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와 놀라운 보혈
 

이것을 보는데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너무나 놀랍게 피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세밀함과
완전함에 그저 놀랍고 감사할뿐입니다.
 
목사님이 성경을 꼭 짜면 피가 나온다고 말씀이 더욱 실감이 나네요.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히브리서9:22절 말씀처럼 창세기로 부터 범죄한 인간에게

구원에 길은 오직 피를 통해서만이 가능함을 말씀해주시는데

 이것은 바로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나니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와 연결되고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기에 누군가가 대신 죽음을 당하지않고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히9:18) 십계명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히9:7) 성막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8)

예수님 완성
 
계시록의 힌옷입은자는 바로 예수님의 피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된자들을 말하고 있다.
결국 창세기로 부터 계시록까지 피를 통한 속죄는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다.
 
출애굽에서 유월절날 피를 바르지않고 자기의 생각을 쫓아 선하고 의롭게 생활했다면 그는 구원을 받았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은 집 문설주에 피를 보시고 넘어가신다고 했다.  
히브리서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브리서 10: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자신의 생각을 따라 땅의 소산을 드린 가인의 제사와  피흘림이 있는 약속의 예물을 드린 아벨의 제사로 나누어 볼수가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11:4)
이 말씀을 통해 그 예물에 해답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선한자는 자신의 생각을 따라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하는 자인것이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히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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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思一言  (3은 1언) 

   

 

 


 

 

말 앞엔 3번 생각하고

발 앞엔 늘 신중하라.

 

말 많으면 허물이 많아지고

말 적으면 바보라도 지혜롭다.

 

남을 험담하면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고

옆의 듣는 사람은

참고 들을 뿐이다.

 

자칫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자기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격

 

말은 오가지만

대화속의

꽃이 필수도

쓴뿌리가 될 수도 있다.

 

작금의 시간 속에

말 달리듯 말하면

자신의 허물만

드러내게 된다.

 

남을 축복하면

내가 축복받고

저주하면 역시

자기에게 돌아온다.

 

누워 침 뱉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면서도

 

입을 떠난 말이

어떻게 돌아 올지는

생각 못하는 바보가 있다.

 

경청 보다

좋은 말은 없고

수다 보다

나쁜 말은 없다.

 

입으로 말을

전하지 말고

가슴으로

마음을 전하라.

 

미담은 덕담이고

험담은 악담이다

담화라고 다

좋은 말이 아니다.

 

비난과 험담은

세 사람을 잃게 만든다

자신과 듣는 사람

그리고

비난 받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이는

남을 비방하고

헐뜯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한다.

 

남을 비방하면

평생 빈축을 사게 되고

반면 남을 칭찬하고

세워주면

미덕이 되어

축복의 통로가 된다.

 

자신의 입으로

관용의 등불을

밝혀주면

관계가 소통되고

회복되며

마음의 등불을

켜주게 된다.

 

혀 끝으로 내뱉는

말은 아첨이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칭찬이다.

 

잘못된 논리로

사람을 설득시키려

들지마라.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적개심 뿐이다.

 

마음 밭이 옥토인

사람은 밝고 맑고

깨끗하고 틈실한

말씨를 뿌린다.


                          

영남지역 목회자, 세미나로 한자리 모여


교회 부흥 진정한 주제 “주께로 돌아가자”
성령충만한 교회 위한 ‘7 키워드’ 제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 영남지역연합회는 경남·경북·대구·부산 4개 지방회 149개 교회 목회자들이 모인 연합체다. 이들은 영남지역 복음화를 위해 매해 목회자 및 사모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다. 19, 20일 양일간 경북 성주 영산수련원에서 열린 세미나는 평균 8∼10%대인 영남권 복음화를 높이기 위해 목회자 먼저 영적 재충전에 나서보자는 취지로 개최됐다.

 19일 기하성(여의도순복음총회) 총회장 이영훈 목사는 개회예배 강사로 초청돼 ‘초대교회의 부흥’(행 2:42∼47)을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들에게 사도행전적 교회, 즉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한 7가지 운동을 소개하며 부흥을 위한 헌신을 당부했다.

 영남지역연합회장 고건일 목사의 사회로 열린 예배에서 이영훈 목사는 “교회 역사의 모든 부흥 운동의 주제는 ‘성경으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였다”며 “부흥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믿고 따르며 기도운동, 말씀운동, 회개운동, 사랑실천운동, 십자가운동, 성화운동, 부흥운동에 앞장서자. 순복음의 정체성을 회복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목회자들과 함께 영남지역 복음화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주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이영훈 목사의 개회예배 후에는 이태근(총회 수석부총회장) 엄진용(총회 총무) 목사가 각각 특강에 나섰다. 영남지역연합회는 이번 세미나 메인 주제로 성경 시가서에 대해 다섯 차례 강의했다. 강사로 초청된 차준희 목사(한세대 교수)는 구약의 시가서 및 지혜서로 불리우는 욥기, 잠언, 전도서, 시편, 아가/애가 등을 강의하며 세상을 향한 기독인의 삶의 지혜에 대해 가르쳤다.
 세미나 일정 마지막에는 총회를 열고 오순절 성령운동의 역사가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초대교회처럼 불같이 타오르길 간구했다.


성전꽃꽂이-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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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오프닝 영상 - 인간이신 예수               

 


한국 최초 남감리교회/고양감리교회

            

 

  대성전 전경


   중국과 평양으로 넘나들 수 있었던 고양은 육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곳에 민족을 사랑해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윤치호 선생의 열의가 씨앗이 되어 한국 최초의 남감리교회 고양감리교회가 세워진다. 고양감리교회를 기지로 역시 100년이 넘은 서울의 광희문교회, 종교교회, 자교교회, 배화학교가 뒤따라 세워졌다. 고양감리교회는 111주년을 맞은 할아버지교회이지만 청년처럼 봉사한다. 역사가 부끄럽지 않도록 하늘문지역아동센터 등을 통해 지역을 섬기는 데 최선을 다한다.


   고양동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다. 나지막하고 소박한 주택, 땅뙈기가 한 평이라도 여유 있을라치면 고추며 상추 모종이 무럭무럭 자란다. 한쪽엔 으리으리한 아파트가 즐비해 신도시의 면모를 풍긴다. 고양 지역은 조선시대 조선과 중국을 잇는 중요한 교통 요지였다. 고양감리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조선에서 중국으로 가는 사절단이 숙박 휴식하던 사적 제 144호 벽제관지(碧蹄館址)가 지금도 남아 있다. 111년 전, 바로 이 곳 고양동에 고양감리교회가 세워졌다.

 
   윤치호 선생

 


   윤치호 선생의 초청과 미 남감리교회 리드의 내한


   고양감리교회는 좌옹(佐翁) 윤치호 선생으로부터 시작된다. 토포사(討捕使)에 등용된 부친을 따라 9세에 상경한 윤치호는 1881년 봄 17세 때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개화사상가이자 기독교인인 나카무라(中村正直, 1832~1891)가 설립·운영하던 동인사(同人社)에 입학하고 신학문을 배웠다. 유학중 영어를 터득한 윤치호는 1883년 5월부터 주한 미국 공사 푸트(L.H. Foote)의 통역관으로 채용되어 함께 귀국한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의 실패로 개화당 내각의 형조판서로 임명된 부친이 유배당한다. 윤치호는 1885년 1월 푸트의 소개장을 갖고 상해로 망명 겸 유학의 길에 올랐다. 미국 남감리교 선교부가 경영하는 중서서원(中西書院) 중등과에 입학한 윤치호는 2년 뒤인 1887년 중서서원 교수 본넬(W.B. Bonnel)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한국인 최초의 남감리교인이 되었다.


   1888년 10월 중서대학에서의 공부를 마친 윤치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밴더빌트대학 신학부에서 3년, 에모리대학에서 2년, 도합 5년에 걸쳐 신학과 현대 학문을 공부했다. 윤치호는 틈틈이 순회강연을 하고 받은 돈과 학비를 절약해 모은 돈 2백 달러를 1893년 3월, 에모리대학 총장 캔들러(W.A. Candler)에게 위탁하며 한국 젊은이를 위한 교육기관 설립에 써줄 것을 요청했다. 그 해 11월 상해 중서서원 교수로 부임했던 윤치호는 1895년 2월 3일, 조국을 떠난 지 꼭 10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다. 
 

   1972년 신년 주일예배 후 양총재 담임 목사와 교우들


   같은해 8월에 윤치호의 한국선교 요청이 이루어져 10월 13일 핸드릭스(Bishop Hendrix) 감독이 남감리교 최초의 주재 선교사 리드(C.F.Reid, 한국명 이 덕) 목사와 함께 인천을 경유해 서울에 도착했다.


   리드 선교사는 현재 한국은행이 있는 곳에 선교 기지를 구입하고 출국했다가 1896년 8월 14일에 가족과 함께 이사해 서울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펼쳤다. 감리사였던 상동교회 담임목사 스크랜턴(Scranton)은 자신이 맡고 있던 상동교회 교인인 김주현과 김흥순을 리드에게 보내 선교를 도왔다. 남감리교회는 다른 교파가 선교하고 있는 지역을 피하여 선교하려고 했다. 따라서 미개척지였던 강원도 선교를 목표로 경기도 북부의 요지인 고양(高陽)을 우선적인 선교지로 삼았다. 지금의 고양동은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의주로 가는 첫 번째 역관(驛館)인 벽제관이 있던 곳으로 당시로는 번성했던 마을이었던 까닭이다. 김주현과 김흥순은 매서인으로 <인가귀도> <천로역경>과 같은 책을 팔면서 복음을 전했다. 1897년 5월 2일은 남감리교 첫번째 교회인 고양읍교회가 조직된 날이다. 리드 선교사가 장년 24인과 유년 3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를 조직했던 것. 첫 교회는 윤치호가 예배당 용도로 사서 기부한 한옥에서 시작됐다.

 
   백사겸 전도사


   전도사로 거듭난 시각장애인 복술가 출신의 백사겸


   매서인 김제옥이 전도지를 전한 인물 가운데는 백사겸이라는 유명한 복술가도 있었다. 백사겸은 시각장애인으로 고양 땅은 물론 서울에서까지 모셔갈 정도로 이름난 복술가였지만 점을 이용해서 재산을 모으는 것에 대해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미신과 우상이 판치는 세상이었던 당시 조선 사회에서 23년 간 사람을 속이면서 명성을 쌓아왔던 터였다. 어디를 가든 백사겸이 자리만 펴면 “백 장님이 왔다.”하면서 점을 치러 오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백사겸은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고아를 데려다 키우고 걸인을 잘 대접하는 등 선행을 하였으나 풀리지 않는 응어리는 여전했다. 그러던 중 매서인 김제옥에게 전도지 <인가귀도(人家歸道)>를 받고, 며칠 후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보이지 않아 헤매면서 산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는 좌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중 우편에 있는 사람이 은으로 만든 산통을 주면서 “나는 예수이다. 내가 주는 산통은 의의 산통이니 받아가지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산통은 점을 칠 때 사용하는 통이다. 그는 꿈에서 받은 은산통이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바로 며칠 전에 받은 전도지가 생각났다. 그래서 그 전도지를 읽어보니 인가귀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신 같은 죄인도 구원해 주셨다는 말에 통곡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세례를 받았다. 이 날이 바로 고양읍교회가 조직된 날이다.


   교인이 된 후 백사겸은 거짓되게 모은 재물을 정리했다. 가구를 파니 3천 냥이나 되었다. 백사겸이 돈 쓸 곳을 고민하던 중 돈을 몽땅 강도에게 빼앗겼다. 백사겸은 불의한 재물이니 잃어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집마저도 공짜로 남에게 주고 가족을 이끌고 고양을 떠나 행주 땅으로 이주했다. 행주 땅에 도착하니 소문을 듣고 전도를 부탁하는 이들이 많았다. 남감리교에서는 이런 백사겸을 사역자로 임명, 1899년부터 리드 선교사와 함께 개성으로 파송했다. ‘조선의 삭개오’라 불린 백사겸은 개성, 장단 등지에서 13년간 전도하면서 장단읍교회, 감암리(甘岩里)교회, 개성남부교회 등을 세웠다.

 
   창립100주년기념비


   남감리회 최초의 한국인 목사, 김흥순


   1895년 6월 1일에 기독교인이 되어 상동교회에 출석하던 김흥순은 그 해 10월 1일 스크랜턴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후 남감리회의 선교가 시작되면서 스크랜턴의 추천으로 리드 선교사를 도와 전도활동을 펴고 고양읍교회의 창립에 기여한다.


   매서인들의 주요활동이 성서 판매였지만 목적은 아니었다. 매서인들은 회개한 사람들을 교회로 모이게 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없는 지역에서는 교회를 세우는 역할도 담당했던 것. 매서인들은 전국 각지를 돌면서 민중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현장을 확인하고, 복음으로 민족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고자 했다.


   김흥순은 1896년 12월부터 엄동설한의 추위를 무릅쓰고 경기도 고양읍을 중심으로 성서를 판매하면서 전도를 시작, 많은 교인을 얻게 되었고 1897년 5월 2일 리드 목사를 통해 교회를 조직했다. 이 고양감리교회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설립한 남감리교회다. 김흥순은 계속해서 불교신자 김온양과 김억실 등을 고양읍에서 전도했다. 1911년 성경학원·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남감리교회의 초대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 뒤 경기·강원도 일대의 각 교회 목회자로서 많은 활동을 하다가, 1927년에 한국 최초의 원로목사(元老牧師)로 추대되었다.


    하늘문지역아동센터


   고양감리교회는 일제시대 당시 폐쇄된 적이 있었다. 이후 다시 모인 교인들은 또 흩어져야 했는데 선교구역분할 협정으로 인해 고양 지역이 장로교회 구역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에야 재건되어 신앙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고양감리교회는 ‘하나님과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를 모토로 지역 섬김에 앞장선다. 고양동 거리를 청소하는 작은 일부터 방과후학교를 통해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까지 그 모양은 다양하다. 고양감리교회 내에 위치한 하늘문지역아동센터는 이미 지역의 명물이다. 오후 2시에서 6시까지 아이들의 쉼터가 되고, 맛있는 저녁을 제공하는 식당이 되고, 독서·영어·풍물·미술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또 다른 배움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더 나이 먹었으므로 더 많이 사랑하고 봉사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인 줄 알기 때문이다.

 

                                                               이홍기 담임목사

   노인센터 등 지역에 필요한 복지와 섬김 늘릴 것


   1983년부터 미국에 있는 감리교회를 섬기다 21세기가 되어서야 한국에 돌아왔다는 이홍기 목사. 3년 전 고양감리교회에 부임한 뒤 목사 사무실의 ‘목양실’이라는 간판을 뗐다. 목사도 기도하고 섬기고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홍기 목사는 ‘목사는 목자고 교인은 양’이라는 인식부터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목사도 하나님 앞에서 양이기 때문이다.

 


요시야 ―남유다의 마지막 개혁자

1. 인적 사항
① 요시야는 '여호와께서 도와주심'이라는 뜻.
② 남유다 제16대 왕,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 통치(왕하 22:1).
③ 므낫세 손자, 유다 왕 아몬의 아들(왕하 21:24).
④ 모친은 보스갓 아다야의 딸인 여디다(왕하 22:1).
⑤ 아들로는 요하난과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살룸이 있음(대상 3:15).
⑥ 그리스도의 조상(마 1:10).
2. 시대적 배경
유다 왕국의 마지막 시대로 접어든 B.C.640년경부터 왕국 분열 후 유다 역사상 가장 부흥했던 시기인 B.C.609년까지를 주활동 배경으로 한다. 당시의 대외 정세는 남유다를 계속하여 위협하던 앗수르의 세력이 매우 약화된 때였다. 즉 앗수르는 무리한 대외정복 정책으로 국력을 많이 낭비하게 되었고 급기야 B.C.612년에 바벨론에 의한 수도 니느웨 城 함락(陷落)으로 멸망한다. 그리고 신흥 바벨론이 앗수르를 제치고, 새로운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잡고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세력이 활발하여지는 요시야 왕 말기부터였다. 그러므로 8세에 왕에 오른 요시야 왕 때에는 앗수르의 힘은 약화되었고, 아직 바벨론은 대외적으로 큰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므로 요시야 통치 초기의 유다 왕국은 평화로운 중에 여호와의 신앙을 제정할 수 있었다.
3. 주요 생애

4. 성품
①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으로 즉위한 뒤 선왕들과는 달리 다윗의 율례를 모범으로 삼아 그 율례대로 선정을 베푼 것을 볼 때 어질고 신실한 자(왕하 22:2).
② 율법서를 발견한 후 말씀을 읽으며 옷을 찢고 눈물로 회개할 만큼 겸손하고 순종적인 자(왕하 22:10-13).
③ 백성들과 더불어 여호와 앞에서 말씀에 순종했다는 언약을 맺을 만큼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뢰하는 자(왕하 23:3).
④ 대대적인 회개 운동 후에 우상 숭배의 제단과 그 형상, 또 이를 주관하는 자들까지도 제거할 만큼 결단력 있고 실천적인 자(왕하 23:4-15).
⑤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만큼 가치관이 확고한 자(왕하 22:2).
⑥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을 볼 때 일면 경솔한 자(왕하 23:29).
5. 구속사적 지위
①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신앙 개혁운동을 주도한 남유다 제16대 왕(왕하 23:4-15).
② 신앙적 암흑기에 여호와 예배 의식을 회복하고,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을 갱신한 지도자(왕하 23:1-3).
③ 이스라엘 분열 왕국 이후 유다 역사상 최대의 종교적 부흥기를 꾀한 왕(왕하 23:25).

6. 주요 업적
① 성전을 깨끗이 수리하고, 이 때 율법 책을 발견함(왕하 22:3-8).
②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 책을 읽어 자신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에 빠져있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함(왕하 22:8-19).
③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함(왕하 23:1-3).
④ 남방만 아니라 북방 이스라엘까지 온 이스라엘의 우상을 제거하고 정결케 함(대하 34:3).
⑤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 시대 이후 처음으로 모세의 율법을 따라 유월절을 지킴(23:21-23).

7. 실수
애굽 왕 바로느고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끝까지 므깃도 전투를 감행하다 죽임을 당함(대하 35:20-24).

8. 평가 및 교훈
① 요시야 왕은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을지라도 선왕의 악행을 따르지 않고, 오직 다윗의 본을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하나님만을 섬겼던 현군이었다(대하34:1-7). 곧 그는 즉위 후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고, 또 온갖 이방 신을 다 제하여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대에 물들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결단력 있고 진취적인 신앙의 기상을 잘 보여준다. 당신에게도 이러한 신앙의 결단과 행동이 살아있는가? (롬12:2).
② 요시야 왕은 말씀에 대해 순종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나아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왕하 23:21-25). 이러한 요시야의 모습은 말씀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는(약 2:14) 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 참 신앙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 준다. 실로 우리도 그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③ 요시야는 왕으로서 권위를 내세우는 개혁이 아닌, 자신부터 말씀에 근거하여 철저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방 우상 숭배에 젖어 있던 백성들을 회개시키고 국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다(왕하 22:11-13). 이처럼 성도들도 먼저 겸손하게 자신을 말씀 앞에 복종시켜 변화하는 가운데 교회와 사회를 예리한 말씀으로 변화시켜 나아가야 한다(히 4:12). 실로 요시야가 오직 말씀에 준거하여 모든 개혁을 일으켰듯이 우리 역시 말씀에 근거하여 변화하는 모습과 노력이 있을 때 진정 이 사회가 하나님 앞에 무릎꿇어 경배드릴 수 있는 것이다.

9. 핵심 성구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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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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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64년 로마를 통치하고 있던 네로 황제는 헤롯의 손자였던 아그립바 2세를 이스라엘의 분봉왕으로 세우고, 아그립바 2세는 풀로루스를 유대지역 총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풀로루스는 유대인들을 학살하였고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이에 반대한 유대인들이 주후 65-66년 사이에 로마에 대항하는 대반란을 일으켰고, 로마는 베스파시안과 아들 디도장군에게 반란의 진압을 명하였습니다.

네로는 "이스라엘을 삽으로 깊이 떠서 지중해 바다 속에 던져 버리라." 고 명령하였습니다. 1948년과 1967년 그리고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세계와의 전쟁이 있었을 때 아랍은 이스라엘을 삽으로 떠서 지중해로 던져 버리겠노라 장담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하였지만 옛날부터 따라다녔던 치욕이 오늘날까지 재현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즈음 네로는 로마의 대화재 사건 이후 자살하였고, 베스파시안이 황제가 되어 아들 디도장군에게 반란진압 총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70년 4월 유월절 즈음에 시작된 전투가 70년 8월 28일 예루살렘 멸망으로 종결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살에 살아 남은 자 중 960명의 열심당원 사람들이 엘리에젤 장군의 지휘 하에 마사다로 결사항전을 위한 피신을 하였습니다. 로마는 이들의 뒤를 실바장군의 지휘 하에 10군단 1만 5천명이 마사다로 내려갔습니다.

 

이 곳에서 73년 5월 2일 멸망당할 때 까지 3년여간을 자유를 향한 마지막 몸부림을 쳤습니다. 절벽 높이 450m, 둘레 1,280m, 길이 남북 800m, 동서 300m나 되는 천연요새인 바위 암벽 마사다는 BC 167년에 하스모니안 왕가의 요나단에 의하여 에돔지역에서 오는 적군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요새화 되었던 것입니다.

BC 103-76 알렉산더 야나이라에 의해 확장되었고, BC 30년 헤롯 대왕에 의해 지금도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건축되어졌습니다. 동서남북 절벽으로 되어진 곳에 높이 3.5m의 성벽을 쌓았고, 38개의 망대를 설치하여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로마 장군 실바는 군인들을 동원하여 포위공격에 들어갔고, 지형적인 이유로 일시에 점령하지 못하자 서쪽 약간 낮은 지역에 토성을 쌓아 올려 마사다보다 높이를 더하려 하였습니다.

날마다 쌓여져가는 토성을 보고 유대인들은 용기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최후가 다가온 날 엘리에젤은 용맹스런 동료들과 모든 요새안의 유대형제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를 섬기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 섬겼소. 참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에게는 자유롭고 고귀하게 죽을 수 있게 되었소. 살아 노예가 되어 치욕을 당하는 것 보다... 중략... 우리의 자유를 위한 고귀한 선택을 하도록 합시다."

간곡한 연설에 일부는 동조하였으나 가족들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일부가 망설이자 재차 연설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자유를 추구하면서 영원한 자유를 꺼리는 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결국 성경의 예언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이 최후로 읽은 성경은 겔 37:1-6, 11, 12, 21절입니다.

자신들은 죽지만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고, 고국 땅은 반드시 부활될 것을 확신하면서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사본들은 시 81편, 85편, 150편, 레위기 일부, 겔 37장 신 33장, 34장 등입니다.

마사다는 시편 18편에 나오는 산성, 요새, 바위라는 히브리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사다는 실패한 땅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발견되어지는 성공의 땅이 됩니다.

여호와는 지금도 산성이 되셔서 믿는 자를 지켜 주신십니다.  비굴하지 말자.  두려워 하지 말자. 믿음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기까지 힘을 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마사다는 이스라엘의 국립공원으로서 사해쪽 아래에서 케이블카(84인승)을 타고 5분이면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동쪽에 만들어진 거대한 물저장고를 볼 수 있습니다. 고대에서 물을 저장하는 신기한 방법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출입문으로 올라가면 마사다 요새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곳곳 마다 놓여진 모형도를 놓고 안내인이 설명하는 모습들도 보입니다. 발걸음을 옮겨 채석장을 지나면 요새의 창고지역이 나타납니다. 거대한 요새의 병사들과 관리들을 먹이기 위한 식량창고와 무기 창고 등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헤롯의 사우나탕은 전형적인 로마 스타일의 목욕문화를 보여 줍니다. 이곳을 지나 북쪽궁전으로 나아가면 발밑에 아스라이 보이는 로마군의 진지들과 방어선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3층 궁전에서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잡힐 듯 다가오는 엔게디의 모습이 보이고, 북서쪽으로 마온 황무지, 십광야, 유대광야 등이 보입니다.

이제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보자. 서쪽에 저수지가 있고, 회당이 있습니다. 최후의 연설이 있었던 곳이며, 요새의 거주민이 안식일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며 기도하던 곳입니다.

회당 옆 부속건물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구멍 뚫린 집이 보이는데 비둘기집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연락용으로 키웠으리라 생각됩니다.

마다사 중간부에 가면 서쪽 구릉이 보이고 로마군진지가 보이고, 돌 포대도 보입니다. 로마군들이 쏘아올린 돌 포탄들을 지금도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잔틴 문을 통과하여 로마군 진지를 향하여 내려가는 길도 있습니다.

 

모두가 케이블을 타고 마사다에 오르지만 가끔은 아라드 쪽에서 버스로 마사다로 와서 로마군진지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르는 길로 오를 때도 있습니다. 곳곳에서 로마군이 쌓아올린 경사로를 볼 수 있는 묘미가 있습니다.

서쪽 궁전은 천연돌로 만들어진 2,000년된 모자이크를 볼 수 있고, 남쪽으로 계속 가면 거대한 저수지와 묘지, 비들기집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대부분이 이 서쪽 궁전을 본 후 5세기에 지어진 비잔틴 수도원을 보고 다시 케이블카로 이동합니다. 마사다 매표소는 현대식 건물로 냉난방이 잘 되어있고, 영화를 보는 곳도 있으며,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쇼핑센터와 조그만 가계가 내부에 있고, 외부에는 노천 카페에서 생과일 쥬스를 팔고 있습니다. 과일 쥬스를 마시면서 마사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역사를 음미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배우려 오늘날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부지런히 마사다로 올라가고, 이방인 순례객들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면서 마사다를 이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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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부정 --본문 : 잠 17:9-13

제목 : 긍정과 부정

서론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어디를 막론하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고 소극적인 것과 적극적인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쪽을 택하였느냐에 따라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이어서 그의 평생의 생활이 매우 고달프고 긍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어서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삶은 매사가 여유가 있고 풍요로운 것입니다.

1. 허물을 덮고 덮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본문 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남의 허물을 놓고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이 그를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남을 비판하는 의식이 앞서지 남을 사랑하는마음이 없습니다. 잠언 저자는 말하기를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 10:12) 하였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언제나 사랑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만 보는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줄 수가 없는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그럴 수 있겠다 하고 입장을 자기와 바꾸어놓고 생각을 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자기와는 전혀 관계를 짓지 않고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에서 사람을 대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행동이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긍정적으로 대하여 좋은 결과를 가지고 와야 하겠습니다. 이 사회에서나 신앙세계에서도 부정적인 면은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몰론 좋은 뜻에서 부정적인 면이 쓰일 때가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하는 시편저자의 말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 풍성한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2. 충고를 받고 받지 않는데 있습니다.

본문 10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계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책망과 충고를 잘 받아들이지만 미련한 자는 충고와 책망을 받지 아니합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나의 선을 말해주는 자는 내게 도적이 되고 나의 악을 말해주는 자는 내게 스승이 되느니라"(논어). 성경의 예를 보아도 다윗은 나단 선지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였고 베드로는 닭소리를 듣고도 주의 말씀을 기억하여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잠언 저자는 말하기를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잠 9:7-9) 하였습니다.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잠 6:23), 그리하여 책망을 달게 받는 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이요 책망을 싫어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요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잠언 저자는 기록하기를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 29:1) 하였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책망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3. 반역하고 충성하는데 있습니다.

본문 11-13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입으리라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악한 자의 특징은반역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정책을 부정적으로 보고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차 현체제를 물리적인 힘으로 빼앗는 것입니다. 이는 순리에 따르지 아니하고 기존법과 질서를 파괴하면서 반역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정적 사고가 낳은 결과입니다. 그리하여 잘 되면 죽음을 면하고 현체제를 파괴하고 잘못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기존 질서를 파괴하지 아니하고 지혜로 인하여 무리없이 해결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인 믿음과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 대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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