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금지법發 칼바람 교육부, 영어예산 대폭 삭감 초·중·고 원어민 강사 수↓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3월부터 금지하기로 "사교육 수요만 부채질" 지적
교육부는 매년 지방 교육청에 보내던 영어교사 심화연수과정 지원금을 올해부터 중단했다. 영어교육 관련 예산이 대폭 줄어서다. 교육부 지원이 끊기자 각 교육청도 교사들의 ‘실전영어’ 능력 향상에 들이던 돈을 삭감해버렸다. 작년만 해도 9개 교육청에서 300명가량의 교사가 연수를 다녀간 국립국제교육원 산하 제주영어교육센터엔 올해 단 2개 교육청만 연수를 신청했다.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영어교육은 초등 3학년부터 학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명분에 사로잡혀 그나마 사교육 억제책으로 평가받고 있는 초등 방과 후 영어도 올 3월부터 금지할 태세다. 공교육 정상화는 뒷전인 채 ‘학원 때려잡기’에만 골몰하다 보니 오히려 사교육 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교육 억제 집착하는 사이…
현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은 2014년 9월부터 시행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일명 선행학습금지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초등생은 3학년이 돼서야 영어를 배울 수 있다. 방과 후 과정을 포함해 학교에선 3학년 전에 알파벳을 가르치면 안 된다. 사교육을 유발하는 학원 커리큘럼도 단속 대상이다.
여러 과목 중에서도 영어가 주요 ‘타깃’이 된 건 사교육 열풍의 주범으로 낙인찍혀서다. 약 18조원 규모에 달하는 전체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는 5조원(지난해 통계청 교육통계 기준)을 차지해 규모 면에서 부동의 1위다. 23일 교육부 관계자는 “국가교육과정에 영어교육은 초등 3학년에 시작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올 3월부터 초등 1, 2학년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키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모든 아이들의 영어교육 출발선을 같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교육부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도 없애겠다고 했으나 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정을 1년 유예키로 했다.
◆학교 영어도 손 놓은 정부
정부가 선행학습금지법을 마련한 건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는 목적에서다. 법으로 영어 사교육을 억제하면서 그 사이 학교 영어교육의 매력을 올려놓겠다는 셈법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교육부 영어교육 예산이 매년 삭감됐다.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독립 부서였던 영어교육팀은 선행학습금지법 시행 이후 해체되고, 연구사 한 명이 전담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학교 영어교육을 위한 각종 인프라도 쪼그라들었다. 2016년 고등학교 영어교사 수도 전년 대비 2.7%(이하 한국교육학술정부원 자료) 줄었다. 주요 과목 중 과학과 사회 교사는 같은 기간 소폭이나마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중등 영어과목 임용시험 합격률(지원 대비)도 매년 떨어지고 있다. 2014년만 해도 6827명이 지원해 730명이 합격(10.7%)했으나 2016년엔 6992명이 지원해 396명이 합격(5.7%)했다. 원어민 강사 수는 초·중·고를 가리지 않고 대폭 감소했다.
그나마 방과 후 영어수업이 사교육 광풍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14년 6조1497억원에 달하던 영어 사교육 시장은 2016년 5조5443억원으로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영역별 사교육 시장 중 영어의 낙폭이 가장 컸다. 올 3월부터 초등 1, 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이 금지되면 학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학부모들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영어정책이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6년만 해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전국의 초등학교 50곳을 ‘영어 교육 연구학교’로 지정하고 1, 2학년부터 영어 수업을 하도록 했다. ‘학교에서 조기에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2년 후 전체 학교로 확대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각 교육청과 연계해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을 올해 안에 마련해 내년께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북한 '건군절' 2월8일로 바꿔..대규모 열병식 준비정황 포착 ICBM 등 전략무기 동원 관심 북한 이어 남측 점검단도 방북..동해선 육로로 2년3개월만에
금강산공연·마식령훈련 준비
남측의 북한 방문단이 금강산 문화행사장과 마식령 스키장 현지 점검을 위해 23일 방북길에 올랐다. 공교롭게 북한은 이날 2월 8일을 '2·8절(건군절)'로 공식 지정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전날인 다음달 8일 건군절 기념 대규모 열병식 준비에 나선 정황도 잇달아 포착돼 북한의 저의가 주목되고 있다.
남북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 북측 점검단이 돌아가자마자 남측이 바통을 이어 받아 받아 속도감 있게 상호 방문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날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단장으로 한 선발대 12명은 오전 9시 30분쯤 강원도 고성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과해 10시쯤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남북이 동해선 육로를 활용한 것은 2015년 10월 금강산 남북 이산상봉 이후 2년3개월 만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선발대가) 금강산에서 1차 점검을 마치고 마식령 스키장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마식령호텔에 직통전화를 설치해 남측 상황실과 연결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측 예술단 강릉 공연 일자에 대해 "2월 8일이 될지 9일이 될지 (우리가 두 날짜를 제안해놓고) 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개막 당일인 9일보다는 전날인 8일에 공연이 열리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현 단장 등 방남 때 '과잉 경호' 때문에 취재가 과도하게 제한됐던 부분에 대해 "유관기관 현장 요원에 취재 관련 지시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유감을 표하며 "현 단장 측이 (언론에) 코멘트와 개별 인터뷰를 안 하겠다는 의사도 (정부 측에) 밝혔다"고 밝혔다.
남측 선발대는 2박3일 동안 우선 금강산에서는 온정리에 위치한 '금강산문화회관' 등 공연시설 등을 점검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식령 스키장은 북측이 '1박2일' 훈련을 제안해 스키장 시설과 함께 숙소로 쓰일 리조트 건물도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점검단은 남측 스키 선수들의 항공 이동 가능성을 감안해 갈마비행장의 전반적 상황도 점검한다. 이날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남측 선발대의 체류비용 부담 주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상호주의에 따라 (북측이) 편의 제공을 해주기로 의사 표현을 했고 그에 따라 이뤄질 것 같다"고 답변했다.
한편 남측 인원이 육로 방북한 날 북한은 당 중앙위 정치국 결정서에서 2월 8일을 '조선인민군창건일'로, 4월 25일을 '조선인민혁명군창건일'로 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실무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4월 25일을 군창건일로 기념해오던 북한이 하필 평창올림픽을 개최하는 올해 개막식 전날인 2월 8일을 군창건일로 바꿔 대규모 군행사를 계획하는 것이어서 배경이 주목된다.
실제 북한은 건군절 기념 군사 퍼레이드 준비를 위해 병력과 장비 동원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평양 미림비행장에서 병력 1만3000여 명과 장비 200여 대가 열병식 연습을 하는 정황이 식별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Su(수호이)-25 전투기와 AN-2기 등 항공기를 동원해 '축하비행'(에어쇼)을 준비하는 동향도 포착되고 있다. 당국은 열병식에 '화성-15'형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 등 전략무기를 동원할지를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48년 2월 8일 인민군을 창설했으며, 1977년까지 주요 국가 명절 중 하나인 '건군절'로 기념해오다가 1978년부터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1932년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기념일(건군절)로 기념해 왔다. 군 당국은 북한이 올해 군 창설 70주년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정규군(조선인민군) 창설일에 규모를 갖춘 열병식을 개최하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편 이날 북측은 현 단장 등 북측 점검단 방남 시 일부 극우·보수 단체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사진과 인공기 등을 불태우며 시위를 벌인 것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2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편의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바쁜 발걸음으로 편의점 앞을 지나고 있었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고개 숙인 한 아이. 12살인 고 모양은 익숙한 듯 혼자서 삼각 김밥과 흰 우유를 손에 꼭 쥔 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어느 아이와 다른 얼굴. 밝고 장난기 가득한 나이에 뭔가 움츠린 듯했다. 고사리손으로 보여준 급식카드. ‘잃어버릴까 봐’ 목걸이 지갑에서 급식카드를 어렵게 꺼내 보여주었다. 보여주기 싫은 듯 손에 움켜쥐었다. 한창 엄마 품에 안겨 반찬 투정을 해야 할 어린 나이에 세상을 안 듯 부끄러움과 초조함이 얼굴에 가득했다.
빠듯한 생활 탓에 끼니를 제대로 못 챙겨준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고 양은 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아동 급식카드를 발급받았다. 아동 급식카드 제도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어머니는 교장 선생님이 고마울 따름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2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편의점에서 고 모양이 익숙한 듯 혼자서 삼각 김밥과 흰 우유를 손에 꼭 쥔 채 테이블에 앉아 있다.
어른들 눈치에 밥 한 끼 사 먹기에도 빠듯한 5,000원이지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고 양은 음식점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가 음식점에 들어가 끼니를 해결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동 급식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식당은 한정돼 있고, 한창 장사할 시간에 어린아이가 혼자서 밥을 먹기도 힘들뿐더러 4인석 테이블을 혼자 차지해 밥을 먹기도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고 양이 찾는 곳은 편의점뿐. 편의점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메뉴는 한정돼 있어 먹고 싶어 참아야 한다. 고 양은 먹고 싶은 메뉴가 있어도 선택할 수 없다. 하루에 쓸 수 5,000원. 하지만 다 써 본 적이 없다. 가격에 맞게 카드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카드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되지만 어쩔 수 없다.
고 양은 왜 편의점만 찾는 걸까? 아무 식당에서나 급식카드가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지자체와 사전에 협의가 된 식당만 급식 카드를 사용 있다. 턱없이 부족한 가맹점 그리고 어린아이가 혼자서 밥 먹기에는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가맹점 관리. 세심한 관리 부족으로 고 양 같은 어린아이들의 상처는 더욱 깊어간다.
고 양의 어머니는 한 달에 12만 원이 충전되지만, 평균 4~5만 원은 쓰지 못한다고 했다. 가격이 맞게 쓸 수 있는 메뉴가 없다는 것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2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김 모 씨는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고 있다.
고 양의 어머니 김 씨는 “걱정도 되고 해서 편의점에서만 쓸 수 있도록 합니다. 편의점에서도 도시락은 먹지 말라고 합니다. 어린아이에게는 기름기가 가득한 도시락이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차라리 우유랑 삼각 김밥만 먹으라고 합니다.”라고 했다.
이어 “급식카드가 쓸 수 있는 음식점 목록을 받았지만, 메뉴도 정해져 있습니다. 집에서도 멀고 애들이 너무 어리고, 무시당할까 봐 무서워서 멀리 못 보냅니다.”며 힘겹게 말했다.
지원대상(아동복지법 시행령 제36조 제1항)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2조 제2호에 따른 수급자나 「한부모가족 지원법」 제5조에 따른 보호대상자인 아동 등 저소득층에 해당되는 아동 중에서 결식 우려가 있는 아동을 대상으로 급식 지원을 하여야 함.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2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김 모 씨는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고 있다.
지원 연령 : 18세 미만의 취학 및 미취학 아동(아동복지법 제3조) 다만, 18세 이상인 경우에도 고등학교 재학 중인 아동을 포함하며, 18세 미만인 학교 탈락 아동의 경우에도 지원.
급식카드의 지원 단가는 지자체마다 다르다.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시는 5,000원, 경기도는 4,500원이며, 나머지 15개 시·군은 4,000원 이하이다.
서울시의 급식카드 이용 아동은 2만 7,000명이 넘지만, 가맹점은 1,900여 개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편의점에서 이용하는 아동이 70%가 넘는다.
아동 급식 지원은 정부와 지자체의 세심한 역할이 중요하다. 일부 가정은 아동 급식카드 제도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자체의 단순 행정 지원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입장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실정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2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편의점에서 고 모양이 익숙한 듯 삼각 김밥과 흰 우유를 보여 주고 있다.
충전된 지급액이 12만 원 중에서 4~5만 원인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 사용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을 못 하는 환경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지자체에서 메뉴나 품목 등을 세심하게 신경을 써 활용도 높은 급식카드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자체에서 혜택 가정을 방문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대상자에게는 카드 사용에 대한 교육을, 가맹점 업주들에게는 서비스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창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끼니를 걱정한다면 어떨까요? 밥 한 끼에 고개를 푹 숙여 눈치를 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져야한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이미 돈을 번 기성세대가 (정작 젊은 세대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고 있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이후 21만명이나 동참한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유일한 탈출구로 여겼던 가상화폐를 규제하는 데 대한 젊은 세대의 분노, 그리고 '세대 갈등'의 단상을 보여주는 일성(一聲)이다. 이렇듯 가상화폐 논란을 둘러싸고 기성세대에 대한 2030 젊은 세대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스스로를 '코인(coin) 세대'라고 자조하는 젊은 세대는 직장과 주식, 부동산 등 이미 모든 것을 갖고 진입장벽을 높게 쌓은 기성세대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최 모씨(24)는 "가상화폐 규제는 유일하게 남은 계층 이동 수단마저 막는, 기득권을 위한 대책"이라며 "취업도 결혼도 어려운 젊은 층은 꿈도 꾸지 못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열풍을 '투기'로 보는 50·60대 중장년층은 젊은 세대의 대척점에 섰다. 자녀들의 가상화폐 투자에 반대한다는 직장인 박 모씨(55)는 "학업과 취업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젊은이들이 투기에 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자녀 교육비, 조기 은퇴, 준비 없는 노후로 불안한 우리도 기득권층이 아닌 피해자"라고 말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평창동계올림픽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놓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세대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붕괴된 계층사다리에 분노하는 젊은 세대는 "메달권 밖에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단일팀 구상을 강행하자 자신들과 동일시하며 정부 정책을 기성세대의 '갑(甲)질'로 보고 있다. 더욱이 첨예화되는 '세대 갈등'은 전통적 균열선인 이념·지역마저도 넘어섰다. 젊은 층의 지지가 높던 여권 스타 정치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가상화폐는 튤립버블"이라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가상화폐 규제와 단일팀 구상에 대한 젊은 층의 반대에 문재인정부마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처럼 불과 몇 년 새 '세대 갈등'이 한국을 규정짓는 핵심 화두로 등장했다. 부모와 자식 세대 간 감정 대립으로만 봤던 세대 갈등은 저성장·고령화 사회와 맞물려 희소 자원을 둘러싼 경제적 대결구도로 확산하고 있다. '386세대' 'X세대'를 지나 최근 등장한 'N포 세대'는 여전히 기득권을 쥐고 자신들의 미래를 가로막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청년=비정규직=88만원 세대' '중장년=정규직=누린 세대'라는 인식이 세대 간에 좁힐 수 없는 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세대 갈등에 대한 우려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만 19~75세) 남녀 36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2%는 "세대 갈등이 심하다"고 답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중1~고3 청소년 65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72.1%가 "세대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세대 갈등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한 응답자도 66.6%에 달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이해관계 충돌이 세대 갈등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고 경고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현재의 세대 갈등은 주택 문제를 비롯한 경제정책과 관련해 기성세대가 잘못 설계한 여러 가지 제도에 기인한다"며 "젊은 세대 입장에선 '기성세대가 제도를 잘못 만들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문제, 4차 재정계산에 따른 국민연금 개혁을 포함한 복지제도가 '세대 갈등'에 불을 붙일 최대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9.9%까지 치솟았다. 전체 실업자(102만8000명) 가운데 청년실업자(43만5000명) 비중만 42%를 넘는다.
반면 자녀 사교육비와 주택비용 부담 으로 준비 안 된 은퇴에 내몰린 중장년층도 일자리를 찾거나 창업에 나서고 있다. 노인빈곤율이 49.6%에 달하다 보니 은퇴 후에도 쉬지 못하는 노인(65세 이상) 비중이 3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5%)의 2배를 훌쩍 넘는다. 이러다 보니 '아들 세대'는 '아버지 세대'를 '일자리의 적'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세대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 중 하나가 편의점이다. 실제 편의점 '알바'에 뛰어드는 중장년층이 늘면서 편의점은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 벌어지는 최일선으로 변했다. 더욱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 같은 편의점 일자리마저 줄면서 세대 갈등은 청년 '알바' 대 '편의점주', '청년 알바' 대 '중장년층 알바'로 다원화하는 양상이다.
서울 관악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최 모씨(54)은 "은퇴 후 편의점 창업에 나서 한 달에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처지인데, 아르바이트생들이 '갑'으로 대하는 걸 느낄 때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다른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 모씨(51)도 "젊은이보다 성실하고 결근도 적어 60대 어르신을 한 명 채용했다"며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직원 1명을 줄여야 하는데 대학생과 어르신 중 누구에게 (그만두라는) 어려운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해 정부가 '세대 간 (일자리) 빅딜'까지 들고 나오면서 오히려 세대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학 졸업장만으로 취업이 가능하던 예전과 달리 계층사다리가 무너졌다는 점도 고용 불안에 대한 분노를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돌리는 주된 요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중산층 진입을 위한 '티켓'으로 여겨졌던 대학 졸업장의 가치(투자수익률·ROI)는 1987년 12.5%에서 2015년 6.7%까지 급락했다. 같은 노력을 하고 동일한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젊은 층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심각한 고령화와 맞물려 급증하는 복지비용을 청년층이 부담해야 한다는 불만과 박탈감도 세대 갈등의 한 축을 차지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노인 숫자를 의미하는 '노년부양비'는 올해 2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이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셈이다. 2050년에는 노년부양비가 72.6%에 달해 생산가능인구 1.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 층의 부담이 더욱 늘어나는 셈이다.
반면 젊은 층이 받을 혜택은 가파르게 줄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가 누리는 수익비는 미래 세대로 갈수록 급감한다. 수익비는 급여 수입을 보험료 지출로 나눠 계산한 값이다. 연구 결과 1930년생 수익비는 4.82인 데 반해 1985년생은 1.88까지 낮아졌다.
최기홍 국민연금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초기 세대의 높은 수익비는 낮은 보험료와 높은 소득대체율 때문"이라며 "이후 연금 수급 연령이 높아지고, 소득대체율이 낮아지면서 수익비가 낮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기성세대가 누리는 연금 혜택을 젊은 세대가 부담하는 '세대 간 재분배'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대로라면 젊은 세대의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현재 소득의 9%인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2060년 이후에는 기금 자체가 고갈돼 200조원 넘는 돈을 그해 근로소득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에 따라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릴 경우에는 기금 고갈 시기가 4년가량 앞당겨지고 부담액도 연 300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20~24세인 청년층이 65세를 맞아 연금을 받게 될 시점이라는 점에서 젊은 세대의 불안감과 분노는 크다.
결국 해결책은 세대 간의 '제로섬 게임'을 서로 '윈윈'하는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핵심은 고착화된 저성장 구조 탈출을 통해 국가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갈등은 결국 국가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경제가 지속적으로 꾸준히 성장하면 혜택과 부담이 일방적으로 한쪽 세대에 몰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복지제도의 대대적인 개혁, 그리고 이를 통한 세대 간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도 "사회 전체가 고통을 분담하고 양보하는 세대 공감을 이뤄야 한다"며 "특히 공적연금과 관련해선 보험료와 급여 수준에 대한 세대 간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