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재미, 선물이 팡팡 교회학교의 날 개최





“2017년 ‘다시 함께!’ 하나님 앞에 돌려 드립니다”

 어린이날을 맞아 우리 교회 교회학교 주최로 교회학교의 날 행사가 열렸다. 5일 대성전 및 부속성전 주변을 비롯한 베다니 광장에서는 풍성한 먹거리와 놀거리들이 가득했다. ‘다시 함께!(Together Again)’를 주제로 열린 행사는 예배로 시작됐다. 예배의 사회는 교회학교장 황윤성 목사가 대표기도는 교육분과위원장 이영운 장로가 맡았다. 이어 이영훈 목사가 영상을 통해 축하와 축복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영훈 목사는“가족이 하나가 되는 귀한 시간되기를 원한다. 천국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앞으로도 하나님께 귀한 쓰임 받기를 축복한다”고 전했다. 이날 설교를 맡은 김상길 목사가 ‘제일 좋은 친구’(요 15:13∼14)를 주제로 말씀을 선포했다. 김 목사는 “친구 되시는 예수님은 여러분이 힘든 순간에 힘이 되어 주신다. 또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고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말씀과 성령을 보내 주셨다. 이처럼 우리에게 좋은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전도함으로 자랑해야 한다”고 했다.

 예배 후 아이들은 예배 전 받은 백팩을 등에 짊어지고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백팩 안에는 당일 안내문과 먹거리 쿠폰, 경품추첨권이 들어있었다. 바울성전에서 가족뮤직컬 ‘히즈쇼’ 공연을 하는 동안 베다니광장과 십자가 탑에서는 페이스페인팅, 캘리그라피, 전통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특히 이날 가장 인기 있었던 에어바운스에 모인 아이들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신나게 뛰며 놀았다.

 아이들이 프로그램들을 즐기며 돌아다니는 동안 학부모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베다니 광장과 각 부서에는 쉼터가 마련됐고 커피도 제공됐다. 만일의 응급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미아보호소와 의료실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한편 이번 행사에는 난치병 학생을 후원하기 위한 바자회와 굿피플의 기아체험으로 아이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성전 꽃곷이-45

            

 

 

 

 

 

 

 

 

 

 

 

 

 

 

 

 

믿음의 선배들이 많이 계시지만..

감히 제가 저의 경험으로 도움을 드리고자 한말씀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 꽂은 건 받으시고 못 꽂은 건 안 받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쟎아여..

오직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니 항상 기도하고 겸손한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실제 꽃꽂이를 잘 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고

사람도 붙여 주시고

물질도 허락해 주신답니다..

마음에 주님으로 꽉 차 있을 때의 꽃꽂이와

내능력으로 별로 주님께 의지하지 않거나

마음이 정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꽂은 꽃꽂이가 너무나도 틀린 것을 저는 많이 경헙합니다..

한송이 한송이 꽂을 때 그 의미를 생각하고

못난 잎이나 가시를 제거하면서 나의 잘못된 부분들도 함께 제거하고..교만,욕심,미움,게으름 등등..

그렇게 이쁘게 다듬어져서 하나님께 받쳐지는..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꽃과 더불어 나자신 또는 성도들을 대표)이 되는 것이..

성전 꽃꽂이를 하는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안에서 우린 모두 한 형제이니

서로 도와가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더불어 축복도 마니마니 받아 보아요..

할렐루야~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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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울왕과 다윗 1부                        

                 

편협한 마음의 소유자 사울의 살해도발에서 벗어나

홀로 광야에서  생활하는 다윗의 이야기



예루살렘 성지

 

기원전 1000년경 다윗 왕이 여부스인들로부터 이 지역을 빼앗았다. 이곳은 수원이 풍부하고 유다교, 예루살렘, 벤자민 3파의 종교적 중심지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과거의 영광과 미래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곳인가 하면, 모슬렘교도들에게는 예언자 모하메트가 승천했다고 믿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로 4,000년 역사를 가진 예루살렘은 그러나 어느 도시보다도 테러와 전쟁을 많이 겪었다. 현재 약 33(유다인 255,000, 아랍인 75,000)명이 살고 있으며 주요 묘지는 성곽 안에 있다. 유다교, 기독교, 회교의 성지로 구시가의 성벽에 둘러 싸여 있다. 고적으로는 겟세마니 동산, 성모성당, 통곡의 벽이 있고, 신시가는 신 헤브라이 같은 문화 기관이 있다
.
예루살렘 성벽은 여량시대의 건축양식이 집약되어 있으며 1542년 슬레이만 지배 아래 터키에 의해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형태로 신축되었다. 성벽 둘레가 25마일이고, 평균 높이가 40피트, 벽에는 34개의 탑과 8개의 성벽 문이 있다. 그리스도는 베타니아 동산에서 오시어 예루살렘을 돌아보신 후 멸망할 것을 영감으로 아시고 우셨는데 그곳이 통곡의 벽이다.

 

1. 통곡의 벽 (The Wailing Wall)

 

유다인은 이곳을 신앙의 원천이라 믿는 중요한 장소이다. 비록 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3000년 전통을 가지고 있고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는 긍지를 갖고 산다.
모슬렘 교도는 기도할 때 메카를 향해 기도하며 성전을 건축할 때도 메카와의 방향을 고려해 짓는다. 모슬렘 교도는 단순해서 언행을 믿지 않고 유일신만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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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us는 거의 모든 벽을 부수었으나 거대한 벽돌의 일부분은 그의 후손들에게 로마군대의 위용을 보여 주기 위해 남겨 놓았다. 로마 통치기간 동안 유다인이 예루살렘에 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나 비잔틴시대에 들어와 그들은 사원 몰락 기념일에 신성한 사원의 잔해인 이 벽에 와서 그들 민족의 이산의 슬픔을 나누기 위하여 일년에 한번씩 방문이 허락되었다. 19481967년까지 유다인은 이 벽이 요르단 지역에 있기 때문에 방문이 허락되지 않았다
.
6
일 전쟁 후 통곡의 벽은 예배의 장소일 뿐 아니라 국가의 기쁨의 장소가 되었다. 큰 광장은 수 천명이 예배드릴 수 있게 정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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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올리브동산의 겟세마네동산 

올리브 동산은 300피트의 높은 산으로 키드론 계곡을 가로질러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예수님이 승천한 곳으로 예루살렘에 대해 예언하시고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곳이며 명상에 잠기셨던 곳이다.
예수님이 배반을 당하고 체포된 겟세마니 동산은 올리브산 기슭에 놓여 있다. 올리브 나무가 많아 올리브 산이라는 말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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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리아산 바위

 

모리아산 바위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봉헌한 곳으로 길이가 5야드, 폭이 12야드, 지상에서 2야드 높이이며 돌이 돔 아래 높여 있다.
바위는 희생제물의 제단으로 사용했고 바위 표면에는 희생된 제물의 피를 흘려 보낸 구멍이 있다. 십자군시대부터 있어온 바위를 둘러싼 철 휘장은 제거되어 최근 튼튼한 난간으로 대치되었다.

4.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갔던 전통적인 길이다. 지금도 유다인들은 이 길을 성역화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길은 좁고 길 양쪽에는 가난한 아랍인들이 의류, 돌 등 각종 토산품을 파는 영세상점이 즐비하다.
이 십자가의 길 중 9개는 복음에 관계되고, 5개는 전통에 의해 전해진다. 그 첫 2개는 안토니오 자리 안에 위치해 있고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십자가의 길을 따라 프란치스코회 신부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주례한다
.
이 길의 시작을 나타내는 아치는 Ecce homo로 알려져 있는데 본시오 빌라도가 ", 이 사람이다"(요한 19, 5)라고 한 곳에 이것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4처는 기도서에 있는 장면 그대로이다.
3
처는 옛날에 계곡이었고 첫 번째 예수가 넘어지신 장소
.
8
처부터는 밖으로 나옴
.
8, 9
처 처형 받고 묻히신 장소를 모아 교회를 세움
.
10
처 옷을 벗기신 곳
.
11
처 돌아가신 장소
.
12
처 갈바리아 산(처형당하고 묻히신 장소).


갈바리아는 큰 돌로 이 꼭대기에 두 개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곳이요, 또 하나는 예수님이 옷을 벗고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곳이다.
이 두 교회의 양끝은 실제 암반에 놓여 있다.

5. 예수무덤성당, (예수부활성당) -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The Church of the Resurrection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요한19, 41-42)
예수의 무덤은 갈바리아산 기슭에 놓여 있고 이 돌로 깎은 새 무덤은 아리마테아 요셉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리마테아 요셉의 무덤은 부유한 유다인의 묘 양식으로 되었는데 2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어 하나는 애도자를 위한 만남의 장소, 또 하나는 시체가 누워있는 돌로 된 침대 판으로 사용되었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왕후는 80세의 고령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길을 떠나 예수님의 무덤과 십자가, 승천하신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각각 성당을 지었다. 예수의 실제 무덤은 109년까지 존재하였으나 칼리프 하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헬레나 성녀에 의해 복구되었다. 이 성당에는 헬라나 성녀의 동상이 세워졌다
.
교회는 처형된 장소보다 묻힌 장소를 중요시한다. 그 이유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므로 부활신앙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쪽에서 해가 뜨므로 교회도 동쪽을 향하고 있어 희망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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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후의 만찬 성당 (Coenaculum)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신 곳이며(마르 14, 12-16, 루가 22, 7-13) 부활 후 2번이나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사도 2, 1-4)
이와 같이 Coenaculum은 성체/신품/견진/고해성사를 행하신 곳이다. 13C 나폴리 임금이 이곳을 사서 교황에게 희사한 것을 교황께서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주었다. 성령강림 때의 견진성사가 이루어진 다락방에서는 회교도에 의해 추방되어 그곳에서 400년간 미사를 드리지도 못했고 1948년 전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공식적인 기도도 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은 프란치스코 수도원 식구들에게 공동기도만 할 수 있게 허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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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윗왕의 무덤 (Tomb of King David)

 

이곳은 이스라엘에서 통곡의 벽 다음으로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유다인의 성지 중 하나로 Tudela의 랍비 Benjamlne 1173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여기에 안치되었고, 다윗의 무덤이라 불렀다. 돌로 만들어졌고 수놓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Torah의 은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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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황금의 문 (Golden Gate)

 

이는 7C 비잔틴 건축으로 Mercy gate(자비의 문) 장소에 세워져 있다. 측면 벽의 일부는 원시 건축양식으로 이 문을 통해 예수는 개선 입장 후 도시에 들어갔다.
기독교인들은 베드로가 "아름다운 문"곁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친 기억을 덧붙이는데(사도 3, 1-8) 이 아름다운 문이 '황금의 문'이고 이곳은 1530년 터키에 의해 완전히 벽을 쌓게 되었다.

9. 겟세마니 동산 (Gethemane)

 

성지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겟세마니 동산은 올리브산 기슭에 놓여 있고 오늘날에도 2,000년 전 그대로를 보여준다. 키드론 계곡을 가로질러 반대 언덕에 현대 도시들이 줄지어 있으나 이 동산은 변한 것이 없다.
예수께서 가끔 은둔과 기도를 위해 이곳에 오시어 기도하셨고(루가 22, 39) 수난 당하기 전날 밤 가장 슬픈 수난의 시간을 체험하셨으며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 곳이다
.
"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 42) 라는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 보니 제자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루가 22, 45) 예수께서 최후만찬 후 이곳에 계신 것을 알고 유다가 대제관의 하인들을 데리고 와 예수를 잡아 넘긴 곳이기도 한 이곳에 헬레나 성녀가 성당을 지으셨다.

10. 주님의 기도 성당 (The Church of the Pater Noster)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쳤고 예루살렘의 몰락을 예언(루가 21, 5-7; 마태 24, 1-4)하셨으며 주님의 마지막 오심과 제3의 종말을 예고하셨다.(마르 12, 1-4)
콘스탄틴 로마 황제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어 올리브산 정상에 교회를 세웠는데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몰락했고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새로 세워졌다. 십자군이 멸망하자 교회도 몰락하여 모슬렘 교도에게 점령되었다
.
1868
Aurelia de Bassi 왕자는 그 교회가 있던 장소를 사서 프랑스에 기증했으며 1875년 프랑스는 가르멜 수녀원을 세워 이곳을 관리하게 하였다. 교회 안의 회당 벽에는 주님의 기도가 62개 국어로 쓰여져 있고, Bassi 왕자는 회당에 묻혀있다.

11. 예수승천성당 (The Chapel of the Ascension)

 

사도행전 1, 9-12에서는 예수께서 어떻게 제자들을 올리브산으로 데려왔고 그들을 축복하신 후 하늘에 올라가셨는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곳은 가장 정확한 승천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올리브산을 떠났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을 떠나는 100야드 거리의 안식일 여행이었고 예수 승천 장소와 예루살렘을 나누는 경계가 되는 거리였다
.
원래 14세기에 이곳에 이미 비잔틴 교회가 지어졌으나 614년 페르시아인에 의해 몰락, 또 다시 십자군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 현재의 작은 성당은 예수 승천 시 남겨진 전설적인 예수 발자국이 난 돌을 보관하기 위하여 세워졌고 아직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모슬렘 사람들은 아치형의 벽을 쌓고 현재의 둥근 천장을 더했다. 회교도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지만, 예수 승천 날은 우리도 미사를 드릴 수 있다.

12. 베드로 회개기념성당 (닭울음성당) (The Church of St. Peter in Gallicantu)

 

키드론 계곡을 굽어드는 이 성당은 1931 Caiphas의 전통적인 집터에 지어졌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배반당하신 예수님은 대제관 Caiphas의 집으로 인도되어 그 날 밤을 세웠는데 여기가 베드로의 첫 시험장소였다. 발굴 결과 신부들은 Caiphas집터에 세워진 것을 확인했고 거의 완전한 히브리척도(), 돌절구, 종들의 주거지, 법정, 비잔틴 교회의 잔재가 발굴되었다.

13. 성 안나 성당 (The Church of St. Anne)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했을 때는 그들이 있는 동안 건축했거나 재건한 7개의 교회를 남겨 놓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곳이 안나 성당이다.
1100
년 발드윈의 부인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그곳은 성벽으로 된 천장과 아름다운 둥근 지붕, 고딕식 입구를 가지고 있다. 이 교회는 성모가 태어난 곳이고 그의 부모의 집이기도 하였다
.
1856
년 마지드는 전쟁 중 나폴레옹의 지원에 대한 답례로 이곳을 나폴레옹 3세에게 주었고 교회는 복원하여 화이트 신부에게 주었다

 

관련

   


성경학교 초대장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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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생일축하카드로 나온 자료이지만
고래카드를 만들어 여름성경학교때 초대장으로 사용해 보세요.



그림1 준비물 : 색종이, 풀, 가위


만드는 법

그림2 카드겉장을 먼저 만들어줍니다. 겉장에 구름도 붙여봅니다
그림3 검정색종이를 고래모양으로 오린 뒤 하얀종이를 모양내어 잘라 눈과 입과 등에 물나오는곳을 붙여줍니다

그림3 카드겉장을 펼친후 그림과 같이 고래를 세울 대를 만들어 줍니다
그림4 엄마고래를 먼저 붙힌 후 아기고래도 붙여준후 이쁘게 주변을 꾸며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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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 ― 바사의 교만한 총리대신


1. 인적 사항
① 아각인 함므다다의 아들(에 3:1). ② 바사 왕의 총리대신(에 3:1).

③ 열 아들을 둠(에9:10).
2. 시대적 배경
바사 왕 아하수에로(B.C.485-464년) 당시에 바사의 제2인자로 약 6년간

활동했던 고관이다.
3. 주요 생애


4. 성품
①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경의를 요구할 만큼 교만한 자(에 3:1,2)
② 개인 감정 때문에 한 민족을 멸하려한 옹졸하고 잔인한 자(에 3:6).
③ 무안을 당했을 때 복수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매우 완악한 성경의 소유자(에3:2-6).
④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갈 만큼 교활하나 일면 어리석은 자(에 7:9).
5. 구속사적 지위
① 포로 생활 중 하나님의 선민을 궤멸하려 한 자로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방해하는 사단을 예표한 자.
② 모르드개의 활약에 의해 결국 처형 당한 자. 이는 악인이 종말에 하나님 심판석 앞에서 처할 심판을 예표함.
6. 평가 및 교훈
① 바사국의 제2인자라는 높은 권세를 지닌 하만이 교만하여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셨다. 이 사실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며, 그 권력이 하나님의 공의를 대행하지 못했을 시엔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됨을 보여준다(시 119:81-88).
② 왕 다음가는 권세와 부를 누렸던 하만은 그 권세와 부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더 많은 것을 바라다가 스스로 불행한 삶을 자처하였다. 이 세상에 어떤 것이 인간에게 참다운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참된 기쁨과 참된 만족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로 인하여 얻게 됨을 기억하자(합 3:18).

7. 핵심 성구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대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에 3:6).

 


성경 만화보기 - 오직 성령으로                      


 



유다의 왕들은 어디에 묻혔을까                             

       


(사진설명]

1. 유다 왕들의 유골(?)

`왕들이 죽어서 열조에게 돌아간다'는 열왕기서의 표현은 곧 에꼴 비블릭크 무덤의 안치대 밑에 있는 유골보관소를 통해 잘 이해될 수 있다. 새로운 시신이 들어올 때마다 기존의 유골을 안치대 밑에 자리를 마련해 보관하는 것이 당시의 독특한 매장 풍습이었다.

2. 베이의 `다윗성의 무덤'

프랑스 고고학자 라이몽 베이가 1913~4년에 다윗성에서 발굴한 이 동굴들은 다윗을 비롯한 왕들이 다윗성 안에 묻혔다는 성서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왕들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그 구조가 무덤과 차이가 있고 당시의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뚜렷하게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

3. 드 소시의 `왕들의 무덤'

드 소시는 1851년 초 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 깨진 석관 뚜껑을 갖고 나와 다윗의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무덤은 신약시대 유대교로 개종한 아디아베네왕국 출신 헬레나 여왕의 가족무덤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순례자들은 시온산에 있는 다윗의 무덤을 찾지만 그 곳이 3천년 전의 무덤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래 그 곳은 2~4세기에 건설된 교회 건물로 십자군시대 이후 다윗 왕의 기념묘로 숭배되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적으로 다윗의 무덤을 찾는 작업은 1851년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다윗 왕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으로 떠들썩했다. 파리에 있는 포병박물관의 한 큐레이터가 예루살렘에 성지순례를 왔다가 `왕들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한 바위굴 무덤에서 입구를 막고 있던 둥근 돌을 굴려서 치우고 안으로 들어갔다.그가 깨진 석관 뚜껑을 갖고 나와서 다윗 왕의 관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에 정착한 유럽의 외교관들과 선교사들은 다윗을 비롯하여 모두 23명에 달하는 유다 왕들의 무덤 중 하나라도 찾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다.따라서 다윗의 무덤이라는 소식에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드 소시(F.de Saulcy)는 1807년 오늘날 벨기에에 위치한 `릴르'의 전통적인 군인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도 군인이 되기 위해 포병학교에 진학했고,재학중 고고학에 흥미를 느껴 취미삼아 연구결과들을 발표했다.그러다가 결국 파리에 있는 포병박물관에 큐레이터로 취직하게 됐다.

43세 되던 해에 부인을 잃게 된 드 소시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와 소아시아를 여행한 후 예루살렘까지 가는 성지순례를 계획했다.경비 마련이 문제였으나 당시 파리 귀족들의 문제아들을 성지순례를 통해 순화시키는 프로그램의 후견인으로 나서면서 성지순례를 할 수 있었다. 1851년의 탐사 후 드 소시는 파리에서 정치가로 지내다가 프랑스 정부의 재정적 지원으로 1863년 `왕들의 무덤'을 공식적으로 발굴하게 됐다.

당시 드 소시는 `여왕'이라 기록된 석관을 발견하고,이를 시드기야의 왕비로 해석했다. 드 소시가 발견한 무덤은 전형적인 신약시대의 가족무덤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해 이곳이 당시 유대교로 개종했던 아디아베네왕국 출신인 헬레나 여왕과 그녀의 가족 무덤으로 확인됐다.

열왕기서에 의하면 다윗은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고 하는데 드 소시가 발견한 무덤은 성 밖으로 성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윗의 무덤이라고 할 수 없었다. 느헤미야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윗의 무덤이 성 남쪽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프랑스의 고고학자 라이몽 베이는 1913년~1914년 다윗의 무덤을 찾기 위해 성의 남쪽 부분을 집중적으로 탐사하던중 바닥을 파서 만든 여러 개의 바위굴들을 발견했다.

베이는 그중에서 길이 15.7m,폭 2.4m에 달하는 가장 큰 동굴을 다윗의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동굴이 도무지 무덤같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BC 10세기의 무덤이 아직 한군데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내부 구조를 알 길은 없지만 여러 고고학자들의 지적대로 그 동굴은 구조상 창고나 물저장소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그 곳은 후대에 채석장으로 이용됐는데 과연 누가 왕들의 무덤을 감히 훼손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제3의 왕들의 무덤이 1970년대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됐다. 이 무덤은 오늘날 `에꼴 비블릭크'(프랑스 성서와 고고학 연구소)로 더 잘 알려진 성 스데반 수도원 구내에 있으며,1885년에 처음 발견됐지만 신약시대의 무덤 정도로만 알려졌었다.하지만 바르카이와 클로네르가 재발굴한 이 가족무덤은 전형적인 BC 8~7세기의 무덤으로 가운데 다섯평 정도의 전실을 일곱 개의 묘실이 둘러싸고 있고 한꺼번에 20여구의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큰 규모였다.

시신 안치대 밑에는 모두 네 개의 유골보관소가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유골을 한군데 보관하는 풍습은 고대 이스라엘의 바위굴 무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족무덤의 특징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시신들이 안장됨에 따라 안치대에 있던 기존의 유골은 그 밑에 파 놓은 유골보관소에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 보관하게 된다. 이는 바로 “유다 왕들이 죽어서 열조에게 돌아간다”는 열왕기서의 구절을 연상시키는 좋은 예다.

열왕기서에는 다윗 왕부터 아하스 왕까지는 다윗 성안에 묻혔고 그후의 왕들은 성 밖에 장사지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오늘날 다윗 성에는 여러 채의 집들이 있어서 다 발굴하기가 어렵다.따라서 다윗 왕의 무덤은 앞으로도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그렇지만 현재는 에꼴 비블릭크의 무덤이 고고학적으로 가장 신빙성이 있는 유다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김성(협성대 교수·성서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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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권세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약 3:2) 온전한 사람 (성숙한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 3:3-6)

사람의 마음은 다스리고 통치하는 통치자이다. 그러나 혀는 그 통치자를 조종한다. 말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신의 혀가 당신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말이 당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당신의 혀는 당신의 배의 키다. "온량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 15:4)

당신의 몸 안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창조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마음에 의심치 않고 믿으면 그대로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의 몸은 당신의 말에 순종하도록 창조되었고, 우리의 몸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고 있다. 육체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형통하길 원한다면 혀는 반드시 통제되고 다스려져야만 한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에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한데,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초자연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고 고백할 수 있으려면 먼저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이 역사 하셔야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은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 : 23) 당신은 당신 자신이 말한 것이 옳든지 그르든지 열매와 결과를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와 원리에 대해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어둡게 해서 보지 못하게 한다.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의 말은 씨앗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말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12 : 35)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 언약의 말씀과 거스르는 어떤 말도 악한 보고요 악평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받았으며,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 : 36) 여기서 무익한 말이란 <당신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며, 부정적인 말로써 마귀에게 틈을 주는 말들을 가리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고백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믿음으로 살지 않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살고 있다. 도무지 한마디의 긍정적인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에는, 차라리 어금니를 꽉 물고 당신의 입에 지퍼를 채우고 침묵하는 법을 배우라.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 함을 받으리라."(마12 : 37) 당신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근거해서 당신은 의롭다 함을 받기도 하고 정죄 함을 받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후진기어를 넣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원리에 있어서 그와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문제를 기도하고, 문제를 말하고, 그것을 밤낮으로 품고 삽니다. 심지어는 한밤중에 깨어서도 그 문제만을 생각한다. 문제가 아니라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한다.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이미 이루어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막 11:24)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마음의 상자에 파란 공을 넣으면 파란공이 튀어나오고 빨간 공을 넣으면 빨간 공이 튀어나온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당신이 말하는 것과 당신이 믿고 있는 것 사이에는 반드시 연속성과 일치성이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기에, 당신의 말은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뜻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뜻이 아닌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당신의 입으로 결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당신이 갈망하는 것만을 말하도록 지음 받았다.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작은 일들도 인해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당신의 말을 다스리는 법을 훈련하고 개발해야 한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당신이 믿고 확신하는 것만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1 : 26)

당신의 마음(영)은 "당신의 말"을 "최종적인 권위"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저스페스티벌 순복음동경교회 40주년기념 성회 이모저모

일본 선교, 성령안에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80개의 교회 세워
오오가와 목사 “일천만구령운동으로 일본 교회 자립심 키웠다”

○… 1977년 복음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일본에 ‘일천만구령운동’을 외치며 순복음동경교회를 세운지 40년째를 맞아 조용기 목사와 이영훈 목사는 동경 신주쿠 문화센터에서 말씀을 전했다. 28일 새벽 많은 비가 내렸지만, 성회가 시작되면서 맑은 날씨가 계속됐고 은혜의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성회장소 주변에서 성회장이 열리기를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 갈보리채플 오오가와 츠쿠미치 목사는 28일 축사를 통해 “조용기 목사님은 일본의 은인”이라면서 “일천만구령운동은 일본 교회도 부흥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전해줬다”고 말했다.  

○… 일본 오순절협의회 의장이자 하나님의성회 총회장 테라다 후미오 목사는 “41년전 개인적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방문해 은혜를 받았다”라고 전했다. 이어 “작년에 이영훈 목사의 초대로 일본 목회자 20여 명이 함께 한국을 방문한 것에 대한 감사”를 전했고,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하나님의성회에서 이영훈 목사가 인도한 세미나에 참석해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고 말했다. 

○… 순복음동경교회 시가끼 시게마사 목사(순복음동북아일본총회장)는 순복음동경교회를 축복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29일에는 감사 인사 대신 ‘그 사랑’이라는 찬양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부르면서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 이번 성회에는 순복음동북아일본총회 증경총회장 김유동 목사(순복음나고야교회), 김일 목사(순복음후쿠오카교회), 안양원 목사(우츠노미아순복음교회), 우창희 목사(순복음야마토교회), 배호성 목사(순복음마쯔도교회), 신용국 목사(순복음센다이교회), 세노오 미쯔키 목사(순복음나리타교회), 엔토 타카시 목사(순복음 도쿄 후나보리교회) 등 일본 총회 소속 순복음 선교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 우리 교회에서는 김종복 장로(4차원연합회장), 신범섭 장로(인사위원장), 이강우 장로(동북아선교회장) 등이 성회에 참석했다.

<1977년 설립된 순복음동경교회…>
 우리 교회의 일본 선교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1971년 고 최자실 목사가 일본에서 성회를 인도한 후 1977년 최자실 목사와 조용기 목사가 동경을 중심으로 부흥성회를 인도했다. 일본 전체 인구 중 10%에 해당되는 일천만명을 복음화하겠다는 ‘일본 일천만구령운동’ 프로젝트이다. 1978년 일본선교회가 발족되어 일천만구령운동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일본 선교는 냉대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전략이 필요했다. 일본 선교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됐다. 교민을 세워 현지 복음화를 진행하는 것과 현지인을 대상으로 직접 복음화에 나서는 것이었다. 그 열매로 순복음동북아일본총회 소속 80개 교회가 일본 열도에 세워졌고 120여 명의 순복음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일본 선교의 구심점은 단연 순복음동경교회다. 1977년 가정예배로 시작됐지만, 열정은 어느 교회보다 뜨거웠다. 1980년 조용기 목사는 긴끼TV를 통해 ‘행복으로 초대’라는 설교를 방송해 일본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1985년 우리 교회는 순복음동경교회에 담임목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1990년 동경의 성전을 빼앗기는 등 큰 고난과 시련을 맞았다. 하지만 우리 교회의 일본 선교는 계속되었고 일천만구령운동을 외치며 순복음동경교회도 성장해 갔다.
 2001년 이영훈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이영훈 목사와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 속에서 2002년 지금의 순복음동경교회 성전을 헌당할 수 있었다. 일천만구령운동이 시작된지 25년만이었다.
 이어 2003년에는 종교법인을 취득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갔다.
 2014년 시가끼 시게마사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해 제2의 부흥을 꿈꾸며 일본 일천만구령운동은 지금도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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