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목사(순복음야오교회)


꿈을 잃어버린 일본에 ‘예수 꿈’ 심어요
지난해 개척 소명 받고 야오 지역에 순복음교회 개척

 

성경의 인물 가운데 요셉은 많은 크리스천에게 사랑을 받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저 역시 누군가 성경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요셉이라고 대답합니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꿋꿋이 믿음의 절개를 지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요셉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30년 전 제 가슴에 일본을 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보지도 않은 일본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10년간 인생 공부를, 그리고 신학교와 목회를 포함해서 또 10년을 일본 선교의 꿈을 꾸게 하셨고 마침내 20년 후 저를 일본 땅에서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일본은 아프리카나 동남아 지역의 선교 환경과는 매우 다릅니다. 척박한 기후와 질병, 가난을 가슴에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선교사들의 간증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사회제도도 의료보험도 잘 돼 있는 선진국입니다.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 땅에는 한 가지 없는 게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사역하면서 사람들이 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들에게서 하나님 없는 공허함을 보았습니다. 나라는 선진국이지만 지독한 영혼의 가난으로 고통하고 신음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2008년 12월 저는 선교사 파송을 받고 일본에 왔습니다. 2009년 1월 13일 순복음오사카교회에 부교역자로 7년간 사역한 뒤에는 주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도쿄 인근에 위치한 순복음지바교회에서 지역 복음화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순복음일본총회에 참석해 이영훈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개척의 레마를 받았습니다. 당시 말씀은 여호수아 3장 14∼17절을 본문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요단강 도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을 가지고 물을 밟을 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나타난 그 말씀에서 ‘네가 오늘 믿음을 가지고 그 땅을 밟으면 기적을 보여 주리라’는 주의 음성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처음에는 개척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만 이내 이것이 주님의 뜻임을 깨닫고 ‘일본 일천만 구령’을 위한 또 하나의 교회 개척에 감사했습니다. 순복음오사카교회 담임인 정대원 목사님과 비전에 대해 논의하다가 오사카의 ‘야오’라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야오는 오사카 시 동남부에 위치한 특례 도시입니다. 오사카 부에 위치하지만 오사카 시와는 환경이 다른 이곳에 ‘순복음의 신앙, 절대긍정·절대믿음의 깃발’을 꽂기 위해서는 상당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건물 세를 얻어야 했는데 일본인들이 한국인 그것도 목회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아 교회 건물로 세를 줄지 안 줄지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와 아내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중에 주인의 아들인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는 종의 기도가 담긴 창세기 24장 12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훼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나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일천만 구령을 위해 일본에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려고 합니다. 원하건대 야오 땅에 교회가 순조롭게 세워지도록 역사하소서.’ 때마침 오사카지방회 소속인 한 목회자가 개척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후원금을 보내왔고 마침내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기적의 역사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할렐루야!

 ‘순복음야오교회’가 세워진 야오는 인구 약 27만 명이 사는 조용한 지역입니다. 야오는 산을 사이에 두고 나라 현과 맞닿아 있으며 자위대의 헬기나 소형 비행기를 위한 비행장이 있습니다.
 개척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교회 간판을 걸기도 전에 한 한국 사람이 우리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시집온 지 20년이 넘었다는 그는 지인의 소개로 전도를 받고 잠시 순복음오사카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완강한 남편의 반대로 성경책을 찢기고 괴롭힘을 당해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못해 혼자 눈물로 야오에 순복음교회가 세워지기만을 기도해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를 세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그 한인은 우리 교회 1호 성도가 돼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남편 몰래 교회를 다니지만 가족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올해 7월에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어 성령 침례도 받더니 놀라운 신앙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남편 몰래 평일에도 틈만 나면 교회에 와서 열심히 기도하는 그 성도를 볼 때면 왜 하나님이 저를 야오에 보내시고 개척하게 하셨는지 감사 또 감사뿐입니다.

 야오 지역은 아직 주님을 모르는 영혼이 많습니다. 꿈을 잃은 사람, 꿈을 갖지 못한 사람, 무엇이 꿈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저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순복음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절대긍정과 절대감사의 신앙을 야오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습니다. 순복음의 신앙으로 무장해 일본에서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를 인도하는 꿈이 생겼습니다. 이 꿈을 위해 30년 전 하나님이 저에게 일본 선교의 꿈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시작은 미약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도 원대한 꿈을 향해 ‘일본 일천만 구령’을 외치며 나아갑니다.


성령님과 동행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시대19-2018년 6~11월



전인구원 사회구원 소명… 희망의 70주년 향해 힘차게 전진
10년 만에 이룬 기하성 통합 한국 교회 하나 됨의 신호탄
예루살렘 방문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설교 
다양한 국내외 성회 인도 세계복음화의 활력 불어넣어
복음평화통일과 한미우호협력에 헌신하며 세계종교지도자상 수상 

 교회 창립 6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우리 교회는 ‘새로운 도약, 희망의 70년을 향하여’를 새로운 표어로 정하고 올해를 ‘변화’의 원년으로 삼아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새 비전을 품은 우리 교회는 열정을 회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는 데 한 발 더 나아가게 됐다. 이영훈 목사는 성령 충만과 열정의 회복을 강조하며 순복음의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영훈 목사는 미국 뉴욕 플러싱 대동연회장에서 11월 1일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 연합회’(Asian American Congress) 주최 올해의 인물상 시상식에서 첫 ‘세계종교지도자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영훈 목사는 한·미기독교지도자기도회를 꾸준히 개최하며 한국과 미국의 우호 증진과 상호협력에 기여하고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한 이영훈 목사는 미국 뉴욕주 플러싱 뉴욕순복음연합교회에서 축복성회(10월 31일)를 인도하며 ‘네 장막 터를 넓히라’(사 54:1∼3)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올해 이영훈 목사는 이스라엘을 두 차례 방문해 예루살렘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지난 6월 5∼8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이스라엘 독립 70주년 기념 예루살렘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했다. 이어 11월 4∼10일 우리 교회 성도 270명과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나서 성지를 순례하는 중에도 ‘한국·이스라엘 친선기도회’를 갖고 한국과 이스라엘의 평화와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했다.

 올해 또 주목해야 할 일은 ‘이영훈 목사 초청 코트디부아르 대성회’(8월 15∼18일)로 이 대성회에는 연인원 30만 명이 참석해 이영훈 목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코트디부아르 수도 야무수크로에서 코트디부아르하나님의성회 주최로 개최된 이 성회에서 이영훈 목사는 ‘안디옥 교회의 신앙’을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서아프리카 부흥에 대한 비전을 선포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조용기 목사 이후 세계적인 복음전도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이영훈 목사는 캐나다 캘거리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오순절협회(PWF) 자문위원 회의(6월 26∼27일)에도 참석해 내년에 열릴 세계오순절대회를 준비했고 뉴욕 프라미스 교회에서 열린 ‘2018 할렐루야 대뉴욕복음화대성회’(7월 9∼11일) 주강사로 말씀을 전했다. 미국 일정 중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지도자들과 교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지도자기도회’를 인도했다.  


 이영훈 목사는 또 8월 20∼22일 인도네시아 발리 락미니스트리와 더크리스탈베이리조트에서 열린 아시아리더스서밋 2018 발리대회(ALS 2018 발리)에 참석해 대회를 주관했다. 이영훈 목사는 “그동안 서양의 교회들이 희생과 열정으로 이끌어 간 세계선교를 이제는 아시아 교회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전 세계를 선교하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며 아시아 기독 리더들에게 아시아 선교의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이영훈 목사는 21일 락미니스트리에서 성회를 갖고 힌두교도가 인구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발리섬에 성령의 역사를 일으켰다. 일본 일천만 구령을 위한 일본 선교도 활발했다. 이영훈 목사는 일본 순복음동경교회 삿포로 지성전 창립예배(9월 3일)에 참석하고 후쿠오카 축복대성회(10월 8일)를 인도했다. 순복음후쿠오카교회에서 열린 성회는 사단법인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임회원을 비롯 400여 명이 참석해 일본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 이 밖에도 일본 도쿄에서 ‘교회 성장과 리더십’을 주제로 초교파 교역자 세미나(10월 22∼23일)를 개최해 한일 교회 선교협력과 교회 성장에 대해 강연했다. 이영훈 목사는 국내에서도 전 세계 리더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다양한 연합사역을 펼쳤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주최한 ‘2018 세계선교대회 및 7차 선교전략회의’(NCOWE VII, 6월 18∼21일)가 부산 해운대구 수영로교회에서 열렸고 전 세계 1400여 명의 글로벌 리더들이 모인 이 행사에서 이영훈 목사는 ‘성령과 선교’(행 1:4∼8)라는 제목으로 성회를 인도했다.  

 그 밖에도 이영훈 목사는 2020 프랭클린 그레이엄 페스티벌 행사의 대회장을 맡아 준비하고 있다. 7월 2일에는 CCMM빌딩에서 열린 ‘2020 프랭클린 그레이엄 페스티벌 서울·경기지역 발대식’에 참석했다.
 광림교회에서 열린 세계감리교협의회(WMC) 대의원회(7월 14일)에도 참석해 인사말을 전했다.
 또 한국 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민족 복음화와 복음 통일을 위한 행보를 이어 갔다.

 11월 20일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이하 기하성) 여의도순복음총회(총회장 이영훈 목사)와 서대문총회(총회장 정동균 목사)가 두 총회로 양분된 지 10년 만에 통합하는 역사적인 결실을 맺었다. 우리 교회 대성전에서 진행된 기하성 통합 인준 감사예배는 한국 교회 대통합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기하성 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는 “기하성 통합을 통해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에 대부흥의 불길을 일으키고 남북통일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 진정한 부흥은 하나 됨으로 다가온다”며 통합을 이룬 기하성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기하성은 앞서 10월 29∼30일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에서 기하성연합회 워크숍을 갖고 양 교단의 하나 됨을 위한 기도회를 갖기도 했다.

 이영훈 목사는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 자격으로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10월 4∼6일) 참석차 평양을 방문해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와 남북 종교계 대표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한반도 평화와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한 행보를 펼쳤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신사참배 결의 80년 회개 및 3.1운동 100주년 준비를 위한 한국교회 일천만 기도대성회(10월 28일)에서도 이영훈 목사는 대표대회장으로서 대회사를 전하며 한국 교회 회개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영훈 목사는 제7회 영남지역연합회 목회자 및 사모 세미나(6월 18일), 제28회 6.25상기 기독장병구국성회(6월 21∼23일), 제33회 전국직장인 및 일반성도 초청 금식기도대성회(7월 17∼20일), 제44회 교회창립 60주년 초교파여성금식기도대성회(7월 24∼27일), 제16회 장로수련회(9월 6∼7일), 제24회 순복음실업인수련대회(8월 30일∼9월 1일)에서 강사로 말씀을 전했다.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은 2018년 하반기에 맺은 우리 교회의 열매도 풍성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순복음 비전센터’가 완공(8월 26일)됐고, 교회창립 60년사 ‘성령님과 함께한 60년-고난과 영광의 여정’ 출판기념회(9월 5일)가 열렸다. 또한 우리 교회 목표인 교회 개척 500개를 초과 달성해 대성전에서 개척 500교회 달성 기념 감사예배(11월 21일)가 드려졌다.
 영혼 구원과 사회 구원, 복음 통일을 위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와 세계 복음화를 위한 꿈을 가지고 희망의 70년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끝>.

글 이미나 / 사진 김용두 기자


성전 꽃꽃이-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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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 ― 추방된 아브라함의 첩

// 1. 인적 사항
① 아브라함의 첩. ② 사라의 여종. ③ 이스마엘의 어머니. ④ '하갈'은 '도망하다'의 의미.
2. 생애 중요사건
1. 아브라함의 첩 : ① 잉태하지 못하는 사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의 첩이됨(창16:1-3). ② 잉태 함을 알고 사라를 멸시함(창16:4). ③ 사라의 학대를 받음(창16:6).
2. 광야 속의 하갈 : ① 사라를 피하여 광야로 도망감(창16:7). ② 천사의 메시지(창16:7-.12)= 돌아가 여주인에게 복종할 것을 명함. 잉태한 아들 이스마엘을 통하여 큰 민족이 이루어 질 것을 예언함. 사라의 여종으로 돌아감. 아브라함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음(찬16;16).
3. 추방당한 하갈 : ① 이삭의 젖떼는 날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함(창 21:8,10). ② 하갈과 이스마엘이 추방당함(창 21:14). ③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함= 물이 따 떨어짐(창 21:15). 자식을 위하여 방성대곡함(창 21:16). ④ 하나님의 구원= 하갈의 눈을 열어 샘을 보게 함(창 21:19).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함께 계심(창 21:20).
3. 주요 업적
1. 매우 진실된 신앙을 지님 : ① 광야로 도망쳤을 때 자신을 감찰하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 분의 사랑을 인정함. ②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함.
2. 하갈은 이스마엘의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며 하나님을 울부짖음.
3. 결코 남을 원망하지 않음 : ① 그녀에게 화를 가져다 준 사라에게 비난하지 않음. ② 극심 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항하여 입을 열지 않음.
4. 추방당한 이후 과거에 교만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게획을 발견할 수 있었음.
4. 단점
1. 교만 : ①아브라함의 첩이 된 하갈은 자만심에 빠지게 됨. ②잉태치 못하는 사라를 멸시함.
2. 성급함 : ①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도망함. ② 이스마엘로 하여금 큰 민족 을 이루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함.
5. 교훈
1. 하갈은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얻으려는 임기 응변책의 상징이다. 아브라함 시대에 첩을 얻는 것이 관습적인 일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다. 임기응변적 사건의 결과, 이스마엘과 같은 자손을 보지 않았는가? 성급히 약속을 이루려다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기보다는 잠잠히 약속의 때를 기다림이 성도의 태도이다.
2.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의 말에 따라 그녀의 여주인 사라 에게 복종하였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서는 즐길 만한 것이 못되지만 쓴 잔을 마시는 것도 때로는 주님의 뜻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쓴 잔을 마시는 것도 때로는 주님의 뜻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쓴잔을 통해서 장차 훌륭한 보답을 받게 될 것을 믿기만 한다면 시련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다.
3.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창16:13)이라는 하갈의 독백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우리가 행해야 할 중대한 의무를 환기시켜 준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는 느낌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며, 덕을 행하도록 격려해 주며, 시련을 견디도록 강하게 만들어 준다.
4. 하갈은 사라의 종이었으나 자신의 주인을 지배하기를 원했다.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저버리고 자만하게 될 때 불행이 찾아온다.
5. 하나님은 광야에서 하갈의 울부짖음을 들으셨고 그녀의 아들을 돌봐 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교만을 들어주실 것이다.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16> 역사신학 ⑦ - 한국교회사 3

 참된 신앙을 갖는 데 신학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학이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서술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란 (바른) 신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여 재수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연말까지 20회에 걸쳐 신학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집필순서는 ①조직신학(3회), ②구약신학(3회), ③신약신학(3회), ④역사신학(7회), ⑤실천신학(3회), ⑥선교학(1회) 순이다.<편집자 주>


1928년, 메리 럼시 우리나라에 오순절 신앙 전파
1953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창립
1958년, 조용기·최자실 전도사 교회 개척… 세계최대 교회 성장


 3·1운동(1919)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자 우리 민족은 깊은 좌절과 무기력에 빠졌고 한국교회 역시 패배주의로 인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에 길선주 김익두 이용도와 같은 특출난 부흥사들이 등장하여 한국교회와 민족에게 암울한 현실을 이겨낼 힘과 희망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무렵 한국교회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강조하는 오순절 신앙을 접하게 된다. 한국에 전파된 오순절 신앙은 한국교회 내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러한 오순절 신앙의 대표 주자이다. 이번 주에는 한국의 기독교를 성령 충만한 기독교로 변화시켜온 한국 오순절운동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오순절 신앙의 전래

 우리나라에 최초로 오순절 신앙을 전파한 사람은 미국 출신의 메리 럼시 선교사다. 독실한 감리교인이었던 럼시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아주사거리부흥회(1906∼1909)에 참석하여 오순절 성령침례를 경험한 후 한국 선교를 열망하면서 뉴욕 로체스터에 있는 오순절 계통의 로체스터성경훈련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오랜 기도와 기다림 끝에 럼시 선교사는 마침내 1928년 봄 그가 그토록 열망하던 한국 땅을 밟는다. 럼시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한 이후 여러 오순절 선교사들도 차례로 한국에 들어왔다. 미국 출신의 오순절 선교사인 글래디스 파슨즈와 엘프레다 오프스테드는 1930년에 영국 출신의 오순절 선교사인 엘시 메레디스와 릴리 베시는 1932년에 서울에 도착하여 럼시 선교사와 함께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오순절 선교사들이 선교 사역을 시작하면서 한국에 오순절교회가 차례차례 설립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세워진 오순절교회는 서빙고오순절교회였다. 1928년 한국에 입국하여 오순절 신앙을 전하던 럼시 선교사는 1933년 봄 허홍과 함께 서울 변두리 지역인 서빙고에 교회를 세운다. 교회 설립 초기에는 주민들의 핍박이 거셌지만 점차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훈련받은 오순절 사역자가 필요했던 럼시는 당시 일본 나고야 주재 미국 하나님의성회 선교사인 존 주르겐센 밑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박성산을 담임 교역자로 청빙했고 그 결과 서빙고교회는 장년 70명 주일 학생 200여 명에 이르는 알찬 교회로 성장하게 된다. 한편 파슨즈와 오프스테드 선교사도 수창동교회를 개척한 후 존 주르겐센 밑에서 박성산과 함께 신학을 공부하던 배부근을 담임 교역자로 초청한다. 오순절 선교사들은 계속해서 한국인 오순절 지도자들과 힘을 합쳐 서울 지역에 추가적으로 4개의 오순절교회를 설립한다.

 하지만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예비작업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한국 주재 기독교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등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기독교 탄압 정책하에서 럼시, 메레디스, 베시 선교사는 자국의 선교사 대피 명령에 따라 1940년 모두 한국 땅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의 피와 땀으로 설립한 오순절교회들도 차례차례 문을 닫아야만 했다.        

 한국 초기 오순절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한국에 입국하여 활동한 오순절 선교사들이 모두 여성이었고 오순절 교단이나 선교 단체에서 정식으로 파송한 선교사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비량 선교사라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오순절운동의 토대를 놓을 허홍 박성산 배부근 같은 초기 한국인 오순절 지도자들을 발굴하고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한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

 6.25전쟁 발발 직후 한국에 입국한 미국 하나님의성회 소속의 종군 목사 엘로드는 한국 내 오순절교회의 현황을 파악한 후 1951년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 하나님의성회 본부에 한국 오순절교회의 현황을 보고한다. 이 무렵 박성산 목사도 미국 하나님의성회 본부에 한국 오순절교회가 처한 어려움을 알리면서 미국 하나님의성회가 조속히 한국 선교를 시작해 줄 것을 호소한다.

  이러한 엘로드와 박성산의 노력의 결과로 1952년 여름 미국 하나님의성회 동양 선교부장인 오스굿 목사가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오순절교회의 현황을 직접 조사한다. 조사를 마친 후 오스굿 목사는 미국 하나님의성회에 한국 선교를 시작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이에 미국 하나님의성회는 당시 일본 주재 선교사인 체스넛을 1952년 12월에 한국 선교사로 파견한다.  

  체스넛의 내한으로 교단 결성을 위한 움직임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인화력이 뛰어난 박성산 목사가 순천 부산 거제 광주 등지를 순회하며 오순절교회와 교인들을 모으는 일에 헌신했다. 그의 헌신의 결과로 1953년 4월 8일 허홍 목사가 담임하던 서울 용산구 한강로의 남부교회에서 체스넛 박성산 허홍 배부근 윤성덕 곽봉조 박귀임과 그 외 4인의 참관자를 포함해 총 11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가운데 교단이 정식으로 창립된다. 교단의 명칭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로 결정됐고 체스넛 목사가 초대 총회장으로 허홍 목사가 서기 겸 재무로 선출됐다. 그리고 1953년 5월 허홍 목사가 담임하던 남부교회에 순복음신학교가 설립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설립과 발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가 창립된 지 5년 후인 1958년 5월 18일 순복음신학교 졸업생인 조용기·최자실 당시 전도사는 서울 변두리인 대조동에 작은 천막 교회를 개척한다. 조용기 전도사는 6.25전쟁 이후 질병과 굶주림 범죄와 폭력으로 소망을 잃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축복과 병고침의 전인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신유 등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5명으로 시작한 천막 교회는 개척 3년만에 재적 1000명 출석 600명의 교회로 성장한다.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는 교회를 대조동에서 서대문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1961년 10월 15일 건축 중이던 ‘순복음부흥회관’에서 개척예배를 드린다. 1964년 성도 수가 3000명에 이르렀을 때 조용기 목사는 출애굽기 18장 18절의 말씀을 근거로 구역 조직을 만든다. 그가 창안한 구역 조직은 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고 그 결과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3년 9월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교회를 옮긴다.

 교회 이전 후에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성장을 계속 이어갔고 1979년에는 10만 성도 1980년에는 20만 성도 1983년에는 30만 성도 1984년에는 40만 성도 1985년에는 50만 성도 1990년에는 60만 성도 1992년에는 70만 성도로 성장했다. 2010년 20개 제자교회의 독립으로 인해 88만 명이던 성도 수가 불가피하게 45만 명으로 줄어들었으나 제2대 이영훈 위임목사의 영적 지도력 아래 교세는 즉각 다시 증가세를 보여 교회 창립 60주년인 2018년 현재 오순절 신앙으로 무장한 56만여 명의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창립 70주년의 꿈과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령운동은 외적 성장과 더불어 내적 성숙을 지향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회적 차원에서 실천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2008년 이영훈 위임목사의 취임 이후 지금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통일을 준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힘써왔다. 교회 예산의 3분의 1을 구제와 선교에 투입하면서 강력한 성령운동과 사회적 구원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과 세계에서 오순절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국제신학연구원>


장애인대교구 주최 ‘사랑의 김장담그기’ 및 전달식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집니다.”
 23일 사랑의 김장담그기 현장인 베다니홀을 찾은 이영훈 목사는 이같이 사랑 나눔의 의미를 강조했다. 추수감사주일 이후 한 주간 진행된 김장담그기 행사에는 대교구의 자원봉사자들 500여 명이 참여해 김장김치 1만 포기를 사랑으로 버무려 완성했다. 이날 현장에는 장로회장 박경표 장로와 총무 전용선 장로, 장애인대교구장 김진수 목사, 장애인대교구 지구장 최석태 장로 등이 함께했다.  

 이영훈 목사는 “우리가 만든 김장김치에 예수님의 사랑도 함께 전달되어 장애인 성도들이 올 겨울을 든든하고 훈훈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매년 봉사에 나서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날 담근 김치는 24일 전달식을 갖고 장애인 성도 1300가정에 배달됐다. 


카파도키아(Cappadocia)신이 내린 절경? (4)










카파도키아(Cappadocia)신이 내린 절경? (3)







카파도키아(Cappadocia)신이 내린 절경? (2)

 


 

 





카파도키아 (옛지명)  [Cappadocia]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 지명.

타우루스 산맥 북쪽의 고원에 있었던 카파도키아는 로마의 동맹국이자 속국이며

나중에는 로마의 속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카파도키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6세기의 문헌이다.

그당시 카파도키아에서는 봉건세력이 페르시아 사트라프(총독)의 지배를 받았고,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지역은 로마에 점령당할 때까지 페르시아의 성격을 유지했다.

 

 

 

 카파도키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신이 만든 예술의 경지라고 극찬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곳은 터키 최고의 관광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들이드넓은 계곡지대에서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수백만년전 활화산이었던 예르지예스산(3917m)에서 용암이 분출 되면서이곳의 지형이 형성 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풍화, 침식 작용을 일으켜부드럽고 쉽게 깎이는 응회암지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이러한 바위를 깎고 동굴을  만들어 주거공간을 마련하여 생활하였습니다.

 

 

 

이러한 동굴 주거공간은 많은 잇점을 가지고 있었는데,우선 그리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쉽게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데 첫번째 잇점이 있었고,여름에는 더위로부터,

그리고 겨울에는 한파로부터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적들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고입구가 높은 곳에 있어서 적들이 쉽게 침입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괴레메 (Goreme)

카파도키아 관광의 중심으로이 일대가 전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카파도키아를 다 본듯한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합니다.

또한 카파도키아의 인근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매우 용이하여카파도키아 투어의 시발점이 되는데,

우치사르 정도는 가뿐히 걸어 갈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 야외 박물관 (Goreme Open-air Museum)

괴레메 벨리중 가장 인기있는 곳으로거주가들이 바위를 깍아 만든 교회에는11~12세기 경 의 프레스코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식당, 무덤 등 볼 것이 많은 곳입니다.

 

박물관을 둘러보거나프레스코화가 아름다운 수도원이나 박물관 주변을 걸으며하루를 보내는 건 환상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수도원들 중에는11세기 초에 지어진 6층 규모의 수도원(Maidens Monastery)을 시작으로성 바실 교회(St. Basil church),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사과 교회(Apple church),성 바바라 교회(St. Barbara church),뱀 교회(Snake church),샌들교회(Sandle church) 등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카파도키아(Cappadocia) (1)

 

 신이 내린 절경?


카파도키아는 터키 중앙의 고원지대를 말한다.

 

기원전 6세기께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때에 생긴 작은 왕국의 이름이기도 하다.

말을 키우던 '말의 땅'이란 뜻을 갖고 있다. 카파도키아의 유명세는 경이로운 자연에서 나온다.

남근 모양의 바위기둥 계곡과 거대한 지하도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는 자연의 경이와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한데 어우러져 빚은 걸작이 숨겨져 있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고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네브쉐히르 위르굽, 괴뢰메, 우치사르 등 남한의 4분의1 크기(2만5000㎢)의 땅이 우후죽순 격으로 솟은 버섯바위들로 채워져 있다.

 

 

이 기묘한 바위들은 화산과 비바람에 의해 형성됐다.

카파도키아는 300만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화산재가 고원지대에 두툼하게 쌓여 응회암층을 형성했다. 이 응회암층은 단단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지하수와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무른 부위는 깎여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살아남아 지금같은 버섯이나 죽순모양의 기암군이 형성됐다.

 

 

파샤방[ 세쌍둥이 버섯바위 

그러나 인간은 자연이 연출한 신기한 형상에 한 가지 기이를 더 보탰다.

버섯 모양의 바위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살았던 것이다. 이곳의 버섯바위들은 마치 골다공증에 걸린 환자의 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 구멍들이 모두 인간이 거주했던 흔적이다. 이런 암굴집은 기원전부터 유래가 시작되어 1950년대까지도 사람들이 이 버섯 모양의 집에서 살았다. 카파도키아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의 자연과 문화 복합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카파도키아 동굴유적지 벽화

카파도키아 사람들이 암굴을 파고 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자연적인 요건을 따져보면 바위가 무르다는 것이 큰 이유다. 이곳의 바위는 화산재가 쌓여 만든 응회암이라 쉽게 굴을 팔 수 가 있다. 또 황량한 고원지대라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나무를 구할 수 없는 것도 한몫을 했다

 

 

 괴뢰메와 카파도키아는 본래 같은 지역이다.

터키인들은 이 일대를 통틀어 괴뢰메라 부르는데, 옛날 이곳에 카파도키아라는 왕국이 있었기 때문에 카파도키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아나톨리아 중부의 황량한 화산 지대로 선사시대 때부터 화산 활동이 활발하여 화산재가 많이 퇴적되었다. 그리고 그 때 형성된 응회암층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버섯이나 죽순 모양의 기암이 되었다.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예전의 소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서

 오늘날 터키의 카파도캬(Kapadokya)에 해당된다.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실크 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 행렬이

 근대까지 이어졌다.

 

 

 

 

 

이 석굴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는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다.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보존 상태가 좋을뿐더러 내부의 장식이 아름답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카파도키아 (옛지명)  [Cappadocia]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 지명.

타우루스 산맥 북쪽의 고원에 있었던 카파도키아는 로마의 동맹국이자 속국이며

나중에는 로마의 속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카파도키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6세기의 문헌이다.

그당시 카파도키아에서는 봉건세력이 페르시아 사트라프(총독)의 지배를 받았고,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지역은 로마에 점령당할 때까지 페르시아의 성격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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