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일본총회, 일천만구령의 소명 재확인


이영훈 목사 “교회성장은 오직 성령충만뿐” 강조

 초대형 태풍 ‘란’으로 일본 전역은 심한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2주간 쉬지 않고 내린 비로 도로가 끊기고 주요 시설이 물에 잠기는 등 피해사례가 늘어만 가고 있었다. 선교사들에게 재충전의 시간과 ‘일본 일천만구령’의 사명을 재확인하고자 순복음일본총회가 열리는 23일에도 일본의 많은 국내선 비행기와 도로통제 및 마비로 총회 개최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번 총회를 주관한 순복음동경교회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이런 걱정 속에서 강사로 초청된 이영훈 목사가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 내리던 그 때 일본 전역에 비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의 따뜻한 가을햇살이 순복음일본총회 개최를 환영하듯 내리쬈다. 이런 기적같은 날씨 변화에 일본 전역에서 참석한 선교사들은 이번 총회을 통해 하나님이 주실 은혜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    

 23일부터 25일까지 가루이자와 ‘메구미 샤레’에서 열린 순복음일본총회에는 총회장 시가끼 시게마사 목사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서 성령운동에 열심인 선교사 130여 명이 참석했다. 23일 성령대망회에서 이영훈 목사는 사도행전 1장 4∼8절의 말씀을 근거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교회성장”이라며 “조용기 목사님 곁에서 보니 다른 것은 다 필요 없다. 오직 성령충만뿐이다”라고 역설했다.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부흥하던 시기에는 세미나가 없었고 오직 부흥회를 통해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 받고 권능을 받아 자발적으로 전도하러 나갔음을 전하며 “일본선교도 다른 길은 없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면 가능하다. 조용기 목사님은 평생을 성령충만을 통해 교회를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이영훈 목사는 “21세기 교회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란 선교하는 교회가 아니라 전 성도가 선교사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라며 일부가 아닌 전 성도의 선교사화를 강조했다.

 설교 후에는 이영훈 목사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전 성도의 선교사화 그리고 일본 일천만 구령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치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을 재현한 듯 뜨거운 기도의 함성은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뜨거워졌다.

 이영훈 목사는 순복음일본총회장 시가끼 시게마사 목사에게 선교후원금을 전달했다.

 24일 새벽예배는 김유동 목사(나고야순복음교회)가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일본선교 30년의 경험을 전하며 “일본에 소망이 있다. 하나님의 때가 왔다”며 “일천만구령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순복음선교사들이 일본의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오전 세미나를 인도하며 초대교회의 박해, 카타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공인부터 종교개혁, 감리교운동, 성결운동, 오순절운동, 아주사거리 등 최근 신사도운동까지 오순절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순복음신앙의 뿌리인 조용기 목사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그리고 4차원의 영성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이영훈 목사는 “종교개혁의 5가지 주제인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에 한 가지를 더한 ‘오직 성령으로’만 있으면 종교개혁은 완성”이라며 선교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 일천만구령의 귀하고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격려하고 합심기도를 인도했다.

 한편 24일에 열린 총회에서 총회장 시가끼 시게마사 목사는 김일 목사(순복음후쿠오카교회), 한복남 목사(순복음고베교회), 배혜영 목사(순복음아키타예수사랑교회), 노진자 목사(순복음나가노교회)에게 30년 근속상을 전달하고 축하했다. 또한 홍상섭 전도사와 시오우라 모토유키 전도사에게 목사안수를 하고 일본 일천만구령에 앞장 서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일본 일천만구령이란 1976년 조용기 목사가 일본 전체 인구 중 10%에 해당되는 1000만 명의 일본인을 복음화하겠다는 선교비전으로 순복음일본총회는 최전선에서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순복음일본총회는 8개의 지방회 88개의 교회(지성전 포함)를 세우고 125명의 선교사가 눈물의 기도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순복음일본총회장 시가끼 시게마사 목사를 비롯한 총회 소속 선교사들은 “일본 일천만구령을 위해 그리고 일본에 제2의 부흥이 일어날 수 있도록 강력한 성령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다짐하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일본이 복음화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했다.    
 노아에게 하나님이 무지개로 응답하셨듯이 순복음일본총회 소속 선교사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 총회가 열린 메구미 샤레에 커다란 무지개가 걸렸다.  

<이모저모>

○… 일본 전지역이 태풍 ‘란’의 영향으로 도로와 시설이 침수되거나 유실됐으며 일부 교회들도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그 바람에 일부 지방회들의 참여가 늦어져 23일에 열리기로 했던 총회 및 목사안수식이 연기됐다. 관서지방회의 경우 오전 7시에 출발했으나 총회장소인 가루이자와에 저녁 9시에 도착하기도 했다. 총회에서는 피해를 입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다.
○… 이번 일본총회에 선교사들을 격려차 (사)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장 김종복 장로와 동북아선교회장 이강우 장로도 참석했다. 24일 이강우 장로는 동북아선교회가 매주일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전하고 총회장 시가끼 목사에게 선교후원금을 전달했다. 또한 러시아 극동지역의 선교사들도 이번 총회에 참석했다. 현재 순복음일본총회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포함하여 8개의 지방회와 76개의 교회, 12개의 지성전 그리고 125명의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 23일 순복음일본총회장 시가끼 시게마사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만찬을 함께 하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만찬에 앞서 시가끼 목사는 “총재 조용기 목사의 건강과 이영훈 목사의 목회사역을 위해 기도하자”며 기도의 시간을 갖고 일본 일천만구령을 위해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 순복음일본총회 실행위원회(아래 사진 왼쪽)가 총회장 시가끼 시게마사 목사를 비롯한 실행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3일 열렸다. 시가끼 목사는 총회가 은혜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실행위원들에게 당부를 전하고 태풍 ‘란’의 영향으로 23일에 진행되기로 했던 총회 및 목사안수식은 24일에 진행키로 했다.


장로회 임원 및 분과위원장,

특별위원장 오리엔테이션


이영훈 목사 “올바른 역사의식 가진 리더들 되어야”
박경표 장로회장 “서로 협력해서 교회를 이끌어 가자”

 장로회는 13일부터 14일까지 이틀간 인천 송도 오크우드 프리미어에서 장로회 임원 및 분과위원장, 특별위원장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개최했다.
 내년 우리 교회 창립 6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 교회 평신도 리더들의 모임인 장로회, 이 중에서도 박경표 장로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분과위원장, 특별위원장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어진 사명이 막중하다. 이에 이영훈 목사는 오리엔테이션에서 첫날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주제로, 마지막 날에는 60주년을 맞이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비전 및 발전계획을 주제로 강연하며 교회 창립 60주년이 새로운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당부했다.

 이영훈 목사는 첫날 순복음이란 이성적이고 자유주의 물결에 대항하여 나타난 용어라며 가장 근본적인 신앙에서 우리 순복음이 탄생했음을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교회가 탄생하게 된 AD30년의 오순절성령강림사건부터 초대교회, 중세암흑기, 종교개혁, 19세기 유럽과 미국에 퍼진 성결운동, 20세기 등장한 오순절 그리고 아주사성회 등을 거쳐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까지의 과정을 전하고 대조동 천막교회 당시 조용기 목사가 ‘좋으신 하나님’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했음을 역설했다. 이영훈 목사는 “순복음신앙의 출발은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강조하며 최근 어려운 성도들을 심방하며 느낀 것을 장로들과 공유하며 “앞으로도 어려운 성도들을 계속해서 찾아가 꿈과 희망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엄태욱 선교사(말레이시아)

17년째 보루네오섬에서 순복음의 영성 심어


말레이시아 정부에 시부순복음교회 정식 등록
3개 지역에 지교회 완공, 12지역 롱하우스 교회 섬겨

 말레이시아의 면적은 33만여 제곱미터이고 인구는 2700만명 정도 됩니다. 쿠알라룸푸르가 수도이며 공식 언어는 말레이어이지만 145개의 다른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국가이지만 약 62% 정도가 무슬림이고 기독교인이 약 9% 정도 됩니다. 나머지는 무교이거나 원시종교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연방 국가인데 총 13개주로 나뉘어 있습니다. 서쪽 말레이시아에 11개 주가 있고 동쪽 보루네오섬에 2개 주가 있습니다. 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는 비행기로 2시간 거리입니다.

 보루네오섬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섬입니다. 칼리만탄이라는 큰 산맥을 중심으로 밑쪽 4분의 3은 인도네시아이고 위쪽 4분의 1이 말레이시아인데 말레이시아의 2개주인 사라왁주와 사바주가 있고 그리고 사라왁과 사바주 사이에 브루나이라는 나라를 포함하여 이렇게 3개 나라가 보루네오섬에 있습니다.

 보루네오의 정글은 아마존의 정글과 함께 지구의 허파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끝이 없이 펼쳐진 원시림과 아직도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많은 지역들이 있습니다. 

 저의 사역은 보루네오 동말레이시아 사라왁주에서 살고 있는 이반족을 섬기는 일입니다.
 이반족은 롱하우스라는 이반족만의 독특한 주거형태를 이루고 밀림안에서 살고 있는데 별명이 헤드헌터(Head hunter)로 불리울 정도로 용맹하고 잔인한 족속입니다. 칼리만탄의 북쪽에 살다가 현재 살고 있는 사라왁쪽으로 이주를 하면서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전부 몰아내고 땅을 차지했습니다. 전쟁을 벌이면 다른 족속들의 목을 베어 칡넝쿨 안에 넣어 자기 집 앞에 걸어놓습니다. 다른 사람의 머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이 육적으로 영적으로 강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전쟁을 벌여 사람의 목을 베면 그 증표로 자기 몸에 문신을 해서 넣습니다.
 사라왁주의 인구는 약 300만명 정도인데 그 중 약 80만명이 이반족입니다. 이반족의 롱하우스들은 주로 강가에 있기에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쁘라우라고 불리우는 작은 카누같은 배를 이용해야 합니다.

 제가 1995년 본 교회 CAM대학선교회에서 교역자로 학생들을 섬기고 있을 때 첫 말레이시아 팀이 구성되었는데 이 팀에 참여하게 되어 사라왁 땅을 처음 밟았습니다. 약 2주간의 사역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제 마음에는 여기는 사람 살 곳이 못되는 땅이구나 다시 오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너무 습하고 더운 열대 우림 기후에 쁘라우라는 작은 롱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평균 4∼5시간씩 이동하여 롱하우스 사역을 하는데 어느 집에도 화장실이 없고 모기는 왜그리도 많은지 이반족은 손님들이 오면 롱하우스 안 공동복도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둥그렇게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는데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개와 고양이도 같이 와서 우리와 함께 먹곤했습니다. 사역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3일 동안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몸이 아프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1996년 주님의 강권하심으로 말레이시아팀 팀장이 되어 사라왁에 다시 한번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해의 경험으로 걱정이 많이 되어서 기도를 많이 하고 갔었는데 날씨도 너무 좋았고 음식도 맛있었고 제가 그렇게 싫어하던 개와 고양이도 예뻐 보일 정도로 사역을 잘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주님이 저를 사라왁으로 부르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97년 6월 말레이시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이 땅에 오게 되었는데 큰 딸 영은이는 18개월, 아들 요셉이는 6개월이라 둘 다 기저귀를 차고 아직 젖병을 물 때였습니다.

 2000년 7월에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사라왁주 시부에 시부순복음교회(Sibu Full Gospel Church)를 개척하였습니다. 저희가 사역하고 있는 사라왁주에는 이반족 말고도 약 22개의 부족이 살고 있는데 그들 중 주 종족이 이반족입니다.
 처음 제가 교회를 개척할 때 주님이 주신 비전은 “1000개의 마을에 100개의 교회를 10명의 신실한 일꾼이 오직 1(한)분 예수를 위하여”이었습니다. 저희가 섬기고 있는 시부지역에 이반족 롱하우스들이 약 1000개가 있는데 그곳에 100개의 교회를 세우라는 비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모르는 이반족들이 살고 있는 롱하우스에 저희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 중 누구라도 주님을 영접하여 그곳에서 예배가 시작되면, 예배가 없던 곳에서 예배가 시작되면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저희 교회의 목표는 주님이 주신 이 비전이 성취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2010년에는 저희들이 그토록 바라고 기도하였던 교회등록이 주님의 은혜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말레이시아 정부에 시부순복음교회를 정식으로 등록한 것입니다. 선교사가 세운 교회로 말레이시아 정부에 정식으로 교회를 등록한 것은 저희가 최초인 것 같습니다.

 현재는 시부순복음교회 외에 3개의 지역에 지교회를 건축해 완공하였고 12지역에 롱하우스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올해로 만 16년을 지난 17년째 사라왁 사람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 주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으면 저희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쁘라우에 올라 복음을 전하러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2번이나 큰 배와 충돌하여 목숨을 잃을 뻔 하였고 2004년에는 원인 모를 풍토병으로 아내의 머리가 완전히 다 빠지는 일이라든가 열대 우림 기후로 인하여 면역력이 저하되어 설사와 콧물이 1년 동안 멈추지 않아 고생 하던 일, 작년에 아내가 받았던 2번의 수술 등 저희 힘으로는 견뎌낼 수 없는 환경을 주님이 지켜주셨습니다. 주님이 함께 견뎌 주셨습니다.

 저희 시부순복음교회의 비전이 “1000개의 마을에 100개의 교회를 10명의 신실한 일꾼이 오직 1(한)분 예수를 위하여”입니다. 예배 때마다 저희가 기억하며 외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비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1000개의 마을 앞에 1만명의 중보기도자가 있는 것입니다. 1만명의 중보기도자가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할 때 주님이 주신 비전인 100개의 교회를 이 땅에 세우는 일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보루네오섬의 이반족을 위해서 성도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영훈 목사, 영락교회서 3일간 부흥회 인도


‘교단 넘어 한국교회 희망으로 품다’
성령과 권능으로 역동적인 선교 비전 심어

 이영훈 목사는 16일부터 18일까지 영락교회에서 한국 교회를 성령으로 깨워야 한다는 큰 울림을 선사하고 선교의 비전을 심었다. 우리 교회와 영락교회는 각각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이하 예장통합) 교단을 대표하는 교회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말씀으로 나아가는 선교 100년’이라는 주제로 선교대회가 열린 영락교회에서 사흘 연속 이영훈 목사를 주강사로 부흥회를 개최한 것은 두 교단의 화합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1980년대 초 우리 교단은 예장통합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10년이라는 긴 논쟁이 끝난 1994년 오순절 교파의 특수성을 인정받으며 예장통합과 그 간의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국제신학연구원장 이영훈 목사의 역할이 빛났다.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신앙과 신학Ⅰ,Ⅱ』를 발행하며 우리 교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무엇보다 1964년 할아버지의 뜻에 의해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전까지 4대째 장로교 출신이었던 이영훈 목사는 장로교 목사들과 교류하며 두 교단을 잇는 오작교 역할을 감당했다.

 교단을 뛰어 넘어 오직 믿음으로 하나 된 부흥회 첫째 날 이영훈 목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마:28∼20)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이영훈 목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성령과 권능에 따른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권면했다. 또한 “자신의 직분에서 선교의 의무를 다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바란다”며 선교는 선택이 아닌 의무임을 강조했다. 선교대회 마지막 날 이영훈 목사는 ‘성령과 선교’(행1:4∼8)라는 말씀으로 형식적인 신앙은 죽은 신앙이며 성령이 임하는 역동적인 신앙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대광고등학교 학생시절 성령을 받고 전도의 열정이 넘쳐 학급친구를 전도했던 것이 40년 후 열매 맺은 이야기, 어머니가 성령을 받고 전도에 열심을 다하며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통해 증인된 삶을 사는 신앙인이 될 것을 권면했다.

 3일 동안 부흥회에 참석한 영락교회 2여선교회장 이성숙 권사는 “처음 순복음교회 목사님을 초청한다는 이야기에 우리 교단과 너무 달라 말씀에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모두가 걱정했다. 그런데 역시 하나님은 동일하시다. 부흥회를 통해 선입견을 깨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락교회 이철신 목사는 “이영훈 목사님과는 개인적 인연이 있지만 사역을 같이 할 기회는 없었다. 이번에 성도들이 설교로 많은 은혜를 받았으니 앞으로 두 교회의 교류가 지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영훈 목사의 이번 부흥회는 교파를 초월해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으로 하나 되어 기도하고 예배하는 종교개혁의 정신를 되새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10월 31일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한국교회가 연합하고 하나되는 믿음의 신호탄이 되었다. 

 


[순복음의 7대 신앙]③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

 ‘순복음 신앙’이란 성경에 기록된 복음을 100% 믿으며, 일상생활에서 100% 실천하는 복음을 말한다. 이 순복음 신앙은 일곱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를 ‘순복음의 7대 신앙’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곧 ① 갈보리 십자가의 신앙 ② 오순절 성령충만 신앙 ③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 ④ 좋으신 하나님 신앙 ⑤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신앙 ⑥ 다시 오실 예수님 신앙 그리고 ⑦ 나누어 주는 신앙이다. 이처럼 순복음 신앙은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을 믿는 신앙이다. 내년 5월 교회 창립 60주년을 앞두고 7회에 걸쳐 순복음의 7대 신앙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오순절 성령충만의 신앙… 땅끝까지 복음전하는 선교사명 감당해야”

 지난 호에서 살펴본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초대교회를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기독교 복음 증거의 출발점이 되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주님의 말씀처럼 성령충만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열정과 능력을 가지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다. 순복음 신앙은 갈보리 십자가의 메시지를 성령충만한 가운데 땅 끝까지 전하는 선교적 영성을 지닌다. 이번 주에는 순복음 7대 신앙 가운데 세 번째 단계인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오순절 성령 강림과 복음 증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복음 증거의 명령(마 28:18∼20; 막 16:15; 눅 24:46∼47)은 교회 가운데 임재하신 성령의 역사에 의해 가능하였다. 사도행전은 실제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거쳐 소아시아와 유럽의 마게도냐 지역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복음의 확장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시작과 확장이 ‘성령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면 오늘날 교회의 사명 또한 분명해진다. 성령 안에서 그 기초가 세워진 교회는 성령 안에서 성장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확장되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의 충만을 입은 교회는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순복음의 신앙은 성령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선교적 신앙을 지닌다.  

 2. 순복음 신앙과 선교적 영성

 순복음의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이 내포하고 있는 복음 증거의 선교적 영성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선교의 보편성을 추구한다. 오순절 사건은 교회의 복음 증거에 있어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 왕, 선지자와 같이 특수한 사람들에게 한정되었던 성령의 부으심이 오순절 사건을 계기로 이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성도들’에게로 확장되었다. 이를 가리켜 베드로는 구약 요엘서의 성령의 보편적인 역사에 대한 예언의 성취라고 선포하였다(행 2:17∼18).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령의 부으심과 복음 증거가 동전의 앞뒤와 같이 하나로 연결되는 사건인 것처럼 보편적 성령의 임재는 보편적 선교로 나타나게 되었다. 특수한 사람들에게 한정되거나, 제한된 지역에 머무는 선교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구나 선교를 꿈꾸고, 어느 곳이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증거하는 그것이 바로 순복음 선교가 지향하는 바이다.  

 둘째,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하는 선교이다.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행 1:8)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제자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간절히 성령을 사모하였다. 이때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는 것은 복음 증거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주님의 현재적 임재를 체험하며(요 14:26), 그분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행 1:8). 따라서 순복음의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선교에 효과를 나타내는 신앙이다.

 셋째, 지금 여기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증거이다. 순복음의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은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의 지속적인 임재와 활동을 믿고 증거하는 신앙이다. 즉,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능력을 체험하고 선포하는 신앙이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표적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죄와 질병과 고통으로부터의 죄사함과 치유와 회복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며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널리 선포하는 것이다. 이처럼 순복음의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현실로 임하는 것을 믿고 선포하는 신앙이다.

 3. 순복음의 선교적 영성의 특징 

 순복음의 땅 끝까지 전하는 선교적 신앙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복음 증거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준비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일종의 종말론적 사건으로서 제자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복음을 증거하였다. 따라서 성령의 오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복음 증거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순복음의 선교적 사명은 초대교회의 그것처럼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종말론적 믿음이 열정적인 선교로 나타난 것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확신은 순복음 선교의 특징적 요소로 나타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다. 선교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에게 전인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생명의 역사를 나누는 것이다. 순복음의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에 나타난 선교적 개념은 개인 구원의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 정의와 사회적 관심을 포괄하는 사회 구원의 차원으로 그 영역이 확대된다. 이것은 포괄적 선교이자 총체적인 선교로 개인 영혼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더불어 사회적 나눔과 돌봄이라는 사회적 차원의 구원을 위해 한국과 세계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순복음 선교는 사회적 나눔과 돌봄이라는 과제에 대해서 신학적, 제도적, 교단적 차원을 넘어 협력하며 국경을 초월하여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폭넓은 개념을 지닌다.

 순복음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믿으며, 그 기반 위에서 성령을 사모하며 성령의 충만을 받아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복음 증거의 명령에 따라 땅 끝까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교적 열정을 지닌다. 이러므로 순복음의 성도들은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에 따라 만민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윤석호 목사(홍콩순복음교회)

중국 복음화의 관문 홍콩에 순복음 영성 심다

중국 복음화의 관문 홍콩에 순복음 영성 심다
조용기 목사, 이영훈 목사 성회통해 치유와 회복 일어나
홍콩섬에 성전 세우고 오중복음 삼중축복 전하는데 박차

 홍콩은 아시아 금융의 허브이고 중국의 관문으로써 많은 다른 민족과 종족이 살고 있고 또 수 많은 관광객들이 지나는 곳입니다. 하지만 95%가 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이곳의 미신과 많은 우상들을 섬기는 가운데 있습니다. 저는 2008년 7월에 당회장 이영훈 목사님의 명을 받아서 홍콩 선교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홍콩순복음교회는 올해로 창립 26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6년 전 중국 선교의 비전을 품으신 조용기 목사님의 뜻에 따라 중국 복음화의 전초기지로써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초창기에는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와 후원 그리고 헌신이 있었습니다. 아직 중국의 문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민가방에 성경책들을 나르기 시작 하면서 중국선교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중국 선교사님들과 선교지 교회를 섬기고 또 사경회를 통해서 많은 조선족 목회자를 양육 양성했습니다. 그리고 보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족 목회자들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신학교육을 통해서 목회현장에 큰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2010년에는 홍콩순복음교회가 장로님들과 모든 성도들의 기도 속에 ‘홍콩영산 신학대학원’을 개강 했습니다. 현재 중국 삼자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들과 조선족 목회자들에게 신학석사 과정을 강의하게 되었고, 지난해에는 13명의 목회자가 첫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교회를 호텔에서 개척한 후에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국을 통해서 후원금을 받아 구룡반도의 침사추이에 첫 교회 건물을 매입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홍콩섬의 완차이로 성전을 이전해 예배드리다가 2011년 3월에 홍콩섬의 중앙에 위치한 셩완지역에 현재의 성전을 매입하여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 그리고 많은 여의도 교역자들을 모시고 입당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현 건물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많은 장소를 알아보았습니다. 21일 금식기도 가운데 현 장소를 찾아 처음 들어오는 순간 “여기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건물주를 만나 매입하고자 했지만 건물주는 당시 학원으로부터 많은 임대료를 받기에 매각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연락해 달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이틀 뒤에 건물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를 만난 다음날에 친구들과 만남의 자리에서 한국교회가 건물 한 층을 구입하기 원한다는 말을 건네자 친구들이 모두 교회에 건물을 매각하는 것은 큰 복이라는 말을 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건물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건물주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건물주는 식당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한 후에 지금까지 서로 좋은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후에 당시 현 시가 보다도 낮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헌금과 이전 성전을 매각한 금액을 포함해도 은행을 통해 융자를 얻었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계획하던 입당예배가 늦어질 것 같아 기도하는 가운데 건물주로부터 본인이 작은 은행을 가지고 있으니 일단 이전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대대로 홍콩에 유력한 부동산 재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입당예배를 위해서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께서 홍콩에 오실 때에도 본인의 자동차와 기사로 목사님을 모실 수 있도록 섬겨주기도 했습니다.

 노아의 방주와 똑같이 만들어 놓은 공원에서 조용기 원로목사님 집회를 할 때에는 수 많은 홍콩 목회자들 그리고 홍콩 성도들이 많이 참여해서 은혜도 받고 치유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여의도 국제사역국 주관으로 이영훈 당회장 목사님을 모시고 아시아지도자모임(Asian Leaders Summit)을 가졌습니다. ALS를 통해 아시아의 젊은 목회자들이 모여 현 세대를 복음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교회 부흥과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은 은혜와 성령의 감동이 넘쳐났습니다. 

 현재 우리 홍콩순복음교회는 주일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위성예배와 한인예배, 광둥어예배 그리고 영어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 후에는 모든 성도님들이 구역예배의 형식을 가지고 지파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말씀묵상과 교회사역 그리고 할당된 선교지와 여의도순복음교회 파송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교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주에는 교회 주변의 땅 밟기와 현지 홍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홍콩순복음교회 성도들은 한 마음으로 교회 부흥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26년 동안 은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항상 기도해주시는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홍콩 사람들을 섬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작정헌금을 하고 문 밖에만 나가면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도 성도들과 함께 구제와 선교에 모든 열정을 다 쏟기로 마음먹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014년부터는 한인 예배부와 광둥어 예배부를 두 축으로 하는 가운데 영어권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민족과 중국의 선교를 위해 정진해 나갈 것입니다. 지역 미신과 우상 숭배가 만연한 이 곳 홍콩과 교회를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희망의 60주년을 향하여-하나님의 역사하심(1962∼1972)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서대문서도 부흥의 불 타올라

 서대문시대 개막

 

1961년 대조동 천막교회가 계속 부흥성장한 결과 400명이 넘어가면서 최자실 목사와 당시 조용기 전도사는 중요한 결단을 필요로 했다. 앞서 9월에 서대문 로터리에서 천막대부흥성회가 열렸는데 성회가 진행된 한 달 동안 수많은 환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이 때 조용기 목사는 성령을 통해 천막대성회가 열린 그 자리에 교회를 세우라는 강한 소망이 생겼다. 그해 10월 15일 천막대부흥성회가 열렸던 서대문 네거리 자리에서 천막을 치고 개척예배를 드렸다. 이듬해 1962년 2월 18일 순복음부흥회관 헌당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4월 26일 조용기 전도사가 목사안수를 받고, 5월 13일에는 교회명칭을 순복음부흥회관에서 순복음중앙교회로 변경했다. 서대문시절에도 조용기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는 꾸준히 부흥했다. 서대문으로 이전하면서 교회 성도수가 늘어 교회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첫 집사 임명이 1961년 거행됐다. 송재덕 집사를 비롯해 5명이 집사로 임명됐고 1966년 4월 5일에는 최초의 장로장립식이 거행됐다. 이 때까지 교회는 당회가 구성되지 않아 제직회를 통해 이루어졌으나 장로를 세움으로 인해 조용기 목사를 당회장으로 하는 당회가 구성되어 교회를 치리하기 시작했다. 한편 1975년에는 장로들의 신앙향상을 위해 장로친목회가 결성됐다. 장로 상호간의 친목도모와 교인들의 신앙에 도움을 주고자 설립됐던 장로친목회는 1988년 장로회로 거듭나 사역변경을 보다 확대했다. 당시 초대회장에 이규화 장로가 선임됐다.
 


교회부흥 일조한 구역조직의 탄생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계최대교회로 만드는데 일조했던 구역조직도 이 때 시작됐다. 1964년 성도수가 3000명이 넘고 1965년에는 2배가 넘는 7500명으로 부흥했다. 이렇게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조용기 목사는 어느 날 오후 2시간에 걸쳐서 수백 명의 성도들에게 침례를 베풀다가 그만 마룻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1주일간 요양했지만 그 다음주 주일 설교하러 올라갔다가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조용기 목사는 성경을 창세기부터 읽는 도중 출애굽기 18장 18절의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다음 주일 제직들을 부른 조용기 목사는 사역을 분담한 구역조직을 발표하게 된다.
 구역을 처음 조직하던 당시에 여성을 리더로 삼는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조용기 목사는 20명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구역을 발족하고 그들을 구역장으로 임명했다. 이들에게 각 구역에 있는 성도들을 모아 양육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는 일을 담당하게 했다. 나아가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구역모임과 교회로 초청할 것을 당부했다. 구역조직이 원활하게 움직이고 운영될 수 있도록 구역장들을 교육하고 지침들을 발표했다. 구역원이 15명이 되면 분리하도록 한 결과 19678년에는 수백개의 구역으로 성장해 교회부흥에 크게 일조했다. 

 
남녀선교회 태동 남친목회·여전도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최대 봉사기관인 남녀선교회는 서대문시절에는 남친목회와 여전도회로 각각 창립됐다. 남친목회는 남성구역이 생기기 이전인 1962년 남성 성도들의 모임의 필요성을 느껴 송재덕 집사를 비롯한 남성 집사들이 모여 창립총회를 가짐으로 시작됐다. 처음에는 회원들의 가정을 순회하며 정기모임을 갖고 올바른 신앙을 갖도록 독려하는 것이 주였다. 그러나 2차 정기총회 이후 본격적인 조직을 갖추어 노방전도를 실시하고 신설된 남성구역 심방, 교회의 환경미화, 시설 완비, 조용기 목사의 설교집 제작 등을 시작했다. 교회가 부흥될수록 남친목회의 회원도 증가함에 따라 회원들의 은사와 달란트를 적극적으로 활용, 다양한 사역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성도들의 증가에 따른 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교통봉사를 비롯해 교회 대내외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선교회라는 명칭은 1968년 임시총회를 통해 개칭하고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봉사기구로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전도회는 1959년 대조동 천막교회시절 발족해 당시부터 노방전도를 시작했다. 서대문시절에는 교회 교구조직에 참여하며 노방전도, 가정심방, 병문안, 결신자 심방, 장례 등 교수 일에 우선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 구치소 방문, 신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등 사역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혔다. 1970년에는 부인선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최자실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의 어머니로서 절대순종의 자세로 교회의 봉사에 임했다. 1975년 부인선교회는 지금의 여선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성찬 떡과 포도주를 만드는 등 교회를 위한 사역 지경을 계속 확장해 나가고 있다. 

 매스컴 통한 전도 시작

 1966년 12월 12일 순복음문서전도회 창립회의가 열렸다. 문서전도의 일환으로 교회잡지를 발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월간 신앙계를 발간하게 됐다. 1967년 2월 5일 발간된 신앙계 창간호에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 최자실 목사(당시 전도사)의 일본 부흥성회 화보, 성도들의 신앙시, 간증 그리고 신앙상담 등이 있었다. 또한 성도들의 올바른 성경공부를 위해 ‘복음통신’이라는 통신성경공부가 실려 있었다. 이후 기관지의 성격에서 발전해 초교파적으로 기독교문화를 이끄는 대변지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8년 9월 4일에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극동방송을 통해 조용기 목사의 설교와 성도들의 간증이 담긴 ‘순복음의 시간’이 방송됐다. 또한 교회 5층에 녹음실을 갖추어 설교테이프를 제작, 전도용으로 활용했다


새에덴교회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예배 드려


이영훈 목사 “오직 믿음으로 전진하라”

 이영훈 목사는 15일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해 말씀을 전했다. (사)세계성령중앙협의회와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에서 주관하고 2017종교개혁500주년 성령대회가 주최하는 이번 기념예배에서 이영훈 목사는 ‘오직 믿음으로’(히 11:6)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영훈 목사는 “기독교를 힘들게 하는 어떤 시도와 노력도 주님 앞에서 무너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는 성령으로 충만하고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며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하고만 일하신다. 여기 모인 모두가 성령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훈 목사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로, 찬양함으로, 감사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라며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한 마음 되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오직 믿음의 전진을 계속하라”고 당부했다.

 설교 후 이영훈 목사와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는 500주년 헌금을 스와질랜드기독대학교 이사장 김조양 선교사와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 원장 박재윤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김조양 선교사와 박재윤 변호사는 감사를 전하고 맡은 사역에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인사했다.

 이날 예배는 오범열 목사(성산교회)의 사회로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개회사, 문성모 목사(한교회)가 기도, 강헌식 목사(평택순복음교회)가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합심기도를 인도했으며 이말테 교수(루터대)가 봉헌기도, 민경배 석좌교수(백석대)가 기념사,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와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원로)가 개혁사, 이수형 목사(세계성령중앙협의회 대표회장)가 인사했다.


아시아 7교회 성지(터키,그리스

            

 아시아 7교회 성지(터키,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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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디스라 하며 현재명은 살리히리이다. 사데 교회는 1세기 중반에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사도 바울의 제자이며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던 클레멘트가 사데 교회의 첫 감독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사데 교회는 이 도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크게 부흥 하였다가 나중에는 쇠퇴하는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사도 요한이 사데 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의 교회지도자는 누구였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처음에는 아데미신전을 빼앗아 예배드리다가(4세기경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권세를 얻었을 때쯤)후에 신도의 숫자가 작아져 아데미신전 담 밖에 돌담을 싸놓고 예배드린 것 같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 당시 신도 수는 매우 많았으나 영적으로는 미약하였다. 때문에 "너는 살아있다고 말하나 실은 죽어가고 있다!"란 책망을 받았다. 사데 지역은 황금이 많은 지역으로 재물의 유혹이 있었고 또한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어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의 사데교회 유적은 아데미 신전 뒤편에 비잔틴 시대에 벽돌로 지은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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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교회
 
필라델피아는 현재명으로 알라세히르이다. 주님께 칭찬만 받았던 교회로 초대교회 당시 교회는 크지 않았으나 디오니소스 신전과 황제 숭배의 핍박을 이겨낸 교회였다. 현재의 유적은 동 로마 제국 비잔틴 시대(AD600년경)에 세운 것으로 성 요한의 교회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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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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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교회(세라피스신전)
 
세라피스 신전은 레드 홀(Red Hall)로 이 신전 밑에는 세리누스(Selinus) 강이 흐르도록 설계하였다. 이 신전은 2세기에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위해 지은 것이어서 이집트 신전이라고도 하며, 붉은 벽돌로 지어져 ‘붉은 정원’이란 뜻의 '크즐 아블루'라고도 불린다. 신전의 규모는 가로 100m, 세로 260m에 이르고, 높이도 20여m에 달해 그 규모가 매우 웅장한 편이다. 지금은 건축물의 벽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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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디라교회
 
두아디라 교회, 티아티라고 하며 현재명은 아크히사르이다. 당시 이 도시에는 트림나스라는 무당이과 무녀(巫女)들이 많아 기독교인들을 유혹했고 또한 시장 조합을 중심으로 우상 숭배와 음란한 제사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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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디라교회
 
 
 
 
 
 

두아디라교회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교회 거리
 

두아디라 염색 기술, 두아디라는 옷감 기술이 뛰어난 곳으로 빌립보의
루디아도 두아디라 출신으로 자주 옷감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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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교회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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