있기에 기도하면 이 또한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 간절히 기도했고 1주일 후 왼쪽 어깨도 치유됐다. 할렐루야!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시작하는 시편 23편 말씀은 내 인생에 큰 힘이 됐다. 늘 부족한 내게 성령님은 때마다 신유의 기적을 일으켜주셨고 환경의 문도 열어주셨다.

올해 4월 중순 쯤 딸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회사 동료 4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는데 자신도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영훈 목사님 말씀대로 매일 밤 9시마다 코로나19가 속히 소멸되도록 기도해왔는데 딸이 격리 중이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더 열심히 부르짖어 딸을 위해 코로나19의 소멸을 위해 기도했다. 엄마의 애통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됐다. 목이 아프고 열이 났던 딸의 증상도 깨끗이 사라졌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는 지금처럼 평생 동안 주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것이다.

 

정리=이미나 기자

광야 길 40년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장 13~14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이렇게 종식될 듯하면서 계속 확산이 이어져가고 최근에는 50명, 60명 숫자가 늘어나면서 특별히 교회,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 대한 특별한 주의를 요청해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방역에 모범을 보여서 지금까지 어떤 어려움도 없이 이렇게 예배를 잘 드리고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전 지성전과 136개 기도처가 그리고 650여 교회가 이 시간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일부 성도님들은 온라인으로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 이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게 하여 주옵소서.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대로 계속 연말까지 갈 것이다. 라고 하는 예측을 하고 실제로 완전한 종식은 백신하고 치료제가 나와서 전 세계에 보급되는 그때를 시점으로 잡고 있는데 그것은 지금부터 1년 6개월 후로 봅니다. 그러니까 2021년도에도 모든 국제 행사가 다 취소되고 2022년도로 넘어가는 그러한 시점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주님 이 백성을 긍휼히 여겨 주셔서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게 하여 주시고 성도들이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고 예배가 회복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 경제는 곤두박질하고 사회는 불안정하고 북한은 끊임없이 무력도발을 하고 어디를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우리에게는 만군의 야훼 주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길이 열릴 줄로 믿습니다.

“주님 긍휼히 여겨 주셔서 이 땅에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성도들의 삶 가운데 신앙의 열정이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여 삼창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속히 이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여 주시고 예배가 회복되고 사회가 안정되고 모든 문제와 어려움이 속히 사라지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우리의 주님이시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출애굽기 14장 13절~14절 말씀 가지고 “광야길 40년”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광야길 40년” “광야길 40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주셔야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아야 우리가 사는 삶 가운데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에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느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느냐? 늘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유월절 사건을 통하여 저들이 해방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낮에는 40, 50도 높이 기온이 올라가서 너무 뜨겁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져서 추워 덜덜 떨어야 하는 사막과 같은 척박한 환경의 광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이 광야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40년 광야 길을 갔습니다. 이 40년 광야 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훈련 시키시고 연단시키신 과정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자마자 우리 앞에 천국이 펼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난 그 순간부터 우리 앞에 광야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왜 우리 앞에 광야를 펼쳐놓으셨느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를 광야로 내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 길을 가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서 우리 삶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애굽의 군대가 다시는 쫓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말씀을 보니까 광야 길을 갈 때 애굽의 군대가 다시는 쫓아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을 때 그들이 출애굽 하자마자 바로 그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려면 홍해를 건너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뒤에는 바로 왕이 군대를 풀어서 그들을 잡으려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밑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다 해방되어 나가니 얼마나 국가적으로 손실입니까. 바로 왕이 마음이 변해서 군대를 풀어서 그 뒤를 쫓아왔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원망, 불평을 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0절, 11절입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야훼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묻힐 그 매장지가 없어서 이 광야까지 끌고 와서 죽임을 당하게 하느냐? 거친 말로 원망과 불평의 말을 쏟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쏟아 놓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들려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마음에 담아두면 그것이 상처가 되고 마음 속에 쌓여 분노가 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는 귀를 닫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담대히 외쳤던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쉽게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감사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감사하며 절대 긍정의 고백을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 14절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행하시는 그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보라. 주님께서 너희를 위해서 대신 싸워 주실 것이므로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불평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소리 지르지 말고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어떻게 주님이 일을 하시는가 살펴보아라. 모세가 담대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와 같이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은 모세가 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미니 하나님께서 홍해를 쫙 좌우로 갈라지게 만들어 주시고 그 갈라진 사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지처럼 건너갑니다. 할렐루야.

그 뒤를 바로의 군대가 따라 들어 오지만 곧 하나님이 물을 합치게 해주셔서 저들은 몰살당하고 맙니다. 출애굽기 14장 27절, 28절은 설명합니다.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야훼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할렐루야.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시기 때문에 어떤 환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와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면 백전백승인 것입니다.

70년 전, 6월 25일 북한 공산 괴뢰집단이 350여 대의 소련 탱크를 앞세우고 38선 전체를 넘었지마는 이 땅에 기도하는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결국 저들이 전쟁에 패하게 하시고 저들이 물러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저들이 뭐 핵을 가졌다 어쨌다 해도 그들이 무력으로 도발하는 그날은 북한이 망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여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 홍해 사건 이후 다시는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추격 해오지 않았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서 이 같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출애굽기 15장 1절, 2절입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야훼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야훼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야훼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할렐루야. 저들이 주님 앞에 감사하며 찬양을 올려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나서 이와 같은 감사와 찬양을 드렸던 것처럼 우리의 일생도 주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일생이 되어야 합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죄와 사망의 권세가 완전히 바로의 군대가 홍해에 덮여 멸망한 것처럼 이미 그때 다 패한 것입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과 부활이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의 구세주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 안에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아말렉이 그들의 뒤에서 공격했다.

둘째로 오늘 말씀을 보니까 아말렉이 그들의 뒤를 공격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의 군대는 쫓아오지 않았는데 그 뒤에 성경을 보면 아말렉이라고 하는 이방족속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쳤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그 설명을 저들이 그 뒤를 공격했다고 말합니다. 25장 17절, 18절입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광야 길을 가는데 아말렉 족속이 그 뒤에 쳐진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공격해 온 것입니다. 아말렉은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광야 길을 가는데 영적으로 우리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뭔가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고 연약한 모습이었을 때 그때 우리를 공격해 오는 마귀의 세력을 말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 주변을 맴돌다가 우리가 이와 같은 약점을 보일 때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면 아말렉이 와서 눈치만 보다가 그냥 가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이 나태해져서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말씀도 보지 아니하고 예배에 대한 사모함도 사라지고 입술을 열면 감사 대신 불평이 나오고 하면 그때 벌떼처럼 아말렉이 달려들어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세상에 나가 적당히 죄를 짓고 타협하면 그때 아말렉이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속히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두 손을 들고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강력한 기도가 아말렉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아말렉이 공격해 올 때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아말렉을 물리쳤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1절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마귀가 공격해 올 때, 기도의 손을 높이 들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아말렉은 아주 끈질기게 우리 주변을 맴돌 것입니다. 그래서 약점만 보이면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한 번 충만하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고 또 충만해서 영적으로 강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믿음으로 전진하여 나가면, 우리는 백전백승입니다. 왜냐?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아말렉과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7장 16절입니다.

이르되 야훼께서 맹세하시기를 야훼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말씀으로 충만하고 기도에 힘쓰면, 늘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주시고 백전백승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9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광야 길을 갈 때 한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가면서 늘 애굽의 살던 때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옛날에 사로잡히니까 부정적으로 되고 원망과 불평을 쉽게 쏟아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승리자로 살기 위해서는 절대 과거에 붙잡혀 살면 안 됩니다. 이사야 43장 1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과거에 붙잡혀서 사는 한, 우리는 늘 광야에서 맴도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과거의 모습은 다 벗어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은 새롭게 변화된 하나님의 복 받은 자녀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실패가, 과거의 상처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여러분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복 받은 존귀한 자녀로, 존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하여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언제나 주님이 돌보시고 함께 하셨다.

우리가 아말렉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전진하여 나아갈 때, 셋째로 언제나 주님이 돌보시고 함께 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원망과 불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40년을 하루같이 저들과 동행하시며 저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저들을 돌봐주셨습니다. 저들의 길을 우리 하나님이 앞서가시면서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야지, 내가 앞서갔다가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0절 31절입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살피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데, 우리보다 앞서가십니다. 우리가 피곤하여 쓰러지면 우리를 안아주시고 일어나 걸을 힘이 없으면 우리를 엎고 가시는 것입니다. 이만큼 우리 주님이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신명기 1장 33절에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로 2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늘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의 구름 기둥이 우리를 덮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할 때 우리는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도 능히 싸워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환난의 밤이 다가올 때는 성령의 불기둥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세상의 모든 죄를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다가오는 염려, 근심, 고통, 괴로움 모든 어려움을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물리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믿음이 좋은 거 같은데, 환난을 당하면 많이 흔들립니다. 상처를 받고 낙심하여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 주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순간에도 우리 주님이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그 순간에도 주님이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세상 사람 다 떠났어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며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내가 너의 일생을 가장 좋은 길로 은혜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어릴 때 정식 의사가 아닌 요즘으로 말하면 돌팔이 의사가 약을 잘못 처방해서 생후 6주 만에 눈이 먼 화니 제인 크로스비라는 분이 계십니다. 화니 제인 크로스비 선생님은 1820년 뉴욕주의 남동부에 브루스터라는 아주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그 마을이 얼마나 작은 마을인지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한 2,100명 정도 살고 있는 지금도 그렇게 작은 마을인데, 행복하게 자라야 할 이 어린 딸이 생후 6주에 눈에 염증이 생겼을 때 옛날에 뭐 벌에 물리고 된장 바르듯이 누가 와서 눈에 약을 발라줬는데, 그만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 삶에 그때부터 광야길이 시작돼서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하루하루 살기가 힘드니까 어머님이 나가서 파출부 일을 하시는데 할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할머님이 얼마나 이 화니 제인 크로스비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는지 어린 시절에 할머니의 기도 소리에 하나님 앞에 일러주는 것을 들으면서 자라납니다. 아주 신앙의 뿌리가 깊어져서 벌써 여덟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고, 그가 어린 시절 하나님 말씀을 읽고 암송을 하는데 일주일에 성경을 다섯 장씩 외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자라났는데, 그 할머니도 열한 살 때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래서 참 외롭고 힘든 인생길을 걸어가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을 지었습니다. 38살 때 늦은 나이에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남편도 앞을 못 보는 분인데 두 분이 신앙 안에서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고, 그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 있다 또 죽습니다. 지금까지도 고난인데 계속 고난이 겹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고난 속에서도 절대 원망 불평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그때마다 펜을 들어 찬송을 지은 것이 무려 9천 편이 넘습니다. 1820년 3월에 태어나서 1915년 3월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95세를 살면서 9천 편이 넘는 찬송을 지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그분이 지은 찬송이 많이 있습니다. 아까 우리가 불렀던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화니 제인 크로스비 선생님이 지은 찬송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무려 우리 찬송가에 22곡이 실려 있습니다.

이분의 일생은 광야길 이었지만, 광야 길에서도 주님이 함께하여주셔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시고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신 복된 일생이었습니다. 이분이 지은 찬송 우리 함께 부르면서 오늘 말씀 마무리합니다. 이분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찬송가 391장 (통:446) : 오 놀라운 구세주>

 

1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안전한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2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내 모든 짐 벗기시네

죄악에서 날 끌어 올리시며

또 나에게 힘주시네

 

3절 측량 못 할 은혜로 채우시며

늘 성령의 감화 주사

큰 기쁨 중 주님을 찬양토록

내 믿음을 도우시네

 

후렴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광야길 인생이지만 주님이 동행해주시고 함께해주심에 그 놀라운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라 광야 길에 주님이 동행자요, 인도자가 되어주셔서 함께하여주심을 생각할 때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한평생 앞을 못 보는 맹인으로 살았지만 주옥과 같은 은혜로운 찬송 9,000편을 넘게 지은 화니 제인 크로스비 선생님처럼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주님의 일꾼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17. 바울의 유언 : 마가와 바울 Ⅱ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바나바와 함께한 마가, 실라와 동행한 바울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행 13:13)

1. 버가에서의 뒷걸음

버가는 소아시아 남쪽에 위치한 밤빌리아 지역의 고대 도시 중 하나이다. 버가의 현재 지명은 터키 남부지역에 위치한 무르타나(Murtana)이다. 버가에 대한 잘못 알려진 것중 하나는 항구도시라는 오해이다. 바울 일행이 구브로 섬을 지나 도착한 첫 소아시아 도시라는 것 때문에 항구도시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버가는 해안에서 약 17㎞ 정도 떨어진 내륙 도시이다. 1차 선교 여행 중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곳을 통해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했다(행 13:13~14). 그리고 선교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갈 때도 버가를 거쳐서 돌아갔다(행 14:25).

바울의 선교는 로마 빌립보 에베소 등과 같이 대도시 중심의 선교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열정뿐만 아니라 교통의 편의성 때문이었다. 고고학자들에게 버가는 유적들로 가득한 행복한 보물찾기 장소이다.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유적뿐만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교회와 보존이 잘 된 방사형 노천극장 아스펜도스(Aspendos)와 투기장이 있다. 아스펜도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A.D. 161~180) 때 지어진 것으로 부분적인 보수작업을 거쳐 지금도 공연장으로 쓰여 질만큼 잘 보존이 되어 있다. 그 외 1만 2000명의 관객을 수용하고 길이 234m 너비 34m의 경기장에서 마차경기와 검투가 벌어졌던 안틱스 스타디온(Antikes Stadion)의 유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버가는 바울이 1차 선교 여행 때 두 번이나 복음을 전한 곳이기도 하지만 로마인들을 위한 경기장에서 사자들에게 온 몸을 찢기며 믿음을 지켰던 초대 교인들의 순교의 피가 흐르는 곳이다.
또 다른 오해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 중의 하나인(계 1:11; 2:12) 버가모교회가 바울이 1차 선교여행 중 버가에서 세운 교회라는 오해이다. 버가모의 현재명은 베르가마(Bergama/Pergamon)이다. 버가와는 약 620㎞ 정도 떨어져 있다. 버가모는 해발 3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수많은 이교도의 신전이 있었던 곳이다. 요한계시록 2장 13절은 버가모를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학자들은 '사탄의 권좌'를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버가모에는 로마의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이로 인해 버가모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박해와 순교를 감당해야 했으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순교자 안디바의 순교가 이곳에서 일어났다(계 2:13). 요한계시록 2장 14~15절은 버가모교회의 책망으로 교회 내에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킨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다. 한 부류는 유대인이었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례,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었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 황제숭배 등과 같은 방만한 자유와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문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로마인들 사이의 인사말은 '황제는 우리의 주님이시다'였다. 상대방에게 이 말을 들으면 똑같은 말로 화답을 해야 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황제를 주님으로 고백할 수는 없었다. 이로 인해 초대교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자리로 나아갔다. 니골라 당은 이들에게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영지주의적인 사상을 가르쳤다. 그 중 핵심 내용은 육체로 짓는 모든 죄는 구원의 문제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니골라 당의 가르침의 영향으로 황제를 숭배하는 것이나 성적인 타락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성도들이 교회 내에 있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런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찍어 내지 못해 책망 받은 두 교회가 있는데 에베소교회(계 2:1~6)와 버가모교회(계 2:12~16)이다.

2. 바울과 바나바의 논쟁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어떤 이유에서 마가가 버가에서 선교여행을 중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행 13:13). 그러나 그가 사용한 단어들을 보면 이 결정은 지극히 마가의 개인적인 이유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떠나…돌아가고'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포코레사스'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가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리를 버리고 떠나다'의 의미인 '아포코레오'라는 단어에서 왔다. 누군가에게 자기의 일을 맡기고 떠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던져버리고 떠났다는 의미가 된다.

바울은 이런 마가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더 나아가 바울은 마가의 행위를 배신행위로 간주했던 것 같다. 바울은 바나바가 마가를 2차 선교여행에 데리고 가자는 제안을 했을 때,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행 15:38). 바나바는 이 일로 바울과 심하게 다투었다(행 15:39).

바나바의 인품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며 많은 무리가 바나바를 통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었다(행 11:24). 바나바는 레위족속 사람이었고 유대식 이름은 요셉이었다. 그의 헬라식 이름은 바나바, 즉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다(행 4:36).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가난한 성도들을 돌봤고 구제와 헌신에 앞장섰던 사람이다(행 4:37). 또한 바울의 회심을 의심하고 있던 제자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을 소개했던 사람이다(행 9:27). 심지어 안디옥에서 사역을 할 때 교회가 부흥하자 다소에 있던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 함께 사역을 했다(행 11:24~26). 그랬던 그가 바울과 심한 논쟁을 하고 결국에는 갈라서게 된 것이다(행 15:39~40).
성경은 바울과 바나바의 논쟁을 서로 심히 다투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록쉬스모스'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사도행전 15장 39절과 히브리서 10장 24절에 두 번만 등장한다. 히브리서 10장 24절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격려'로 번역되었지만 사도행전 15장 39절에서는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신랄한 반대, 말다툼'(sharp disagreement / sharp contention)으로 볼 수 있다.
이 일이 있은 후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났다(행 15:37~41). 이후 바나바의 이름과 행적은 더 이상 사도행전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바나바를 언급하며 사역자로서의 바나바를 인정하며 서로 교제가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고전 9:6; 갈 2:1,9,13; 골 4:10). <다음 호에 계속>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 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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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웅 선교사(필리핀)

급속 성장한 앙헬레스 복음화 위해 복음의 씨 뿌려

 

 

찾아가는 예배로 절대긍정 절대신앙 강조
앙겔레스(순)교회 전도 및 구제 사역 최선

할렐루야! 사랑하는 순복음 모든 성도님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저는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선교하고 있는 오재웅 선교사입니다. 제가 필리핀 앙헬레스로 파송 받은 것은 지난 2008년 5월이었습니다. '선교사'라는 단어는 저를 설레게 함과 동시에 언제나 저를 하나님 앞에 부끄럽게 합니다.

성도님들과 교회로부터 선교사로서의 수고와 칭찬을 받지만 이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의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선교'라는 말이 언제나 저를 낮아지게 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놀라운 행하심을 경험하고 또 기대하게 합니다.

제가 사역하는 앙헬레스는 점점 성장 발전해 가는 도시입니다. 마닐라 북쪽으로 약 15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30만 명의 작은 도시로 2007년에 제가 처음 필리핀 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이곳은 참 소박하고 순박한 이들이 이웃으로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필리핀의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앙헬레스에 인접한 '클락' 지역이 개발되면서 이곳도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중입니다. 갑작스러운 부동산 개발과 또 넘쳐나는 외국인 투자자들로 동네는 어느새 도시가 되었고 골목은 도로가 되어 차들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9년 필리핀의 경제성장률은 약 6.7%라고 합니다.

그러나 앙헬레스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죄의 도시(Sin City), 앙헬레스'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술집이 집결해 있고 성적으로 가장 타락한 곳 그리고 이를 쫓아 세상적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 바로 앙헬레스입니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범죄의 유혹과 피해는 고스란히 이곳 주민들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선포한 범죄, 특히 마약과의 전쟁으로 현재 필리핀은 많은 마약 사범이 체포 혹은 사살되었지만 여전히 앙헬레스는 유혹이 많은 도시이기에 범죄의 소식이 떠나질 않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앞에서 한국인이 괴한의 칼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또 빌리지에서 경비를 하던 우리 교회 성도가 중국인 갱단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우리 교회는 더는 수요예배도 저녁 금요기도회도 하지 못하게 되어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그러나 앙겔레스순복음교회는 이때부터 지·구역예배와 심방을 강화하면서 모이지 못하는 성도들을 찾아가는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영훈 위임목사님의 말씀대로 위기 가운데서도 더욱 믿음과 신앙을 지켜나가는 '절대긍정'과 '절대믿음'으로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모든 성도가 성령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며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들로 성장해 가는 중입니다.

앙겔레스순복음교회는 또 갑작스러운 도시 성장으로 갈 곳을 잃은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십니다. 갑자기 집을 잃은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하는 등 이웃에게 꿈과 희망을 나누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유익에 따라 교회에 나오는 이들 때문에 아픔을 경험할 때도 있지만 선교사는 힘든 일과 버거운 사명일지라도 순종과 믿음으로 걸어가면 결국 일은 하나님이 성취하신다는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필리핀은 인구의 약 85%가 가톨릭 신자이며 개신교가 약 8% 그리고 무슬림과 기타 종교가 약 7%를 차지합니다. 기독교가 8%라고 해도 그 안에는 이단이 포함돼 있어 순수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1억 명이 넘는 전체 인구 중에 3%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때 필리핀에 그리스도의 은혜와 생명이 넘쳐날 것을 믿습니다.

앙겔레스순복음교회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또 절대긍정과 절대믿음의 신앙으로 필리핀을 변화시켜 나갈 것을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순종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는 순복음의 성도들이 되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에스더

세상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
에스더를 통해 유대민족을 구원하셔

에스더서는 이방 국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에 대한 기록으로 바사(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 유대인 여성 에스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에스더는 대적들의 모함과 핍박으로부터 동족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또한 유대인들이 적의 위협으로부터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며 축제를 갖는 ‘부림절’의 기원을 설명한다. 에스더서를 통해 우리는 위기 가운데 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받게 되는지를 목도하게 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1∼5장)

광대한 땅을 다스렸던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어느 날 모든 지방 장관과 신하들을 초청하여 장장 6개월 동안 잔치를 베푼다(에 1:1∼4). 이 기간 동안 왕은 왕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신하들 앞에서 자랑하고자 했다(에 1:11). 그러나 왕비 와스디는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왕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와스디는 폐위를 당하게 되고(에 1:12∼22), 이어 새 왕비의 간택을 위해 아름다운 여인들이 수도인 수산 성으로 소집되었다(에 2:1∼4). 수많은 여인 가운데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에 2:17). 변방의 유대 출신의 소녀가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된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오로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그런데 당시 정부의 고관대작 중에 하만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에스더의 사촌인 모르드개를 극도로 미워했는데, 그 이유는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에 3:1∼6). 그래서 그는 모르드개가 속한 민족인 유대인 모두를 제거하기 위해 왕으로부터 조서를 받아낸다(에 3:7∼15). 그러자 모르드개는 이 사실을 에스더에게 알리고, 왕에게 나아가 민족이 멸절되는 것을 막으라고 하였다(에 4:8).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동족들에게 3일 금식 중보기도를 부탁하며 죽을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가겠다고 하였다(에 4:16∼17). 이 때 에스더가 한 말이 유명한 “죽으면 죽으리이다”이다. 그 당시 왕의 허락 없이 왕 앞에 나아갔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에 4:11). 드디어 모든 사실을 왕에게 알리기 위해 에스더는 연회를 준비하였다(에 5:1∼14). 이 모든 일은 에스더를 통해 죽음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 6∼9장)

에스더가 준비한 연회에 참석한 왕은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신하에게 명하여 왕의 일지를 낭독하게 하였다. 이때 왕은 얼마 전 자신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막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아무런 상도 주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에 2:21∼22; 6:2∼3). 이에 왕은 하만을 불러서 존귀하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 어떤 상을 내려야 할지를 물었다. 전후사정을 모른 하만은 상 받을 사람이 자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에게는 왕의 옷을 입히고, 왕의 말을 태워 존귀하게 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왕은 하만에게 그가 말한 대로 하라고 지시했다(에 6:10∼11).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던 하만이 오히려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손길이었다(에 6:12∼14; 시 23:5).

한편 에스더는 잔치 중에 왕에게 하만의 모든 만행을 알리고, 하만이 노리는 대상이 바로 에스더를 포함한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에 7:1∼6). 이에 분노한 왕은 하만을 나무에 매달아 처형하고(에 7:10), 또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을 처단하는 권한을 모르드개에게 주었다(에 8:7∼14). 그 결과 각 지방에 있던 유대인들의 적들은 모조리 제거되었다(에 9:1∼10). 유대인들은 이날을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날로 삼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부림절’의 축제로 기념하게 되었다(에 9:20∼32).
에스더서의 진정한 주인공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언약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의 뒤편에서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압제와 핍박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구출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 계획과 역사하심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고후 4:7-15).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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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이영훈목사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야훼로 말미암거니와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시 68:19~21)

귀한 은혜의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첫째도 기도, 둘째도 기도, 마지막도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노력도 예기치 못한 이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해결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이때에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너무 바빠서, 살기 바빠서 주님과의 교제가 멀어져 기도가 소홀히 되었고 말씀 묵상하는 것도 소홀했고 신앙의 열심도 사라졌고 이러한 영적인 침체에 알게 모르게 빠져있던 우리들이 그것도 모르고 지나왔습니다.

주님께서 이제는 다시 잠자고 있던 곳에서 깨어 일어나서 신앙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라. 기도를 회복하고 감사를 회복하고 찬양을 회복하고 말씀의 은혜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되면 이 사회가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희망은 우리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기도할 때 주님 우리가 먼저 영적으로 회복되게 하여주셔서 이 모든 어둠이 사라지고 주님의 은혜의 찬란한 빛이 비쳐오게 하여 주옵소서. 다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 건져주시고 모든 무거운 짐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지금도 몸 된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곳에서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tv로 예배드리는 성도에게도 긍휼함을 베풀어 주셔서 그곳에도 큰 은혜가 있게 하여주시고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우리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그날 감격의 눈물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서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시편 68편 19절에서 21절의 말씀을 가지고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서 인생을 살아갈 모든 힘을 다 잃어버리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절망에 빠진 한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이신데 뉴욕에서 52년 동안 목회하시면서 긍정적 사고의 힘으로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끼친 목사님입니다. 목사님께 와서 상담합니다.

"너무나 힘들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 세상 어디 염려, 근심, 걱정 없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평안히 쉴 곳이 없습니까? 제 인생의 짐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물끄러미 그 여성도님을 쳐다보고 계시다가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기 뉴욕에서 나가면 뉴저지 턴파이크를 만나는데 뉴저지 턴파이크를 타고 내려가다가 11번 출구에서 빠지면 뉴저지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정말 고요하고 염려도, 근심도, 걱정도 없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평안히 쉴 수가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편안히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Rest in peace. 평안히 쉬라고 하는 사인이 그곳에 붙어있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고난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예고도 없이 시시때때로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고난은 우리 인생의 한 부분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은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갖고 고난을 잘 견디고 극복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날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내고 있지만 믿음을 굳건히 해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

먼저 무거운 인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모든 인생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이렇게 시편 기자가 기록했습니다. 이 세상 사는 사람 누구나 예외 없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벌써 2월부터 시작해서 약 5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사태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거의 다 멈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사회가 불안정하고 학생들은 제대로 학교 가서 수업을 받지 못하고 몇 차례 연기했다가 겨우 학교 갔는데 확진자가 하나 나오면 학교 전체가 폐쇄돼서 2주 동안 학교가 멈춰 서고 무엇보다도 우리 크리스천들은 주일날 맘껏 와서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불편함을 겪어야 합니다. 늘 마스크를 써야 되고 열을 체크하고 또 아이디를 갖고 확인을 해야 예배 장소에 들어올 수 있는 그러한 불편함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각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염려, 근심, 걱정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고 크고 작은 질병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 각종 스트레스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짐은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저주입니다. 짐이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은 어떤 불의도, 불행도, 문제도 없는 완전한 샬롬, 평화의 세상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기쁨과 평화가 넘쳐나는 세상이었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평화가 사라져버리고 질병과 고통, 가난과 저주, 사망이 인류 역사 가운데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 대대로 이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몸부림쳤지만 그 누구도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탄식합니다. 로마서 7장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 누구도 스스로 죄와 사망의 짐을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직 인류의 희망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거운 죄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인생을 향하여 부르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보니까 주님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 앞에 나와 주님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문제 해결자가 되시고 주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안식을 주시고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2.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성경은 이어서 말씀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주님이 지신다고 말씀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에 대해서 68편 19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모든 사람이 무겁고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것 같고 늘 싱글벙글하니까 아무런 문제도, 어려움도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 알고 보면 남에게 말 못 할 고민, 상처, 아픔, 슬픔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 마음의 이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누가 우리 마음의 고통과 고민을 알고 대신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 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 앞에 나와서 모든 짐을 내려놓으면 주님이 우리 인생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고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우리를 도우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이사야 44장 2절에 이와같이 말씀합니다.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야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께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우리를 안고, 품고 업어주시고 모든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6장 3절, 4절입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홀로 해결해 주시는 위대한 주님이 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몸부림치지만 그 짐이 날로 더 무거워질 뿐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성성해서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책임져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잠깐 있다가 떠나는 세상의 친구와 다릅니다. 우리를 지으신 주님이 끝까지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에 지쳐 쓰러지면 와서 안아주시고 그래도 걸을 힘도 없어 누워있으면 우리를 업고 가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얼마나 날씨가 더운지 올해 여름이 일찍 찾아오고 다른 때보다 더 날씨가 뜨거운 여름이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늘 밑에 가면 잠시 시원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고난의 햇볕이 내려쬐일 때 십자가 그늘 밑에 가면 우리는 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415장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찬송가 415장 (통:471) : 십자가 그늘 아래>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볕 심히 뜨겁고 또 짐이 무거워

이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곳 찾았네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두려움 없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뿐이라

할렐루야.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우리 힘으로 부친 인생입니다. 여러분 힘으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게 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뿐만 아니라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고 내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십니다. 다음 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꼭 붙잡고 있으면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의 잔이 넘쳐나는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시편 68편 20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야훼로 말미암거니와

할렐루야.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서 날마다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주여! 나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주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 내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 붙잡고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 받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원수를 멸하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셋째로 우리의 원수를 멸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대적에 둘러싸여 있는지 근데 그 문제도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68편 21절입니다.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

평생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대적이 있습니다. 물질에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은 물질의 고통이 참 큽니다. 요즘은 우리가 잘 살아서 그런 걱정은 안 하지만 옛날 제가 어릴 때 보면 어렵게 사는 분들 "오늘 저녁 뭐 먹지? 쌀이 떨어졌네." 그런 얘기를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대학을 다닐 때 제가 난지도 철거민촌에 갔었는데 정말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그렇게 힘들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처음 봤습니다. 아이들은 나가서 구두닦이 하고, 넝마주이하고 어른들은 나가서 아스팔트 까는데 자갈 까는 일을 하는데 참 힘들게 사는 인생들의 모습은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앞으로 평생 어려운 사람들 도우며 살아야겠다.' 그런 결심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뿐만 아니라 병원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있는지 대형 병원이 꽉꽉 찼습니다. 각종 질병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물질 문제는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가 힘을 얻는 대로 수입을 얻으면 되고, 질병도 우리가 잘 치료받고 건강 관리해서 건강해지면 되는데 진짜 대적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는 문제가 많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병들었습니다. 얼마나 악한 비방이 난무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SNS에 유튜브에 막 띄웁니다. 일단 띄워놓고 상대편에 큰 상처를 입히고 나중에 아니면 말고.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참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가끔 악성 댓글 때문에 목숨을 끊기도 하는 그러한 일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악한 사람들하고 직접 대면해서 싸우지 말라고 말합니다. 어떠한 문제도 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감정이 상한 채로 사람들과 다투게 되면 우리의 감정을 절제하기 힘들고 그래서 큰 소리가 오가게 되면 나에게도 상처가 고스란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히브리서 10장 30절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주님이 우리의 억울함을 아시고 우리의 상처를 아시고 우리의 원수를 심판하시고 그들을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순간적으로 절제하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폭발해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싸우면 그 상대편 악한 사람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가 그런 악한 사람과 똑같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아무리 속이 뒤집히고 속상해도 그때는 납작 엎드려서 주님 앞에 기도드려야 됩니다. 눈물의 기도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그 모든 대적으로부터 보호해주시고 대적을 물리쳐 승리하게 해주시고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을 말씀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모든 악과 싸워 승리하며 남은 일생 하나님 영광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4장 8절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지금 잠깐 어렵지만 잠깐 힘들지만 잠깐 짐이 무겁지만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주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로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상처 가운데 낙심하며 주저앉지 말고 주님 붙잡고 주의 말씀으로 의지해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로 감당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한 분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목사님 사모님이시면서 많은 글을 쓰신 저술가이기도 하고 강연가로 유명하신 리앤 맥코이 사모님입니다. 목사님의 아내로서 목회자의 아내로서 세 자녀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사모님이신데 2010년도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한꺼번에 몰아닥쳤습니다.

2010년도 3월에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 지나고 나서, 목사님이 있던 테네시 중부에 집중호우가 와서 예배당과 교육관이 물에 다 침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피해액은 27만 5천 달러, 약 3억 원 가까운 피해가 났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지난 후에 18살 난 큰딸이 가출했어요. 자, 목사님 딸이 가출을 하면 얼마나 힘듭니까. 또 사람들이 뭐라고 비방을 할 것 아닙니까. 목사님 딸이 집을 다 나갔다고. 그런데 집을 나가서 또 남자친구랑 동거하면서 아이까지 낳았어요. 딸 가진 부모님들은 잘 보시기(watch) 바랍니다.

큰딸이 가출하고 나서 석 달이 지나고 난 다음, 그분의 아들은 전염성 단핵증이라고 하는 발열과 오한을 동반하는 바이러스성 병을 앓게 돼서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그런 고통이 와서 일 년 동안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또 그 아들이 이런 진단을 받고 난 한 달 뒤에는 남편 목사님 눈꺼풀에 피부암이 발견되어 종양 절제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주 후에는 작은딸마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고 하는 진단을 받아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일 년 내에 순식간에 갑자기 이 목사님 가정에 불어닥친 것입니다. 본인은 대장암으로 또 교회는 홍수에 침수되고, 큰딸은 가출하고, 남편은 피부암이 왔고, 아들도 막내딸도 다 병이 오고 그러고 이년 후에는 또 사모님 암이 재발되었어요. 간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계속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때문에 제대로 먹지고 자지도 못하고 몸은 쇠약해지고 정신은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마치 욥이 하루아침에 전 재산 다 잃어버리고 태풍이 불어서 열 자녀 다 잃고 몸에 건강이 사라져 온몸이 피부병에 걸려서 기왓장으로 긁고 아내는 등을 돌리고 친구들이 와서 비난하는 그러한 절망에 빠진 것 같은 말 할 수 없는 고난의 자리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새벽 코피가 터져서 코피를 닦다가 이대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암으로 인해 죽게 되나요."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니다. 리앤,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좋아질 것이다. 내가 너로 장수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할 것이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 붙잡고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눈물 콧물 쏟으면서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살려주신다고 했사오니,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여 주시고 세 자녀가 다시 다 회복되게 해 주시고 남편도 건강하게 해 주시고 교회도 안정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을 궁극적으로 주관하고 계시므로 내 육신에 스며든 암세포들도 그분이 허락하신 것임을.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강렬한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신 그곳 십자가 아래에 내 모든 두려움과 걱정을 내려놓았다."

십자가 밑에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고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무장해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절대 포기하지 말고 십자가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십시오.

우리 함께 찬송가 415장을 부르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찬송가 415장 (통:471) : 십자가 그늘 아래>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두려움 없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뿐이라

내 눈을 밝히 떠서 저 십자가 볼 때

날 위해 고난 당하신 주 예수 보인다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사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서 온갖 고난을 겪으시고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 믿고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지신 우리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주님 계시기에 제가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주시고 우리를 치료해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셔서 한평생 십자가 그늘 밑에 쉬면서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김영자 집사·김종욱 성도(동작대교구) - 어머니의 길랭·바레 증후군 치유해

 

전신 마비 증세 회복과 완치 판정
말씀 의지하며 기도로 의심과 두려움 극복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이었다. 나는 어머니(사진 왼쪽)와 아내,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다리에 감각이 없다며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서둘러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어머니를 모셨다. 병원에서는 단순 근육통이라며 집에서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증세는 갈수록 나빠졌고 하루 만에 전신이 마비됐다.

병원 진단 결과 말초신경계의 손상으로 마비가 온 길랭·바레 증후군이었다. 주치의는 희귀병이지만 완치율은 높다며 어머니가 80세로 연세가 있으셔서 면역력이 약해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했다.

전날 건강하게 산책까지 하신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기도가 막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와 비위관을 의지해 누워계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지 열흘 정도 됐을 때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심각해졌다. 의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신다는 믿음보다 의사의 말에 수긍하며 절망에 빠졌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 장례를 준비하려고 할 때 이영훈 목사님께서 병원을 방문하셨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이영훈 목사님께 기도해주실 것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우리 가족은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 후에도 순간순간 의심이 될 때마다 빌립보서 4장 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두려움을 이겨냈다.

동작대교구 교역자들과 구역 식구들도 밤낮으로 찾아오셔서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그로부터 3일 정도 지났을 무렵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급속도로 회복됐다. 손가락만 겨우 움직이셨던 어머니의 마비 증세가 점차 회복되더니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셨다. 병원에서 드디어 길랭·바레 증후군 완치판정을 받았다. 할렐루야! 어머니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주신 이영훈 목사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가망이 없어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로 간구할 때 믿음을 주셨고 치유의 기적을 행하셨다. 무탈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보다 의심이 강했던 나를 굳센 믿음의 자녀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남은 일생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서리 집사로도 임명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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