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 빨간 배추

 

 

 

 

 

 

빨간배추 ..

안토시아닌 성분이 풍부한

기능성 배추로 올해 첨 재배를 시작했다

빨간색이 식감을 더해주지만

자라는 속도가 다른 쌈채소보다

매우 더디게 자란다~

 

맛은 일반 배추와 흡사하고..

기능성 배추라 쌈채소로서 인기가

어떨지 ...?



레아 ―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여인
1. 인적 사항
① 리브가의 오빠인 라반의 첫째 딸, 라헬의 언니(창 29:16).
② '레아'는 '암소'라는 뜻. ③ 하란 출신. ④ 안력이 부족함(창 29:17).
⑤ 르우벤, 시므온 등 6자매를 둠(창 29:31-35;30:17-20).
2. 시대적 배경
레아는 B.C.2000년경 출생하여, 일가 친척이 뿌리를 내리고 살던 메소보다미아 하란에서 생활하다가 야곱과 결혼하여 낯설고 물 설은 땅에, 그것도 고정된 정착지도 없는 이주민의 신세로 가나안에 이주하여, 평생을 언약 백성의 조상으로서 역사적 기반을 닦는 일념으로 일생을 살다 갔다. 그녀는 동생 라헬과 각각 두 자매의 몸종이었던 두 명의 시녀 도합 4명이 한 남자 야곱과 중혼하여, 그들이 얻은 12아들로 구성된 제3대 족장 가문의 제1정실 부인으로서 여성으로서의 관심은 별로 받지 못하였으나 6명의 아들을 직접 생산하였다.
3. 주요 생애 
| 결혼 전 시절 | 
하란에서 출생 | | 창 29:4,16 | 
결혼 후 시절 | 
야곱과의 결혼 | B.C.1922년 경(?) | 창 29:21 | 
르우벤, 시므온 등 6자녀를 낳음 | - |창29:21-35;30:17-20 
딸 디나를 낳음 | - |창 30:21 | 
가나안 이주 | B.C.1909년 경(?) |창 31:4-20 | 
죽어 가나안 땅에 장사됨 | - |창 49:30,31 |
4. 성품
① 특출한 미모는 없으나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기다린 인내의 소유자인듯 함
②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나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 신앙 인물(창39:18,20,32,33,35).
5. 구속사적 지위
① 아브라함 소명 이후 제3대에 이른 언약 가문의 족장인 야곱의 첫번째 정실부인.
② 장차오실 메시야의 육신적 직계 조상인 유다를 낳음(창 29:35;49:8-10;마1:2,3).
6. 평가 및 교훈
① 레아는 사실 야곱이 원래 원했던 아내가 아니었음에도 아비의 속임수로 야곱의 처가 된 여자였다(창29:25). 이것은 아비 라반의 입장에서 보면 강권에 의한 결혼이고 그 때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구차하게 한 결혼인 셈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지 간에 그녀는 언약 가문의 일원이 되어 훗날 구약 구속사에서 큰 역할을 한 이스라엘 백성의 육신적 어미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자의든 타의든 한 인간이 하나님 및 그 복음과 조우하게 되어 택한자의 범위안에 들게되면 누구나 큰 축복을 얻음을 보여준다.
② 레아는 인간적으로는 안력이 부족하고 아름답지 못하여 남편의 사랑을 크게 못받았으나 그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그분의 은총을 받아 그리스도의 육신적 조상인 유다 외의 많은 아들을 낳은 즐거움을 얻었다(창29:35;49:9,10).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연약하나 하나님만을 믿고 의뢰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과 즐거움, 만족함 등을 얻을 수 있음을 본다(롬8:17,18;고후3:5).

[성지자료] 누가의 묘(에베소)

            


한글 안내판

 


영문 안내판

 


안내판

 


누가의 묘

 


누가의 묘

 


누가의 묘임을 입증하는 송아지그림(누가복음)

 

고대 도시 에베소의 유적에 들어 가는 입구에 주차장이 있고 그 주차장 뒤 쪽에 누가의 묘가 있다. 누가의 유해는 사도 요한이 이곳에 안장했었는데 후에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로 이장했었다. 건물에 누가의 묘지임을 알려 주는 황소의 그림이 부조되어 있다. ‘성지 보존협회’에서 한글로 설명문을 세워놓은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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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와 함께하는 자들을 섬기던

여자들은?(8:1-3) :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은 제자들에게만 허락되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씨는 무엇을

뜻하는가?(8:11) :

 

하나님의 말씀

 

길 가에 있다는 것은?(8:12) :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8:13) :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8:14) :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8:15) :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거라사인의 땅에서 예수께서 만난 '군대'라는 귀신이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른 말은?(8:2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군대라는이름의 뜻은?(8:30) :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거라사인의 땅에서 예수께서 만난 '군대'라는 귀신은 어디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는가?(8:31) :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역대상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이미 살펴본 열왕기상·하 외에도 역대기 상·하가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네 권이다. 그런데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다보면 내용이 서로 겹치는 부분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이 책들은 서로 동일한 사건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비슷한 역사책이 두 개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열왕기가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멸망의 원인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했다면, 역대기는 포로기 이후 본토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열왕기가 과거지향적 역사서라면, 역대기는 미래지향적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참된 믿음의 뿌리(역대상 1∼9장)


 역대상이 기록된 시대는 이스라엘이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고향으로 귀환한 시기로 나라의 모든 것이 파괴된 때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재건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뿌리를 되찾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뿌리를 찾은 후에야 미래의 비전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대상의 서두가 족보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열왕기서가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권을 넘겨주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작을 아담에서 찾는다. 역대기가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작을 아담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대상 1:1).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다(창 1:27). 이것은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자신들의 조상인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백성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달아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적 사명을 일깨워준다.

 역대상의 족보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러 이스라엘 족장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유독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역대상에는 왜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거짓과 속임 가운데 파란만장한 삶을 산 야곱 대신에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믿음의 사람 이스라엘이 주는 의미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대상 전반부(대상 1∼9장)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족보가 매우 세심하게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가 인간의 변화 이전의 삶보다는 참 믿음에 의한 변화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진정한 신앙의 역사(역대상 10∼29장)


 역대상의 후반부는 사울의 죽음(대상 10장)과 동시에 다윗의 왕위 등극(대상 11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는 열왕기서와 달리 신앙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보통의 역사는 정치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하지만 역대기서는 믿음의 눈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언약궤를 모셔 오고 성전 건축과 관련된 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후 가장 먼저 시행한 일은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일이었다(대상 13:1∼6). 이는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웃사의 실수로 다윗의 계획은 어긋난다(대상 13:9∼14). 이 때 하나님은 언약궤를 옮기려 했던 다윗을 축복하고 외교와 정치 그리고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하셨다. 다윗은 교만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기 위해 세밀한 계획을 준비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였다(대상 15:1∼29). 이것은 역대기가 다윗을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신앙의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은 마침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게 되었고, 이 궤를 섬기는 사람들의 복무규정을 제정하고(대상 16:1∼6), 기쁨으로 감사의 찬양을 불렀다(대상 16:8∼36). 그 다음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건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다윗은 전쟁으로 인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다(대상 22:8). 그러나 다윗의 열심은 멈추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는 성전 건축이 허락되지는 않았지만, 성전 건축 준비까지 금지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석재, 목재, 금속 그리고 기술자 등 성전 건축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하고(대상 22:1∼5), 성전 봉사를 위한 여러 부서들과 직책들을 꼼꼼히 설치한다(대상 23:1∼28:21). 마지막으로 다윗의 삶은 감사의 기도로 끝을 맺는다(대상 29장).

 역대상이 이스라엘과 다윗의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으로 삶을 종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역사의 평가는 한 인간이 이룬 업적과 성취보다도 믿음을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역대상은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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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미자립교회위원회, 마스크 손세정제 등 지원

“농어촌 미자립교회 목사님들 힘내세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자립이 어려운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를 돕고 있는 농어촌미자립교회위원회가 16일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찬양축복교회와 이천에 있는 설성장로교회를 방문해 코로나19로 인한 예배 중단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힘을 보탰다. 이정부 위원장과 위원들은 목회자들에게 지원금과 함께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의 생필품을 전달했다.

 평택 찬양축복교회 최해석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주셔서 성도님들께 드릴 수 있게 돼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천 설성장로교회의 류종관 목사도 “교회건축을 위해 받은 대출금을 갚을 길이 막막했다. 재정적 압박이 큰 상황이었는데 장로님들의 방문에 큰 힘을 얻었다”고 고마워했다.

 우리 교회는 1994년부터 26년간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1만447개 농어촌 교회의 자립을 도왔고 219억 원을 지원했다. 현재도 매월 평균 327개의 교회를 지원하며 농어촌복음화에 힘을 더하고 있다. 올해는 농어촌미자립교회 지원금을 지난해 보다 1억 원이 늘어난 8억50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이정부 위원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교회를 지키는 목회자들의 모습을 직접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농어촌 교회를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고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또 “주신오토모티브를 운영하시는 권사님의 특별 후원으로 이번에 농어촌 교회를 도울 수 있었다”며 성도들의 많은 후원을 부탁했다. 


투바공화국/이철성선교사 후임인 나타샤라목사의 인도

투바에 일어난 순복음 영성 되살리는 노력 필요

1992년 이철성 목사 첫 파송 후 급속 성장 
귀임 후 이단 성행하며 성도들 현혹시켜 
소련선교회 후원 및 중보기도 힘쓸 계획

 

 시베리아 남쪽에 위치한 투바공화국. 러시아의 자치 공화국으로 우리에게는 생경한 이름이지만 순복음의 영성이 이 곳에 불어닥친 것은 1990년 초반의 일이었다. 정확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조용기 목사 초청 성회에 참석했던 한 고려인으로 인해 투바공화국에 순복음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대통령 법률고문이었던 그는 당시 대통령에게 불교국가이긴 하지만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한다. 그리고 바로 대통령의 요청으로 우리교회에서 이철성 목사가 선교사로 파송됐다. 불교국가이지만 러시아 정교가 활동하는 이 나라에 순복음이 끼친 영향력은 상당했다. 선교사가 세운 투바순복음교회를 비롯한 지교회를 통해 1000명에 이르는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교제를 나누게 됐다.
 이철성 선교사가 10년의 사역을 마치고 2004년 귀임하면서 투바순복음교회는 이 선교사로부터 양육받은 현지인 사역자가 담임으로 세워졌다. 간간히 본교와 연락은 오고갔지만 이 선교사가 귀임한 후 한동안 우리교회에서는 발걸음이 뜸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믿고 사역을 맡겼던 현지인 사역자가 교회를 처분하고 타지역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런 중에 교회는 분열됐고, 책임지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 리더가 없자 성도들이 하나 둘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 중 나타샤라는 여 목사가 교회를 다시 일으키고 순복음의 열정에 불을 붙이려 노력하다 결국 모교회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지난 6월에 열린 순복음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해 그 동안의 사역을 보고한 나타샤 목사는 교회가 처한 어려움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소련선교회장 박흥열 장로는 급박한 상황을 선교국에 보고하고 토지임대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7월에 1000달러를 지원했다.
 그리고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2일까지 소련선교회장 박흥열 장로와 임원 그리고 투바공화국에서 사역했던 이철성 목사(현 순복음동산교회 담임)가 함께 투바공화국을 다녀왔다.
 동쪽 대부분은 삼림으로 덮여있고 서부는 분지지대로 이뤄진 투바공화국은 키질이 수도다. 우리와 같은 알타이 족에 해당하는 투바족이 사는 투바공화국은 과거 중국 청나라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1914년 러시아 제국으로 넘어갔다. 1961년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되면서 1993년에는 투바공화국으로 개칭된다.
 수도 키질에 아시아의 지리적 중앙임을 상징하는 ‘아시아의 중심 기념탑’을 세워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투바공화국 사람들은 한때 구소련의 붕괴로 극심한 후유증을 앓기도 했다. 이철성 목사가 선교사로 활동할 당시만해도 소련선교회가 의료선교까지 펼치며 애정을 쏟았던 그 곳은 최근 이단들이 성행하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신실했던 한 목회자가 이단의 꾐에 넘어가 많은 교인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현지 성도들은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국에서 상황을 보고 받고 이 곳에 와서 직접 상황을 본 순간 가슴이 아팠습니다. 전임 사역자가 사택과 교회를 팔고 떠나는 바람에 다른 교역자들과 성도들 가슴에 큰 상처가 남아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타샤 목사가 끝까지 남아 200여 명의 성도들과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박 장로는 현지를 방문해 보니 투바순복음교회의 어려운 상황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종교법상 15년된 교회는 자체 등록을 할 수 있지만 투바순복음교회의 경우는 세워진지 13년 밖에 되지 않아 자체 등록이 어려워 가까운 러시아의 민스크에 있는 오순절 교단 교회로 소속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교회 일은 비록 안타깝게 마무리 됐지만 교회 성도들이 민스크에 있는 교회 목사에게 ‘우리는 끝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 소속이다. 결코 변함이 없다’라고 했다더군요. 그들의 확고한 정체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 장로는 또 “아침에 숙소 인근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강가에 한 무리가 모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성경공부를 하고 있던 이들은 다름아니라 교회 분열이후 투바순복음교회를 떠났던 교인들이었다. 우리를 보고 반가워 한 이들은 교회가 안정을 찾고 있다는 소식에 다시 투바순복음교회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놀라워 했다.
 이철성 목사와 박흥열 장로는 이번 투바공화국 방문에서 남아 있는 교역자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타샤 목사를 담임으로 세우고 5명의 부교역자들에게 협력을 당부했다. 박 장로는 후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그동안 교류가 없었던 구 소련 지역 선교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우크라이나 자파로지아순복음교회와 영산신학대학 우크라이나 분교에서 열린 제1회 순복음 영산제자 선교대회에 참석을 권유했다. 기차를 타고 편도 6시간이나 걸려 선교대회에 참석했던 투바순복음교회 교역자들은 그 곳에서 순복음의 사역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사명감을 확고하게 다지게 됐다. 수 많은 제자사역자들을 보고 도전과 순복음 사역자로서의 자부심을 얻게 됐다고 했다.
 박 장로는 “1992년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한동안 이 지역에 복음의 문이 열려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철성 목사님의 경우는 일찍 이 곳에 와서 사역을 했던 경우에 속한다. 타 교단 사역자들도 많이 왔지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투바 사람들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간 선교사도 상당수다. 하지만 이철성 목사님의 경우 이 곳에서 크게 사역하실 수 있었던 것은 순복음의 파워가 막강했기 때문이다. 성령운동은 이 곳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녹였고, 주님의 자녀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역사했다. 하지만 점차 외국 선교사들의 활동이 제약을 받고 있다. 활발한 복음 사역의 전개를 위해서는 현지인 제자를 양육해 본교회와 교류함으로 순복음이 영성이 꽃피울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투바공화국에 관심을 갖고 이 곳에 복음이 활발히 전파될 수 있도록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복연 권사(마포2대교구)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

치매 걸린 친정엄마와 나에게 위안은 ‘성경’


나는 치매를 앓고 있는 친정엄마와 10여 년 넘게 함께 생활하고 있다. 낮에는 엄마를 돌보는 일이 괜찮지만 밤에는 엄마가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않아 집안일을 하며 엄마를 돌봐야 하는 나의 건강은 나빠지고 신경도 예민해졌다.

늦은 밤 잠에서 깬 엄마는 화장실에 가는 길을 잊어버렸다며 나를 깨우기 일쑤였고 같이 다녀오면 또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자는 나를 깨웠다. 그럼 나도 모르게 “힘들어서 지역장 못할 것 같아. 교회도 주일만 갈 수 있겠어.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며 화를 냈다.

2018년 교회에서 말씀 통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침마다 담당 교구장님이 읽을 본문과 함께 역사 배경 등을 문자로 보내주시면 그것을 지역 식구들과 공유하며 말씀의 은혜를 받았다.

말씀을 읽다보면 끝없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는 ‘하나님, 죄송해요. 엄마를 사랑하고 오늘 밤에는 엄마가 어떤 행동을 해도 절대 불평하거나 원망을 하지 않을게요’라고 기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불평하지 말자’고 입술을 꽉 깨물며 다짐해도 한밤중 잠자는 내 귀에 대고 찬송가를 크게 부르시면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또 다시 화를 내고 말았다.

매일이 바빠도 나는 성경읽기를 쉬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을 보면서 ‘나는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만 싶은데 다윗은 어떻게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지?’라며 큰 위로를 받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성경통독과 함께 저녁마다 엄마와 예배도 드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엄마가 전과 달리 밤에 잘 주무셨고 나에게 ‘미안하다’라고 말씀도 해주셨다. 나는 이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임을 깨달았다.

어릴 적 한 번도 교회를 다녀보지 않았고 예수님의 ‘예’자도 들어보지 못했던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너무 궁금해 매일 성경책을 끼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태해져 말씀을 멀리하고 있었으니 말씀 통독이 나에게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말씀을 읽으면 가슴에 감동이 밀려왔고 감사와 기쁨이 내 안에 샘솟았다. 전에는 ‘전도’라는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됐지만 말씀에 은혜를 입자 전도 열정도 되살아나 하나님이 주신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했다.

나는 매일 소리 내어 성경을 10장씩 읽는다. 24시간 붙어있는 엄마는 내가 읽는 말씀을 듣고 행복해하신다. 말씀은 곧 힘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묵상이 길어진 요즘은 SNS를 활용해 믿음의 식구들과 매일 성경 통독 및 필사의 은혜를 나누고 있다. 지칠 때 위로를 주셨던 하나님을 통해 크리스천의 삶 속에서 말씀과 기도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교회 교구 개인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9. 다니엘의 소명과 제국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세 개의 제국과 네 명의 왕을 보필한 최고의 재상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단 1:21)


17세기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왕정시대가 저물어가고 왕에 의한 1인 통치가 아닌 의회에 의한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다. 왕은 존재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왕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었다. 왕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나라의 전반적인 대내외적인 일은 의회의 수장인 총리가 감당하게 되었고 역할과 권한도 강화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총리를 손꼽으라면 저마다 다른 인물들을 댈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현대의 입헌군주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이지만 왕을 대신해 총리로서 제국을 다스렸던 위대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형들에게 팔려 히브리 노예에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창 41:41)과 전쟁 포로에서 신(新)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과 그의 아들 벨사살, 메대의 다리오,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까지 세 개의 제국, 네 명의 왕을 보필한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고의 재상(宰相) 다니엘이다(단 2:48; 6:2).다니엘 1장 21절은 짧은 한 절의 말씀이지만 다니엘이 권력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 때문이 아니라 그가 왜 벗고 싶은 짐을 벗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어야만 했는지 그의 소명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1. 남유다의 멸망

성경에 느부갓네살로 기록된 네부카드레자르 2세(Nebuchadnezzar II)는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물리치고 유브라데강 하류 지방까지 점령했다(왕하 24:7; 렘 46:2~12). BC 625년 그의 아버지 나보폴라살(Nabopolassar)은 앗수르(앗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신바벨론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신바벨론 제국(BC 625~539)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제국의 기틀이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느부갓네살은 재임기간 동안(BC 605~562)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비롯한 대규모 건축 사업을 일으켰고 신바벨론은 제국의 면모를 갖추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애굽과의 전쟁 이후 근동의 패권을 완전히 손에 넣었고 이스라엘을 여러번 침략했으며 남유다를 멸망시켰다(BC 586).예루살렘에 입성한 느부갓네살은 솔로몬 성전을 파괴했고 성전 기물들을 빼앗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단 1:2). 유대인들은 네 번에 걸쳐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것을 바벨론유수라고 한다. 1차는 다니엘을 포함한 귀족과 왕족이 끌려갔고(BC 605, 단 1:1~6), 2차 때는 여호야긴 왕을 포함 방백들과 군사들 그리고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들과 각 분야의 장인들 외에 일반 백성들까지 1만 명의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갔다(BC 597, 왕하 24:14).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친애굽 정책을 폈던 시드기야 왕은 남유다의 멸망과 함께 마지막 왕이 되었다. BC 586년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솔로몬 성전까지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때 시드기야 왕과 다수의 백성들이 세 번째로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네 번째는 BC 581년 느부갓네살 왕의 시위대장인 느부사라단에 의해 남아 있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끌려갔다. 이 과정에서 비천한 사람들 약 2만 명 정도만 유다 땅에 남게 되었다(왕하 24:14).

2. 노예 소년의 성장

BC 605년 귀족출신인 다니엘은 남유다가 멸망하기 19년 전인 1차 바벨론유수 때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왔다. 느부갓네살 왕은 어린 소년이었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쳐 왕궁에서 일을 시키고자 했다(단 1:4). 마케도니아의 펠리포스 2세(BC 382~336)는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을 위해 알렉산더가 13세가 되던 때 당대 최고의 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들였다. 알렉산더는 20세에 왕위에 오른 뒤 바사(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헬라제국을 완성해 위대한 대왕의 자리에 올랐다.

바벨론과 헬라 시대는 시간적 차이가 있으나 그 당시 근동의 교육은 대부분 성인식을 치른 13세에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면 느부갓네살이 교육을 시켜 왕궁에서 쓰려고 유다의 소년을 잡아 왔다면 다니엘의 나이도 13세 쯤 되었을 것이다. 다니엘에게 주어진 교육의 시간은 3년이었다(단 1:5). 이 기간 동안 다니엘의 이름은 바벨론 식의 이름인 벨드사살로 바뀌었고(단 1:7) 전혀 생소한 언어 문화 학문을 익혀야 했다.

느부갓네살 왕은 무자비한 왕이었다. 시드기야 왕의 아들들을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무자비하게 죽였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데리고 왔다(왕하 25:7; 렘 39:6~7; 52:11). 그리고 자신의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술사들의 몸을 쪼갤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던 왕이었다(단 2:5). 하지만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왕의 음식을 거부했다(단 1:8). 이것은 참으로 목숨을 건 위대한 신앙의 결단이 아닐 수 없다.    

3. 다니엘의 소명과 고레스 원년

바벨론에 잡혀온 유대인들이 꿈에 그리던 일이 고레스 원년에 일어났다.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가 포로로 잡혀 왔던 유다 백성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조서를 내렸다(스 1:1~3; 대하 36:22~23). 다니엘 1장 21절은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은 다니엘이 고레스 원년에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때까지 관직에 있었고 그 후에 그만 두었다는 의미이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했다는 성경의 기록을 볼 때(단 6:28), 수많은 권모술수가 난무했던 궁정에서 다니엘이 신변의 위협을 느꼈거나 왕으로부터 신망을 잃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70년 동안 바벨론 메데 바사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며 네 명의 왕 밑에서 재상을 지냈던 예언자이며 정치가였던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 이후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난다.성경에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고레스가 유대인의 포로귀환을 결정할 때 다니엘이 대단히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13세에 바벨론으로 왔다고 가정한다면 70년의 세월이 지나 다니엘의 나이는 83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세 개의 제국에서 네 명의 왕을 모시며 수많은 음모와 사자 굴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단 하나의 이유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그의 조국 남유다가 멸망하고 시드기야 왕이 두 눈이 뽑혀 사슬에 메어 바벨론으로 잡혀오는 굴욕과 복받쳐 오르는 오열을 참아냈다. 마침내 예언되었던 70년의 시간이 차고, 고레스가 유다 백성의 포로귀환을 칙령으로 반포하자 다니엘은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말씀이 다니엘 1장 21절의 말씀이다. 이후 그는 다니엘 7장부터 정치가가 아닌 미래에 일어날 영적 전쟁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학장)


고난의 유익/이영훈목사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 71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사태로 말미암아서 벌써 2달째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또 TV 앞에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하심과 평안함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이 어려움을 통과하고 난 후에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절망이지만 절망 뒤에 다가올 희망의 내일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이제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게 하여 주셔서 우리 대한민국이 온 세계에 그 의료기술이 가장 뛰어난 나라로 인정받고 주목받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고 이 땅에 독버섯처럼 자란 신천지 이단이 완전히 해체되고 뿌리 뽑혀서 교회가 정화되고 교회에 제2의 부흥이 있게 하여 주시고 신천지를 통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에 분열과 사회의 혼란을 가져왔던 이 모든 문제가 싹 해결되는 좋은 결과가 있게 하여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 세워진 많은 국회의원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을 섬기고 올바르게 그 맡겨진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있는 자리에서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평안을 저희의 마음 가운데 허락하여 주셔서 염려, 근심, 걱정이 다 사라져버리고 주님이 주신 평안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승리하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시편 119편 71절 말씀 가지고 "고난의 유익"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유익" "고난의 유익"

이 세상 사는 사람들 가운데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게 고난이 다가오면 어떡하든지 고난을 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될 것은 아무리 애를 쓰고 피하려 해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때 많은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을 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난은 궁극적으로 신앙과 생활의 큰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고난 없는 성숙은 없다

먼저 고난 없는 성숙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언제 영적으로 성숙합니까. 고난을 당할 때 성숙하는 것입니다.

온실의 화초가 잘 자라는 것 같아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아도 병충해에 약하고 찬 바람 한 번 불면 시들어 버려 죽게 합니다. 왜? 고난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겪어서 찬 비바람을 맞은 화초가 굳건히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힘들고 어려워도 열심히 공부해야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가 있습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건강 검진 가면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하루에 30분 이상은 숨이 찰 정도로 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님처럼 나이가 드셨으면 하루에 30분은 숨이 가쁘게 걸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이렇게 우리가 수고하는데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훈련과정을 통하여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 고난을 통하여서 주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119편 71절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 왜 하필이면 이러한 일이 내게 다가왔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고난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그를 더 짓누를 뿐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이 다가올 때 오히려 자신을 살펴보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뢰하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이 고난의 과정 속에 어떻게 나를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까를 깊이 생각하며 믿음의 전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를 바로잡아 주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길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이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길을 바른길로 가게 바꾸어 놓으십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야 하는데 다시스로 가니까 풍랑이라고 하는 고난을 통해서 그를 물고기 뱃속에 넣으시고 다시 니느웨로 방향을 돌리신 것처럼 우리가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알게 모르게 주님 뜻과는 벗어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자신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까. 고난의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주님의 뜻이 있고 주님의 은혜가 있고 주님의 가르치심이 있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과 잘못된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을 바로잡고 바른길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는 삶의 나침반이요, 인생의 내비게이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과할 때 철저히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를 다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서 내 영혼을 살펴서 주님 보시기에 내가 잘못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다 찾아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고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50절입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고난 당할 때에 말씀이 내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치료가 되고 능력이 되어서 정말 죽을 것 같은 그 고난의 자리에서 우리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절대로 우리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절대 절망이 아닙니다.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지만 우리를 더 나은 길, 좋은 길로 인도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오히려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웬 귀신 들린 아이가 자꾸 쫓아와서 방해를 합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버렸어요. 그랬더니 이 점치는 여자아이를 통해서 돈을 벌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이상한 풍습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고발해서 붙잡아서 매를 맞게 하고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아마 그 지역 유지였던 모양이죠. 재판도 받지 않고 그렇게 몰매를 때리고 감옥에 넣을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매 맞고 들어간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 여기까지 복음을 전하러 왔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밤중에 감옥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은 설명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 순간 옥터가 흔들리고 손과 발에 매인 모든 것이 풀어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26절입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고난의 감옥에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절망 가운데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고난의 옥터를 흔드시고 매인 것을 풀어주시고 닫혔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시편 119편 54절, 55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야훼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아프지 않은 주사가 없습니다. 한 번 어릴 때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병원에만 가자고 그러면 싫다고 그럽니다. 주사만 보면 웁니다. 그러나 그 아픈 주사가 내 몸에 있는 병균을 죽이고 나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고난의 주사가 아픕니다. 그러나 그 아픔이 내 영혼을 찌르는 그 통증이 내 영혼 속에 들어와 있는 영혼의 악성 바이러스들을 다 죽이고 나를 치료하고 살려내는 놀라운 은혜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난 중에, 절망 중에, 아픔 중에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이다

둘째로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없는 영적 성숙도 없을뿐더러 이 고난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 나은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입니다. 피한다고 해서 피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참고 견디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극한 영혼의 고독과 통증을 느끼며 그냥 고난의 시간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저 눈물의 골짜기에 이르면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픔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은 아픈 것입니다. 아프지 않은 주사가 어디 있습니까. 다 주사가 아프지요. 그러나 그 고난이 축복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중에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119편 84절, 85절입니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얼마나 힘들면 이제 내 인생의 남은 날이 며칠이나 됩니까? 막 너무 고통이 심해서 막 거의 죽게 되었어요. 마음이. 나의 남은 날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내가 너무나 힘듭니다. 나를 물고 뜯고 원수들이 나를 공격해오고 웅덩이를 파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고난이 그러한 고통이 다가왔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시며 우리 앞에 시온의 대로가 펼쳐지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119편 88절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나를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유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잘 참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룩한 꿈을 꾸었을 때 형들이 시기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동생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심부름 온 그 동생 요셉을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17살 때 이야기입니다. 꿈 많은 소년이 하루아침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울면서 형님들 그러지 말라고 그랬는데 형들은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당시에 노예로 팔려간다는 것은 죽음의 길과 같았습니다. 1년 365일 때리고 일 시키고 부려먹다가 병들면 광야에 내다 버려 짐승의 밥이 되어 죽게 하는 것이 그 당시 노예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어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고난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참고 견디고 또 견디고 또 견디고 또 견뎠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인정을 받아가지고 이제 좀 안정되려고 하니까 덜커덕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어도 누명을 씌운 그 경호 대장 보디발의 부인을 욕하거나 원망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형들을 원망한 이야기도 없고 누명을 씌운 사람을 원망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억울하고 기가 막힌 일을 당했지만 주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주님의 뜻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 이미 주님의 거룩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 기간이 13년입니다. 그 기간을 잘 견뎌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 당하고 젊은 나이에 13년 참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린 누구에게 그런 말만 들어도 발끈하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그와 싸우려 하는데 요셉은 그저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13년 동안 참고 또 참고 또 참았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시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젊은 소년의 나이에서 13년은 몇십 년 같은 긴긴 세월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 긴 세월을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을 잘 견뎌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 당하고 젊은 나이에 13년을 참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그런 말만 들어도 발끈하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그와 싸우려 하는데 요셉은 그냥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13년 동안 참고 또 참아서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시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젊은 소년의 나이에서 13년은 몇십 년과 같이 긴 세월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 긴 세월을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런데 그 13년 중에 가장 힘들었던 기간이 마지막 2년입니다.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루는 바로왕 옆에서 섬기는 높은 관원장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한 명은 떡 맡은 관원장, 다른 한 명은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꿈을 꾸었는데 요셉이 해몽을 해보니 술 맡은 관원장은 사람은 살 운명이고 떡 맡은 관원장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이 복직되면 바로왕에게 말해서 풀려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요셉의 해몽대로 그는 복직이 되었지만 사람이 화장실 갈 때 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나가는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창세기 40장 21절에서 23절입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잊힌 인연. 요셉은 "야 이 밤만 자면 내일 나가겠구나." 밤잠을 못 자고 설렜을 것입니다. 해몽을 해준 사람이 바로왕 옆으로 갔으니 그가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예로 잡혔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한 소년을 만났는데 해몽을 잘합니다. 그 사람 살려줘야 합니다." 그 한 마디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기다립니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까?" "연락이 없는데." "아마 오늘 복직해서 바쁜 모양입니다." 다음 날 아침 "연락 없습니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열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시간이 길게 늦게 느껴졌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잘 참고 견뎠습니다. 참고 견디다 마침내 서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는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41장 38절로 41절입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그가 지낸 그 긴긴 13년의 기간 그 누구도 자기를 돌봐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17살 그가 소년의 때에 어린 청년으로서 애굽에 끌려왔을 때 말도 다르고 풍습도 다른 애굽 문화 가운데 노예로 자라면서 히브리 노예로 붙잡혀왔으니 얼마나 멸시를 당하고 짓밟힘을 당했겠습니까? 사정없이 등에 채찍질이 내리쳐져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를 불쌍하다고 위로해주고 돌봐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였습니다. 감옥에 내동댕이쳤을 때에도 혼자였습니다. 꿈을 해몽해 준 지 2년이 지났으니까 그전에 또 얼마 정도 감옥에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수년간을 감옥에서 외롭게 혼자 깊은 고독 속에서 그는 오직 주님 앞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긴긴 이 고독의 시간이 그의 영혼을 깊이 통찰하게 하고 영적으로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고난 중에 나 홀로의 시간을 갖게 될 때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내 자신이 서서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치료받고 위로받고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고독의 밤을 지나며 외로움의 밤을 지나며 슬픔의 밤을 지나며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고난 중 말씀과의 동행은 형통을 가져온다

셋째로 고난 중 말씀과의 동행은 형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위대한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은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은혜입니다. 빛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아 모세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입구까지 40년이 걸려서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모세가 눈이 침침하지도 않고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하나님이 모세를 "이제는 너의 할 일을 다 잘 감당했으니 이제는 그만 다 내려놓고 내게로 와라." 그러고 주님이 데려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데려가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허탈감과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니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우리 지도자 모세를 데려가면 어떻게 합니까?" 후계자로 모세의 몸종이었던 시종이었던 여호수아를 세웠지만 40년 동안 모세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눈에 안 들어 왔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 자신도 갑자기 40년을 따라다니던 영적인 거인이요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가 천국에 가시게 되자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이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수아 1장 7절 8절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매 순간순간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인생길이 흑암으로 뒤덮여서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아도 말씀을 붙잡으면 말씀이 내게 호롱불이 되어서 나의 갈 길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오직 믿고 의지할 것은 주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을 때 그 말씀이 나를 절망에서 건져주고 슬픔에서 위로해주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위대한 능력을 내게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7절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야훼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할렐루야! 주의 말씀은 우리를 살립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를 살려 주시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말합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합니다. 그 말을 통해서 내게 큰 상처를 안겨줍니다. 그 말 하나하나에 연연해하지 말고 귀 닫아버리고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의 말씀이 나의 은신처가 되고 나의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4절입니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말씀이 나를 붙들어 주고, 말씀이 나에게 꿈과 소망을 이루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6절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어떠한 고난이 어떠한 절망이 어떠한 문제가 어떠한 슬픔이 어떠한 괴로움이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십시오.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십시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 말씀 붙잡고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이 고난 가운데 극한 상처와 절망 괴로움 가운데 있는 나를 살리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두 딸을 키웠던 한 엄마가 큰딸을 잃고 다시 말씀 붙잡고 일어나 승리한 홍애경 집사님. 수원 온누리교회 집사님이신데요, 이분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이분은 음대 교수인 아버지 밑에 태어나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드라마 작가로 활동했고, 남편과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두 딸을 낳았습니다. 두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 사우스베일로 한의대를 졸업해서 한의사로 활동하며 남들이 보기에는 승승장구하고 잘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큰 고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큰딸이 결혼을 앞두고 말기 암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2년여 동안 암과 싸우다가 27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엄마로서 더 큰 충격이었던 것은 자기는 세상 성공을 향해 승승장구하고 잘 달려나갔지만 큰딸 제니퍼는 얼마나 주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면에 신앙적인 면에서 부족한 것이 없던 딸이었는데 "어떻게 하나님 왜 저렇게 착한 제니퍼를 데려가셨습니까, 날 데려가셨어야죠." 울부짖어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울다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이와 같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데려가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니? 내가 너를 데려갔으면 너는 지옥에 갔을 거야. 그래서 너를 데려갈 수 없었어. 그러면 너는 영원히 제니퍼를 만날 수 없어. 그래서 제니퍼를 먼저 데려온 거야. 그러니까 너도 이제부터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해. 그래야 제니퍼를 만날 수 있어."

쾅, 주님이 해머를 때리신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름 그대로 그는 이름뿐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름뿐인 크리스천. 그래서 미국에서 예수 믿느냐고 물을 때 꼭 물어보는 말이 있습니다. '아 유 본 어게인 크리스천 (Are you born again christian?) 거듭난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무엇하나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 없이 세상의 성공을 향해 달려나갔던 그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눈물로 회개하고 모든 것 다 접었고 정리하여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때부터 바르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말씀으로 출발합니다. 큐티를 하면서 큐티하는 권사님들이 같이 모여서 간증을 나누면서 매일매일 말씀으로 무장을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를 주시는지 과거의 잘못되었던 자기 모습을 보여주시고 이제는 바로 살 수 있는 인생의 기회를 제시해 주셔서 자신처럼 고난 당한 이웃들 위해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올해 1월에 '오늘도 만나를 줍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간증집을 냈습니다. 이 책에서 고백합니다.

"다시는 기뻐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 마음에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시는 감사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모든 일이 감사했다. … 어떻게 세리 같던 내가 그리스도의 신부를 꿈꿀 수 있었는지,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이유를 안다. 말씀으로 내 영혼이 소생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은 이렇게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힘이 있다."

고난 없는 성숙은 없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축복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인 것을 잊지 마시고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며 철저히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껍데기뿐인 신앙생활 했던 것 용서하여 주옵소서. 원래 교회를 다녔으면서도 구원의 확신도 제대로 없는 채 구원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이 시간 돌이키게 하여 주시고 예수 바로 믿고 남은 인생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사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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