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꽃꽃이-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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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 죄인이었으나 선택받은 자

1. 인적 사항
⑴ 야곱과 레아의 넷째 아들(창 29:35). ⑵ '유다'는 '찬양'이라는 뜻.
⑶ 유다 지파의 창시자. ⑷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됨(마1:2,3).
2. 생애 주요 사건
유다는 뛰어난 지도자로 부족을 평안케 이끌었으며 궁극적으로 다윗과 메시야로 이어지는 왕권을 약속 받았다.
⑴ 죄인인 유다 : 죽은 아들의 아내인 다말과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음(창38장).
⑵ 유다에 대한 야곱의 축복(창 49:8-12).
① 여호와께 찬송. ② 유다는 탁월하다.
③ 민족의 우두머리가 된다. ④ 사자와 같은 권능을 지님.
⑶ 유다 지파
① 가나안 정복 시대(B.C.1405-1390년) : 다른 지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함
② 사사 시대(B.C.1390-1050년) : 사사 웃니엘이 유다 지파 사람임(삿3:8-11).
③ 통일 왕국 시대(B.C.1050-930년) : 다윗과 솔로몬이 이 지파로부터 배출됨.
④ 분열 왕국 시대(B.C.930-586년) : 북부 10지파로 된 북왕조 이스라엘이 분리한 후에 유 다는 남방왕조 유다왕국을 가리키는 명칭이 됨. .
⑤ 신약 시대(B.C.4년 이후) ; 이 지파 후손 중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함(마1:3,16).
3. 주요 업적.
⑴ 뛰어난 지도자임.
⑵ 동생 요셉을 살해 음모 시에 유다는 죽이지 말고 상인에게 팔자고 건의함(창 37:26-28).
⑶ 야곱의 축복을 통해 다윗과 그리스도를 탄생시킴.
4. 주요 실수
⑴ 형제들과 함께 요셉을 노예로 이스마엘 상고들에게 팔아 넘김(창37:26-28).
⑵ 며느리 다말과 음란죄를 범함(창38장).
⑶ 며느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음(창 38:11-14).
5. 교훈
⑴ 유다는 하나님과 자부에게 범죄한 죄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다. 우리도 모두 육신의 사람으로서 매일의 생활 속에서 은밀히 죄를 저지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심을 깨닫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
⑵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까지 기다리라는 고난의 기간을 준 뒤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러한 유다와 같이 우리도 이행해야 할 의무를 그럴듯한 핑계로 회피하고 있지 않은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특히 바쁘다는 등의 세속적인 이유로 주님께 대한 우리의 도리를 잊어버리고 있다면 속히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의무를 실행해야 할 것이다(요4:14;신26:16).
⑶ 유다가 자기의 막내 동생 베냐민을 위해 행한 중재의 역할은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는 예수님을 연상케 한다. 즉 유다는 진정한 마음으로 늙은 아버지와 그의 어린 아우와의 재회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따라서 베냐민이 풀려나기만 한다면 기꺼이 노예까지 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유다를 통해 절실히 느껴보아야 한다.

 

   

   

선교특집 순복음 해외신학교-A국 영산제자훈련학교

2002년 개원, 이후 분교와 미션센터 세워 차세대 교육

영산제자훈련학교는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가 미복음화 지역인 A국에 임하길 소망하며 목회자와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2002년 개원했다. 이후 2009년에는 B분교가 설립됐다. 또 D시에 미션센터를 둬 이를 영적 사역의 전초기지로 삼아 제자들 간의 연합과 협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A국은 선교제한국가로 전체 주 가운데 6개 주에서 반 개종법안을 시행하고 있으며 자국민 목회자들도 물리적 핍박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영산제자훈련학교는 순복음 영성으로 현지인을 제자로 훈련하고 교회 개척을 진행하고 있다.

 A국은 기독교인 비율이 2% 이하로 아직도 2000여 개의 미전도 종족이 존재한다. 영산제자훈련학교는 순복음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훈련하고 졸업생들을 통해 북쪽 지역에서 직·간접으로 복음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북쪽 지역은 집중적인 선교대상지로 무슬림이 많이 살고 있다.
 영산제자훈련학교는 한 학년에 10개월 과정으로 교육한다. 함께 생활하며 기도와 금식, 말씀 훈련을 받는 것은 기본이며 개인에게 주신 은사를 개발하는 영적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또 졸업을 앞두고 실제 사역 경험을 위해 선배들의 사역지를 방문해 2주간 실습하는 아웃리치가 진행된다.

 영산제자훈련학교는 향후 전문 교수진과 과목을 개설해 서아시아 지역 복음화를 이끄는 순복음 신학의 전초기지가 되고자 노력할 예정이다. 또 영산제자훈련학교를 졸업한 제자 목회자들과 북쪽 지역을 대상으로 ''300개 가정 교회 개척''이라는 비전을 구체적으로 이뤄갈 계획이다.
 한편 미션센터가 있는 D시는 2500만 명 인구 중 35세 미만 청년이 65%를 차지하는 곳으로 향후 청년 리더십을 위한 다양한 훈련과정을 개설하고 어린이  찬양 전문사역 등을 활성화해 나갈 방침이다. 주의 복음을 전할 선한 군사들을 세워나가는 게 영산제자훈련학교의 목표이다.


시내산의 위치가 화제입니다

지금 기독교계에서는 모세가 출애굽하면서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내산의 위치가 화제입니다.

지금까지 시내산은 시나이 반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며, 실제로는 사우디 아라비아 북쪽에 있다는

주장이 등장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김승학씨가 '떨기나무'(두란노)란

책에서 이처럼 놀라운 사실을 수많은 증거 자료와 함께 제시했습니다.

저도 그 책을 사서 정독을 했는데 공감이 갔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교계에서 받아들여지던 시내산의 위치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경로를 수정하지 않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해도,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은 책을 사서 한번 읽어보십시오.

위험을 무릅쓴 저자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래 기사는 기독교 전문지에 게재된 저자 김승학씨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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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내산은 사우디에 있다"

<과연 이 주장이 맞을까?>

 

 

김승학 박애병원 행정원장 주장…"시나이반도 시내산은 가짜"

 

양봉식 sunyang@amennews.com

 

  
▲ 김승학 원장이 주장하는, 모세가 친 호렙산 반석이다. 왼쪽 옆으로 김 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이 반석은 뒷 쪽에서 찍은 것으로 그 크기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
“지금 많은 기독교인들이 시내산이라고 믿고 순례하는 시나이반도에 있는 무사산은 시내산이 아닙니다. 진짜 시내산은 사우디 아리비아에 있는 라오즈 산입니다.”

 

김승학 원장(박애병원 행정원장)의 주장은 그동안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있는 무사산을 시내산이라고 믿고 성지순례를 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충격적이고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로마 가톨릭이 정한 시내산을 다녀온 사람들 중에 일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것은 시내산 지경에는 애굽을 탈출한 25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모일 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승학 원장이 주장하는 라오즈산은 그런 고민을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그가 말한 사우디에 있는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있을까? 이런 의문은 김승학 원장을 세 번 만나면서 사라졌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김승학 원장이 라오즈산을 탐험하면서 기록한 탐사 이야기를 담은 <떨기나무>(두란노)라는 책 때문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탐정 소설 갈은 이야기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책을 탐독하고 다시 김 원장을 만나야 했다. 그의 책 속에 담긴 것들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궁금했던 것을 인터뷰했다.

- 한국 사람으로서 사우디에 20년 동안 머물렀던 이유는 무엇인가?

  
▲ 김승학 원장이 시내산의 탐사를 기록한 <떨기나무> 책.
“1987년 해외개발공사가 사우디 진출을 희망하는 의료요원들을 선발해 영어 통역을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해 사우디 지잔 파드립 병원에서 최초로 침구과를 운영했다. 당시 나는 침술 전문가였다. 사우디에서는 침 하나로 사람이 병을 고치는 것을 신기해했다. 1988년 제다지역에 있는 제다종합병원에서 침구과를 개설했다. 이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병이 나았다. 사우디 일간지에서 내가 하는 침술의 우수성을 보도했다. 이 보도를 보고 이슬람 메카 주지사(이슬람 총재)였던 마지드 빈 압둘아지즈 왕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목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있어 곧 수술을 할 예정이었는데 내 침술 기사를 보고 혹시 하는 마음에서 나를 찾은 것이다. 침 하나로 하나님은 그의 목 디스크를 낫게 하셨다. 그것이 계기가 돼 왕자 주치의로 2003년까지 지냈다. 그리고 왕자가 간경화로 사망하자 압달라 국왕으로부터 국왕 주치의 제안을 했지만 시간을 끌면서 2006년 8월 3일 출국까지 9차례 더 성지탐사를 하고 모든 자료를 가지고 한국에 귀국했다.”

 

- 사우디의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는 생각은 언제 했는가? 라오즈산을 탐험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그 산이 정말 시내산이라고 하면 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사우디 왕실의 왕자 주치의가 되었을 때 솔직히 나는 하나님께서 왕자를 전도하기 위해 그런 일을 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2000년에 왕자의 약제를 구입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길에 한국을 잠깐 들렀다.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갔다가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시나이반도에 있는 시내산을 가보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과 너무 달라 당혹스러웠다면서 어떤 분으로부터 입수한 테이프를 보여주셨다. 그 비디오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미디안 땅에 있는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론 와트와 그의 아들이 찍은 <디스커버리>라는 제목의 비디오였다."

-그 비디오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는가? 조작된 비디오라고 의심하지는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디오에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반도 방향에서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쪽으로 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아라비아 북서부의 홍해 횡단 기념기둥과 진짜 시내산이라는 라오즈산이 금송아지 제단도 촬영되어 있었다. 탐험가인 론 와트는 금송아지 제단에서 없앤 금을 땅에 묻었다는 전설을 믿고 그 보물을 캐기 위해 요르단을 거쳐 사우디아라비아에 밀입국했다. 그는 라오즈산을 탐사하다가 출애굽에서 말하는 지형과 너무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경찰에 적발당해 모든 자료를 빼앗기고 추방당했다. 1989년의 일이다. 그 이후에 아들과 함께 다시 잠입하여 남긴 것이 비디오테이프였다.”

- 그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된 적이 있는가?
“론 와트는 촬영한 비디오를 영국 BBC 방송국을 통해 방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의 테이프에 대해 성경학자들이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이유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 않았다. 나는 그 비디오를 본 뒤로 하나님이 왜 나를 16억 이슬람 지도자인 왕자의 주치의라는 사회적 직분을 주셨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시골에서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다. 성경을 가르치면서 늘 출애굽 기사에서 고민했던 것이 모세는 분명히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다고 했는데, 그리고 그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오라고 했지만 정작 시내산은 미디안 땅에 있지 않고 시나이반도에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그리고 실제로 시나이반도 시내산에 올랐을 때, 그 시내산은 온통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어 25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에 앉아 있었을까라는 난감한 기억이 있다.”

- 비디오를 본 뒤에 어떤 일을 시작했는가?

  
   ▲ 성경을 들어 시내산을 설명하는 김승학 원장
“하나님이 분명히 내게 시내산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믿었다. 시내산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비디오테이프를 정밀하고 자세하게 반복해서 보았다. 그리고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사우디는 이슬람국가의 종주국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관련된 어떤 서적도 접할 수 없다. 인터넷 웹 사이트로 함부로 검색할 수 없다. 정부는 대형 안테나가 있는 전파 감시국을 통해 전화, 팩스, 무선 교신들을 도청하고, 인터넷 대형 단말기에 감시용 서버를 부착해 섹스, 인권, 타종교와 관련한 사이트 접근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출애굽과 관련한 기독교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왕자의 건강이 악화되어 나는 사우디를 벗어나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독일, 미국 등지를 다닐 수 있었다. 해외에서 왕자를 돌보며 시간이 나는 대로 성경을 정독하고 시내산이 미디안 땅에 있다는 관련 자료를 모았다. 또한 론 와트 외에 미 특수부대 요원이었던 로버트 코루눅 박사와 아폴로 15호에 동승했던 짐 래리라는 사람이 라오즈산(시내산)을 정탐했다는 사실과 함께 이들이 사우디에서 강제추방당하고 그 후에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는 주장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라오즈 산은 언제 가보았는가? 왜 그 산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인가?
“1987년이다. 왕자가 휴가를 가던 때에 나도 휴가를 얻어 첫 탐사를 시작해서 2006년 8월까지 모두 12차례 탐사를 했다. 7년 동안 하나님은 라오즈산을 탐사하도록 하셨다. 그 지역은 군사경계지역으로 왕실의 허가가 없으면 출입할 수 없다. 미사일 기지가 있고 그 정상에서는 이스라엘도 보인다. 군사적 요충지이면서 고고학 지역을 묶어 놓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돼있다. 첫 탐사는 아내와 두 아이들이 함께했다. 그곳은 낮의 온도가 40도에서 50도가 넘는다. 오랜 동안 준비했지만 첫 탐사부터 우리는 벽에 부딪쳐야 했다. 생전 가보지 못한 지역에 3천키로가 넘는 곳을 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곳에는 특수부대, 비밀경찰, 그리고 훈련된 유목민들이 세 겹으로 감시했다. 사막지역이라 차로 움직이면 금방 포착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눈을 감기기도 하고 또 왕자 주치의라는 신분을 요긴하게 쓰이도록 하셨다.”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가짜이고 사우디에 있는 라오즈산이 진짜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사에서 한번도 현재의 시내산을 의심하지 않았지 않는가?
“지금의 시내산은 기원 후 527년 순례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조된 성지일 뿐이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기독교인들은 성지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강림하시고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신 성스러운 시내산은 찾을 수 없었다. 요세푸스는 성경을 근거로 아라비안의 미디안 땅에 시내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로마교황청은 시내산을 순례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기원 후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무사산의 북서쪽 언덕배기에 캐더린 성당을 세운다. 거기를 성지로 정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시내산으로 명명하여 공포해 버린 것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역사가 왜곡되어 온 것이다. 주후 5세기 이전에는 거기를 시내산이라 부르거나 기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 라오즈 산을 배경으로 바위에 새겨진 많은 암각화 중에 하나다. 김 원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이 일곱촛대의 그림이다. 밑으로는 고대 히브리문자가 새겨져 있다.
- 그렇지만 기독교도 현재의 산을 시내산이라고 믿고 성지순례를 하고 있지 않은가? 왜 기독교의 고고학자들은 가톨릭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점에서 기독교는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내산이라고 부를 만한 산을 찾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시나이반도는 1967년 이스라엘에 의해 침공 당하기 전까지는 외부인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점령을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애굽 땅이다. 시나이 반도를 이스라엘이 6일 전쟁을 통해 점령하여 1982년 4월까지 15년 동안 했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조상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시나이반도를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바둑판 쪼개듯 면밀히 뒤졌으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들은 지금의 시내산(무사산)을 시내산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조상의 흔적을 찾아내고 시나이반도에 시내산이 있었다면 절대로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 그렇다면 그들은 어느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 만나를 갈아먹은 맷돌로 보이는 것. 이런 맷돌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십계명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면 지금 시내산은 예전에 애굽 땅이었다. 하나님은 미디안 땅에 있는 호렙산에서 다시 모세를 만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엘림과 신 광야를 지나 시내광야에 가서 십계명을 받고 떠날 때까지 기간은 정확히 11개월 5일이다. 애굽 군사들이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11개월 동안 애굽 땅인 시나이반도를 떠돌아 다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분명히 애굽을 떠나게 하셨다. 그렇다면 그곳은 지금의 시내산이 아닌 다른 곳에 시내산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 홍해에 대한 성경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홍해를 건넌 것은 갈대밭을 건넌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존이 출애굽 경로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널 필요가 없다. 고센에서 시내산까지의 여정에는 결코 홍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여기서부터 기존의 출애굽 경로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홍해는 수심이 1천2백미터나 된다. 대륙이 이동하면서 생긴 깊숙한 절벽의 바다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설령 하나님이 그곳을 갈랐다고 해도 건널 수 없다. 1천2백미터나 되는 절벽을 타고 내려가 다시 그 건너편 절벽을 기어 올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 홍해 기사를 읽고 그 현장을 갔을 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남께서는 홍해의 한 곳에 바닷길을 내셨다. 그 바닷길은 솔로몬이 자신의 조상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을 기념해서 양편에 기념기둥을 세웠다. 그 곳에는 유일하게 삼각주처럼 모래해변이 12킬로미터로 펼쳐져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사흘 길을 걸어 이곳에 도착하도록 했다. 이곳의 바다 수심은 120미터로 경사 6도의 완만한 유일한 바닷길이다. 하나님은 이곳의 바다를 가르시고 건너가게 하셨다.”

  
▲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다는 홍해, 양 편으로 솔로론 기둥이 서 있고 이곳이 유일하게 수면의 깊이가 120m다. 하나님은 이곳을 가르시고 그의 백성을 건너게 하셨다. 론 와트 탐험가는 이 곳을 뒤져 애굽의 말굽과 병거들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솔로몬 기둥이 증거의 전부인가?
“그렇지 않다. 시나이 편에는 기둥이 서 있지만 사우디 쪽에는 깃발만 꽂혀 있다. 사우디 정부가 이 사실을 알고 기둥을 잘라 바다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론 와트는 만약 그 지역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곳이라면 바다 속에 그 증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바다 속을 탐사했다. 그리고 그 바다 속에서 애굽의 말굽과 애굽의 병거들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지금 애굽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의 왕자로 살았다. 왕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있던 그는 애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금도 구리와 터키석을 비롯한 광산이 있는 시나이의 시내산(무사산)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왜냐면 예로부터 광산이 있는 곳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사흘 길을 걸어 누웨이바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홍해를 건넜던 것이다.”

 

- 라오즈 산을 탐사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자료들은 무엇인가?

  
▲ 성경에는 만나를 맺돌이나 절구에 찧어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라오즈 산 아래서 발견한 돌절구 중 하나다.
“만약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라면 성경에 기록한 대로 있어야 할 것을 적어보았다. 엘리야 동굴(열왕기 상 19:9),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쌓은 지경(출 19:12), 성막을 친 장소(출애굽기 26장), 아론의 금송아지 단(출 32장), 광야 산에 흐르는 물(신 9:21), 모세가 친 므리바 반석 등이었다. 이런 내 생각은 라오즈 산을 오르면서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누가 꾸며놓았다고 할 만큼 라오즈 주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 라오즈라는 뜻은 아몬드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시내산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더구나 마실 물이 없어 호렙산 반석을 치게 하셨다고 했는데 현재 시내산인 호렙산과 르비딤은 거리가 매우 멀다.
“라오즈란 뜻은 바로 아몬드란 뜻이다. 실제로 그 산은 아몬드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한글개역성경에 번역된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는 살구나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 성경이나 영어 성경은 아몬드 나무라고 기록되어 있다. 너무 신기한 일이 아닌가? 라오즈 산을 탐사했을 때 우리는 그 곳에서 호렙산의 반석을 목격했다. 목말라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치게 하셨다(출 17:6). 그 반석은 구릉이 있는 가운데 높게 쏟아 있었다. 높이는 8층 높이 정도로 약 22미터 정도였다. 그 반석은 둘로 갈라져 있었고 그 틈은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였다. 물론 물이 반석에서 솟구쳤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이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 만큼 바위는 구릉에서 우뚝 서 있었다. 현재 시내산은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가 48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성경과 다르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가까운 곳이었다. 우리는 이 반석 밑으로 산 단을 발견했다. 그곳은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 한 뒤에 세운 단(출 17:15)이었다. 바로 반석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 다른 흔적에 대해 알고 싶다. 가령 지경이나 이스라엘의 주거 흔적 같은 것이 있었는가?
“물론이다. 그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하나님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이곳을 잘 보존하게 하셨다. 이곳은 바로 7년에서 10년에 한 번 정도 내릴 정도로 메말라 있다. 이곳에 사는 유목민들 스스로가 이곳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나간 곳이라고 말한다. 라오즈산을 배경으로 수많은 암각화들이 그려져 있다. 고대 히브리문자는 물론 이집트의 각종 신들의 형상도 있다. 또한 만나를 갈아먹거나 찧어 먹기 위해 사용된 수많은 맷돌과 돌절구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나도 그곳에서 맷돌과 절구를 가져왔다. 홍해를 바라보는 쪽으로 지경이 넓게 쌓여 있다. 또한 천막을 친 주거 형태의 돌이 당시 그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천막을 친 주거흔적으로 보이는 것. 김 원장이 천막 입구에 출입문을 표시한 곳에 서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곳에서 천막을 세우고 돌들을 천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고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동할 때는 그대로 천막만 거두었다. 이런 주거 흔적이 너무 많다고 한다.
- 이번 자료들과 라오즈산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가 놀랄 만하다.
“라오즈에 대한 자료들은 한국교회는 물론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이다.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교회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이 자료를 처음 한국에 공개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한 교수를 만났을 때 내게 ‘아직도 출애굽을 믿고 있느냐’는 말에 생각을 바꾸었다. 일부 자료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보냈다. 그들의 반응은 정말 놀라웠다. 기존의 성지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보지 못한 많은 학자들이 그 이론들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라오즈 산에서 아론의 금송아지 재단도 보았다. 또 그곳의 지명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지명이었으며 성경과 일치했다. 미디안 땅, 그리고 모세의 장인의 집인 이드로의 집도 가 보았다. 명백한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경이롭게 보고 경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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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자 집사(은평대교구)이영훈목사 심방예배


이영훈 목사 "주님 의지할 때 새 힘 얻고 승리해"
목사님 가까이서 뵙고 기도 받는 것 소원이었던 송 집사
자녀들 영혼 구원과 영육간의 강건함 위해 합심 기도

"시력이 나빠져서 교회를 가도 이영훈 목사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앞으로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뵙고 기도도 받다니 꿈만 같아요."
 이영훈 위임목사가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송성자 집사(은평대교구)의 가정을 방문한 14일 송 집사의 꿈이 이뤄졌다.
 송 집사는 3년 전 처음 교회에 나갈 때만 해도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18년 남편이 담낭암으로 먼저 천국에 가고 난후 얼마 안 되어 먼 곳의 것은 안보이고 가까이에 있는 물체의 형상만 겨우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저하됐다. 뒤늦게 안과전문병원을 찾아갔지만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황반변성 질환이라고 했다.

 이영훈 목사는 이날 이사야 40장 28~31절 말씀으로 송 집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주님만 믿고 의지하면 주님께서 새 힘을 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면 문제가 해결되고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영훈 목사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일생의 가장 큰 복"이라며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충만해서 자손만대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되고 기도가 응답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송 집사는 "목사님께서 저희 집을 방문해 주신다는 소식에 밤에 잠도 못 잤다. 이렇게 제 눈앞에 목사님이 계신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며 "시력이 나빠진 뒤 목사님을 한 번만이라도 가까이서 뵙게 되기를 매일같이 기도했는데 기도가 이루어졌다. 누추한 집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 너무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올해로 78세를 맞은 송 집사는 이영훈 목사에게 생계로 바빠 교회 출석을 못하는 자녀들의 영혼 구원과 자신의 시력이 회복되도록 기도를 요청했다.

 이영훈 목사는 송 집사의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도록, 영육간에 강건함을 얻게 되기를 안수 기도했고 준비한 선물과 격려금을 전달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지만 송 집사는 교구에서 감사가 넘치는 신앙생활로 모두의 귀감이 되고 있다. 매주 지역장 장원자 집사와 박형숙 권사의 도움으로 수요예배와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지·구역예배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송 집사는 "앞으로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든 기도의 간구가 응답될 것을 믿고 구역 식구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다짐했다.

 


선교특집 순복음 해외신학교-인도네시아 영산신학대학교

인도네시아 전역 및 세계 복음화 전진 

인도네시아에 설립된 영산신학대학교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아시아와 세계 복음화를 위해 순복음의 영성을 갖춘 예수님의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주님이 명하신 처소에서 교회를 개척해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영신신학대학교는 초기 3년간의 과정(2년은 이론 교육 1년은 실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4년 과정(3년은 이론 교육 1년은 실습)으로 커리큘럼을 변경해 훈련을 강화시켰다.

 인도네시아 영산신학대학교는 전 학기에 걸쳐 정해진 과목을 신학생 모두가 같이 배운다. 실습을 포함해 전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논문이 통과되면 졸업하게 되며 다시 3년의 동일한 과목이 시작되는 형식이다.
 전원 기숙사 생활로 학생들의 일과는 매일 새벽기도로 시작된다. 또 밤 9시부터 1시간 동안 기도시간을 보내고 신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매일 철야 예배를 드린다. 금요일 오전 10시에는 병원 전도에 나선다. 금요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2시간동안은 아시아와 세계 복음화를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배정돼 있다. 토요일 오후 3시가 되면 공원에서 전도활동을 진행한다.

 신학생들은 모두 각기 다른 섬, 다른 지역에서 살다왔기에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의사소통을 위해서 학교에서는 인도네시아 공용어를 사용한다. 학생들은 다양한 배움과 훈련을 통해 각자 하나님께 받은 비전대로 사역지를 정하고 파송된다. 졸업생들이 파송되는 지역은 인도네시아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네팔 심지어 아프리카 우간다로도 파송된 이가 있었다. 성령과 함께 한 졸업생들의 선교 열정은 세계를 교구삼아 그 지경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영산신학대학교는 졸업생들 대상으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교회개척기’,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교회성장기’,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선교기’로 정하고 이에 맞춰 졸업생들과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해 전진하고 있다.


코로나19 극복 위해 후원금 전달

성동·광명·분당교회 성도들 정성 모아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경북지역을 돕는데 써 달라며 순복음성동교회(1000만원) 여의도순복음광명교회(1000만원)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2000만원)에서 후원금 총 4000만원을 우리 교회에 기탁했다.
 이영훈 위임목사는 10일 성전비서실에서 열린 후원금 전달식에서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는데 이렇게 세 교회에서 앞장서 국민들을 돕기 위해 힘을 모아주니 감사하다”면서 “환자들과 의료진들에게 성금이 잘 전달되어 이 환난이 속히 극복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영훈 목사는 또 “이 희망의 씨앗을 시작으로 교회가 국가적 재난에 적극적으로 나서 고통을 분담하고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기를 바란다”며 “이단 신천지의 실체가 이번 집단감염 사태로 드러났는데 그들이 해체되어 한국교회가 정화되고 부흥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순복음성동교회 정홍은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대한적십자사에 10억 원을 기부한 것을 보고 성도들과 힘을 합하여 성금을 마련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해나가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광명교회 엄태욱 목사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이번 긴급 지원에 동참하게 됐다”고 밝혔다.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황선욱 목사는 “이웃의 고통을 함께 이겨내기 위해 정성을 모았다.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선교특집 순복음 해외신학교 - 케냐 영산신학대학

아프리카 선교사역 중심 교육센터

케냐 영산신학대학은 1993년 아프리카 선교 비전을 위해 동부아프리카 선교 전진기지로 세운 영산 아프리카 선교센터 안에 세워졌다. 오순절 신앙과 선교를 통해 아프리카에 새로운 부흥을 꾀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한편 현역 목회자들을 재훈련시켜 장차 케냐와 동부 아프리카의 교회를 이끌며 정통 오순절 신학적 지성과 영성을 갖춘 순복음의 영적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케냐 영산신학대학은 현재 나이로비 중심에서 20㎞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7920㎡(2400평) 부지에 강의실 2개 60명 수용이 가능한 기숙사 6실 도서관 식당 채플을 갖추고 있다. 2년 6학기제로 운영 중인 케냐 영산신학대학에는 남학생 38명 여학생 14명 총 52명이 재학 중이며 케냐 출신이 32명 에티오피아 출신이 8명 남수단 출신이 9명 북수단 출신이 3명 생활하고 있다.

 2006년 케냐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케냐 영산신학대학은 2018년까지 11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이중 26명이 교회를 개척하고 47명이 교회 사역자로 활동 중이다.

 케냐 영산신학대학은 특히 남·북수단처럼 복음의 문이 닫혀 있는 국가의 학생들을 훈련시켜 본국으로 파송,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은 영산신학 오순절신학 4차원의영성 교회성장학 등 필수과목을 반드시 이수하고 매학기 영성훈련 주간을 정해 졸업생들이 개척한 교회로 전도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노방전도 축호전도 설교 훈련 무슬림 전도 등 다양한 사역 경험을 쌓고 있다.

 앞으로 케냐 영산신학대학은 동아프리카로 선교 영향력을 확장시킬 계획이다. 영산신학대학은 아프리카의 교육센터로서 순복음의 아프리카 선교사역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단 ― 하늘의 권리를 빼앗긴 지파

1. 인적 사항
⑴ 야곱과 빌하에서 태어난 5번째 아들(창30:1-6). ⑵ 단 지파의 시조임.
⑶ '단'은 '재판하는' 또는 '재판관'의 의미.
2. 생애 주요 사건
단은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를 도입한 지파로 결국은 종말에 구원받을 지파의 명단(계7:5-8)에서도 제외된다.
⑴ 단을 향한 야곱의 예언(B.C.1875년): ① 이스라엘 역사에서 재판관의 역할을 맡게 될 것임 (창49:16). ② 뱀과 독사 같은 간교함으로 남을 해칠 것임(창49:17).
⑵ 우상 숭배로 물든 단 지파
① 광야 방랑 시대(B.C.1527-1406년) : 장정 수가 62,700명으로 유다 지파 다음으로 큰 지파 임. 에발산의 의식에서 저주를 선포함(신27:13).
② 가나안 정복 시대(B.C.1405-1390년) : 유다의 에브라임 사이의 땅을 분배받음(수19:40-48)
그 땅을 아모리 족속에게 빼앗김(삿1:34-36).
③ 사사 시대(B.C.1390-1050년) : 가나안 최 북방인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곳을 '단'이라 부름 (삿18:27-29). 라이스로의 이주 도중 미가의 우상을 약탈함(삿18:11-27). 우상 숭배에 물 듦(삿18:30). 드보라 시대에는 일부만 남방에 남고 거의 북방 라이스로 완전히 이주함. 시스라의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절하여 드보라의 비난을 받음(삿5:7).
④ 통일 왕국 시대(B.C.1050-930년) : 다윗을 왕으로 추대함(대상12:22,35). 히람이 보낸 기술 자는 단 지파와 두로 사람의 혼혈아였음(대하2:14).
⑤ 분열 왕국 시대(B.C.930-586년) : 여로보암으로 인해 우상을 숭배함(왕하 10:29).
⑥ 바벨론 포수와 회복기(B.C.586-400년) : 앗시리아가 침략한 이후 잃어버린 지파가 되었 으나 일부는 남아 있었음.
⑦ 신약 시대(B.C.4년이후) : 종말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인을 맞지 못함(계7:5-8).
3. 주요 업적
⑴ 12지파 중의 하나임. ⑵ 이스라엘의 전쟁시에 돋보이는 역할을 함.
4. 단점
⑴ 반역적이고 잔악함. ⑵ 12지파 중 가장 믿음이 없음.
⑶ 신앙의 분별력이 없음(삿18:5,6). ⑷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가 이 지파에서 시작됨.
⑸ 종말에 구원받을 명단에서 생략됨(계7:5-8).
5. 교훈
⑴ 단 사람들은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곳을 단이라고 이름하였다(삿18:28,29). 이는 비록 그들이 다른 지파와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지파 중 하나임을 표하고자 했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특권을 잊지 말고 또한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그 특권을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⑵ 단 지파는 새로운 땅에 정착하자마자 그들의 모든 성공의 영광을 미가의 집에서 훔쳐온 우상에게 돌렸다. 그리고 계속 죄를 범하여 타락된 우상 숭배에 빠짐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권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즉, 우리가 자신의 생명. 위안, 희망, 행복 등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그것으로부터 떨어지려 하지 않을 때 바로 그것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 하늘의 권리를 찬탈하는 것이다(레26:1;시115:4;골3:5)..

애굽3(고센땅)                             

              
검은빛을 띠고 있는 비옥한 흙이 고센을 풍요의 땅으로 만들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이름은 ‘케메트’이다. 현재도 아랍어로는 자기 나라를 ‘미스르’라고 부르고 있다. ‘케메트’ 혹은 ‘미스르’라고 하는 이름은 ‘검다’는 뜻이다. 이집트인에게 진정한 국토의 의미는 95%의 모래가 아니라 5%의 검은 땅, 곧 고센이다. 풍요의 땅 고센은 가뭄과 홍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기적의 땅이다. 고센은 지하 170m 이상을 파도 암반이 전혀 없는 천혜의 비옥한 땅이다. 6∼7월 아프리카의 우기를 맞이하면 상류에 엄청난 양의 물이 나일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온다. 9월께 불어난 물은 나일강을 범람하게 한다. 범람한 물은 나일 주변을 비옥하고 푸르게 만든다. 평소에는 60∼70m의 나일강 폭은 홍수 때는 20㎞로 늘어나게 된다. 물과 함께 떠내려 온 나뭇잎과 짐승의 똥들은 천연의 비료로 땅을 검고 비옥하게 만들어갔다고 한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센에서 양과 염소를 키우며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을 재배하여 먹었다(민 11:5).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에도 풍요한 고센의 채소를 잊지 못했다.
 

고세 지역에 라암셋과 비돔이 있다 ; 라암셋(Rameses)은 애굽의 나일강 하류 델타 동북부에 있던 삼각주의 중앙 부분에 있는 성읍으로 나일강의 타니데익 지류 동쪽에 있는 국고성이며 요새 성읍이다. 이름은 ‘레’(Re·태양신)는 ‘그를 낳았다’란 뜻이다. 바로는 요셉과 그 친족(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애굽에서 가장 비옥하고 살기 좋은 땅인 고센 지역을 정주지로 허락하였는데 라암셋은 고센 지역 중 고정된 한 구역이다(창 47:6,11). 라암셋이 성경에서 유명한 것은 야곱 이후 400년 동안 그 후손들이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룬 후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할 때 출발지였기 때문이다. 라암셋은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국고성을 
짖기 위하여 노역에 일을 하면서 고통을 당하였다
 

고센은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소식을 듣고 아버지 야곱과 그의 식구들 70명이 이주해 터를 닦은 곳이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창 47:4) 야곱의 아들들은 바로 앞에서 그들이 살 땅을 구하였고 바로는 나라를 구한 일등공신 요셉의 식구들에게 고센에 살 것을 허락했다. 이전에 그들은 바로가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나이다”(창 47:3)고 했다. 고대에 목축은 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한 직업이었는데 그들은 대대로 이어온 가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새로운 땅에서 이참에 직업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나일강 하류 삼각주 지대 동북의 한 지역이다. 이 고센은 요셉이야기 (창37:39,50:)의 무대로서 유명하다. 여기서 야곱은 20여년만에 사랑하는 그의 아들 요셉과 다시 만났다. 아버지의 편애를 시기한 요셉의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후에 바로의 총애를 얻게 되어 출세한다. 요셉은 긴 여행으로 지치고 연로한 아버지의 목을 부둥켜 안고 흐느껴 울었다.  그 장소가 바로 고센이다.
 

 바로는 목축에 알맞은 이 고센땅에 야곱의 아들들에게 주어서 거하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짐승을 키우면서 창대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살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이적의 현장이 되었고, 하나님이 특별히 축복하였고, 이스라엘이 창대하여 국가가 되어 출애굽역사가 일어난 곳이므로 유명해 진 것입니다.  
 


고센은 풍요의 땅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별한 땅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해 이집트인들에게 혹독한 재앙을 내리셨다. 이집트인들에게 파리 떼를 보내셨지만 고센 땅을 구별하여 파리가 없게 하셨다(출 8:22). 이집트인의 가축을 죽게 하셨지만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죽지 않게 하셨다(출 9:6). 이집트인들에게는 우박을 내렸지만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다(출 9:26). 이집트인들이 사는 곳은 캄캄한 흑암이 덮였지만 고센 땅에는 빛이 있었다(출 10:23). 이런 고센의 풍요가 요즘 메말라 가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난개발로 나일강의 수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 학자들은 100년 후에는 고센의 2분의 1 이상이 해수에 잠길 것이라고 예측한다.


 


 고센 땅은 나일강 삼각주의 북동지역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 살은 특별히 축복 받은 곳입니다.(창45:1, 10) 고센(  꼬쉔)이란 뜻은 '땅 중에 좋은 곳'(창47:6) '하나님이 축복한곳' 이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후에는 축복의 땅이 아니라. 고생 땅이 되었고,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복을 가지신 하나님이 역사 할 때에는 '땅 중에 좋은 땅' 고센 이었으나, 축복의 하나님이 떠난 곳에는 고생땅 저주땅이 되었다.


구약성서에서 '좋은 땅 라암세스'(창47:11)라고도 하였던 고센땅은 하부 이집트의 델타지역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고센땅은 비교적 많은 강우량과 나일강의 손쉬운 관개시설 때문에 실제로 애굽에서 '가
장 좋은 땅'(창47:6,11)이었다.
 

라암셋의 유적들이 있는 곳
 

고센 땅에 있는 라암셋으로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고성 라암셋을 쌓았다
또한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출발하여 숙곳으로 향하였다(출12:37)



라암셋에 도착하여 언덕에 오르자 발굴된 많은 유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라암셋은 현재 산 엘 하가르(San El Hagar)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타니스로,신왕국 때에는 피 라암세스(‘라암세의 집’이란 뜻)라 불린 곳으로 고왕국시대부터 번영하여 제2중간기에는 셈족 중 하나인 힉소스에게 100년 동안 점령돼 수도가 되었다. 그후 타니스 말기 왕조 시대에도 200여년간 수도가 되었고,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까지 번영을 누렸다. 이처럼 중요한 피라암셋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람세스(라암셋)와 동일시된다고 보고 있다. 라암셋은 150년간 발굴작업이 이루어졌으나 지하수 분출로 일부분만 발굴돼 있었다. 그래서 관람이 가능한 곳은 아몬 대신전과 말기 왕조시대 왕가의 네크로폴리스(낮은 지역의 도시)뿐이다.
약간 싸늘한 날씨 속에 라암셋 유적을 살펴보기 위해 언덕을 내려가자 수많은 돌로된 유적들이 널려 있었다. 그중에는 애굽의 바로였던 시삭과 오솔콘의 무덤이 있었으며 대부분 라암셋의 석상과 우물터가 발굴되어 있었다.

오벨리스크로서 태양을 신으로 섬기는 애굽 사람들이 기념탑을 세운 것이다. 특히 거대한 크기의 오벨리스크가 7개나 된다는 사실에 당시 라암셋의 규모를 실감케 했다.


라암셋의 규모가 굉장하였을 것이다


바로의 모습일 것이다. 머리에 뱀이 있을 것으로 보아도 뱀을 신으로 섬긴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을 노예로 부렸던 바로였을 것이다




고센의 흙 벽돌로 쌓은 것이 보인다
 

국고성 라암셋에 있는 흙벽돌로된 성이 보인다.  당시 흙으로 만든 벽돌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특이한 사실은 벽돌 일부에는 짚이 있었으나 또 다른 벽돌에서는 짚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기록에 나타나 있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짚을 공급 받아 벽돌을 만들었으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보내라고 요구한 이후 바로는 그들에게 짚을 주지 않고 이전과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도록 한 사실을 상기시켜줬다(출 5:6∼14).  한 마디로 라암셋은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로 얼룩져 있는 곳이다. 라암셋에서 울려퍼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로 하여금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다(출 3:7∼10).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오묘하여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음을 라암셋의 흙벽돌 속에서도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이 라암셋에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그런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자손 번성에 대한 축복을 이루어가셨던 것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흙벽돌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역의 역사에 대한 숨결이 느껴지는 라암셋. 그러나 그런 고난도 역사의 흐름속에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을 향한 고난도 역시 잠시 뿐이며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롬 8장 18절 말씀을 되새겨본다. 아직도 이곳에는 당시 흙으로 만든 벽돌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특이한 사실은 벽돌 일부에는 짚이 있었으나 또 다른 벽돌에서는 짚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기록에 나타나 있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짚을 공급 받아 벽돌을 만들었으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보내라고 요구한 이후 바로는 그들에게 짚을 주지 않고 이전과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도록 한 사실을 상기시켜줬다(출 5:6∼14).
한 마디로 라암셋은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로 얼룩져 있는 곳이다. 라암셋에서 울려퍼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로 하여금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다(출 3:7∼10).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오묘하여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음을 라암셋의 흙벽돌 속에서도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이 라암셋에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그런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자손 번성에 대한 축복을 이루어가셨던 것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흙벽돌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역의 역사에 대한 숨결이 느껴지는 라암셋. 그러나 그런 고난도 역사의 흐름속에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을 향한 고난도 역시 잠시 뿐이며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롬 8장 18절 말씀을 되새겨본다.
 
 바로의 명령으로 고센의 비옥한 땅을 지키기 위하여 라암셋에 국고선을 건축하였을 때에 벽돌로 지은 국고성의 흔적이 있다 지금은 무너졌으나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당하면서 쌓은 곳일 것이다.  그들이 고통과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시게 된다


라암셋에 있는 흙벽돌로 된 성; 애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기 위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헤브론 남서쪽 약 19.2km 지점으로 애굽의 동북부 카이로 동북 50키로 지점 벨레스 부근으로 추측 이 지역은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 살아온 지역이며, 그들이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미 350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라암셋 2세의 문장이 새겨진 돌들과 볏짚을 섞어 만든 벽돌의 흔적을 완연히 볼 수 있다.


비돔에 곡식 창고가 있었을 곳으로 추정이 되는 것. 지금은 아이들이 놀이터이지만 벽돌들이
국고성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라암셋  숙곳으로 향하여 홍해로 진행을 하였다. (출12:37)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에 들어간 세겜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인구가 많아져서
바로의 정책에 따라서 비돔과 라암셋에 국고성을 쌓다가 하나님의 역사로 애굽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라암셋과 비돔에서 그들은 유월절을 지켰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하나님의 섭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430년에 성취하셔서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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