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


“오직 말씀 오직 성령”을 통한 “절대긍정 절대감사!”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 신학 체계화 발전
4대째 신앙 명문가의 유산 받은 이영훈 목사
신앙 양심으로 나라 지킨 독립유공자의 후손
   
이영훈 목사의 어린 시절

 이영훈 목사는 1954년 11월 19일 아버지 이경선 장로와 어머니 김선실 목사의 4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영훈 목사는 증조부 이재식 선생에서부터 이어 내려오는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가 쪽으로도 3대째 신앙을 물려받았다. 어머니 김선실 목사는 신실한 목회자의 자녀로서 이영훈 목사의 외할아버지 김종삼 목사는 황해도 장연에서 일곱 곳의 교회를 돌보며 목회를 했다.  
 이영훈 목사의 증조부인 이재식 선생은 평양에서 베어드(한국명 배위량)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받아들이고 앞장서서 교회 건축에 헌신했다. 이런 그의 신앙은 이영훈 목사의 조부 이원근 장로에게 전해졌다. 서문밖교회 장로였던 이원근 장로는 독립운동을 지원하다 1918년 3월 만세사건으로 인해 6개월의 옥고를 치르는 등 어려운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였다. 이원근 장로는 독립운동과 교회재건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신앙을 위해 남한으로 이주

 이영훈 목사의 일가는 북한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기독교인이 숙청의 대상이 되는 등 암울한 정세 속에 오직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모든 재산을 북에 내려놓고 떠났다. 조부 이원근 장로는 1948년 6월 가족들과 함께 황해도 해주에서 통통배를 한 척 빌려 위에는 생선으로 위장을 하고 가족들은 배 밑 바닥에 몸을 숨기고 38도선을 넘어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 도착 당시 가족들은 북한에서 월남한 성도들을 위해 영락교회 마당에 마련된 천막에서 약 한달 동안을 머문 후 서울 원효로에 거처를 정하고 남영동교회를 세워 월남한 성도들을 돌봤다. 이어 이원근 장로는 1949년 8월에 광주 미국 남장로교 선교본부에서 만난 탈미지(한국명 타요한) 선교사의 부탁으로 제주도에 내려가 4·3사건으로 황폐해진 남원교회를 재건하고 남원중학교를 인수 운영했고 위미와 표선에 기도처를 세웠다.
 이원근 장로는 하나님 제일주의신앙을 이영훈 목사에게 가르쳤다. 이영훈 목사는 모태신앙인으로서 어릴 적부터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고 토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신앙생활의 기본을 가정에서부터 배웠다.
 

장로교에서 순복음으로

 1964년 이원근 장로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45번지로 이사했다. 장로교 명문가에서 자란 이원근 장로는 북한에서의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해 집에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순복음중앙교회(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로 새벽예배를 다니게 됐다. 약 3개월 후 가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이원근 장로는 “이번 주부터 우리 가족은 모두 순복음교회에 출석한다. 그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매우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살아있어 은혜를 많이 체험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1964년 4월 이원근 장로와 가족들은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이영훈 목사는 교회에서 예배마다 성령침례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성령침례와 방언을 간절히 사모하게 됐고 1966년 2월 조용기 목사의 부흥성회에서 성령침례를 받았다.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영훈 목사는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지금의 한세대학교인 순복음신학교의 신학과에 편입했다. 졸업 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전도사로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정통 신학자이자 개척 목회자

 

이영훈 목사는 영산출판사(현 서울말씀사)의 편집부장, 순복음뉴스(현 순복음가족신문)의 초대 편집장을 역임했다. 1978년 순복음교육연구소(현 국제신학연구원)의 창립멤버로서 신학연구실장을 거쳐 1981년 순복음교육연구소 제2대 소장에 취임했다.   1982년 이영훈 목사는 안수를 받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의 요청을 받아 공부와 사역을 병행하며 1985년 2월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에 부임해 6년 만에 교회 건축을 이뤘다. 성전 완공 후 1992년 5월 조용기 목사의 부름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국제신학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이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앙과 신학’ 1,2권을 편찬하는 등 순복음 신학의 정립에 주력해 예장통합 측과 10년간 불거진 이단 시비를 잠재우는데 일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2000년 동경순복음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당시 물가 높기로 유명한 일본의 수도에서 기도와 믿음의 역사로 매일 새벽제단을 쌓았고 1년 반 후 약 200억 규모의 8층 빌딩을 동경 한복판에 매입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어 조용기 목사의 뜻에 따라 교무부목사에 임명돼 우리 교회를 섬기다가 2005년 미국 LA 나성순복음교회로 파송됐다. 이영훈 목사는 나성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중 2006년 우리 교회 운영위원회와 당회 2차 투표를 거쳐 2대 담임목사로 선출되어 귀국 후 담임목사 서리로 사역했다. 이후 2007년  7월 공동의회를 거쳐 담임목사로 인준을 받고 2008년 5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이영훈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 승계와 정착과정을 순조로이 이끌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조용기 목사의 영적 유산을 잘 계승했다는 점이다. 이영훈 목사는 누구보다도 조용기 목사의 신학과 목회 철학을 잘 알았고 국제신학연구원장 재임 중 조용기 목사의 3박자 축복과 성령운동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당사자였다. 무엇보다 조용기 목사는 영적인 아들이자 제자인 이영훈 목사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영훈 목사의 신앙과 신학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은 이영훈 담임목사의 신앙과 신학의 근간이다. 이는 성도들이 삶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맺게 한다. 이영훈 목사는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 “첫째, 절대긍정의 언어를 선포하여 긍정적인 미래를 창조해야한다. 둘째, 감사로 무장하여 삶 가운데 절대긍정의 능력이 넘치게 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날마다 기도로 무장되어야 한다. 넷째, 말씀을 가까이하여 말씀의 능력이 마음 가운데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성도들에게 작은 예수의 영성을 지니고 작은 예수로 살아갈 것을 늘 권면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독교 영성은 철저히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한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말씀을 믿는 것이다”라며 그러므로 성도는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방법을 제시한다.
 전도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받은 사랑의 실천이다’라고 정의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은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전하게 된다는 전도의 원리를 전하고 있다. 또한 성경에 근거하여 “전도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뿐 아니라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한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하셨다. 성령이 성도에게 능력을 주시며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게 하신다”라고 당부한다.  
 이영훈 목사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기도의 영성을 주창하며 순복음의 정체성을 확고히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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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영 선교사(케냐 투르카나)


이제 이웃과 나누는 ‘2%의 기적’ 시작
임연심 선교사 이어 투르카나에 희망의 복음 전파
2014년 개교한 ‘임연심굿피플미션스쿨’ 첫 졸업생 배출
33개 고등학교 중 3등 차지, 23명 대학 진학 예정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요 4:36)
 할렐루야! 아프리카 케냐의 투르카나에서 사역하는 강성영 선교사입니다. 벌써 투르카나에 온지 6년이 되었습니다. 故임연심 선교사님께서 소천하시기 두 달 전 한국에서 제게 하셨던 말씀이 “누구든지 투르카나에 오는 자는 이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였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로 임연심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사역을 마치셨고, 저는 지금 거두는 자로 투르카나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린 자가 거두기까지 하면 좋겠지만 주님은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요 4: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 또한 오랜 시간 인내하며 대를 이어 누군가는 씨를 뿌리고 누군가는 열매를 거두는 일입니다. 그리고 씨를 뿌린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지금 투르카나에서 거두는 열매들을 나누며 성도님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싶습니다.
 투르카나는 케냐의 42개의 지역 중에서 가난한 순위 42위로, 케냐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발표됐습니다. 그렇지만 가난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고 교회의 사역을 멈추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런 절망스러운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더 찾게 하고 부르짖게 하며 교회가 세워지게 합니다.


 제가 처음 투르카나에 왔을 때 40여 개의 교회들이 있었는데 현지 목회자들이 또 다른 제자를 세우며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는 60여 개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절반의 면적이나 되는 투르카나에는 여전히 교회가 없어 복음을 듣지 못하는 지역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수적인 열매뿐만 아니라 내적인 열매들도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회개의 열매입니다. 한번은 한 ‘나무 아래 교회’에서 사도행전 19장 18,19절의 말씀으로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예배 후 기도를 하는데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점술 할 때 쓰는 부적과 같은 것들을 앞으로 가지고 나와 제 손에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다 꺼내와 두 손 가득 수북이 쌓이게 되었고 현지 목회자와 함께 불에 태우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환경, 조건과 상관없이 일을 행하시고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 ‘임연심굿피플미션스쿨’이 2014년 신입생을 받기 시작해 올해 2018년 1월 첫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물이 없어 근처 강가에 가서 트럭으로 물을 실어 나르기를 수없이 하다 이제는 우물이 파져서 학교 내에서 물을 얻게 되었고, 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켜서 야간에 공부하다 태양열 패널이 설치되어 형광등을 켜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스쿨버스가 없어 학생들이 트럭을 타고 다녔는데 굿피플과 성도님들의 후원으로 스쿨버스가 생겼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 학교가 세워져 지금까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학교를 보면서 ‘하나님의 기적’이라 말하곤 합니다.

 더욱이 이번에 치러진 첫 대입 시험에서 투르카나에 있는 고등학교 중 시험을 치른 33개 학교 가운데에서 미션스쿨이 3등을 해서 다른 학교들과 지역 주민들 모두 놀랐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본 23명 학생들 모두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지역 주민 모두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미션스쿨을 졸업한 학생들이 케냐 곳곳에 흩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투르카나에 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모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야하는 임무는 같았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모세 때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면 여호수아 때에는 만나가 그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기 시작했습니다(수 5:12). 이제는 땀을 흘려 경작하며 스스로가 먹을 것을 얻은 것입니다. 스스로 경작해서 일어나야 하는 때가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투르카나 사역의 때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현지인들을 독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선교사로부터 받은 도움을 이제는 스스로가 나눌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2%의 기적’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얻은 현지인들이 월급의 2%씩을 모아 현지 아이들의 학비를 스스로 돕는 운동입니다.

 물론 몇몇 현지인들은 반발도 하고 선교사가 도움은 주지 않고 오히려 돈을 요구한다며 나쁜 소문을 내기도 했지만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주는 것에 익숙해지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계속 진행하고 있고 아직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적은 중에도 자신의 것을 내어 함께 힘을 모으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어 감사합니다.
 현지인들이 자립하고 선교사 없이도 계속 이 일들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만나를 기다리는 모습을 넣어 스스로 경작하여 땅의 소출을 먹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열매들을 바라보며 투르카나에서 오늘도 값진 땀을 흘립니다. 투르카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찬양부 신년축복예배…

감사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이영훈 목사 “찬양은 우리의 신앙고백”

 2018년 찬양부 신년축복예배가 2일 바울성전에서 드려졌다. 주일예배와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성령대망회, 지직할성전 예배에서 아름다운 찬양으로 봉사하고 있는 찬양대원들은 이날 한 마음으로 다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베들레헴찬양팀의 찬양 인도로 시작된 예배는 김상길 부목사(교무담당)의 사회로 진행됐다. 찬양위원장 이상준 장로의 기도에 이어 이영훈 목사는 시편 117편 1∼2절을 근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시 117:1∼2)는 주제로 설교했다.

 이영훈 목사는 “우리가 찬양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약속을 성취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에 대한 표현이 찬양이다. 찬양은 음악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고백이라는 점을 찬양대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이다. 찬양의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이며 주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라고 설명한 이영훈 목사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우리 신앙의 표현이 찬양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피력했다. 이어 “찬양대는 교회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찬양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는 순간순간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귀한 찬양을 드리며, 주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에 대한 고백이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찬양대원들은 이영훈 목사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양, 신앙고백이 되는 찬양으로 성도들에게도 깊은 감동이 전해지도록 헌신 봉사할 것을 다짐했다.
 이어 찬양대원들을 위한 특별순서가 마련됐다. 찬양대를 섬기는 지휘자와 피아노 반주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했으며 본 교회와 지븡직할성전에서 헌신하고 있는 찬양대원들에게는 근속상과 봉사상을 시상하며 대원들의 헌신에 고마움을 전했다. 또 찬양교구 우수지역 시상, 공로패 시상도 있었다. 특히 예배에서는 찬앙대별로 다른 색상의 가운을 입은 대원들이 전체 기립하여 아름다운 하모니로 연합찬양을 부르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렸다. 또한 연합솔리스트의 아름다운 합창으로 큰 감동을 선사했다.

 찬양부에는 12개 찬양대 1300명의 찬양대원과 4개의 오케스트라 및 앙상블 230명의 대원 그리고 23개의 지븡직할 찬양대들이 하나님께 은혜로운 찬양을 올려드리고자


               

악인의 말에는 사람을 해하지만 의인의 말은 사람을 구한다.

사람 몸안에 있는 혀는 세치도 안된다고 하는데 그 혀의 하는 일은 너무나도 크고 놀라운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이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자라고 할만큼 혀의 역할은 크고 신비하다.
혀는 곧 불이라고 했듯이 한번 혀를 통한 말에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람은 말속에 뼈가있다 라고 하시는 어른들의 말을 들을때면 무엇인지 모르는 뜻이 있는 것 같았는데
막상 잠언과 야고보서를 접하면서 사람의 말속에는 그 사람의 속셈이 있고 인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구약에서는 아무리 좋은 생수라도 한번 업질러진 물은 다시 쓸어 담아도 먹지 못하기에
그 물이 주위로 번지지 않도록 둑을 쌓아 밑으로 스며들에 하라는 말도 있는데 역시 말의 위력은 대단하다.

말중에도 검사의 말에는 형이 확정되지 않지만 판사의 말에는 사람이 사형과 형을 살게되는 것도 있다.
누구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말인가에 따라서 변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예수님도 사람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아니하고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한다고 했다.

사람속에서 나오는 말에는 가시가 있고 속셈이 있어 그 말을 잘못 들으면 상처를 입게된다.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독이 있어 한번 그 독에 상처를 입으면 평생을 두고 한이 되는 말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신 것 같다.

급한 마음으로 쏫아놓는 말에는 가시와 독이 있지만 참아가면서 하는 말에는 독을 치료하는 능력이 된다.
사람의 속셈이 얼굴의 모형따라서도 나타나지만 말보다 더 쉽게 내어놓는 것은 없는 것같다.
우리가 어릴때는 참 부모님들도 고생에 너무 지쳐 자녀들에게도 한이 될만큼 무지한 말을 많이하셨다.

지금부터 나의 혀를 한번 빼놓고 내가 한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시험하고 입을 다스리는 자가 되자.
내속에 분이 있을때와 혈기가 있을때와 미움이 있을때는 말하기 보다 듣는 쪽이 유익하다.
그 말속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침이 있기에 맞으면 여지없이 상처를 입기때문이다.

나의 더러운 인간성이 나도 나를 다스리지 못하면 나의 혀를 통하여 입 박으로 나오면 문제가 시작된다.
입안에 있을때는 별로 큰 문제가 될수 없지만 한번 박에 나오면 바람보다 더 빠른 것이 말의 전달이다.
그래서 나를 다스리는 자의 속셈에는 들으면 마음에 기쁨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 내어놓으면 나의 수치다.

나의 입을 통하여 혀로 말한 것이 거짓말이되었을때 그 거짓말의 위력은 영혼을 죽이는 무서운 독이 있다는 것이다.
말을 만이 하다보면 자기의 인간성과 속셈이 그대로 나타나고 그것으로 내가 도리어 수치를 당한다는 것이다.
별로 좋은 것이 아닌 말에는 순간에 번지고 퍼져 많은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 수가 있다.

검사의 혀는 죄의 구형을 말하여 형벌로 죽이려 하지만 판사의 혀는 때로는 법에의한 살길이 있다.
하나님의 입에 말에는 불이요 검이요 칼이라 하셨다. 이것은 나를 형벌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나의 죄를
멸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할수 있다. 그래서 나의 죄성을 불에 태우고 인간성을 검으로 짜르고
나의 속셈을 칼로 수술하여 내가 나의 생명을 말씀으로 살리는 지혜를 받으라.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성경 말씀에는 독과 형벌과 사랑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말이 비수가 되어 한번 가슴에 박히면 이것은 치료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목사들이 함부로 목사 섬겨야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독을 품어내는 것과 같으니 하지 말자.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여 헌금으로 팔고 축복으로 파는 그 말이 독이되어 가슴에 박히면
그 양들은 독에 미혹되어 목사를 우상 만들고 하나님의 이름부르면서 죽어가는 무지한 자가 되고 만다.
목사의 설교는 성경을 이해시켜 성품에서 건지고 죄성과 인간성에서 건지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

목사가 설교하기전에 먼저 내가 이 적은 혀로 생각나는데로 감정이 있는데로 미움이 있는데로 전한다면
그 모든 성도들은 독화살에 화인 맞은 자의 마음과 양심이 되고 만다.
성도의 무기력함이나 성도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함은 목사로 부터 독침을 맞은 증거다.

이제부터 목사는 성경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 무기력하고 나태하고 무능력한 영혼을 깨우는
광야의 소리가 되어 죄와 사망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건지는 일에 열심을 다 해야 할것이다.
하나님을 부르는 입술이나 예수님을 부르는 입술 그리고 성령의 사건을 말하는 자 들이여 조심합시다.

물은 집수장에서 라인을따라 여과기를 거쳐 가정으로 배달되는 물을 사람이 마시고 일용하게 쓰는데
사람의 말은 여과기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데로 흘러가다가 약한 자의 가슴에는 화가 되고
병든자의 가슴에는 죽음이 되어 평생을 속알이를 하다 죽어야 하는 무서운 독이다.

그 독을 그냥 사용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의 속에서 한번 두번 세번 생명을 살릴수있는 맑고 깨끗한
사랑이 되어 듣는 모든 자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수있는 목사에게 하나님은 양을 막겨주실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강단에서 전하고 선포하는 성경은 듣는자들의 가슴에 독을 죽이고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먼저 목사가 진실해야 그 진실한 말이 혀를 타고 심령속에 들어가 생명을 살리게 된다.
또 정직하여 말에 본이 되고 믿고 따라오며 그 말을 믿고 나를 버리는 그 속에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목사의 설교에는 성실함이 있어 무엇이든 지 오래 참고 인내하여 온유와 겸손으로 생명을 살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목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주의 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김종명



사회복지상담센터 신년축복예배 드려


성도들에게 교회 및 국가의 사회복지 혜택 안내

 복지사업국 사회복지상담센터가 지난달 28일 제2교육관 11층에서 신년축복예배를 드렸다. 이날 센터 내 30명의 상담사들은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이 사회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을 다짐했다.
 사회복지상담센터장 나원준 목사의 사회로 드려진 예배는 복지분과위원장 홍석채 장로의 기도 후 복지사업국장 박덕수 목사가 ‘하나님을 섬기는 새해’(마 7:9∼12)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박 목사는 “이웃을 위해 순수하게 희생 봉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우리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헌신하면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도록 임할 것”고 말했다.

 센터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상담사들의 상담을 통해 우리 교회 성도들이 교회의 각종 복지 혜택과 국가의 사회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센터는 지난해 230여 명의 성도들을 상담했으며 이들 중 18명이 국가에서 실시하는 기초수급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4명은 무상으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내일배움카드 발급자로 확정됐으며 2명은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임연심 굿피플 미션스쿨 제1회 졸업식 개최


’투르카나의 맘’ 故임연심 선교사의 꿈 열매 맺어 

 ‘투르카나의 맘’, 故임연심 선교사가 품었던 꿈의 싹이 드디어 첫 열매를 맺었다. 아프리카 케냐의 투르카나에 세워진 임연심 굿피플 미션스쿨이 지난달 27일 첫 졸업식을 갖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들을 축복했다. 재학생 133명을 비롯해 교사, 부모, 굿피플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날 졸업식에서 23명의 졸업생들은 투르카나와 케냐는 물론 아프리카를 변화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은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수료해, 현재 대학 진학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졸업식에 참석한 굿피플 회장 김천수 장로는 “섭씨 50도 가까이 되는 무더위와 문맹률이 95%에 이르는 이 곳 투르카나에서 故임연심 선교사님의 제자들이 케냐를 이끌어가는 인재로 성장한 것은 사랑과 헌신이 만들어 낸 기적과도 같다”며 “‘임연심 굿피플 미션스쿨’의 첫 졸업생들이 아프리카 전역을 변화시키게 될 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약 100만달러(한화 약 12억원) 규모로 건축된 임연심 굿피플 미션스쿨은 투르카나 지역 아이들 약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남자 중븡고등학교다. 15만평의 대지에 8개동으로 건축된 임연심 굿피플 미션스쿨은 깨끗한 교실과 과학실, 도서실, 다목적홀, 교사 숙소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투르카나 아이들에게 좋은 수준의 교육 혜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숙학교로서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


               


 

  

   

교회성경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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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진 선교사 (볼리비아)

31년 뿌리내린 순복음 영성, 남미를 변화시키다

어린이집, 종합대학 세우며 지역사회 발전시켜  
복음 전해지면서 인디언 마을도 변화되기 시작

 볼리비아는 한때 안데스 최고 문명의 꽃을 피웠으며 아이마라족(族)은 11세기경 케츄아족(族)의 지배 하에 들어가 이 땅은 잉카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나 스페인에 정복 된 후, 볼리바르군(軍)에 의해 해방되어 그의 이름을 따서 ‘볼리비아 공화국’이라 이름하게 됐습니다.
 독립 후에도 정치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고 서구 열강들의 약탈과 국정간섭, 착취가 심화되는 가운데 정치 및 경제발전에 저해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볼리비아의 GNP는 1342달러로 세계에서 123번째이며 남미 대륙에서 최하위의 나라입니다. 다른 남미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교는 가톨릭이며 현 정부는 사회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종종 종교 단체와의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합니다.

 볼리비아는 막대한 지하 자원(세계 50% 매장의 리튬, 구리, 가스 등)을 가지고 있어 남미 대륙에서 발전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급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국민들도 앞을 내다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교육열로 인해 볼리비아는 빠른 시간 내에 남미 대륙의 중심국으로 올라서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30여 년 전에 볼리비아에 저희 교회를 세워주시고 이 땅과 이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여 주셨습니다.

 지난 2006년 11월 개원을 한 ‘어린이집’은 주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고아나 마약, 알코올 중독자 등 아동들을 양육하기 어려운 환경의 1세부터 13세까지 아이들 26명을 주 정부로부터 정식 인계 받아 섬기고 있습니다. 비록 최고의 환경과 시설 속에서 이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주신 사명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올바른 신앙관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저는 올해로 31주년을 맞이하는 볼리비아순복음교회에 2001년 부임했습니다. 이미 지난 1987년도에 전도사로 시무하였던 경험이 있어서 낯선 환경은 아니었으나, 볼리비아 부임 전에 아르헨티나에서 사역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셨습니다. 그 꿈과 비전은 이 곳 볼리비아에서 펼쳐 보이실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심어주신 꿈과 비전은 바로 ‘학원사역’이었습니다. 볼리비아에는 이미 ‘순복음 영산 신학교’가 있어서 많은 사역자들을 배출하고 있었으나, ‘종합대학’이라는 새 목표를 가지고 한인 교인들과 19개의 현지인 지교회 전 성도들이 합력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모든 행정 절차와 대학인가를 위해 준비한 서류를 정부에 접수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정부가 바뀌면서 문교부 장관이 4번씩이나 교체되는 가운데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핍박과 억압을 받아오던 인디오 출신의 대통령(에보 모랄레스)이 선출되면서 새 정부는 신규 대학의 허가를 취소하겠다는 발표를 한 상황에서 모든 과정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오로지 기도로만 매달리고 있는 중에 꿈 같은 기적의 역사를 통해 모든 과정이 반전됐고, 모랄레스 대통령이 직접 서명해 정식인가(2006년 9월11일, 문교부 인가번호: 300/06)를 받게 됐습니다. 모든 뜻은 주의 손 위에 있으며 인도하시고 역사하심을 통해, 다시 한번 볼리비아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원하고 바라던 정부로부터 대학설립인가를 받았으나 학업을 할 수 있는 수용 공간, 즉 대학 부지를 확보해야만 하는 다른 당면 과제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이미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이 또한 턱없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위치와 크기, 가격이라는 과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시금 기도에 매어 달린 결과 2.7헥타르(약 28,100㎡)의 대학 부지를 꼭 필요한 곳에 구입하게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중남미 6억5000만명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더 넓게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기도보다 더 크게 응답하시고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대학 부지는 개인적으로 말을 사육하던 곳으로 개·보수하여 사육장을 사무실로, 훈련장을 1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전으로 재건축했으며, 실내 체육관을 설립하여 지역 주민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조금이나마 지역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장의 벽돌과 한줌의 모래까지도 완벽하게 예비하시고, 허락하시어 지금까지 달려 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들의 눈을 인디언들에게 향하게 하시어 저희가 살고 있는 곳에서 370km 떨어진 곳에 있는 인디언들 중에 과라니족(族)을 섬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곳은 거친 모래 땅이며 거센 바람과 한 여름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우기철에는 도로가 끊기고 강이 범람하여 며칠씩 통행이 불가능한 곳이지만 오직 복음만을 들고 믿음으로 부족민들과 함께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물이 없기에 우물을 파서 필요할 때마다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또한 전기가 없는 곳이기에 현재 태양열 전등을 시험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설치하고 보급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또한 약 760㎡ 가량의 성전 겸 체육관을 건축하기 위해 부지를 확보하여 기초 공사를 위한 작업을 준비 중에 있으며, 약 826㎡의 실외 운동장도 함께 증설할 계획입니다. 이 모든 사업은 주님의 은혜 가운데에서만 허락된 것이며, 과라니 부족 주민들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말씀이 그대로 전해지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이 황무지와 같은 척박한 땅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불어 지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주의 사업이기에 교회 부흥의 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족의 젊은이들이 하는 일 없이 시간을 허비하며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던 중 2010년에 한세대 김성혜 총장님의 방문 시에 100명을 대상으로 부족의 청년들에게 대학 장학금을 5년 동안 전액 지원해 주시기로 약속하시어, 현재 1차로 20명의 젊은이들이 저희 대학교에서 학업 중에 있습니다.

 바라기는 진정코 이 젊은이들이 주의 은혜 속에서 실패에 좌절을 하지 않고, 도전에 두려움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변화되는 세계를 이끌어 가는 젊은이들로 다시 태어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희 대학교의 목표는 볼리비아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남미 6억5000만명을 위한, 볼리비아 국민에 의한 교육기관으로 국가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위하여 섬김과 봉사자의 자세로 질적인 교육을 지향하며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학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원하며 변화를 이끌어 갈수 있는 사회의 리더를 발굴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에 행하신 일들을 전하며, 지식과 지혜의 조화로운 균형잡인 인격체를 육성하고 선교의 현장을 이어가는 교육이 장이 되길 기도합니다.

 감사하옵기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 속에 작년 12월 16일 35명의 첫 졸업생, 첫 열매를 주님 손에 올려드리는 기쁜 행사를 가졌었습니다. 우리의 노고와 여러분들의 기도 속에 이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놀라운 기적의 일들이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주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나누는 기쁨, 넘치는 사랑] 이금순 집사(용산대교구)


목사님 심방에 기쁨과 희망 얻어
믿지 않는 가족위해 더욱 기도할 것

 서울의 기온이 영하 17도를 기록한 24일 이영훈 목사는 용산구 청암동 감초상회에서 살고 있는 94세 이금순 집사(용산대교구)와 신체장애를 지닌 아들 정용철 성도를 찾아갔다.
 두 모자가 살고 있는 곳은 집이 아니다. 사방이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도로변 작고 낮은 건물 1층 작은 구멍가게. 작은 가게 한쪽에 마련한 공간은 일반 성인이 바로 눕기에도 비좁아 보인다. 이곳에서 두 모자가 밥을 지어 먹고 잠을 잔다.

 휘몰아치는 찬 공기 속에 작은 난로 하나에 의지한 채 두 모자가 지내고 있다. 이영훈 목사는 추위를 견디는 두 모자의 안위를 걱정하며 손을 잡아주었다.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에 근거에 말씀을 전한 이영훈 목사는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랑하는 집사님이 염려 걱정 없이 사시면서 더 좋은 일이 일어나고 건강하시길 바란다”라고 축복했다.

 30년 전부터 가게를 운영해온 이금순 집사는 두 번의 뇌졸중 후유증으로 예전처럼 가게를 운영할 수가 없어 가게라고는 하지만 음료 냉장고와 캔 위주의 식품 몇 가지가 전부다. 그나마 건물주인이 모자의 사정을 헤아려 가게 월세를 감해 주었고, 재개발 전부터 가게를 이용해온 오랜 이웃들이 발길을 끊지 않고 이곳을 찾아주고 있다.

 1989년부터 우리 교회에 출석한 이금순 집사는 2012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게다가 1년 뒤 뇌졸중이 재발해 후유증으로 무릎관절이 굳어버렸다. 바깥출입을 전혀 못하게 되었지만 지역장이 방문할 때마다 헌금을 모아 전달한다. 또 말하는 것이 힘겹고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늘 설교 말씀을 듣고 오래된 성경을 읽으며 생활한다.

 64세인 아들 정용철 성도는 3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와 양손이 부자유스럽다. 하지만 전동휠체어를 다리 삼아 그동안 구청에서 제공하는 공공근로를 하며 밝게 생활했다. 또 어머니를 위해 조용기 목사와 이영훈 목사의 설교 테이프를 MP3 파일로 전환해 녹음기에 담아 어머니가 언제든 듣고 은혜 받으실 수 있도록 한다.

 두 모자는 인터넷과 케이블 방송으로 매주일 9시 예배를 드리며 텔레비전 속에서만 보던 이영훈 목사의 방문에 연신 감사를 표했다. 정용철 성도는 “늘 높게만 생각하던 이영훈 목사님이 직접 오셔서 예배를 드려주시니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두 동생들의 구원을 위해서 더욱 기도하고 전도하겠다”라고 소망을 전했다. 이금순 집사는 하루 종일 곁에 두고 보는 성경을 펴놓고 예배를 드린 후 이영훈 목사의 손을 잡고 “참 좋고 감사하다. 와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천천히 힘주어 말했다.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이  전달된 이곳엔 예수님의 사랑으로 훈훈함이 가득했다.

글·복순희 / 사진·김용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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