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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 장                             

                 

 

창세기 14 장


1. 전쟁 팀을 둘로 나누어 보시오

메소포타미아 연합국(4개국)

사해 동맹국(반란국 연합, 5개국)

1)

2)

    1) 시날왕 아므라벨, 엘라살왕 아리옥, 엘람왕 그돌라오멜, 고임왕 디달
    2) 소돔왕 베라, 고모라왕 비르사, 아드마왕 시납, 스보임왕 세메벨, 소알(벨라)왕

2. 전쟁의 경과를 정리하면서 빈 곳을 채우시오.

진 행

내 용

구 절

발 단

1)

1-4

경 위

2)

5-9

결 과

3)

10-12

수 습

4)

13-14

아브라함에게 끼친 영향

5)

    1) 사해 5개국이 동맹을 맺어 그돌라오멜을 배반함
    2) 엘람왕이 주축이 된 메소포타미아 연합국이 사해 지역까지 원정, 도중에 있는 가나안 열국들을 초토화시킴
    3) 사해 동맹국이 참패함, 원정군들이 포로와 전리품을 취해 귀환, 롯도 포로로 잡혀감
    4) 아브람이 원정군을 뒤쫓아가 모든 약탈물을 되찾고 롯을 구출해 냄,
    5) 이 일로 일개의 이방인이었던 아브람이 강력한 부족 단위의 지도자로 국제적인 위상이 대단히 높아짐: 말하자면 국제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를 한 셈이다.

3. 이 전쟁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려면 최소한 이 나라들의 위치라도 파악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위치를 대강이라도 알 수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시날: 수메르지역 (바벨론, 지금의 이라크 북부지역쯤)
    엘람: 바벨론의 동부 고원 지역인데 지금의 이란 서부지역에 해당하는 셈이다.
    소돔 고모라: 사해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대군이 엄청나게 먼 곳까지 원정을 온 고대의 세계대전이었다.

4. 전쟁에 참패한 반란군 연합국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해보자.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이길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핀 다음에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보장이 있어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속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비록 졌지만 그래야 한다. 국가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속적인 충고일 뿐이다. 세속 역사야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5. 남의 전쟁에 말려 억울하게 당한 민족들(6족속)을 정리해보자.

    르바 족속, 수스 족속, 엠 족속, 호리 족속, 아말렉 족속, 아모리 족속(5-7): 메소포타미아 연합국의 침공 진로는 북에서 남으로 곧장 내려와서 사해연합국을 친 것이 아니라 사해 동편으로 내려와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7절의 ‘돌이켜’) 남쪽에서 치고 올라왔다. 그 도중에 있는 이들 작은 나라들을 모조리 초토화시킨 것이다. 주변 청소를 먼저 한 셈인데 아마 반란군에 가담할 가능성을 미리 없애기 위함이거나 힘있는 자의 오만 때문인지 모른다. 힘없는 백성의 서러움이 이런 것이다.

    개인은 선한 경우가 있을지라도 국가 간에는 힘이 정의다. 인정이나 양보심이란 없다. 오직 자국의 이익만 존재하는 것이 국가 간의 일이다. 나라의 부강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에 너무 많은 경제적인 부를 넘겨주고 있다. 학생들의 학용품, 비디오, 만화, 만화 영화에서부터 첨단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일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해 전이긴 하지만 국산 비디오 카메라를 하나 얻었는데 알고 보니 껍데기만 국산이었고 껍데기와 상표를 제외한 알맹이는 완벽한 일제 sony였다. 정말 위험한 일이다.

6. 아브람은 어느 족속이라고 하는가? (가나안 사람들이 아브람은 자신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이방인인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히브리 사람(13): 히브리라는 말의 어원이 ‘(강을) 건너온 사람들(=아바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위시해서 ‘에벨’의 후손(10:21)이라는 것이 틀림없다고 하기도 한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당시에 천한 계급을 일컫는 말 ‘하비루(아피루)’와 뒤섞여 사용되면서(창39:14,17: 출2:6: 삼상4:6,9) 분명한 어원을 밝히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아브람이 나그네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한다(벧전2:11). 불신자들이 볼 때에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는 있지만 분명히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이란 것이 표시날 정도로 살아야 한다.

7. 온 천지가 초토화되고 있는 판에 겨우 318명을 거느린 아브람이 어떻게 이겼을까? 승리의 요인을 두 가지 지적한다면? (멜기세덱의 표현을 빌리자)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20)과 야간 사방기습작전의 성공(15): 아브람이 혼자 싸우러 간 것이 아니라 다른 부족과 함께 동맹해서 싸웠다(13, 24). 유일한 혈육인 조카 롯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무모하게 전쟁에 뛰어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운이 좋았을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키우고 계시다는 뜻이다.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의 맛배기가 아닐까?

8. 아브람에게는 무모할지라도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지만 함께 싸우러 간 세 부족은 어떻게 이런 싸움에 뛰어들 수가 있었을까?

    아무래도 평소에 아브람을, 혹은 아브람의 하나님을 신뢰할만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소를 지붕에 올리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 딸, 며느리들이 군소리 없이 순종했다는 얘기를 하고서 집안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어른에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지만, 평소에 아버지의 말이 얼마나 자식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었기에 말도 되지 않는 말에 그렇게 순종을 하는가?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아브람이 그러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9. 아브람이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왜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드렸는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18): 살렘왕 멜기세덱은 오실 메시야를 상징하는 인물이다(시 110:4): ‘살렘’은 ‘평화’, ‘멜기’는 ‘왕’, ‘세덱’은 ‘의’를 뜻한다. 히브리 기자에 의하면 그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한 제사장이라고 한다(히 7:1-3).

    시편 110편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께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막12:37, 마 22:45, 눅 20:44)’ 할 때 인용한 시인데 그 시의 4절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110:4)’ 이 시편이 쓰여질 때에는 아론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있었음에도 또 다른 계열의 제사장이 필요한 것을 말씀하였다. 결국 이 대제사장은 오실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람이 이런 내용을 알고 드렸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자신도 그 의미를 잘 모른 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 셈이지만 이런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

10. ‘너 때문에 부자 되었다’는 소리 듣기 싫다(23). 이 말은 끔찍한 말이다. 학교에서 옆의 친구가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데 ‘네가 도와주어서 100점 맞았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생각해 보자. 1) 왜 이런 말을 하게 될까? 2) 친구 사이는 어떻게 될까?

    1) 네가 너무나 싫어서, 혹은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 롯은 좋아라 하고 갔지만 아브라함은 죄악에 물든 소돔을 대단히 싫어했던 것 같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신감의 발로라기보다는 소돔을 싫어했던 것 같다.

    2) 관계가 완전히 끊어짐: 그래 너 잘 났다. 내 꺼는 더럽다 이거지?

11. 내가 옳다고 믿고 내가 희생할 각오를 하는 것은 좋으나 남도 나와 같이 하기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나는 내 이익을 포기하지만 타인의 것을 챙겨 주는 자세가 어디에 있는가?

    14:23-24 ‘소년들과 나와 동행한 자들의 분깃을 제하라’: 진리가 아닌한 나의 기준을 함께 사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자. 동화되던지 아니면 나는 이렇게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의 서랍에 함부로 손대지 않는 사람은 겨우 볼펜이나 칼을 빌려쓰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서랍을 허락없이 여는 것을 굉장히 기분나빠 한다. 이것이 심해지면 동료들과 사이 좋게 지내기는 글렀다. 나는 남의 서랍에 허락없이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특히 부부 사이에 여유를 좀 가져야 한다.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올라가야 하느냐 중간을 쿡 눌러 짜야 하느냐? 신문을 본 다음 페이지대로 차곡차곡 접어야 하느냐 마느냐? 양말을 벗을 때 뒤집지 말아야 하느냐? 싸울 필요 없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버릇이므로 동화되던지 이 정도의 여유를 가지던지. 제발 상대방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12. 사해 근처의 동맹국들이 다 패했음에도 아브라함이 승리하고 잃은 것을 다 찾아 돌아왔다. 어쩌면 가나안의 통일왕국의 초대 왕이 될 수 없었을까? 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가져도 되는 노획물을 마다하였을까?

    그런 욕심으로 전쟁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오직 롯 때문이었다. 인기나 지위가 높아지면 쉽게 변하는 것이 사람인데 처음에 가졌던 선한 생각이나 의도가 얼마나 변하기 쉬운가?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것이지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굽에서 있었던 일로 인하여 재물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확신한 것 같다.

    때로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하여 맹렬하게 노력하면서도 거기에 빠져들지 않는 묘한 자세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출세를 위하여 회사 일에 전력을 투구하는 사람과 출세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차이점이 아닐까? 교회에서 봉사할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해야 한다. 이런 일로 인해서 받을 칭찬이나 사례금이 먼저 떠오르면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설교자의 눈에는 하나님만, 은혜를 바라는 성도들만 보여야 한다.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초심, 처음 사랑을 잃지 않는 자는 복되다!

13. 이 전쟁이 롯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염치없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화려한 도시로 찾아간 그에게 닥친 최초의 시련이었다. 웬만하면 그쯤에서 소돔을 나와야 했는데... 19장처럼 파멸에 이르기 전에 악다받게 버티지 말고 잘못되었구나 싶으면 돌아서야 한다.

14. 아브람은 그렇게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아니었다. 애굽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목숨을 보존하려던 것을 보면 그렇게 용감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용감하게 나섰을까? 소돔왕에게 하는 말에서 다른 가능성을 찾는다면?

    하나님을 가리켜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른 점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려는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22):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새로운 각오로 사는 것은 좋은데 그렇다고 소돔왕에게 한 말은 좀 신중하지 못한 것 아닐까? 신앙으로 살려는 사람이 열심이 지나쳐 주변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열심히 전도하다가 잘 안되면 저주 비슷한 말을 하거나 부조리 한 세상의 모습을 인식하고 같은 회사의 동료를 모조리 불결한 인간으로 치부해버리고 혼자서 순교하듯이 정의의 투사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가!

    < 14절의 ‘단’ 먼 훗날 사사시대에 붙인 이름인데(삿 18:29)? 후대의 가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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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잘못했어요.

 

빌리는 실수로 할머니가 사랑하는 애완용 오리를 죽였다. 잔뜩 겁이 난 그는 죽은 오리를 호숫가에 묻으면 그 누구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몰래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의 누이인 루시가 이런 행동을 모두 보고 말았다.

"할머니, 오늘 저녁 설거지는 빌 리가 하겠대요." 저녁 식사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빌리를 쳐다보며 루시가 말했다. 할머니는 거실로 나가며 빌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빌리는 루시 누나에게 무척 화가 났지만 비밀이 누설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얌전히 굴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에 할머니는 아이들을 불러 각자 할 일을 알려 주었다.

", 루시야 너는 마당과 옥수수 밭에 솟은 잡초를 뽑아라. 그리고 빌리는 지난 장마 때 무너진 흙담을 쌓아라. 그 다음에 놀아도 늦지 않을 거야."

할머니가 현관문을 나설 때 루시가 할머니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할머니, 빌리는 잡초 뽑는 일도 하고 싶대요." 할머니는 빌리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없이 나가 버렸다. 빌리는 하루 종일 잡초를 뽑고 담을 쌓느라 무척 지쳐 있었다.

"할머니, 빌리에게 울타리 페인트칠을 식히는 것이 좋겠어요." 그날 오후 당장 할머니에게 하는 얘기를 들은 빌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빌리는 당장 할머니에게로 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때 할머니께서 온화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빌리야,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단다. 난 네가 한시라도 빨리 루시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었어, 이제 울지 마라. 빌리는 할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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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훈 성도(대학청년국) - 예배는 비전의 시작이자 완성입니다

나를 위한 꿈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예배자로서 비전 가지니 기자의 길 인도해

 나는 어렸을 적 과학자, 국회의원, 장관과 같은 꿈을 품었다. 이러한 장래희망들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비전이기보다 내가 성취하고 싶은 목표고 꿈이었다. 나이가 들고 신앙이 성숙해지면서 나의 꿈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전에 대해 궁금해졌다. 비전을 위해 기도한 끝에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길은 기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 국회도서관을 다니며 언론사 입사 준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예배를 마치고 국회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는 국회에서 예배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날 이후 국회는 내게 미래의 예배처가 되어 매일 아침마다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국회 광장의 땅을 밟으며 ‘하나님, 기자가 돼 이곳에서 예배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던 2011년 여름, 나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주는 일에 힘을 보태고자 4박 5일 동안 강원도 춘천으로 해비타트 선교사역을 가게 됐다. 그런데 사역 사흘째 되던 날에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언론사에서 서류전형에 합격했으니 토요일 면접에 오라는 문자가 왔다. 사역 일정이 주일까지였기 때문에 밤새 고민하며 기도했다.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면접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정말 힘든 결정이었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니 인도해 주실 것이라 믿고 온전히 맡기기로 했다.

 나는 집짓는 사역에 끝까지 동참하며 혼자 온 봉사자에게 복음을 전했다. 면접에 대한 아쉬움보다 누군가에게 집을 지어 희망을 주고 거기에 전도까지 하게 되어 너무 행복했다. 해비타트 사역을 진행하는 동안 하나의 집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 하나님의 일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골조를 세우고 벽채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약 내가 내 자신만을 고집한다면 집은 제대로 지어질 수 없다. 설계도면을 보고 지시하는 사람을 따라 일을 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이렇게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집이 완성되면 귀한 가정이 들어와 기쁨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로 나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좇아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시 하자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대로 내 비전에 대한 응답을 주셨다. 한달이 채 되기도 전에 나는 다른 언론사에 입사하게 됐고 꿈 꿔온 대로 국회를 첫 출입처로 배정받게 됐다. 할렐루야! 국회로 첫 출근한 날 나는 국회 기자실 한쪽에서 혼자 예배를 드렸다. 기도 중 하나님께서는 사역 때의 일을 생각나게 하셨고 그날의 내려놓음이 기자라는 직업을 원하는 것인지 예배자로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기자가 되기 원하는지를 묻기 위함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회복이 필요한 장소로 나를 보내 그곳에서 예배하게 하셨다. 얼어붙은 개성공단, 눈물로 가득했던 2014년 4월의 진도 팽목항, 그리고 청와대까지. 요즘 들어 하나님께서는 특파원이라는 구체적인 길을 보여주시며 내게 열방의 예배를 회복하라는 마음을 주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에 따라 이제 나의 비전은 ‘하나님이 기억하는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가게 될 환경이 어떠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예배처라는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메뚜기 같은 인생/조용기목사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야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거역하여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야훼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야훼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신명기 1장 21~32절


 오늘 ‘메뚜기 같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진격해 가고자 할 때, 백성들 중 12명을 택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냈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목숨을 걸고 40일 동안 그 땅을 탐험해보고 돌아와서 그들을 기다리는 모세와 백성들 앞에 나가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1. 두 종류의 보고


 그들이 보고할 보고서는 열 정탐꾼이 본 것과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 본 것이 대단히 다릅니다. 그들의 보고, 10인과 2인을 비교해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한 10인은, “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자기들은 그들하고 비교해보니 메뚜기와 같다. 어림도 없다. 그 땅을 못 점령한다.” 꿈이 없던 10명은 패배주의적, 절대 부정적 보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 땅을 정탐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인간 스스로를 의지하고 땅을 보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참 기막힌 일입니다. 어떻게 자기들을 메뚜기로 보았는지요. 가나안 땅을 정탐한 2인의 보고는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두 명은 절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6절로 9절에 보면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10인의 보고에 하나님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그것을 관찰한 보고가 올라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과 함께 사물을 보는 것과 하나님과 함께 보지 않고 인간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보는 것과 굉장히 다릅니다.

 지나간 이야기 중 한번 우스운 이야기가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하루 저녁을 같이 먹자고 청와대에 들어오라고 했어요. 요사이는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 자랑도 못되는데, 들어가니까 저녁을 먹자고 저녁상을 차렸는데, 순 보리밥에 된장찌개를 냈는데, 나보고 먹으라고 할 때, 내 생각에 “자기 선전하려고 이렇게 엄하게 먹고도 충성한다고 그렇게 하려나보다.”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생겨요. 그가 밥을 먹으면서 하는 말이 ‘우리 대한민국이 살려면 해외 수출을 많이 해야 되고, 해외 물건을 많이 만들어야 되는데, 내가 해외 석유 기름이 많이 나오니까 중동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도시를 건설해달라. 교량을 지어 달라. 뭐 여러 가지 신청이 많은데 내가 우리 한국에 손꼽는 건축가들, 대학교수들, 이것을 조사하러 보냈더니만 가서 조사를 하고 와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오지만, 거기 가서 일할 사람 없을 것이라고. 얼마나 더운지 일을 하기 전에 모두 다 더위 먹고 죽을 것이라고. 괜히 탐냈다가는 사람들만 절단 난다고.” 그래서 그들이 과학적으로 조사한 조사 내용을 무시할 수는 없고 우리 한국에 제일 잘 나가는 건축가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정주영씨를 불러가지고서. 당신이 가서 한 번 조사를 해보고 오너라고. 그래서 그 분이 거기 갔다가 여기에 들어와서 얼굴에 만면에 웃음을 띠고 “왔다고.” “뭐가 왔노?” 하니까 “살 축복이 왔다고.” “거기 더워서 일을 못한다고”하니까 “더워서 일 못할 만큼 더우니까 배부른 사람은 안 오지, 경쟁자는 없고, 그다음에 그곳이 낮에는 일을 절대 못한다고 하니까 그것도 좋은 게 낮에 일 못하면 밤은 시간 아닙니까? 밤에 일하고 낮에 자면 되는 거죠. 그리고 재료는 돌, 자갈이 있어야 건축 재료가 되는데 흔해 빠진 것이 돌, 자갈이야. 모래하고 돌들이 어디 가도 있기 때문에 건축 재료가 천지에 가득하다고, 그리고 물은 요단강을 건너면 물이 있으니 미리 길어오면 되는 것이지요. 와따라고. 내가 해보겠다고.” 그래 자기가 생각한 결과 정주영씨에게 일을 시켰더니만 손대는 것마다 성공을 해서 우리나라가 해외에 건축 수출을 이렇게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내가 조 목사 불러서 저녁 먹자고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못 한다. 안 된다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로 나가 살게 된다면 우리 한국이 정말 잘 살게 될 것인데 그런 것을 가르칠 사람이 교인들이 돼야지 일반 사람들 힘으로는 안 될 것이니까 조 목사님이 좀 연구를 해가지고서 우리 국민 전체가 다 용기백배하고 일어날 수 있는 그러한 일을 생각해보라고. 내가 그래서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나도 사람 마음에 흥분을 주는 것은 농촌도 잘 살 수 있다. 우리는 하면 된다.” 그렇게 밀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회에서 그런 것 잘할 것 같으니까 신중하게 진실하게 사태를 보고해달라고.” 그랬는데 김현옥 시장이 날보고 며칠 후에 부르더니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대통령에게 가서 무슨 말을 했기에 가만있는 사람을 충원해가지고 모조리 무슨 일을 만드는데 헌 마을인지 새마을인지 그런 걸 연구를 하라고 하는데 내가 그런 걸 알 턱이 무엇이냔 말이지.” 내가 그래서 “성내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 나오면 헌 마을은 새마을이 되고 좋아지는 것이니까.” 그래서 새마을 운동이 그때 생겨난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하나님 눈으로 본 것 하고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하고 보는 것이 틀려요. 열두 정탐꾼을 보냈는데 열 명은 자기 인간을 의지해서 보았고,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의지해서 보았기 때문에 그 바라본 상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떤 눈으로 보는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두려움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세상만사가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차 보이고 믿음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같은 상황을 봐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달라지데 열두 명의 정탐꾼은 똑같은 가나안 땅을 보았지만, 그들이 내린 평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열 명은 인간적인 눈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정탐한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라고 악평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보았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눈으로 본 것을 보고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8절입니다.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완전히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 


 보고를 받은 제3자 백성들은 모두 다 겁을 집어먹고 애굽으로 뒤돌아 가자고 했습니다. 2인의 긍정적인 보고는 반대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절로 4절은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야훼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큰일 났습니다. 완전히 반역을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모세는 10인의 보고에 대노했습니다. 그리고 벌을 내려서 그들을 죽였습니다. 10인의 스파이들이 보고, 듣고,  뒤돌아 애굽으로 가자고 한 사람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고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침공하는 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후손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어찌해도 그 사람은 절망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보면 “좋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나는 힘이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면을 중점적인 것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물을 보면 좋습니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메뚜기가 무얼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평할 때는 “심히 좋았더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엿새 만에 세상을 다 만드시고 이레째 마지막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짓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보기에 말할 수 없이 좋아서 심히 좋다.’ 여러분을 보고 한 말입니다. ‘심히 좋았다.’ 그런데 그 말을 받아서 메뚜기다. 메뚜기. 그러면 하나님이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메뚜기의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메뚜기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지으신 것들을 보며 처음 말씀하신 것이 바로 감탄사였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고 빛을 보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늘과 바다를 지으시고, 지으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인간을 지으셨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아주 좋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께서 너무 좋다고 감탄사를 말할 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나는 좋은 존재입니다. 메뚜기라고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좋다고 감탄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열등감과 비교의식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3.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광야에서 살 것인가? 가나안 땅을 점령할 것인가? 우리 개인의 삶 속에 지금이 광야라고 하면 광야에 그냥 묻혀서 살 것인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것인가?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느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대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하나님은 능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뚜렷한 꿈이 있는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면 갈렙은 꿈이 있어요.

 여호수아 14장 7절로 12절을 보면 ‘내 나이 사십 세에 야훼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야훼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야훼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야훼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40대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탐하는 열두 명 중에 두 사람으로 갔었습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은 벌을 받아 죽고, 그 자손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이제 4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서 쳐들어가게 됐는데, 갈렙이 한 말 보십시오. “그때에 내가 40세였는데 지금은 80세가 넘어 84살이라고. 그래도 끄떡없습니다.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걸음걸이도 비틀거리지 않고 힘도 들지 않고 마음에 용기도 있고 하니 나에게 그 땅을 점령하는 선봉장이 되게 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평가할 때, 잘 평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도 나이가 81살이지만 나이 81살인 지금이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척교회 나올 때나 같아요.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자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85세나 되어서도 그는 지치지 않고 피곤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마음에 소원은 즉 마음의 꿈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마음의 꿈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시편 145편 18절로 19절에 ‘야훼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소원은 즉 꿈입니다. 꿈이 쉬운 말로 말하면 소원인데 왜 꿈이라는 말을 쓰느냐면 소원이란 것은 그냥 마음에 느낌이지만 꿈이라는 것은 그릇입니다. 이 물건을 담으려면 그릇을 가지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꿈이 있느냐? 꿈은 하나님이 담을 그릇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래. 그 꿈을 가져오너라. 내가 채워주마.” 그냥 자꾸 달라고 하면 “그릇도 안 가져오고 무엇을 어떻게 채우란 말인가?”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같이 기도하고 세상을 살아갈 동안에 마음에 소원이 있으면 소원으로써 두지 말고 그것이 이루어진 모습을 꿈꾸고 그 꿈꾸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 꿈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꿈에 응답해 주시고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창조적인 선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꿈을 가지면 보통 때는 아무 말도 안 한 것 같아도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 굉장히 좋습니다. “잠이 잘 오게 된다. 잠이 잘 오게 된다. 나는 잠이 잘 오게 된다. 나는 집을 짓게 된다. 짓게 된다. 짓게 되고말고.” 창조적인 짧은 선언을 하는데 그 선언이 큰 역사를 이루는 기반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왕 같은 삶을 삽니다.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고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어떤 형편에 있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며 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거지같이 삽니다. 늘 부족하고, 내일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자기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불평하다 죽을 것인가? 하나님을 믿고 가나안으로 진격할 것인가? 그 선택이 여러분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의지하고 보면 못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선택을 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스스로를 묶습니다. 사람은 생각으로 스스로를 묶는 것입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하드필드는, 연구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에게 ‘넌 틀렸어. 이젠 끝났어’라고 말하며 좌절할 때, 자기 능력의 30%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 스스로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가질 때에는 자기 능력의 150%까지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50%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할 수 없다, 안 된다’는 생각에 묶여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 그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기를 묶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부터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 포터워스 암 연구센터의 칼 사이몬 박사는 말기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좋은 세포가 암 세포를 먹어 치우는 상상과 병이 나아서 가정으로 돌아가는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하도록 시켰습니다. 암이 걸려서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에게 강제로 상상을 통해서, 생각을 통해서 치료해 보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 속에 생각을 부정적으로 하지 말라고, 그 생각 속에 자기 속에 있는 좋은 세포가 암세포를 하나씩 잡아먹는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도를 하면 더 잡아먹는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치료할 수 없는 단계에 들은 암이 10명 중에 2명은 깨끗이 나아 버렸어요. 그리고 억지로라도 꿈을 꾸라고, 아침부터 내가 온전히 암에서 고침 받은 것을 꿈꾸라고 그렇게 했는데 그 사람은 2배나 길게 살았어요. 그러므로 그 사이몬 박사는 ‘암을 물리치려면 먼저 부정적인 생각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이미 치료받은 자기 모습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는 나음을 입었다 저는 채찍에 맞음으로 너는 나음을 입었다’ 자꾸 외치면 여러분 속에 있는 암을 잡아먹는 좋은 세포가 암을 잡아먹어요. 밑져야 본전인데 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안 믿는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당신의 살을 떼어주고 피를 쏟아서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광야 같은 세상에, 이 세상을 정복하고 속량하시기 위하여 인생의 모양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우리들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허락해 주셨는데,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마지막 외친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몸 찢고 피를 흘려서 값 주고 사준 은혜를 여러분은 감사히 받아들이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이 의인으로 품어주는 것을 꿈꾸고 생각하면, 병들어서 죽어가는 사람,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 병을 갚아버린 거예요. 그다음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저주를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허락해 주었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잘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일을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도와주실 것인데 왜 그렇게 안 하나요? 예수님이, 죽지 않을 분이 죽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은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사망과 음부 속에 들어갔으나 부활해서 승천함으로 사망과 음부를 멸해버리고, 우리는 죽음 없이 하나님 따라 천국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도 평안하게 죽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친구인데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유머가 심한 사람이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이제 죽게 되었는데 혼수상태에 빠져서 그 주위에 가족들이 둘러 있는데 잠시 동안 정신이 돌아오니까 주위를 살피더니만 자기 여동생을 보고 “야, 죽는 것 별로 어렵지 않다. 굉장히 평안하다. 간다.” 그리고 가버렸어요. 죽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그렇게 해놨으므로 편안하게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 있는 꿈을 반드시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목표 있는 꿈을 어떻게 꾸느냐? 최근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날씬한 연예인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두면 다이어트에 효과가 굉장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진을 자주 바라볼수록 효과가 더 커진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사진을 바라보기만 해도 다이어트가 되는 이유는 사람은 목표를 바라볼 때 동기 부여가 되고 그래야 행동으로 옮기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 사진을 찍어 놓고 ‘이 사람은 내가 모범으로 할 사람이라’고 그렇게 마음에 동의하면서 바라보면 그것이 바라봄의 법칙에 의해서 그 사람에게 옮겨 들어서 똑같이 다이어트가 되고 날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진을 바라보기만 해도 다이어트가 되는 이유는 사람은 목표를 바라볼 때, 동기부여가 되고 크게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목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꿈과 목표가 있을 때, 계속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꿈이 믿음을 생기게 하고 믿음이 또 꿈이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9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꿈을 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자손에 대한 꿈을 품었습니다. 그 마음에 꿈이 있었기 때문에 25년이라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붙잡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꿈과 믿음은 함께 갑니다. 꿈을 품은 사람은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굳건해 지는 것입니다.

 말의 중요성을 또 알아야 돼요. 말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고기는 낚시 바늘로 잡고 사람은 말로써 잡는다’ 속담이 있습니다. ‘바다는 사람의 손에 의해 세계는 사람의 입술에 의해 지배된다’고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말 한마디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칭찬이 한마디가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입술을 칭찬에, 격려하는 데 사용하면 누군가 그 칭찬과 격려를 들은 사람은 인생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는 말이 굉장히 효과를 발생하는 것입니다.

 저도 주일 예배를 필하고 난 다음에 전화를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주일 예배 은혜를 받았습니다. 참 은혜를 받고 기쁩니다.” 그러면 “뭘요, 별로 잘하지도 못했는데......” 그러면서도 내 속으로는 ‘두고 봐라. 더 잘해야 되겠다. 정말 은혜받도록 다음 주일을 만들어야겠다.’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절대로 남에게 칭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감탄을 하셨는데 우리가 우리를 보고 감탄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를 보고 “메뚜기 같은 녀석, 네가 뭘 하겠느냐?” 그러면 뭐,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어 놓으시고 만드신 것 보고 참 좋다”  조용기 이름은 쓰기가 어려우니까 이름을 하나 지어서 김상아로 하나 지으십시다. “김상아, 내가 너를 만들어놓고 보니까 참 잘 만들었다. 네가 보통 놈이 아니다.” “아이, 하나님 뭘 그러십니까?” “무슨 소리, 내가 지어놓고 보니 그렇게 좋은데 네가 나쁠 턱이 있느냐?” 나쁠 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더러움을 씻음 받고 정의롭고 깨끗한 사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고 병은 암을 위주로 해서 모든 다른 병들도 다 좋은 세포가 잡아먹어 버리기를 원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기도를 할 때, 칭찬하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할 때, 이 좋은 세포들이 일어나서 여러분을 위해서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도 여러분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하기를 하나님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시는데 예수님이 저주를 다 담당해버리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신 가슴에 저주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이 있음 따름인 것입니다. 잘 된다는 것입니다.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나는 형통하게 된다. 잘 된다.”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학자들이 중동에 갔다 오면서 “못 해요. 너무 더워요. 사람 잡아요. 안 됩니다.” 그러기보다도 공부는 별로 하지 못하고 잘나지 못했을지라도 “야, 사람 팔자 고칠 때가 왔구나. 기회를 놓으면 안 되겠다. 우리 한국 사람이 들어가면 저런 것 다 문제없이 해낸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긍정적인 적극적인 생각을 살리면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의 생각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메뚜기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지으신 보기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사랑의 주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믿음의 입술로 절대 긍정을 시인하여, 날마다 승리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방으로 우겨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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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몇 번째 왕이 되었습니까?(10장)

    1째
    2째
    3째
    4째

    5.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후 꿈에 여호와를 뵙고 구한 것은?(3:5-9)

    지식
    지혜

    군대

    6. 솔로몬의 유명한 재판이 기록된 곳은?(3:16-28)

    대하 7장
    대상 5장
    왕상 3장
    왕하 8장

    7.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위해 레바논 백향목을 벌목하여 도와준 왕은?(5:1-12)

    레바논왕 훗세
    두로왕 히람
    시돈왕 달마
    수리아왕 계젤

    8. 솔로몬이 자기 궁을 건축하는 데 걸린 기간은?(6:38)

    5년
    7년
    10년
    13년

    9.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위에 해마다 번제와 감사제를 드린 횟수는?(9:25)

    한번씩
    세번씩
    열 두번씩
    쉰 두번씩

    10. 솔로몬이 말년에 타락한 원인은?(11:1)

    재물이 많아서
    지혜만을 믿어서
    교만으로
    이방여자를 아내로 삼아서

    11. 솔로몬이 범한 죄는?(11:1-11)

    하나님을 믿지 않음
    살인함
    산당을 짓고 제사함
    전쟁을 일으킴

    12. 북왕국으로 갈라나간 왕은?(12:20)

    르호보암
    여호야김
    여로보암
    아합

    13.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뉠 때 르호보암을 따라서 남부 유다에 남은 지파는?(12:23)

    유다와 에브라임
    베냐민과 므낫세
    유다와 베냐민
    므낫세와 에브라임

    14. 북왕국 이스라엘이 분열 직후부터 하나님 대신 섬긴 것은?(12:38)

    바알
    아스다롯
    금송아지
    아세라목상

    15. 7일 동안 왕 노릇한 이스라엘 임금의 이름은?(16:15)

    바아사
    오므리
    시므리
    아합

    16. 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타 죽은 왕은?(16:15-18)

    요아스
    시므리
    여호야김
    베가

    17. 아합왕의 부인으로 바알을 숭배하도록 한 사람은?(16:31)

    아달랴
    홀다
    이세벨
    들릴라

    18. 엘리야 선지자가 산 시대는?(17:1)

    여로보암 때
    아합 때
    요람 때
    아하시아 때

    19. 엘리야가 숨어서 고기로 공궤받은 시냇가는?(17:3)

    갈릴리
    기손
    나일강
    그릿

    20. 히스기야왕 14년에 예루살렘에 쳐들어 온 왕은?(18:13)

    산혜립
    벤하닷
    나아만
    바로

    21. 엘리야가 갈멜산상에서 죽인 이방 선지자의 수효는?(18:19)

    500명
    850명
    400명
    950명

    22.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겨 다니다가 죽기를 원한 곳은?(19:1-4)

    벧엘 광야
    아라비아 사막
    헤브론
    브엘세바 로뎀나무 아래

    23.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까지의 순서는?(19:10-11)

    바람, 지진, 불
    지진, 불, 바람
    불, 바람, 지진
    바람, 불, 지진

    24. 엘리야가 기름부어 세운 이스라엘 왕은?(19:15)

    예후
    아합
    하사엘
    바아사

    25. 엘리야의 후계자는?(19:16)

    사무엘
    이사야
    예례미야
    엘리사

    26.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의 수는?(19:18)

    3,000명
    2,000명
    5,000명
    7,000명

    27. 나붓의 포도원을 빼앗은 사람은?(21:13-16)

    벤하단
    아합
    예후
    하사엘

    28. 다락난간에 떨어져 병들어 죽은 임금은?(왕하1:1,2,17)

    아합
    여로보암
    아하시야
    사울

    29. 엘리야의 승천기사가 있는 곳은?

    왕상19장
    왕하 2장
    대상 5장
    대하 2장

    30. 엘리야 말고도 육신의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사람은 누구입니까?(창5:24)

    에녹
    다윗
    솔로몬
    모세

    31. 엘리사에게 다락방을 제공한 여인은?(왕하4:8-11)

    사르밧 여인
    갈대아 여인
    수넴 여인
    여리고 여인

    32.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고 문둥병을 고친 아람의 장군은?(왕하5:1-14)

    우리아
    나단
    골리앗
    나아만

    33. 그 문둥병을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명한 선지자는?(왕하5:10)

    나단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34. 아람군대가 소경이 되어 끌려온 곳은?(왕하6:8-23)

    예루살렘
    헤브론
    여리고
    사마리아

    35. 죽은 후 그 시체를 개들에게 먹힌 사람은?(왕하9:30-37)

    삽비라
    아간
    안디바
    이세벨

    36.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의 연령은?(왕하11:21)

    20세
    7세
    30세
    25세

    37. 죽어서도 그 능력이 있어서 그 뼈에 다른 시체가 닿았을 때 살아나게 한 사람은?(왕하13:20)

    엘리야
    엘리사
    에녹
    모세

    38.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 제일 오랫동안 다스린 왕은?(왕하14:23)

    예후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요람

    39. 이스라엘 왕 중에서 1개월만 왕 노릇한 사람은?(왕하15:13)

    아하시야
    야베스
    살룸
    여호아하스

    40. 이스라엘의 최후의 왕은 누구입니까?(왕하17장)

    호세아
    베가
    시드기야
    여로보암

    41.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못뱀을 부숴 버린 왕은?(왕하18:1-4)

    히스기야
    요아스
    다윗
    아하스

    42. 히스기야 왕을 도운 선지자 이름은?(왕하20:1-7)

    이사야
    엘리야
    예레미야
    호세아

    43.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을 때 무화과 잎을 가지고 낫게 한 선지자는?(왕하20:7)

    아모스
    엘리야
    이사야
    에스겔

    44. 히스기야가 병들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15년을 더 연장 받았을 때 징조로 준 것은?(왕하20:1-11)

    해가 15분 동안 정지함
    솜뭉치에 이슬이 맺지 않음
    해 그림자가 10도 나아감
    해 그림자가 10도 물러감

    45. 유다왕 중에서 선한 정치를 하지 않은 왕은?(왕하21:1-18)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므낫세

    46.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은?(왕하22:2, 18:3)

    아합, 아하스
    아몬, 여호야김
    요시야, 히스기야
    여호사밧, 히스기야

    47. 바벨론 왕에게 두 눈이 뽑힌 왕은?(왕하25:7)

    여호야김
    시드기야
    여호야긴
    웃시야

    48. 요시야왕 때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한 사람은?(왕하22:8)

    힐기야
    사반
    훌다
    이사야

    49. 유대의 열왕 중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장 잘 의지한 왕은?(왕하18:3-6)

    솔로몬
    여호야김
    아사
    히스기야

    50. 엘리사가 병이 들어 이스라엘왕 요아스에게 화살로 땅을 치게 한 것이 뜻하는 바는(왕하13:20)?

    아람을 침
    에돔을 침
    레바논을 침
    유다를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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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여유가 준 감동

 

자전거 뒤에 야채와 과일을 잔뜩 싣고 앤 부인의 집 앞을 지나가던 그는 고개를 쭉 빼고 얕은 담을 힐끗거렸다. 작은 정원에는 잘 다듬어진 화초들이 물방울을 머금은 채 반짝거리고 있었다. 작지만 참 정겨운 집이라 생각하며 그가 막 골목을 돌아 나가려던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주말에 저희 파티에 오시지 않겠어요?"

자전거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고무 호스를 들고 서 있는 앤 부인이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지 않아도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집이었는데 잘됐다 싶어 흔쾌히 승낙했다.

주말이 되자 그는 꽃 한 다발을 사 들고 파티에 참석했다. 그가 꽃다발을 내밀자 앤 부인의 얼굴이 더욱 환하게 빛났다. 앤 부인은 답례라도 하듯이 그에게 집안 구석구석에 놓인 작은 화병 하나에 대한 사연까지 정성스레 설명했다. 이런 앤 부인에게 왠지 마음이 끌린 그는 앞으로도 친한 이웃으로 지내고 싶었다. 앤 부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장식장에 진열된 도자기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중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도자기가 가장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도자기를 한 번 만져 보려다가 그만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건 앤 부인이 동양인 친구에게 선물 받은 가장 아끼는 물건이었다. 앤 부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쳐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렇지 않아도 저 도자기만 쳐다보면 항상 보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됐지 뭐예요, 걱정거리 하나를 덜었으니."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앤 부인의 따뜻한 한마디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녀에게 마음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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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순·박동률 집사(마포2대교구)-

죽음의 순간에서 이영훈 목사 기도 후 살아나

전립선암 치료 도중 급성 폐렴으로 응급실 행
기도하던중 하나님이 남편의 치유 확신 주셔


 남편이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13년이었다.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서 남편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간단하게 끝날 것으로 예견했던 것과는 달리 암이 임파선으로 전이 돼 수술은 예상 시간보다 길었다. 걱정했지만 집도의 선생님으로부터 임파선으로 전이된 암세포가 더 이상 퍼지지 않고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감사했다. 2주간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 남편은 그 후 호르몬치료를 받았다. 1년 넘게 치료했지만 차도가 없어 항암치료로 바꾸고 지난해 여름까지 5차례  진행됐다.

 그러던 지난해 8월 남편의 입안이 하얗게 헐었다. 물 한 모금조차 넘기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던 남편은 결국 8월 16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고열에 혈압이 올라가면서 중환자실로 옮겨진 남편은 폐렴 진단을 받게 됐다. 그리고 일주일 후 체내 산소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갑작스레 혼수상태가 왔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폐가 새까맣게 보였다. 의사는 2∼3일 안으로 깨어나지 않으면 살 가망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교구 담당 정규태 목사님과 교구 식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나에게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이스라엘 땅을 위해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할 때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올라 비가 내리게 된 것’과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 생기가 불어넣어지면서 살아난 사건’의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영훈 목사님의 심방을 부탁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알릴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의 사정을 아는 한 장로님이 목사님께 남편의 소식을 알려 이영훈 목사님이 30일 주일에 심방을 오셨다.

 목사님이 심방 오시기 전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은 내 입술에서 새찬송가 216장 찬양이 흘러나오게 하셨다.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 나는 하나님께 남편을 살려주시면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 날 이영훈 목사님이 병원으로 심방을 오셔서 남편 박동률 집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목사님이 다녀가신 후 9월 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남편의 폐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의사는 늘 기도하던 나를 보고는 “더 기도해보세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리고 20일 후 남편은 깨어나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그 후 좋은 간병인을 만나게 해주셨고, 10월 첫 주부터 남편의 재활 치료가 시작됐다. 남편은 10월 24일 아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했고, 11월 24일에는 재활 치료의 고통을 이겨내고 퇴원했다. 폐렴을 일으켰던 거대바이러스가 눈으로 전이되면서 왼쪽 눈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 또한 하나님이 깨끗이 치료해주셔서 실명 위기를 넘기게 하셨다. 남편은 현재 18층까지 혼자 계단을 올라갈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호흡기내과 선생님은 “죽을 사람이 살아났다. 기적이다”라며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폐렴으로 인해 잠시 중단됐던 전립선암은 비뇨기과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희한하게 암 수치가 떨어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남편의 전립선암이 머지않아 하나님의 손길로 치유될 것을 확신한다. 남편과 나는 아침저녁으로 가정 예배를 드린다. 얼마 전 교구에서는 나에게 회계 일을 맡아달라고 했다. 남편은 ‘나는 다 나았으니 가서 열심히 봉사하라’며 나를 응원해줬다. 남편을 위해 기도해주신 이영훈 목사님과 모일 때마다 “박동률 집사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던 교구 성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교회/이영훈목사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 13장 1∼3절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의 삶의 모습이 결정지어집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님을 만나고, 좋은 형제를 만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성장한 사람은 구김살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난폭한 부모님을 만나고, 거친 친구, 또 잘못된 예수를 만나면 그것이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고 많은 어려움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알코올중독이 유전된다고 하는데, 분명히 어릴 때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본 자녀들은 ‘절대 나는 저렇게 안 살겠다’고 하지만 나중에 그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그 잘못된 고리를 벗어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이전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상처가 있고,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날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이전에 절망적인 모든 모습들은 다 떠나가 버리고 새롭게 변화되어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시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구원의 방주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전도를 받고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 받고, 변화되고, 달라지고, 병 고침 받고, 문제 해결 받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13장에 안디옥 교회가 등장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을 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제일 처음 세워진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나서 흩어진 사람들이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안디옥이라고 하는 곳에 와서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교회사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친 교회입니다. 

1. 주님을 섬기는 교회

안디옥 교회는 주님을 섬기는 데 최선을 다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무언가를 섬기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야!” 하고 돈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따라 갑니다. 권력을 잡으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권력자 주변에 있던 사람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냥 사람들이 돈을 갖다놓는대요. 누가 선물이라고 갖다놓은 것 열어보면 돈이 들어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권력이 얼마 가지 못해 다 무너지고 허무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금도 그 권력을 잡으려고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신념을 믿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언젠가 택시를 타고 운전하시는 분에게 제가 전도를 했더니, “저는 예수를 안 믿습니다. 제 신념을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생님 신념이 뭔데요?”라고 질문하니 막상 신념대로 산다면서도 답을 못하시더라고요. 여러분, 본인 자신을 믿고 사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자기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바뀌고, 무슨 얘기만 들어도 흔들리는데 자기 신념을 믿고 산다는 것은 참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 인생의 목적을 압니다. 이사야서 43장 21절은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감사하고, 찬양하도록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땅을 살 때 물질을 따라 살지 말고,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권력을 따라가지 말고, 세상의 명예, 인기를 따라가지 말고,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우리 구세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늘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납니다.

 안디옥은 당시 로마 제국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는데, 항구도시입니다. 무역으로 크게 번성한 도시였고, 또 동서양의 문화가 함께 공존했던 도시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보니까 저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 쾌락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 교회를 세운 성도들은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세상의 모든 도전과 싸워 승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하나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이십니다.”라고 전조를 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거 했던지 별명이 붙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그리스도밖에 모르는 그리스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 설명합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이란 이 헬라어 원어는 ‘크리스티아노스’인데,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에 소유된 사람들이다’, 이 크리스티아노스에서 크리스천이 나왔고,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면 “저 사람들은 예수밖에 몰라. 예수쟁이들이야.”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쟁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예수님만 전하고,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만 닮아가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안디옥 교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교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에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담임목사가 교회의 머리가 아닌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담임목사는 주님의 종이요, 성도님들의 심부름꾼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본인들이 교회의 주인이다’라고 생각하고 권세를 부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미주 지역에 있는 한인교회 중 종종 분열되는 교회들이 있는데, 이유가 바로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인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주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섬기던 미국 워싱턴 지역의 한 교회는 14번을 갈라졌어요. 그 교회로 인해서 교회가 14개나 생겼으니, 어떻게 보면 교회를 많이 세운 공로가 있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받은 상처, 그로 인해 받은 사람들의 비판은 참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끊임없는 분열과 다툼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섬기는 주님의 자녀들이요, 주님의 일꾼들인 것입니다. 교회는 영원히 주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주님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교회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철저히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은 설명합니다.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교회는 언제나 예수님의 오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의 뜻이 앞서가면 안 됩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주님의 뜻만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에서는 두 가지 일 밖에 안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행사가 딱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교회 내 어려운 사람 섬기는 일, 구제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일, 선교하는 일이었습니다. 구제와 선교, 이 두 가지가 교회의 유일한 행사였습니다. 물론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또 교제하고 하는 기본적인 교회의 그 직무가 있었지만는 교회에서 행한 사업은 두 가지였다는 것입니다. 구제 하는 일, 선교 하는 일.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더 힘써 구제해야 될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청년들이 약 20%가 일자리가 없어서 큰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실업인들이 일어나서 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가진 사람들이 베풀어줘야 합니다. 교회가 본을 보여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기 시작하면 사회가 깜짝 놀라고 우리를 존경하게 되고 교회를 칭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사람의 음성을 듣지 말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음성 앞에 결단하고 순종하고 헌신함으로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목회 초년병 시절에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사람의 음성을 듣고 실수한 적이 있었습니다.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 부름을 받고 가서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교회를 건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기도하는데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건축을 시작하는데,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어느 땅이든지 교회를 지을 수가 있어요. 단 조건이 하나가 있습니다. 공청회에서 통과를 하면 교회를 지을 수가 있는데 저희가 주거 지역에 땅을 사서 이 토지 변경을 신청을 해서 건축 허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약 3000평 땅을 샀는데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건축 허가를 보통 6개월 내로 다 내줍니다. 그래서 건축 허가를 받고 공사를 할 수 있게 되는데 2년 안에 건축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 건축을 담당하는 장로님이 저한테 와서 ‘목사님, 지금 교인이 70명인데 1000명을 수용하는 교회를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첫째로, 그만한 재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250명 정도 수용하는 교회를 먼저 짓고 그 다음에 교회가 더 부흥하면 큰 교회를 다시 지으십시다. 250명 정도 수용하는 교회를 지으려면 50만 불이면 됩니다’라고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을 듣고 일리가 있어서 ‘그렇게 합시다!’라고 선 듯 대답을 했습니다. 좀 기도를 해봐야 하는데 무조건 그 자리에서 “네!”하고 나서 250명 들어가도록 교회를 설계를 해가지고 구청에 건축과에 제출했는데 두어 달 있다가 서류를 돌려보냈어요. ‘이런 문제가 있으니 서류를 보완하시오. 지금 건축 허가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서류가 돌려왔어요. 그래서 보완하라는 것을 다 보완해서 서류를 보냈더니 또 다시 두세 달 있다가 또 돌려왔어요. 우리가 서류를 내면 그 담당하는 직원이 검토를 다 한 다음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해가지고 ‘고쳐서 내라’, ‘고쳐서 내라’, 들어가면 두어 달 있다가 또 반려시키고, 또 반려시키고, 또 반려시키고. 여섯 번이 반려가 되면서 교회 건축을 해야 될 2년이 지나가버렸어요. 그래서 건축 허가가 취소가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그 취소되는 동안에 교인이 300명이 넘어버렸어요.

 건축 허가가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얼마나 그때 마음이 참 낙심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기도하는데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 왜 낙심하고 있느냐. 왜 건축 허가가 취소됐는지 아느냐?’ ‘네, 제가 압니다. 주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시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 건축 서류를 만들어서 공청회를 다시 열게 되었어요. 이미 교회를 짓는다는 소문이 나가지고 주변 사람들이 공청회 때 몰려와서 반대를 하면 교회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근방 1마일(1.6km) 안에 있는 모든 집에 ‘oo월 oo일 날,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 건축 공청회를 하는데, 와서 여러분의 의견을 말씀하십시오.’라는 등기 우편을 보냈습니다.

 공청회 날이 다가오는 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다가 타이어에 펑크 나게 해주시고 찬성하는 사람만 오게 해주세요.’ 아, 그런데 정말 공청회 때 사람들이 많이 안 왔어요. 우리 교인들만 왔고요. 딱 한 가정만 왔는데 할아버님 내외분이 오셔서 반대를 하더라고요. 누구냐 하면 교회 건축부지 옆 집 주인인데 우리 땅에서 자기네 쪽으로 물이 자꾸 흘러 넘어 들어온다며 건축을 반대합니다. 그런데 건축 공청회를 담당한 판사가 ‘내가 그 앞을 30년을 왔다 갔다 하는데, 물은 예전부터 흘러가던 것인데, 왜 이제 시비를 거느냐”며 교회 짓는 거에 허가를 하고, 네 명의 건축 위원들이 허가를 해서 공청회 통과를 하고, 1천명이 들어가는 건물의 서류를 제출하고, 그러고 나서 건축 허가를 한 달도 안 되서 받고, 1년 반 후에 새 성전을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용기 목사님 모시고 입당예배를 드렸는데요, 이날 1000명의 성도를 모시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마 250명 수용하는 교회를 지었으면 짓기도 전에 성도가 넘쳐서 짓다가 다시 또 증축해야 되었을 상황이었는데, 하나님이 막으셔서 물론 그 구청, 담당하는 건축과, 담당하는 사람이 몹시 괘씸했지만 그 사람을 통해서 막으시고 건축을 허락해주셔서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전을 다 짓고 헌당할 수 있게 되었는데, 토지와 교회 건축비 합쳐서 270만 불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50만 불도 없어가지고 쩔쩔맸는데 하나님이 270만 불 되는 모든 경비를 우리가 기도하면서 은행 빚 단 1원도 지지 아니하고 헌금으로 지을 수 있게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 앞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3. 기도하는 교회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절은 말씀합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때 저들이 즉각적으로 순종을 했는데 그들이 먼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기도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행사를 하든지 간에, 어떠한 계획을 세우든지 간에 기도로 먼저 준비하고 그 일을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우리가 아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모든 일이 아름답게 이뤄지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고 그 뜻에 순종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절대로 기도의 끈을 놓지 않게 되기 바랍니다. 모든 다툼과 분열은 기도 부재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 다툼이 있고 싸움이 있는 교회를 가만히 보면 싸우느라 기도할 시간이 없어요.

 통성기도 하고 싸우는 교회 봤습니까? 기도하면 성령께서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말씀하시지, 싸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마귀하고 싸워야지, 왜 믿는 사람들하고 싸웁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기도에 힘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사무엘상 12장 23절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야훼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일생 다가도록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로 출발해야 됩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기도하고, 사업을 새로 시작할 때도 기도하고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나러 가는데 사업 상 그 일로 만나러 간다면, 하나님 오늘 만남이 하나님 은혜 가운데 좋은 만남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를 하고 기도로 준비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축복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은혜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것은 저들이 선교를 할 때 최선의 것을 드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지도자 바나바와 사도 바울을 선교사로 내놓았습니다. 선교는 최선의 것을 가지고 해야지, “교역자 중에 저 사람 일하는 것이 별로인데 선교나 보내지”라면 큰일 날 일입니다. 교역자 중에 최고를 선교사로 보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큰 역사를 이루실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보낸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는 최선의 것을 드려야 됩니다. 최선의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찬양을 해도 최선을 다해 찬양을 하고, 여러분 봉사를 해도 최선을 다해 봉사를 하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봉사를 하고, 예배를 드려도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선의 것을 드려야 하나님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기들의 일, 자기들의 어떠한 유익을 위한 것은 최선을 다하면서 주님의 일,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사로써 끝까지 주님을 섬기다가 순교한 박관준 장로님, 평북 연변에서 태어났는데 청일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고 나서, 그는 절망하고 매일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 선교사님의 전도를 받았는데 어느 날 이와 같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절벽은 위태로울 뿐이니 혈벽(血壁)에 서라!” 술 먹고 이렇게 방탕한 절벽에 떨어지는 인생을 살지 말고 예수의 십자가 보혈의 벽에 서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 믿고 새사람 되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선교하기 위해서 의사가 되어 병원을 세우고, 그 병원에서 들어온 수입을 가지고 학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선한 일에 모든 것을 다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산간벽지를 다니면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병을 다 고쳐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눈을 치우다가 넘어져서 갈비뼈 두 대가 부러져서 옆에 툭 튀어나왔습니다. 의사지만 당장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어서 절망하고 있는데, 아! 꿈에 손이 나타나서 안수하는 꿈을 꿨습니다. ‘아, 기도하라는 주님의 뜻인가 보다.’ 일어나서 간절히 안수하며 기도할 때 그 병이 감쪽같이 나아 버렸어요. 갈비뼈가 들어가서 정상이 되어서 신유의 기적을 체험하고 난 후, 더욱 더 열심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신사참배를 하는 일이 생겨나니까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다!’라며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일본까지 가서 전단지를 돌리면서 “신사참배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외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가서 6년 간 옥고를 치르다가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고 결국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들에게 디모데후서 4장 7절, 8절과 이사야 11장 10절로 16절 말씀을 읽게 한 다음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방금 읽은 디모데후서 4장의 말씀처럼 내가 해야 할 전도의 사명을 마쳤으므로 주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거요. 우리나라는 이사야서의 말씀과 같이 반드시 일제의 쇠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게 될 것이오. 이제 다섯 달만 참고 기다리면 돼요. 여러분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훗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요.”

 그가 남긴 유고 시에 그의 신앙의 고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은 한 번 죽을 때가 있나니/ 어찌 죽을 때 죽지 않으리/ 그대 홀로 죽을 때 죽으면/ 길이 죽어도 죽지 않으리/ 때가 와 죽을 때 죽지 않으면/ 살아서 즐김이 죽음만 같지 못하리라/ 예수 나 위해 죽으셨으니/ 나도 예수 위해 죽으리라“

 여러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 한평생 우리 주님을 잘 섬겨서 주님께 인정받고 사랑받고 칭찬받고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고 성령의 음성 앞에 결단하고 순종하며 살기 원합니다. 기도의 일꾼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주님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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