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꽃꽂이-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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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룰 왕과 다윗 - 2부              

                 

사울왕과 불편한 관계로 피해 다니던

다윗은 한결 같은 충성심을 보인다



버가모 교회 유적

 


                   버가모왕국 데메테르신전

 

버가모왕국에는 토지와 풍산의 여신 데메테르 신전터가 남아있는데

기원전 3세기 초에 세워졌으며

로마시대에 개조 되었다. 이곳에는 "알지못하는 신에게"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버가모왕국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아타로스1세와 유메네스

2세의 헤론 (신성한 지역)이다.

헤론 앞의 것들은 가게들이었다. 그 앞을 지나면 제우스 신전터가 나오는 데

지금은 불행히도 소나무 3그루만 있다. 제우스 신전(로마명으로 쥬피터)은 주전 180년에

유메네스 II세에 의해서 건축된 신전으로서 세계 7대 명물 중의 하나였다. 

이 신전은 길이 27m, 높이 12m나 되는 웅대한 신전으로 온통 고대 조각예술로 장식되었다.

이 곳의 유물은 독일의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굴이 되었기 때문에 이 신전의 유물들은

모두 동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헬라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 신은 신 가운데 최고의 신이고 전 인류의 통치자이며 기후를 주관하는 신으로 여겨지고 제우스 신의 출생지가 바로 버가모라고 알려지고 있다

                     


버가모왕국 아테네 신전터

 

이 신전은 페르가몬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으로 기원전 4세기 경에 지어졌다.

이 신전은 유메네스 2세에 의해 북쪽과 동쪽면에 2층의 화랑을 갖게 되었다.

신전으로 통하는 입구는 동쪽 화랑의 남쪽 끝에 위치해 있었는데,

현재 이 대문의 조각들을 사용해 베를린에 그대로 복원되어있다.

이것을 근거로 해볼 때 화랑의 아래층 기둥은 도리아식이고 위층은

이오니아식의 기둥으로 되어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기둥의 석가래에 "유네메스 왕으로부터, 그에게 승리를 내려준 아테나 여신에게"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신전 마당의 중앙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조각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해지며 마당에는 갈라티아인들로 부터 노략한 전리품들을 진열했다고 한다.

 


버가모 디오니소스 신전

 

 제우스신전을 돌아서 오른 쪽으로 가면 극장이 나온다. 이 극장은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극장의 제일 밑의 오른쪽 방면으로 디오니소스의 신전을 볼 수 있다. 연극이

원래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에 대한 축하의식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일반적으로

디오니소스 신전은 극장 가까운데 세워지기 마련이다. 또한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동물을

희생시켜 행해지는 제사의식도 이 신전에서 거행되었다. 이 신전은 카라칼라

황제가 원정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에 배의 사고로 다쳐 아스클레피온에서 치료를 받고

완쾌된 후 그 보답으로 지어진 것이다.

   


트라얀 로마 황제 신전

 

버가모왕국 트라얀 황제신전, 당시 버가모는 소아시아 지역 수도였고 아크로폴리스(왕국)안에는

여러개의 신전(제우스, 디오니소스 등)과 함께 트라얀 로마 황제 신전이 있었다.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로마명은 옥타비안) 황제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주후 30-40년 사이에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세워졌습니다. 트라얀 황제의 신당은 주후 98년에서 117년 사이에 건축되었고, 세베투스 황제를 숭배하기 위해 서 주후 193-211년 사이에 건축이 되어졌습니다. 하드리안 황제 때 완공한 이 신전은 지형상 깍아진 V자 형의 절벽사이에 걸쳐 짓게 되었다. 따라서 지형을 평평히 고르기 위해 신전 앞부분에 축대를 쌓을 수 밖에 없었다. 주위의 다른 건축물들이 회색이나 분홍의 대리석을 사용한 반면 이 신전은 선명한 흰 대리석을 사용함으로써 산 밑의 평원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신전의 3면은 모두 기둥으로 둘러싼 화랑이 있었으며 신전의 안쪽 마당에는 제단이 세워져 있고 제단의 양쪽 끝에는 황제의 조각을 세워 놓았으나 오늘날에는 그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

 

 

 

버가모 시내에 있는 세라피스 신전은 원래 이집트 신이기 때문에 "이집트신전"이라 불리기도하며 신전 건물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붉은 궁전(The Red Hall)"이라고도 한다. 나중에 기독교가 공인된 후 요한 계시록의 버가모교회에 바쳐지기 위해 바닥을 높여 교회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붉은 교회(The Red Basilica)" 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신전의 26m x 60m 로 되어 있으며 오늘날 건물의 상층부가 붕괴되어 있지만 남아있는 벽의 높이가 19 m에 이르는 대형 신전이었다. 신전의 동쪽 끝에 남아있는 2개의 도움양식은 로마시대에는 보기 드문 건축 양식으로써 오늘날한 쪽은 이슬람 서원으로, 다른 한 쪽은 박물관의 창고로 사용하고있다.  이 신전의 가장 중요 부분은 3면이 기둥으로 둘러 싸여 있는 데, 이색적인 것은 이 기둥이 당시에 흔했던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이 아니라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기둥으로 되어 있는 점이다. 이 조각 중 하나는 남성의 모습 하나는 여성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집트의 신인 이시스와 세라피스 신으로 추측된다. 또 한가지 특징은 강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즉 이 신전 밑에는 대각선으로 셀리누스 강이 흐르고 있는데 직경 9m의 토관 2개를 묻어 강물이 흐를 수 있도록 했고 그 위에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평평하게 했다.  이 건물은 기독교 공인 후 바닥을 높여 버가모 교회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약 1~2m 높이의 벽만이 옛날의 교회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세라피스(Serapis)

 

세라피스는 마케도니아 통치시기(BC.305-30)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국가신이다. 그는 머리 위에 바구니를 얹은 곱슬 머리에 턱수염이 있는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멤피스의 아피스 수소에 대한 예배에서 유래한 세라피스 숭배의 주된 중심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의 학문과 상업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였다. 그곳에 있었던 세라페움(Serapeum : 세라피스의 신전)은 세계의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으며, 기적적인 치료법을 찾아나선 순례자들을 먼 지역으로부터 끌어들였다.   세라피스는 첫째로 질병의 치유자이며, 운명을 초월하는 신이고, 오시리스로부터 지하세계의 신격을 계승한 신이다

 

 

버가모교회

 


버가모 아스클레피우스 신전 

 


 버가모  심리치료하던 텔레모스 신전

 

세계 최초로 정신치료를 실시한 아스크레피온(ASKLEPION) 병원이다. Asklepions은 아폴론의 아들로 건강과 약의 신이었다. 버가마에 있는 Asklepion는 이 신의 이름의 딴 의료센터를 말하며 초기 에게문명을 꽃 피웠던 페르가몬의 중요한 의료센터였다. 이 곳은 다른 병원들과는 치료방법이 다르다. 물과,진흙,스포츠,연극 그리고 도서관 등으로 병을 고쳤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현재도 매년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입구 근처의 좌측 건물은 Asklepions 사원이다. 이 사원은 AD 150년에 건강의 신의 이름으로 기증되었다.

 

지붕은 돔으로 되어있으며 신전의 벽은 무려 3M나 될 정도로 두텁다. 내부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BC 4세기에서 AD 세기까지 번성한 이 병원은 대지진으로 파괴되었으며 아직도 유적이 남아 있다. 166년경 전염병이 이 페르가뭄을 휩쓸었을 때 제우스 제단 근처에서 발견된 한 비문에는 "오, 위대한 제우스 신이여, 아스클레피우스(건강의 신)를 섬기는 우리 도시를 파괴하는 이 재난을 쫓아 주옵소서"라고 써있었다. 발굴과정에서 발견된 많은 비문들은 당시의 치료법을 자세히 적고 있다. 하드리안 황제시대 만들어진 양쪽에 기둥이 늘어선 화려한 대리석 도로가 있는데 폭 20m, 길이 820m로 길 양편에는 15m의 석주(石柱)가 세워져 있다. 이 길은 소위 "성스러운 길"이라 불렀다. 환자들은 아스클레피온에 들어오면 우선 맨발로 성스러운 길의 대리석 바닥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이 과정이 벌써 치료의 시작이다. 죽음의 신인 하데스로부터 멀어지고 건강의 신인 아스클레피우스신에게 가까이 간다는 믿음 때문에 안도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정원 한 가운데서 흘러나오는 샘물로 목욕을 한다. 지금도 흐르고 있는 이 물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방사능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이 판명되었다. 목욕이 끝나면 환자는 지하터널을 통해 치료실로 들어 가는데 80m 길이의 이 지하터널은 매우 조용하고 어두우며, 샘물에서 물이 지하터널의 입구 계단을 따라 흘러 들어 오면서 작은 소리를 냄으로써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게다가 천정에 나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의사들이 작은 소리로 환자들에게 속삭인다. 즉, 환자들에게 생의 의욕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다. 또 의사들은 환자들의 꿈을 해몽해 주기까지 하는데 이 경우도 역시 치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말한다. 사티로스나 갈레누스와 같이 유명한 의사들이 이곳에서 활약했으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ypocrates)도 이곳에서 출생했다 한다.

 


폰 말씀 배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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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 동방의 의인

1. 인적 사항
① '욥'이라는 이름은 '적을 가진 자', '회개한 자', '울부짖는 자'라는 뜻.
② 족장 시대 초기(약 B.C.2000년 경),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인물로 추정됨.
③ 동방 우스 땅에 거주한 자.

2. 시대적 배경
욥의 생존 시대에 관해 성경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 그가 아브라함과 동(同)시대를 살았다고 추정(推定)할 수 있을 뿐이다.
첫째로, 욥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주는 욥기에 모세의 율법이나 율법에 준하는 종교 의식에 관한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욥은 모세 이전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둘째로, 욥은 시련을 통과한 후 140년을 더 살았다고 하는데(욥42:16) 결국 그가 산 연수는 약 200년 안팎이었을 것인 바, 사람이 이렇게 장수하던 때는 초기 족장 시대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 인물이었을 것이다.

3. 주요 생애


4. 성품
① 고난 가운데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원망할 지언정 결코 하나님께 대한 불 신앙적인 태도나 직접적인 원망은 발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매우 순전한 믿음의 소유자임(1:21,22;2:10).
② 아내와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고 질책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의 순전함과 자제력을 잃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내심이 강함(6:10:23:10).
③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죄악을 깨달은 즉시 회개한 것으로 보아 겸손한 자임(42:1-6).
④ 자신을 그렇게 호되게 공박했던 친구들이었지만 즉시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위하여 중보 기도까지 드린 것으로 보아 관용이 풍부한 자임(42:7-9).

5. 구속사적 지위
① 죄악 되고 유한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숱한 삶의 문제들을 결코 다 이해할 수 없으므로 오직 창조자요 우주와 역사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절대 신뢰하며 절대 순종해야 함을 보여준 자.
②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갑작스런 고난을 당할지라도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여 고난을 초극할 때 단련한 정금같이(23:10) 신앙이 성숙됨을 보여준 자.
③ 성도는 마땅히 사람 앞에서 끝까지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항상 근본적으로 죄인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준 자.
④ 시험을 통과한 후에, 처음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은 그의 생애는 시험에서이긴 자가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급에 대한 소망을 제시하여 준다(42:12-17).

6. 주요 업적
① 가혹한 시련을 잘 견디어 인내의 귀감이 됨(약 5:11).
②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입술로 범죄치 아니한 그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환난 때에 취하여야 할 신앙 태도에 대한 표본을 제시한다(약 1:12).
③ 자신을 호되게 공박했던 친구들을 위해 번제와 중보기도를 드림(42:7-9).

7. 실수
① 고난의 초기에 욥은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세 친구의 질타와 정죄가 거듭되자 그에 대항하여 그만 과도하게 자기 의를 주장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교만 죄를 범했다. 사실 아담의 범죄이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절대 의를 주장할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롬 3:10).
② 욥은 자기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무지 때문에 비록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실수를 범했다.

8. 평가 및 교훈
①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혀 고난과 마주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고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 처한 이 고난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 가이다. 욥은 자신의 엄청난 고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순전함을 잃지 않고 인내로 고난을 극복하면서 큰 신앙의 성숙을 얻게 되었다(42:5). 이러한 욥의 신앙 자세는 동일하게 여러 가지 고난을 만날 수밖에 없는 우리 성도들에게 반드시 요청되는 것이다.
② 유한한 우리 인간에게는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절대 선하신 섭리가 있다. 따라서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 뜻을 저버리지 말고 일단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맛당한 도리라 하겠다.
③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육체적, 정신적 시련 속에서도 결코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욥이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갑절의 복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도 전적으로 의뢰하고 부르짖는 자들을 결코 외면치 않으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오직 그분께만 구원을 호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④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이 비록 모두 구체적인 어떤 죄에 대한 직접적인 하나님의 보응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태초 아담의 타락 이후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욥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죄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런 고난을 당했을 때 거듭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던 것처럼 고난 중에 원망하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하여 우선 자신의 근본적인 죄성을 깨닫고 그 죄된 습성을 고쳐 점차 신앙 성숙에로 나아가는 보다 적극적인 신앙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성경만화 - 작은 죄란 없습니다           


 



바벨론과 다니엘

 


  바벨론에 끌려 간 다니엘은 '다니엘서'를 기록하는데, 그의 예언대로 바벨론의 멸망 다음에는 메디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등의 나라가 나타났습니다. 다니엘서의 예언이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다니엘서'가 그 사건들이 다 이루어진 후에 기록된 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후대에 기록하고 이름만 '다니엘서'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대해서 성경의 신빙성이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서에는 헬라어(그리이스어) 단어가 세 개 들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다니엘서가 바벨론 시대에 쓰여진 것이 아니고 알렉산더가 지배하던 '헬라' 즉, 그리이스 시대에 쓰여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보면 그리이스와 바벨로니아는 느부갓네살 시대 이전부터 이미 광범위한 무역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말(言)도 서로 오고 갔다는 것이 밝혀져 있고, 세 개의 단어가 무엇인가 조사해 보았더니, 그 단어들은 모두 그리이스의 악기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최소한 한 개의 악기는 다니엘 시대 이전부터 바벨로니아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악기였습니다. 예전부터 써 오던 악기이므로 그리이스 말 그대로 바벨로니아에서 쓰인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니엘서에 수메르 단어가 8개나 들어 있습니다.

'수메르'라는 나라가 언제 부터입니까? 아브라함보다 이전 아닙니까? 다니엘서가 기원전 500년경이라면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전이므로 1500년도 더 된 단어가 8개나 남아 있다는 말이지요. 느부갓네살 통치 시대 이후에는 수메르 언어가 전혀 쓰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다니엘서에 수메르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느부갓네살 시대, 혹은 그 이전에 다니엘서가 쓰여졌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의 저작시기가 느부갓네살의 통치 시기로부터 먼 훗날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수메르 단어로 확정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어조차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니엘서에 히브리어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도 포로로 잡혀가고 얼마 되지 않아서 기록된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내용에 있어서 허무맹랑한 사실이 너무 많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는데요, 한 예를 들면 다니엘서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외국의 포로중의 일부를 잘 먹이고 갈대아 학문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있는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너무나 악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포로를 잘 먹이고 가르쳤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바벨로니아의 정책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고대 바벨로니아 지역을 발굴하다가 특별한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건물의 비석에 그 건물의 용도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비석에는 포로로 잡혀 온 왕족과 귀족에게 갈대아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된 건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잘 먹이고 가르쳤다는 성경의 기록이 실제로 증명된 것입니다. 

 

  그리고 금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고 다니엘의 세 친구를 용광로 불 속에 집어넣었다는 기록이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불 속에 던져 넣으려던 바벨로니아 군인들은 방화복을 입고 했었는데도 오히려 불에 타 죽을 정도로 불길이 강했으나, 세 사람은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 조사 결과 거대한 용광로가 발굴되었는데, 그 용광로의 용도에 대해 쓰여진 비석에 보면 바벨로니아의 신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화형 시키는데 사용되는 용광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타는 용광로 속의 세 명의 히브리인의 이야기는 적어도 사실에 근거하였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또 많은 비난을 받았던 부분은, 다니엘이 왕의 칙령을 따르지 않아서 사자 굴에 떨어졌는데, 사자들이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가만히 있다가, 다니엘을 고발했던 사람을 잡아넣었더니, 뼈까지 뜯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계깊은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고대 바벨론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 거대한 웅덩이가 발견되었는데, 이 웅덩이는 왕의 칙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사나운 짐승의 먹이로 떠밀어 넣는데 사용된 웅덩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잡아먹힌 사람들 이름까지 다 기록되어 있었는데, 다니엘이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이 사건은 적어도 사실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갑자기 느부갓네살왕이 미쳐서 이슬을 묻혀가면서 풀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제정신을 차려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을 차려 돌아온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던 것 같습니다.  바벨로니아의 고고학적 발견 가운데 느부갓네살 왕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명각이 발견되었는데, 그 명각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는 왕이 미친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실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느부갓네살왕의 명각입니다.



왼쪽그림은 다니엘의 무덤인데요, 지금 이란(페르시아)의 수사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했습니다(잠 18:21). 크리스챤은 "나는(너는) 틀렸어, 나는 안돼, 나는 못해, 내가 뭘해, 나는 복이 없어"라는 등등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크리스챤은 "나는 희망이 있어, 나는 돼,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복이 있어, 내가 하면 돼, 나는 꼭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 아침에 비가 옵니다. '에이, 하필 오늘 비가오는 거야'라고 투덜댑니다. 저는 비가오는 주일아침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들로 산으로 놀러가는 사람이 가지 않고 교회의 예배의 자리에 앉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일에 날을 잡으면 안됩니다. 달력을 보세요. 원래 주일은 하나님이 날을 잡아 놓으신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잡으면 안되는 날입니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오늘 축복하셔서 이 날을 맞게 해 주셨구나라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의 말에는 믿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예배의 자리에 앉은 모습만으로는 믿음의 척도를 알 수 없습니다. 찬양대로 봉사하고 여러 가지로 봉사를 많이 해도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말 속에 어떤 것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 속에 믿음이 담겨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혀를 은혜롭게 길들여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하는 말과, 육적인 사람이 하는 말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할 때 믿음의 위력이 나타나고 없던 믿음도 생긴다고 합니다. 수십년을 교회에 다녀도 의심을 품고 회의적인 말만 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도 고백의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9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불신앙적인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의 말에는 소망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성경도 잘 읽고, 기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 하는데 자신과 삶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서, 교회와 사회에 대해 늘 부정적인 말을 하고 평가를 하고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과 남에게 낙심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식어지고 시험에 빠지게 되면 절망적인 말, 부정적인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식어진 사람의 말 속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의 말 속에 소망이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고생하며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그리던 소원인 "이집트 탈출"에 성공하고 그들의 목적지인 가나안을 향해 가던 시나이 반도 광야에서 고생스럽다고 생각될 때마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이집트 노예 생활이 편했다"고 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입으로 말한 대로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통해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문제 없습니다. 걱정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승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긍정적인 말을 하던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새로 출생한 사람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그들이 말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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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페스티벌 순복음동경교회 40주년기념 성회


일본 일천만구령운동 선교열매 맺은 ‘성령 축제’

 “2천년 전에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일본 교회를 향한 그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DCEM이 주관하고 순복음일본총회와 순복음동경교회가 공동 주최한 ‘지저스 페스티벌 순복음동경교회 40주년 기념성회’가 지난달 28∼30일 조용기 목사와 이영훈 목사를 강사로 초청해 동경 신주쿠문화회관에서 개최됐다.
 일본 일천만구령운동의 전초기지인 순복음동경교회 40주년을 감사의 제사로 올려드린 이번 성회에는 일본에서 사역하고 있는 순복음 선교사들이 대거 참석해 일본 선교의 열매를 확인할 수 있는 성령 대축제의 장이었다.

 성회 첫째 날 우창희 목사(순복음야마토교회)의 소개로 등단한 조용기 목사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당부했다. 통역은 시가끼 시게마사 목사(순복음동경교회)가 맡았다. 조용기 목사는 “예수님을 따라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면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깨달아 예수님 안에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해 말했다.

 이어 오오가와 츠쿠미치 목사(야마토갈보리채플), 테라다 후미오 목사(일본 오순절협의회 의장), 김일 목사(순복음후쿠오카교회)가 순복음동경교회 40주년을 축하하는 축사를 전했다.
 이영훈 목사는 29일에 성회를 인도했다. 이영훈 목사는 2001년 순복음동경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2002년 교회 25주년을 기념하여 지금의 성전을 헌당한바 있다. 성도들의 환영 속에 등단한 이영훈 목사는 ‘부흥’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일본어로 인사를 전한 이영훈 목사는 “40년 전 조용기 목사님께서 일본 일천만구령운동을 시작하셨다. 조용기 목사님이 일본 선교를 해주신 것을 감사한다. 일본 전역에 큰 교회가 서고 부흥이 일어났다”며 “교회는 부흥되어야 하고,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말씀 후 김유동 목사(순복음나고야교회)가 축사를 전했다.

 조용기 목사와 이영훈 목사는 말씀 후 참석자들과 함께 ‘주여 삼창’을 외친 후 일본 일천만구령운동과 교회의 부흥을 위해 그리고 신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29일 오전에는 힐튼호텔에서 일본 전역에서 참석한 목회자들과 조찬간담회가 열렸다. 조용기 목사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제자들은 스승을 응원했다.
 순복음동경교회 40주년을 맞아 개최된 지저스페스티벌은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며 일천만구령운동을 통한 일본 교회의 부흥이라는 희망을 다시 꿈꾸게 했던 성령 축제의 현장이었다.


성전 꽃꽂이-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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