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수위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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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바닷가에 있는 베드로 수위권 교회 입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명하시던 예수님
 
갈릴리 바다는 지금도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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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꽃꽃이-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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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숙 목사(독일 엘림순복음교회)

순복음의 영성으로 잠든 독일을 깨운다

독일인 남편과 함께 베를린서 순복음 사역 전개 
소수의 일꾼들 보며 ‘독일 선교’에 대한 희망 발견 
2대에 걸쳐 독일 선교 헌신, 성령 목회 전념


 독일은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후 기독교 역사에 있어 꽃을 피운 나라이다. 따라서 전통과 문화의 기반이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독교가 생활과 밀접해 있는 독일은 지금도 전세계 신학생들이 찾아와 신학교리를 배워 갈 정도로 역사성이 깊은 나라다.
 이러한 독일과 내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나는 외국에 대한 동경을 안고 있었다. 당시는 해외로 나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마침 정부에서 파독 간호사를 모집했기에 나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자원해 독일로 갔다.

 간단한 교육을 마치고 현지 병원에 배정된 나는 3년 간 병원 근무를 하며 오직 신앙의 힘으로 타국에서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나뿐 아니라 몇몇 한인들이 모여 한국에서 보내온 말씀 테이프를 함께 들으며 위로를 받곤 했다.
 한 번은 기숙사에 흰 옷을 입은 여성 분이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셨다. 최자실 목사님이셨다. 우리 부모님과 같이 황해도 사투리를 쓰시던 그분에게서 마치 어머니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붙같은 기도로 우리에게 성령과 십자가의 보혈을 가르쳐주셨다.
 
이후 말씀이 갈급했던 우리는 한인을 위한 교회 설립이 절실하다고 여겨 한국에 있는 몇몇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선교사를 보내주겠다고 한 교회는 딱 한 군데.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베를린순복음교회였다. 우리는 베를린순복음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며 신앙을 견고히 다져갔다. 1970년대 초 세워진 베를린순복음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뜨거웠다. 그 당시 성령 충만을 받고 간호사에서 목회자가 된 이들이 지금도 독일에서 사역 중인 나를 비롯해 제안순(뮌헨 국제복음교회) 만국자(아헨순복음교회) 목사이다.

 3년간의 간호사 생활을 마친 후에는 동서양 통틀어 여성 최초로 독일 연방 보험회사에 입사해 일을 시작했고, 독일인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다. 이러한 생활 가운데 하나님께 목회자의 소명을 받았지만 평범한 생활을 원해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다 1981년 유방암이 찾아왔고, 치유를 통해 결국 하나님의 종이 됐다.

 처음 사역지는 베를린순복음교회였다. 현지 오순절 계통의 신학을 졸업하고 우리교회 정식 선교사로 임명받아 사역하면서 남편 허버트 바크만 목사(아래 왼쪽사진) 역시 하나님의 종으로 순복음의 정식 선교사가 됐다. 남편이 목사 임명을 받은 후 우리는 한인이 아닌 독일인을 대상으로 베를린에 교회를 개척해 단독 목회를 시작했다.

 단독 목회를 하면서 나는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오게 된 것과 독일인 남편을 만나게 된 것 모두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독일인 남편과 살면서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된 나는 누구보다 독일인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나처럼 독일인 남편을 둔 한국 여성들을 이해하면서 이들을 하나님의 복음으로 위로했다.

 2003년 남편 바크만 목사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잠시 사역을 접었다가 회복된 남편과 더불어 베를린에 지금의 엘림순복음교회를 세워 독일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독일에서 목회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기독교가 시들어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사역을 통해 유럽 부흥의 희망을 발견한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숨은 그리스도인들을 세워 다시 주의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다. 어느 곳이든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곳은 반드시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돼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오늘도 순복음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말씀을 기반으로 독일인들을 일깨우는데 힘쓰고 있다. 또한 파독 간호사 출신 여성들을 도와 이들이 인생 후반부를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잘 마무리하도록 돕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교회는 성도들에게 ‘쉼터’와 같은 곳이다.

 독일인 남편을 만나 이 곳에서 결혼한 한인 여성들은 오랜 타국 생활로 인한 외로움으로 노년에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인으로서 이들을 잘 보살피고 돕는 것 또한 나에게 주어진 사역이라 생각한다. 이들을 찾아가 심방하고 말씀으로 위로할 때 이들이 주님 안에서 회복되는 역사를 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나를 독일로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가정은 현재 남편과 나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가 모두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아 독일의 영적 부흥을 위해 힘쓰고 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를 전하는 순복음의 영성만이 독일인은 물론 이들과 결혼한 한인 여성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믿음의 일꾼으로 세워지도록 도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40여 년 동안 독일에 살고 이 중 절반을 이 곳 독일인을 위해 목회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남은 생애 역시 독일의 복음화를 사명으로 생각하고 헌신하기 원한다. 이를 위해 성도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한다.

 


권사회 제36차 정기총회, 연령별 3개 조직으로 개편


이영훈 목사 “60주년 맞아 기도 사명 감당” 강조
연합회장에 이명옥 권사 임명

 기도의 어머니 ‘권사회’ 제36차 정기총회가 10일 바울성전에서 열렸다. 정기총회는 회장 윤 례 권사의 사회로 1부 축복예배가 진행됐다.
 에벤에셀몸찬양단과 권사찬양대의 찬양에 이어 등단한 이영훈 목사는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18)는 주제로 설교하며 정기총회에 참석한 권사들을 환영하고 축복했다.

 이영훈 목사는 “절대 긍정의 믿음을 표현한 것이 절대 감사”라고 말하며 주 안에서의 기쁨을 당부했다. 또 권사의 사명이 기도임을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권사님들이 교회와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할때 교회의 문제는 해결되고 부흥이 다가온다”며 평생 기도의 삶을 통해 얻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다. 내년 60주년을 위해 범사에 감사하는 일꾼,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수고하는 권사회가 될 것을 당부하며 보다 활발한 활동을 위해 연합회장 아래 제 1,2,3회장 체재로 개편된 것을 설명했다.

 설교 후에는 1년동안 권사회를 이끈 회장 윤 례 권사의 이임사에 이어 이영훈 목사가 윤 례 권사를 비롯한 임원, 지회장에게 공로패와 감사장을 각각 수여했다. 또 권사회 신임 연합회장 이명옥 권사와 김정일(제1권사회장) 차숙이(제2권사회장) 이재신(제3권사회장) 권사에게 각각 임명장 수여 및 안수기도하고 권사회를 잘 섬겨줄 것을 당부했다.  

 2부 정기총회는 신임 연합회장 이명옥 권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명옥 회장의 개회선언에 이어 전 정기총회 회의록 낭독과 감사, 회계 보고가 있었다. 신임연합회장 이명옥 권사는 “내년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권사회가 하나돼 기도의 사명을 감당하며 헌신하겠다”고 전하며 김정일 차숙이 이재신 회장과 함께 인사했다. 권사회는 앞으로 제1권사회는 50대 전후, 제2권사회는 60대, 제3권사회는 70대 이상으로 세분화 돼 운영될 예정이다.
 이날 정기총회는 연합회장 이명옥 권사가 신임 지회장 및 본회 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했고, 제직봉사분과위원장 이은용 장로의 격려사, 이명옥 권사의 폐회선언으로 마무리됐다


김태운 목사(호주 뉴카슬순복음교회)

성도들의 기도로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
뉴카슬에 오중복음·삼중축복 전하며 ‘부흥’
성도 3분의 2가 청년으로 이뤄진 젊은 교회 

 

할렐루야! 호주 뉴카슬에서 인사드립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곳 작은 시골 동네에서 하나님께서 내려준 선물인 교회와 사역을 간증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특별히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님들과 조용기 목사님, 이영훈 목사님 그리고 선교국과 선교위원회, 오세아니아선교회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호주에서 사역하는 가운데 2009년 지금의 뉴카슬순복음교회를 얻게 된 것을 간증하기 원합니다. 2009년, 우리는 17년 만에 새성전을 입당하게 됐습니다.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재정을 뛰어넘어 세계의 아름다운 교회(Image of church)에 등재되어 있는 교회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교회는 뉴카슬에 살고 있는 호주 현지인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뉴카슬 중심지인 코타라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2314.06㎡ 대지 위에 2층짜리 건물 3개동이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호주 전통교회로 웅장한 목조건물에 자연 채광과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이 되어 매우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교회 옆은 커다란 쇼핑센터가 세워졌고 넓은 운동장과 학교가 인접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입니다.


 당시 성전 마련을 위해 교회 청년들은 성전 구입을 위한 헌금을 마련코자 생활비를 줄이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귀한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이들의 헌신과 수고가 모여 600평 땅과 200평의 건물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은행 대출을 받았지만 땅값도 안되는 가격으로 교회를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성전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은 또 있습니다. 두 번의 다니엘 금식기도와 세 번의 40일 금식기도 가운데 열 번의 성전 구입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했고, 마침내 열한 번 째 기회에서 지금의 교회 부지를 응답받게 된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귀한 교회입니다. 기도하고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최고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뉴카슬에는 호주에서도 상위권으로 인정받는 뉴카슬대학교가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 안에 정식으로 캠(CAM) 동아리를 배정받아 우리 교회를 선교 장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이면 유학생을 위한 외국인예배를 별도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외국인 목회자 10여 명을 동역자로 우리 교회에 보내주셨습니다. 뉴카슬순복음교회는 선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에는 전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비량으로 70∼80명 분의 김밥 도시락을 만들어 점심시간이면 대학교로 찾아가 외국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전도를 합니다. 그러면 전도 받은 학생들이 주일에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뉴카슬순복음교회는 성도 3분의 2가 청년으로 이루어져 있는 젊은 교회로 청년들을 사명자로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뉴카슬순복음교회에는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한 학생은 가난과 배고픔으로 이 곳에 와서 시작한 일이 청소였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성실과 정직으로 노력한 결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외국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호주 현지인이 경영하던 호주 정부에 납품하는 사업을 인수해 현재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호주 정부 자격증을 취득해 여러 방면에 걸쳐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최근 중국 정부와도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5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교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헌신과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열심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의 사역에도 헌신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뉴카슬순복음교회 성도들을 통해 뉴카슬, 호주 그리고 세계 선교지에서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성도님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시길 기도합니다.


이영훈 목사 초청 시드니 대성회


오직 성령으로! 오직 믿음으로! 호주와 아시아에 부흥의 새바람을!
이영훈 목사 “성령충만과 권능받아 복음의 증인된 사명 감당하자”
시드니에 울려퍼진 순복음 성령 충만과 믿음의 역사

 호주와 오세아니아 복음화를 위한 ‘이영훈 목사 초청 시드니 대성회’와 ‘2017 오세아니아& 아세안 선교사 콘퍼런스’가 지난달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호주 시드니순복음교회에서 순복음 선교사들과 시드니를 비롯한 채스우드, 캐슬힐, 블랙타운, 혼스비, 이스트우드 지역에서 참석한 성도들이 함께한 가운데 개최됐다. ‘새로운 성령의 바람을 시드니에…’를 주제로 10월 31일 저녁 시드니순복음교회 담임 김범석 목사의 사회로 시작된 대성회는 김운곤 장로(선교위원장)의 대표기도에 이어 이영훈 목사가 ‘오직 성령으로’(행 1:4∼8)를 제목으로 메시지를 선포했다.
 이영훈 목사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순복음 신앙의 두 축은 성령과 믿음의 역사이다. 조용기 목사님이 59년 전 천막교회에서 ‘성령충만’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의 믿음으로 오늘날 세계최대의 교회를 이루었다”며 우리들도 반드시 성령 충만받고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무장해 시드니와 오세아니아를 넘어 아시아 전역까지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당부했다.

 이어 아브라함, 요셉, 다니엘 등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불퇴전의 믿음으로 기도한 신앙의 선조들을 소개한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부흥의 열쇠는 성도들의 기도이다. 교회 부흥의 분명한 꿈과 비전 가지고 기도할 때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며 시드니순복음교회가 이번 성회를 통해 놀라운 부흥의 열매 맺어, 전성도가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는 선교사적 교회가 되기를 축복했다.

 성회 둘째날 이영훈 목사는 ‘오직 믿음으로’(히 11: 1∼6)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믿음은 거룩한 꿈을 꾸는 것이다. 믿음은 오늘 살면서 내일을 꿈꾸며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고 나아가는 것”이라며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을 통해 미래지향적, 창조적, 생산적, 긍정적 신앙인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강조하고 “예수의 보혈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료한다며 예수의 보혈 통해 영적으로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존재목적이 선교와 구제임을 전하며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자. 선교할 때 교회가 부흥한다. 한마음으로 헌신, 충성, 섬김,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는 믿음의 일꾼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이틀 동안 성회에 참석한 이관주 안수집사는 “이영훈 목사님 말씀 통해 다시 한번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았다. 앞으로 전도에 더욱 헌신하고 이웃 섬김에도 앞장 서겠다”며 감사를 전했다.
 성회를 주최한 김범석 목사는 “전 교역자와 성도들을 비롯한 교회의 모든 기관이 한마음으로 준비했다. 축복대성회를 통해 시드니에 새로운 성령의 바람이 불어, 불신앙의 어둠이 깨어지고 다시 한번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 복된 교회, 사회구원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시드니순복음교회는 고 정우성 목사에 이어 2014년 김범석 목사가 2대 담임 목사로 취임해 5개의 지성전, 27개의 지교회와 함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능력으로 오세아니아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번 성회에는 순복음선교회 오세아니아총회와 아세안총회 선교사와 가족들 약 150여 명이 참석해 함께 은혜를 나눴다. 한국에서는 이태근(분당교회), 이장균(광명교회), 정재한 목사(선교국장), 김운곤(선교위원장), 안정복(순복음비즈클럽회장), 이 윤, 조연평, 허주옥 장로와 이화영 장로(오세아니아선교회장) 등이 함께했다.


다윗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1. 인적 사항
1) 다윗은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 2) 이스라엘의 王政의 두 번째 왕.
3) 유다 지파 이새의 막내 아들로서 베들레헴에서 출생(삼상 17:12).
4) 7명의 형들과 2명의 누이가 있었음(대상 2:13-16).
5) 미갈, 아히노암, 아비가일, 밧세바 등 많은 아내와 첩을 둠, 소생으로는 19남 1녀와 그 외 많은 첩의 아들들이 있음(대상 3:1-9).
6)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서 솔로몬을 낳음(삼하 12:24,25;대상 3:5).
7) 원래 목동이었고, 사울 왕 시대에 궁중 악사와 군대 장관으로 활동함(삼상 16:11.22;18:13).
2.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되던 때인 B.C.1040년에 태어나 B.C.970년을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통일 국가의 제2대 왕으로서 국가의 체제를 강력하게 정비해 나간 인물, 당시 이스라엘은 이제 사울을 초대 왕으로 하여 왕정을 수립하게 되었고, 백성들이 여망 하는 바 외적의 압제로부터 막 벗어나는 시기에 있었다. 그러나 사울이 비록 왕이라는 직책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정치적․군사적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이전의 사사들과 크게 다른 바 없었다. 그리고 근동 국가들이 강력한 왕정 국가를 형성하고 있고 막강한 군대와 병기들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한 사람의 독자적인 역량으로 이끌어 나가는 이스라엘의 체제로서 그들을 끝까지 대적하기란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도피 시절에 군대의 조직력, 전략적 역량들을 키워 나갔으며, 근동의 왕정 국가들과 대동한 위치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올릴 수 있는 영도력을 키워 나갔다.
한편 구속사적으로 볼 때 당시는 하나님이 인본주의적 동기에서 세움 받은 사울 왕을 폐위하시고 다윗을 통하여 신본주의적 왕국을 세워 나가신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사사시대의 모습을 아직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이스라엘을 당당한 왕정 국가로서 그 기틀을 구축한 시기였다.
3. 주요 생애

4. 성품
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큼 겸손하고 신실한 신앙인(삼상 16:7;행 13:22).
② 양을 치던 자로서, 사울 왕의 궁중 악사로서, 또 왕으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만큼 책임감 있고 성실한 자(삼상 16:11,23;17:20;삼하 5:25;6:18,19).
③ 하나님을 의지하여 몰매만을 가지고 블레셋 장군 골리앗에게 담대히 도전할 만큼 담대하고 강건한 믿음을 소유한 자(삼상 17:40-49).
④ 매번 블레셋의 침입을 재치 있게 대적하여 무훈을 세울 만큼 지혜롭고 용감한 자(삼상 18:30).
⑤ 사울 왕이 자기의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했을 때 자신은 비천하고 무가치한 자라고 고백할 만큼 겸손한 한 자(삼상 18:18,23).
⑥ 계속되는 사울의 살해 음모에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원을 호소할 만큼 늘 기도하며 그의 도움을 간구하는 신앙인(시 34:1-22;56:3;59:1-17).
⑦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울을, 오히려 자기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지라도 기름 부음 받은 그를 죽이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인(삼상 24:1-22;26:1-25).
⑧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원수 관계인 애굽인이 병들어 눕게 되자 그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여 생명을 구해줄 만큼 긍휼과 자비를 갖춘 자(삼상 30:11-15;롬 12:20).
⑨ 왕이 된 후 요나단과의 약속에 따라 사울의 유족에게 은총을 베풀 만큼 자비롭고 신실한 자(삼상20:14,15;삼하 9:1-13).
⑩ 평안하자 하나님을 잊고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또 인구 조사를 실시할 만큼 교만해진 자(삼하11:1-27;24:1-25).
⑪ 자신의 범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할 만큼 영적 각성이 빠른 자(삼하 17:7-23).
5. 구속자적 지위
①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적 조상이 됨(눅 1:69).
② 통일 왕국의 제2대 왕으로서 왕국의 질서와 체제를 정비, 이스라엘의 번영을 가져옴(대상 27:1-15).
③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稱함을 받음(행 13:22).
④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최대의 왕으로 세움 받음. 이는 비천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택함 받은 성도의 모형이 됨(고전 1:26-31;벧전 2:9).
⑤ 끊임없는 위기와 고난을 거쳐 왕이 됨. 이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까지 위기와 고난을 통해 단련되어질 성도의 길을 예표함(롬 5:2,3).
6. 주요 공적
① 이스라엘 통일 왕국을 세움(삼하 5:1-5).
②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법궤를 옮겨와 군사적․정치적․종교적 중심지로 구축함(삼상 6:1-23).
③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매 돌로 쳐죽임으로써 전쟁은 여호와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확증함(삼상 17:45-49).
④ 요나단의 약속에 따라 왕이 된 후 사울의 유족에게 은총을 베품(삼하 9:1-13).
⑤ 많은 시편을 남김.
7. 실수
①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하고, 이를 숨기고자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 함(삼하 11:1-12:25).
② 많은 아내와 첩을 둠으로서 결국 자식간의 싸움을 야기함(삼하 13:1-39;대상 3:1-9).
③ 이복 누이를 강간하고, 서로 죽이며, 아비의 왕권에 반역하는 자녀가 생길 정도로 자녀교육에 실패함(삼하 13:1-29;15:1-12).
④ 이스라엘의 번영이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인 양 교만해져 9개월 20일간 인구조사를 실시함(삼하 24:1-25).
8. 평가 및 교훈
① 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로서 양을 치는 보잘 것 없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진실함과 겸손함이 있고, 또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때 형들을 제치고 왕으로서 택함을 받았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실히 받은 바 책임을 다하고,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신 자를 당신의 일꾼으로 선택하심을 알 수 있다(삼상 16:6-13;마 6:8).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일꾼이 되도록 날마다 현재의 맡은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자신을 정결하게 준비해야 하겠다.
② 다윗이 칼과 창없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전쟁에 임했기 때문이다(삼상 17:45-54).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역경과 환난을 당할 때에도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가는 자가 되자(삼상 26:24).
③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무찌른 후에도,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하던 자기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할 때에도, 또 그 약속이 거듭 불이행될 때에도 항상 겸손하였고, 결코 자신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된 후 나태하고 교만해졌을 때는 남의 아내를 범하고, 야심에 의해 인구 조사를 실시하는 등의 죄악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삼하 11:1-27;24:1-25). 이처럼 겸손할 때에만이 아무런 실수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김의 도를 다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철저히 쳐서 하나님 앞에와 사람들 앞에 더욱 겸손한 자가 되도록 하자(잠 29:23;마11:29).
④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오히려 자기가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차례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를 해하지 않았다(삼상 24,26장). 이는 그가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또 그분의 말씀과 권위를 얼마나 인정하며 따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는 목회자와의 갈등이 심화되어 소란함을 일삼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권위와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 어떠한 모습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고전 16:16;살전 5:13).
⑤ 다윗이 사울의 살해 음모에 따라 10여 년을 도피 다녀야 했던 근본적 이유로는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고, 자기의 본분인 바 블레셋의 침입 때마다 지혜롭게 행했다는 것밖에 없다(삼상 18:1-30). 이처럼 세상에서는 선을 행하여도 도리어 악으로 대가를 받게 되는 역설적인 일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과 역경이 무가치한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비록 다윗이 오랜 시간 동안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고난받았으나, 결국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서 통일 왕국의 정치적․종교적 기반을 든든히 다지는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이처럼 선을 행하고자 열심을 다하는 성도의 앞길에도 때로는 고난과 역경의 장벽들이 계속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역경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음을 의지하여 낙심치 말고 끝까지 인내하는 자가 되어야겠다(요 16:33;계 21:7).
⑥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함을 받을 정도로 신실한 신앙인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의 아내를 범하는 성(性)적인 실수를 하게 된 것은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삼하 11:1-2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자신을 돌아보며, 육적인 욕망과 모습을 십자가에 못박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하겠다(고후 4:16;갈 6:14).
⑦ 다윗은 자신의 권력으로 나라를 세우려는 인간적 동기로서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그 후에 마음에 자책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며 단을 쌓아 제사를 드렸다(삼하 24:1-25). 이처럼 우리에게도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진정 회개하고 행동까지 돌이키는 모습이 필요하다(눅 19:8). 혹여 당신은 건성으로 회개하며 또다시 같은 실수와 죄악을 범하고 있지는 않는가?
⑧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되고 이스라엘의 국위가 높아진 원인이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한 것임을 고백했다(시 41:11). 실상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은 많으나 그 은혜를 깨닫는 자는 적다. 지금 당신은 지금까지의 살아온 행적과 안정과 번영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고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살전 5:18).
9. 핵심성구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 13:22).


모세 기념교회

       

모세 기념교회 입니다...이곳도 요르단에 있습니다

느보산 정상에 가나안이 내려다 보이는곳에 위치하고 있지요

 
모세의 지팡이와 구리뱀의 형상입니다
 
물통입니다,,,,한잔씩 마시고 여행하라구요^^
 
요르단에 있는 교회들의 공통점은 초라함에 있습니다
 
스레트를 얹은 지붕이 군데 군데 날아가 버린 자리가 있네요
 

 


고미선 선교사(일본)

순복음의 영성과 예수님의 사랑 일본에 전파 



현지인들에게 복음 전하며 천국 소망 심어줘 
일본 성도의 헌신으로 개척 10년만에 교회 건축
 
 할렐루야! 여기까지 인도해주시고, 함께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교회 개척 당시, 동경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시던 이영훈 목사님의 배려와 도움으로 키요세(Kiyose)에 순복음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2003년 2월 25일 저는 동경에 있는 키요세라는 곳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키요세는 동경의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위의 대부분이 논과 밭으로 둘러쌓여있고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교회 개척 당시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과외를 하는 건물(학원)에서 주일만 사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빌려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매 주일 이사하는 것처럼 교회 비품을 차에 싣고 악보대를 강단삼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반년을 하고나니 딱 한 사람 일본분이 교회에 처음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교회에 오셔서 계속 우시기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안나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반년이 지나 우리는 33㎡(10평)의 건물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매일 새벽기도를 할 수 있고, 전도할 수 있고 그리고 하루종일 교회에 있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는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우리교회에 오셔서 울다가신 그 일본분의 영혼을 생각하며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그들의 속마음을 남한테 말하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괴로워 하는 성품을 지녔는데, 그분들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본하면 우상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떠오릅니다. 인구 1억2800만명 중에 1%밖에 크리스천이 없고, 약 1만개의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일본은 화산, 지진,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많아서 이와같은 불가항력적인 재해 가운데에서 자신들을 지킬 수 있도록 이런 저런 신을 만들어 놓지 않았나라는 설이 있습니다. 일본은 기독교가 1%, 불교가 43%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다신교와 같은 종교가 50.8%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 또한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일본사람들은 영이라고 하면 유령이나 귀신 등의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무서운 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지금도 살아계시는 주님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를 기도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매 주 2번씩 전도지를 돌리며 집집마다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연로하신 분들이 집에 계심을 알고 계속해서 전도지를 돌리면서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 대한 전도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 비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주님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고,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처음 5년까지는 열매가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씨를 뿌리는 선교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6년이 지나면서 성도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10년이 된 지금에는 34명이 침례를 받는 은혜가 있었으며, 그 분들 중에는 일본분이 더 많습니다.

 지금은 천국에 가셨지만, 한 일본분이 전도지를 보고 우리교회에 오셨습니다. 말 못할 어려움을 가지고 우리교회에 오셨지만, 처음에는 한국교회(한국인 목사)라고 멸시하고 찬양할 때 박수치며 노래한다고 비웃으며, 한국 사람들에게 무식하다고 함부로 대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저에게 매일 자기집에 와서 집안일 등을 도와달라고 하셔서 물론 성도도 별로 없었지만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그 분 집에 가서 빨래와 청소를 해드리고 시장도 봐드리면서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수요일, 금요일, 주일은 교회로 나오시게 하고 나머지 날은 제가 집에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5∼6년이 지나고 나니 이 분이 제가 믿는 주님을 자신도 믿고 싶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고 침례를 받고 신앙생활도 잘하시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모든 것을 저에게 주시면서 성전건축에 다 써달라고 하셨고, 그 분의 형제분들도 목사님께서 다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그동안 잘 보살펴준 것에 대해 가족들 모두 오히려 제게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상대방을 한 번 신용하면 끝까지 믿습니다. 그렇게해서 처음에는 변변한 장소도 없이 시작한 교회였지만, 개척한지 10년만에 자그마하지만 165㎡(50평)의 땅을 구입해서 2012년 12월 4일, 헌당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조금의 빚도 없이 온전히 주님께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올해 2013년 9월 30일에는 납골당이 완성될 예정입니다. 이것 또한 일본 성도들의 협조로 별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가운데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현재 일본성도들 중 거의 모든 분들이 가족들의 동의 아래 교회 납골당에 들어가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렘 33:2)를 저는 다만 바라보고 신뢰할 뿐입니다.

 전도지를 돌리다가 맞을 뻔한 적도 있고, 일본에서 왜 서양의 신을 전하느냐고 항의도 받고, 한국교회라고 무시와 멸시를 당한 적도 있지만, 한 장의 전도지를 통해 거듭난 성도를 통해 이렇게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믿어지고 납득이 가면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일본사역을 하면서 저는 그와 같은 기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말씀과 같이 한 영혼이 거듭남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사역의 열매가 맺어지는 일이 기적과 같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연로하신 분들, 천국이 가까우신 분들을 위해 어르신들을 위한 센터를 지어 그분들에게 매일 성경 말씀을 전하고 찬송을 들려드리며 주님의 나라를 선포해 나갈 것입니다. 그 분들이 매일 말씀과 찬양을 통해 천국에 갈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그런 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순복음키요세교회는 눈에 보이는 곳에서는 한국분들이 봉사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일본분들이 봉사를 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뤄가며 교회사역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40∼50명의 성도가 매 주일 예배를 드리며, 오는 9월부터는 청소년부를 세우기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역의 모든 일은 주님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끝으로 순복음 동북아 일본총회의 모든 목사님들을 비롯해 동북아 일본총회 총회장이신 정대원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희망의 60주년을 향하여 -

4. 불꽃처럼 타오른 성령충만


성령충만의 불길 한국을 넘어 세계로
교회학교 기구 정비, 여의도성전 건축
 
순복음의 영향력 국내를 넘어 해외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우리 교회의 첫 해외선교 시작은 1964년이었다. 당시 조용기 목사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 본부 요청으로 미국 하나님의성회 교단 창립 5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첫 선교여행길에 올랐다. 미국 하나님의성회교단 창립 50주년에서 한국 하나님의성회 대표로 참석한 조용기 목사는 유창한 영어로 한국교회의 상황과 비전을 제시하고 소망이 넘치는 메시지를 전했다. 기념식 후에도 조용기 목사는 2개월 동안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한국과 한국기독교를 전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1967년 5월 31일 세계오순절총회에 아시아 대표로 참석했으며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이스라엘, 이란, 태국, 베트남, 중국, 일본 등 18개국 30여 개의 도시를 100여 일간의 일정으로 선교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최자실 목사도 10월 28일 일본선교여행을 떠났다. 일본의 교회들을 순회하며 전도집회를 개최했다. 최자실 목사는 비자를 연장하면서까지 동경지방을 중심으로 선교집회를 약 40일간 계속했다. 1966년에는 대만으로 선교여행을 떠난 최자실 목사는 약 50일간 신소회를 비롯해 내포교회, 기룡신소회 등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며 대만에 성령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한편 조용기 목사는 1966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에 선출되었고 이어 1967년에는 오순절세계협의회 고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이를 통해 1969년 7월 7일 제3회 하나님의 성회 동북아아세아대회를 우리 교회에서 개최하게 됐다.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피지, 말레이시아, 호주 등 13개 국가 대표 130여 명의 목회자 및 성도들 그리고 방송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7월 11일까지 진행된 이 행사에는 신범식 문화공보부 장관과 김현옥 서울시장 등 정계 관계자들도 참석해 축하를 전했다. 이 대회를 통해 전 아시아에 한국교회의 위상을 보이는 한편 아시아 교회들간의 교류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교회학교 기구의 정비

 서대문으로 교회를 이전하면서 장년 성도들의 증가와 더불어 아동 및 청소년 성도들의 숫자도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주일학교 설립의 시급함을 느껴 유년주일학교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 국민학생과 미취학 아동들이 중심이 됐다. 여러 가지로 준비가 미비했던 주일학교는 서울 지역에서 교육제도가 가장 잘 갖추어져 있다는 19개 교회를 선정해 매주 견학과 탐방을 통해 자료를 수집해 제도를 정비했다. 수개월의 과정을 거쳐 정비된 행정제도를 통해 주일학교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됐고 뒤이어 C.A(Christ’s Ambassador)중·고등부가 발족했다. 당시 교사들은 주일 저녁 예배 후 조용기 목사의 사무실에서 주일 공과 공부를 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기도하면 성령 충만한 믿음과 탁월한 열심으로 아이들을 인도했다. 매주일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는 물론이고 여름성경학교, 부흥회 등에는 교사들이 큰 북을 둘러메고 교회 인근 동네인 서대문 네거리와 금화초등학교, 미동초등학교 등을 돌며 어린이 전도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에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방법이나 시설 등이 많이 부족하던 때였다. 그러다보니 교단 차원의 어린이찬송가도 없던 시절 처음으로 어린이 찬송가를 제작하여 보급했다. 300여 곡의 찬송가를 실어 1000권을 출간했는데 순식간에 절판되어 재판을 발행하기도 했다.

 1964년 1월에 청년선교회를 설립했다. 청년선교회는 청년들을 위한 선교단체로서 근로 청소년들의 영적 신앙교육과 ‘청년선교는 청년들이 담당한다’는 큰 사명을 가지고 시작됐다. 이후 구로공단 내 가스펠 하우스를 설치하고 근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서대문을 넘어 여의도를 바라보다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는 나날이 부흥성장을 거듭해 1968년에는 8000명에 이르렀다. 3부로 나뉘어 주일예배를 드렸지만 그래도 좌석이 없어 일부 성도들은 주차장에 비닐을 깔고 앉아 스피커를 통해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특히 예배가 있는 날이면 서대문 로터리 일대가 마비가 되면서 서울시내 교통혼잡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에 당회에서는 교회를 신축하기로 결정하고 대지를 물색하였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터가 부족하지 않으면 너무 비쌌다. 그 때 비행장만 있는 모래벌판의 섬 여의도가 논의됐다. 대다수의 교인들은 반대했지만 조용기 목사는 내일에 대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여의도로 이전할 것을 천명했다.

 결국 당회에서도 여의도로 이전을 결정, 1969년 4월 여의도 땅에서 첫 삽을 떳다. 당시 당회에서는 공사비가 부족해 교회 옆에 아파트를 지어 공사비를 마련코자 아파트 건축을 강행했다. 1970년 가을, 아파트는 완공되었으나 교통불편 등의 이유로 입주자가 거의 없었다. 거기다가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오일쇼크와 달러 하락으로 건축자재의 값이 엄청나게 오르면서 교회는 위기를 맞게 됐다. 당시 오일쇼크로 많은 성도들이 직장을 잃었고, 은행의 신용융자가 축소되는 등 교회의 재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조용기 목사는 냉천동 집을 팔아 건축헌금으로 드렸지만 당시 교역자들에게 사례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을 정도로 시련의 깊이는 더해갔다.

 조용기 목사는 지붕도 씌우지 못한 교회 건물의 녹슨 쇠기둥을 붙들고 울며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성도들도 그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며 함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골조만 겨우 서 있던 여의도성전에 매일저녁 수백 명의 성도들이 여의도 특유의 칼바람 속에서도 금식하며 기도했다.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 기도할 때 결코 하나님은 그 기도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기도회에서 한 80대의 할머니 성도가 대대로 쓰던 놋그릇이라며 돈이 없으니 이것이라도 내놓겠다는 말에 조용기 목사는 통곡하며 “이것은 도저히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성도들은 조용기 목사와 같이 함께 울며 한 명, 한 명 교회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패물을 팔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여성도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팔아 헌금하기도 했다. 이런 성도들의 헌신 속에 1973년 8월 18일 1만 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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